[Review] 색채의 공간, 산책하는 이미지 - THE COLOR SPOT [전시]

글 입력 2022.05.09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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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는 내게 늘 어렵다. 다른 장르라면 이미지화를 통해 내 이야기를 해내 보이겠건마는, 미술은 그게 참 잘 안된다.

 

활자나 선율에서 이미지를 그려내거나, 감정을 투영해내는 것과는 달리, 이미지에서는 다른 이미지로 연계하여 의미를 포착해내거나 풀어 보이는 것이 아직까지는 어렵다. 감각의 공감각적 치환, 시각의 청각화나 후각화 등의 어레인지는 지금의 내겐 요원한 일이다.


전시는 그래도 설레는 일이다. 그것은 일상세계와 분리된 엄연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검은 천으로 분리된 공간 안에 들어서면,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이미지들이 가득하다. 글을 위하여, 이야기를 위하여, 더욱 많은 이미지가 필요한 나는 누군가 만들어 놓은 인위적인 이미지를 눈에 한가득 담아보려 한다.

 

그것이 다시 다른 글을 쓸 수 있는 동력이 되어주기를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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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OR SPOT, 직역, 색채의 공간은 단연 원색들이 돋보이는 전시이다. 색을 아낌없이 퍼다부었다. 미디어아트 전시이니, 색채들은 자꾸 움직이며 얼마나 통통 튀어 다니던지. 한껏 눈을 떠 모조리 심상 속에 퍼담을 요량이었던 것이 본래의 계획이니만큼, 망막이 따끔할 정도이다.


근래 미디어아트에 부쩍 관심이 늘어났다. 최초의 경험은 '르네 마그리트 展'의 하이라이트 부, 그의 그림을 미디어아트로 재구성한 라스트 섹션에서였다. 전율의 첫 경험이 나를 다른 미디어아트 전시로 이끈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

 

콩코드의 우산 쓴 사내가 하늘에서 지상으로, 무한한 비처럼 떨어지는 공간 안에 슈베르트의 세레나데가 채워 들어오는 것이 아직까지도 황홀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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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가만 서서 오래도록 바라보기에 적합하지만, 언제까지고 이 한쪽 면의 얼굴만 바라볼 수 있다는 사실이 가끔씩 아쉬움을 자아내는 때가 있다.

 

나만의 공간, 나만의 전시에서 가장 사랑하는 그림 앞을 얼마든지 머물 수 있다면 그림의 묘미가 최대한으로 살아나겠지만, 뒷사람에게 밀려 쉴 새 없이 이동하는 중에 바라본 그림은 표정없는 얼굴 같이 느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 그림과 대화할 만큼 충분히 머물지 못한 탓이다. 미디어아트의 묘미는 바로 이런 전시의 아쉬움에 대비되며 느껴진다.


자꾸 움직이는 그림들, 미디어아트에는 하나의 순간을 포착하여 끊임없이 응시하는 방식을 채택할 수가 없었다. 그림의 상하 좌우를 전부 뜯어보며 상징과 기표를 찾고 해석해나가는 일, '살바도르 달리 展'에서 사용해본 방식은 미디어아트 관람에 적합하지 않다.

 

대신, 계속해서 움직이는 그림을 따라 나도 계속 걸어보며, 이 산책하는 이미지들을 따라 나도 멈추지 않고 계속 흘러가면서 머릿속을 비워내는 방식을 택해보았다. 과연 편안하다. 마치 물 위에 녹은 듯 흘러내리는 조르디 이모티콘을 바라보며 느낀 평안함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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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번째 공간, COLOR SPOT



나는 제목에 집착하는 편이라, 설명을 찍어왔다. 이 설명을 통해 전시를 해석해 보일 요량으로.

 

물론 무척이나 어려웠다. 순수 이미지에서 상징과 은유를 포착하기에는 아직 부족함이 많다. 이 화려한 빛 무리의 어느 구석이 두려움을 대변하는지, 그리고 아무런 구별이 없는 이것의 어디부터가, 두려움에 대비되는 것으로서의 꿈이 될 수 있을지 포착해보려 했으나 실패했다.


미디어아트의 어려움은 또한 이것, 가만히 멈춰진 채 숨겨둔 기표나 기의, 즉 해석의 열쇠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에 있지 않을까. 거기 열쇠가 있다 한들, 계속 흐르고 떠다니는 무수한 이미지 사이에서 그걸 찾아내는 것은, 마치 해리포터 시리즈의 열쇠방 씬 속, 수많은 낡은 열쇠 속의 유일한 황금 열쇠를 찾는 일과 같이 피로한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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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이렇듯, 나름의 묘미가 있다. 자꾸 다른 옷을 입고서 무대에 등장하는 연극배우처럼 옷을 달리 입으며 여러 얼굴을 보여준다는 것이 주는 의미가 퍽 크다. 같은 디자인에 색만 다른 옷에서도 받는 인상은 각 다른 것인데, 미술이야 오죽할까.

 

이것이 꿈을 꾸게 만든다는 것은 조금 미심쩍지만, 어쨌든 꿈꾸는 기분을 자아낸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이 공간에 가득한 산책하는 이미지가 망막을 향해 드잡이로 던지는 것들에 대한 가장 원초적인 인상은 그것이 꿈 같이 묘연하다는 것이다.


눈을 뜨고 꿈을 꾸면 이렇듯 선명하게 묘연할 수 있을까. 색깔들이 벽면을 타고 두둥 떠다니거나, 뚜벅뚜벅 걸어서 내 걷는 관람로를 따라 산책하는 것은 어떤 기묘한 꿈일거나. 이제 이 전시가 꿈속의 자연인지, 자연이 꾸는 꿈인지, 여기서부터는 꿈보다 해몽의 영역이겠지만, 구별해내기 어렵다.

 

내가 전시관 바깥까지 꼭 쥐고 나온 것은 얼굴 없는 색채들을 따라 걸어본 이 산책이 무척이나 산뜻하다는 감각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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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래서 이 전시에 COLOR SPOT, WALKING IMAGE라고 제멋대로 다시 이름을 붙인다.

 

그리고 이 안에서 해몽을 찾기보다는, 눈뜨고 꾸는 꿈을 만끽하듯, 꿈같은 색채들을 졸졸 따라다니는 편이 훨씬 행복할 것이라고 적는다. 색채가 가장 원초적인 쾌감을 준다는 누군가의 말이 떠오른다. 이렇게 무규칙하고 의미 없이 흔들리고 뒤섞이는 이미지 틈바구니에서 내가 얻어낸 것은, 해몽이 아닌 쾌감이었다.


자의적인 방식으로 형상화한 이미지에서 그것의 의미를 탐색하는 것은 내 생각엔 정신건강에 이롭지 못하다. 다만, 어떤 거대한 인상들만이 남아 있을지도. 언제나 그랬듯, 원형의 이미지는 인상이라는 태그를 달고선 심상의 곳간에 차곡차곡 쌓인 다음, 그것이 투사될만한 다른 옷걸이를 발견하면 그 위로 쏟아져 나오게 된다. 그러니 설명과 의미들에 스트레스받지 마시고, 색채들을 따라 뚜벅뚜벅 걸어보시길 권면한다.


암막을 걷고 다시금 일상의 세계로 걸어나왔다. 밝은 빛을 보면 망막에 그 잔상이 남게 되듯, 전시 내내 따라다니던 원색들의 잔상이 일상 세계에 넘실거린다. 사람들은 참 여러 색의 옷을 입었고, 하나도 같지 않은 얼굴을 하고서 저마다 조금씩 다른 각도로 같은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여기 세상에는 참 많은 색들이 있었지만, 그것은 전부 시신경의 건강을 위해서인지 톤다운 되어있다. 갑자기 여전한 세상은 어딘가 칙칙하다고까지 여겨진다. 이것은 내가 바로 앞서, 색채가 가져다주는 가장 원초적인 쾌감을 마구 퍼마신 탓이겠거니, 한다.

 

 

오늘의 관람기는 여기까지이다.

나는 전시회를 뒤로 하고 약속과 밤과 야장과 낭만이 기다리고 있는 종로4가, 세운상가로 향했다.

 

다음 이야기 - 종로 스케치 1

 

 

[서상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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