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빛바랜 꿈 한 조각

내 어릴 적 꿈은 댄스 가수였다.
글 입력 2022.04.29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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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하는 일을 할 것인가, 좋아하는 일을 할 것인가. 대학교 정문을 들어가는 순간부터 이 질문은 내 머릿속의 큰 부분을 차지했다. 다시 대학교 정문으로 나와야 할 시기가 가까워진 지금도 나는 해답을 찾지 못했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건 내 오랜 숙명과도 같았다. 나는 성적에 맞춰서 대학교에 입학했다. 한 마디로 오고 싶어서 이 학과에 진학한 게 아니었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학과 공부에 흥미를 느끼고, 그 방향으로 진로를 잡는 친구들은 내게 다른 세상 이야기 같았다. 진로에 있어서만은 절대로 내가 뭘 원하는지도 모르고 그냥 받아주는 곳에 들어가는 건 안 하고 싶었다. 무조건 내가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싶었다.


포부는 좋았다. 그런데 근본적인 난관에 부딪힌 것이다. 나는 대체 뭘 좋아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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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 시절엔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많다고 한다.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나만 해도 우주비행사부터 비행기 조종사, 선생님까지 되고 싶었던 게 아주 아주 많았으니까. 가지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도 많았다. 그중에서도 오랜 시간, 내 마음속에 자리 잡았던 꿈이 하나 있다.


내 어릴 적 꿈은 댄스 가수였다. 그것도 꽤 오랫동안.


언제부터 댄스 가수가 되고 싶었는지는 모르겠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라는 것만 알겠다. 흔한 아이돌이 되고 싶다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언제나 ‘댄스’ 가수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내가 그걸 좋아했으니까.


어릴 때부터 나가서 춤추는 일이라면 빠지지 않았다. 5살 때는 아빠랑 놀러 갔던 공원에서 열렸던 댄스 대회에 난입해서 냅다 춤을 추고는 참가상으로 목도리를 받아왔더랬다. 친척들이 모두 모인 할머니 생신 잔치에서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모 아이돌의 노래를 열창해 용돈을 싹쓸이했다. 11살 때 참여했던 가족 단위 리더십 캠프에서 우리 집 텐트는 장기 자랑 상품이 가득해서 잠을 잘 공간이 없었다. 대강당에서 혼자 소녀시대 춤을 추던 기억은 아직도 선연하다. 심지어 나는 신앙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춤추고 노래하려고 3년 동안 교회를 다녔다. (하나님 아버지, 죄송합니다)


내 댄스 전성기는 장기자랑이었다. 춤에 대한 열정과 열망은 장기자랑에서 정점을 찍었다. 매년 있는 학년 수련회 장기자랑은 물론이고, 학급 장기자랑, 걸스카우트 수련회 장기자랑까지 내게 주어진 무대는 1년에 최소 세 개였다. 모조리 참가했다. 친구들을 모아서 가장 유명한 그룹의 노래를 준비했다. 내가 원하는 건 메인 댄서 자리였기에 메인 보컬을 원하는 친구들과 포지션을 두고 다툴 일도 없었다.


청순, 청량, 섹시, 큐티까지 안 해본 컨셉이 없었다. 몇 년 차 아이돌도 이렇게 다양한 컨셉을 해보진 않았을 것이다. 그 시간 동안 나는 너무 즐거웠다. 친구들과 안무를 익히는 시간이, 집에서 혼자 연습을 하는 시간이 내게는 꿈의 한 조각이었다. 그 당시에 내게 무대에 오르지 않고 밑에서 박수만 치는 나를 상상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나는 계속 무대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왜 그런 말이 있잖은가, 무대 체질. 난 내가 무대 체질인 줄 알았다.


하지만 으레 전성기라는 게 그렇듯, 끝나고 나면 급속도로 망조의 길을 걷게 된다. 나는 5학년 수련회 장기 자랑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댄스 가수의 꿈을 꾸지 않았다.

 

*


5학년 수련회 장기자랑 무대는 정말 열심히 준비했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가 선곡되기도 했고 (항상 그랬지만), 내가 좋아하는 멤버를 맡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 역시 항상 그랬지만). 그래, 그냥 언제나 그랬듯이 열심히 준비했다는 말이다.


내게 그 해의 장기자랑은 조금은 기록적인 무대였다. 함께 준비했던 친구들이 모두 후렴구 하이라이트 안무를 추지 않았다. 그러니까 모든 5학년 학생들이 모인 대강당 무대에서 나 혼자 후렴구를 춘 것이다. 무대가 끝나고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못내 뿌듯했다. 혼자 부끄러워하지 않고 준비한 모든 걸 해낸 내가 멋있었다. 그래서 그날의 일을 신나게 일기에 기록했다. (초등학생의 나는 일기를 꽤나 성실하게, 열심히 썼다)


그리고 그 일기 밑에 달린 선생님의 코멘트를 아직도 잊을 수 없다.


‘S는 댄스 가수 말고 다른 꿈을 찾아보는 게 좋겠구나.’


너무 당연하게도 악의가 없는 말씀이었다. 그저 내게 재능이 없음을 알려주신 것이다. 12살의 나도 그걸 알았고, 십 년이 조금 넘게 지난 지금도 그걸 안다. 하지만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여태 아무도 내게 춤을 못 춘다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어딜 가든 ‘잘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니까 잘하고 못하고의 개념이 없었다. 그냥 재밌으니까 하는 거였다. 내가 좋아하고, 또 재밌으니까 자연스럽게 꿈이 된 거였다.


그때부터 나는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내가 계속 댄스 가수를 꿈꾸는 것이 맞을까? 재능이 없다면 그만두는 게 좋지 않을까? 내가 재능과 흥미 사이에서 갈팡질팡한 최초의 순간이었다.


결국 나는 댄스 가수의 꿈을 접었다. 6학년 장기 자랑은 나갔다. 그건 나 혼자만의 은퇴 무대였다. 그해 그린 미래의 내 모습 그림에는 선생님이 있었다. 확고하고 오랜 꿈이었던 만큼 마음속을 차지한 부피가 너무 컸다. 그래서 마구 구겨버릴 수밖에 없었다.


*


그 이후로는 장기 자랑에 나가지 않았다. 춤은 더 이상 내가 좋아하는 게 아니었다. 잘하지 못하는 걸 좋아하기 힘들었다. 잘하는 걸 좋아하는 게 내 마음이 편했다. 그렇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잊혀져 갔다.


생각해보면, 춤 말고도 많은 것들이 잊혀졌다. 나는 파란색을 가장 좋아하지만, 내 옷장에는 파란색 옷이 없다.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지만, 지금은 그리지 않는다. 잘 못 그리기 때문이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걸 동일시하기 시작했다. 잘하는 것만을 꿈꾸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럴 수가. 내가 잘하는 것도 별로 없더라고. 하고 싶은 것도, 잘하는 것도 없는 딜레마의 상태에 빠져버린 것이다. 어릴 적엔 하고 싶은 일을 정할 때 내 능력치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는데, 이제는 능력치를 생각하지 않고서는 단 한 점의 꿈도 그릴 수 없는 인간이 되어버렸다. 그냥 아무런 생각 없이 주어진 일만 하는 무미건조한 삶을 살아내고 있을 뿐, ‘꿈’이라는 단어는 그 자체로 내게 희미해졌다.


그러던 중, 앰배서더로 활동하고 있는 월드케이팝센터 (World K-POP Center: WKC)에서 미션을 하나 주었다. 지니 캐스팅 오디션 부스 (GINI Casting Audition Booth)라는 셀프 오디션 부스에서 영상을 촬영하는 것이었다. 혼자서 오디션 영상을 제작할 수 있는 시스템을 체험하는 게 미션이었다.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부터 들었다. 실제로 기획사에 오디션 영상으로 제출할 것도 아니면서, 진짜로 가수를 할 것도 아니면서 나는 그 생각부터 했다.


영상 촬영 체험은 순식간에 진행됐다. 기계를 조작하는 건 너무 쉬웠다. 노래방 기계와 흡사해서 코인 노래방에 온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마음의 준비를 하기도 전에 내가 선곡한 노래가 흘러나왔다. 웃긴 건 그 와중에도 다양한 오디션 장르 중에 바로 노래를 선택했다는 거였다.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춤과 노래는 너무 오랜만이었다. 그렇게 좋아했던 것인데도 나는 자꾸만 망설였고, 노래하는 나와 낯을 가렸다. 몸에 배어버린 근성 탓에 열심히 노래를 불렀지만, 온전히 즐기지 못했다는 걸 잘 알았다. 씁쓸했다. 난 이런 애가 아니었는데.


영상 촬영 자체는 너무 신기했다. 크로마키 배경 효과도 신선했고, 에코를 비롯한 음향 효과도 지원되었다. 핸드폰으로 영상을 바로 전송받을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었다. 내 모습을 화면으로 실시간 모니터링할 수도 있었다. 이렇게 간단하게 오디션 영상을 만들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하지만 발전한 건 21세기 기술이고, 내 영상은 처참했다. 프라이빗한 부스로 구성되어 있었기에 망정이지 누군가 앞에서 이런 노래와 춤을 선보였다고 생각하면 차라리 울고 싶을 정도였다. 내가 이렇게 노래를 못했나 싶었다. 이런 실력으로 춤과 노래를 좋아한다고 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자학 개그의 일환으로 영상을 친구에게 보여주었다. 잘하지 못했다는 걸 아니까 웃음으로라도 포장하고 싶었다. 진짜 웃기지 않냐고 묻는 내게 친구는 대뜸 한 마디를 던졌다.


‘너 가수가 꿈이야?’


생각지도 못한 반응에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아니라고 대답하자 친구는 쿨하게 그럼 됐다고 말했다. 그 당시에는 웃어넘겼지만, 내겐 상당히 충격적인 반응이었다.


친구 말이 맞았다. 가수할 것도 아닌데 좀 못하면 어때.


많은 생각을 했다. 왜 부끄러워했을까. 왜 잘하지 못할 거면 좋아하지도 못한다고 생각했을까. 말로는 현실을 쫓아 잘하는 걸 찾는 게 나를 위한 일이라고 하지만 사실 난 겁이 나는 거다. 내 재능의 결여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거다. 부족한 내 모습을 자꾸 외면하고 싶은 거다.


잘하지 못해도 좋아할 수 있다. 즐기는 건 그것과는 별개의 문제니까.


이 단순한 매커니즘은 아직도 내겐 풀지 못한 숙제이다. 나는 여전히 못 하는 걸 좋아하는 걸 두려워하겠지. 여전히 내 부족한 능력을 외면하고 싶어 할 것이고, 나는 성과주의자라며 흥미보다 재능을 찾아가는 게 적성에 맞는다고 둘러댈지도 모른다.


가끔 나는 그 어떤 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걸 맘껏 즐기던 때로 돌아가고 싶어진다. 시간이 조금 필요하겠지만, 그날이 오면 구겨지고 빛바랜 꿈 한 조각 집어 들어 먼지를 털어내야지. 그 옆에 새로이 찾은 내 꿈 하나 놓아두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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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시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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