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끊임없이 상처를 주고 받는 세상 : 뮤지컬 '프랑켄슈타인' [공연]

글 입력 2022.02.22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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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야, 왜 우니?"

"길을 잃었어요."

"나도 길을 잃었는데."

 

- 뮤지컬 <프랑켄슈타인> 넘버 '상처' 中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은 워낙 우리나라 창작뮤지컬로 유명한 작품이다 보니 언젠가 꼭 보려고 했던 뮤지컬 중 하나이다. 하지만 사실 나도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의 존재를 알기 전까지는 “프랑켄슈타인이 괴물 아니야?”라는 일종의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고, 혹시나 과학 윤리를 다루는 암울한 철학적 뮤지컬일까 싶어 기대와 동시에 걱정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주위의 지인들이 몇 번씩 <프랑켄슈타인>을 보는 모습을 보고 그에 이끌려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로 향하게 되었다. 1월 23일과 2월 2일, 총 두 번 관람하였다.


*스포일러 주의: 감상평에 전반적인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전체적 줄거리 및 감상평



대략적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나폴레옹 전쟁에서 적군을 살리려던 죄로 사형당할 위기에 처한 군의관 앙리 뒤프레를 제네바 출신의 대위이자 과학자 빅터 프랑켄슈타인이 구해낸다. 앙리를 살려준 대가로 빅터는 자신과 함께 전쟁터에 사용될 인간 병기를 만들어내는 실험을 연구하자고 요구하고, 앙리는 결국 이를 받아들인다. 하지만 종전으로 연구실이 폐쇄되고, 빅터와 앙리는 제네바로 돌아와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에도 불구하고 프랑켄슈타인 성에서 생명을 창조하는 실험을 계속 진행한다.

 

그러나 실험체를 구하던 와중 빅터가 장의사를 살해하는 사고가 일어나고, 앙리는 빅터 대신 죄를 뒤집어쓰겠다고 하고 사형당한다. 이에 빅터는 생명 창조 실험을 통해 앙리를 다시 되살리려고 하지만, 그가 만들어낸 것은 앙리가 아닌 새로운 피조물(괴물)이었다. 그 뒤 빅터와 괴물에게 여러 사건이 일어나며 둘의 갈등은 점차 심화되어간다.


사실 넘버들도 어느 정도 익숙한 작품이고, 일부러 줄거리도 한 번 정독하고 관람하였다. 보통 첫 관람은 줄거리 파악이나 전체적인 연출 구경을 목적으로 보게 되는데, 지인들의 후기를 보았을 때 디테일이 많은 작품인 것 같아 이번에는 줄거리를 어느 정도 아는 채로 세부적인 디테일을 더 파고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프랑켄슈타인>은 다른 뮤지컬에 비해 상당히 전개 속도가 빠른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급작스럽게 시간을 건너뛰기도 하고, 때로는 등장인물이 그 사이의 이야기를 설명하는 식의 연출도 등장한다. 역시 ‘빨리빨리’를 좋아하는 한국인들이 만든 뮤지컬이라 그런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는 이미 줄거리를 파악하고 갔기 때문에 관람을 하는 데에 있어서 문제가 없기는 했지만, 줄거리를 아예 모르고 관람하는 분들의 경우에는 어떨지 모르겠다. 줄거리 파악에 신경 쓰느라 감정선을 완전히 따라가기에는 조금 힘들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러나 느슨한 부분이 없어 집중도를 떨어뜨리지 않고 계속 관람을 할 수 있다는 점이 좋고, 작품의 비극적이고 긴박한 분위기를 잘 살리고 있는 속도라고도 생각한다. 게다가 이 정도의 전개 속도에도 인터미션 포함 175분을 한다. 그만큼 서사가 상당히 알차게 채워진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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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연출도 상당히 화려하였다. 무대를 위로 가로지르는 다리, 양쪽에 놓인 난간과 계단, 감옥 창살 등 다양한 장치가 사용되고 특히 빅터의 생명 창조 실험에 사용되는 기계는 커다란 공연장을 꽉 채우는 상당히 웅장한 모습을 보여준다. 때로는 바닥 리프트를 띄워 산처럼 경사지게 만드는 연출도 보여주는데, 이 또한 직접 보면, 특히 1층에서 보면 매우 역동적으로 느껴지고 평면적인 바닥과는 전혀 다른 공간감을 느낄 수 있다. ‘Overture’ 넘버에서 프로젝터로 이미지를 스크린에 띄우는 연출도 굉장히 신선했다.

 

 

 

대조적 분위기의 1인 2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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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의 특징은 주연 배우들이 1인 2역을 한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본 대극장 작품 중에서 완전히 다른 두 캐릭터를 연기하는 작품은 <프랑켄슈타인>이 처음인 듯하다. 소녀 시절부터 성인 시절까지의 변화를 연기하는 <엘리자벳>이나, 내면의 두 자아를 연기하는 <지킬앤하이드>나, 극 내에서 또 다른 극을 연기하는 <맨오브라만차>와는 다른 형식이다. 애초에 다른 공간에 존재하는 두 인물을 연기하는 것이고, 또 그 두 공간과 캐릭터가 서로 상당히 대조된다.

 

작품이 전개되는 주요 장소인 제네바에서는 ‘평화의 시대’ 넘버 속 무도회장 씬과 ‘평화의 시대 Reprise’ 넘버 속 결혼식장 씬을 제외하고 등장인물들의 의상과 뒷배경의 색채가 굉장히 어둡고 침침하다. 이는 작품 속에서 계속 이어지는 암울한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나타낸다. 반면 격투장에서는 그 배경이 화려할 뿐만 아니라 지배자 위치에 있는 자크, 에바, 이고르, 페르난도의 의상 색채가 굉장히 선명하고 강렬하고, 피지배자 위치에 있는 괴물과 까뜨린느는 의상 색채가 어둡고 탁하여 지배자와 피지배자 관계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이렇듯 대비되는 색채는 캐릭터의 대조와도 연관이 된다. 대체로 모두 귀족의 계급에 위치하는 제네바의 주요 인물들은 욕망을 품고 있지만 이를 드러내지는 않는다. 각자 서로에게 진심으로 하고 싶은 말은 마음속에 묻어둔 채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반면 격투장의 주요 인물들은 모두 하층민 계급에 가깝다. 그들의 욕망은 지배자와 피지배자를 막론하고 모두 적나라할 정도로 드러나 있으며, 그 욕망을 인정하고 오히려 즐기며 사는 듯 보이기도 한다.

 

 

 

인간의 끊임없는 경쟁과 공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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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의 메인 캐릭터인 빅터와 괴물은 완전한 선인이라고도, 완전한 악인이라고도 할 수 없다. 그들에게 동정심을 가지지만 분명 비판할 점도 생겨난다. 빅터는 사람들에게 ‘저주받은 아이’ 취급을 받으며 자라왔고, 자신의 주위 사람들이 하나둘씩 죽어가는 것을 보며 자책한다. 하지만 그저 앙리를 살리겠다는 일념 하나로 피조물을 만들어내 버리고 결국 이름 하나 붙여주지 않은 채 그를 죽이려고 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괴물은 빅터에게 버림받은 갓 태어난 어리숙한 피해자이지만, 결국 빅터의 주위 사람들을 죽이는 것은 괴물이었기 때문에 빅터도 괴물에게 상처받은 피해자이다.

  

그런 의미에서 <프랑켄슈타인>에는 히어로도, 빌런도 없다. 그저 '인간'이 존재할 뿐이다. 절대적인 강자도, 약자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들은 신과 자연 아래에서는 그저 약자일 뿐이지만, 그 안에서도 약자를 정하려는 경쟁이 생겨난다. 빅터와 괴물의 갈등, 까뜨린느의 배신, 격투장 내 노예들의 싸움. 이들은 모두 상처받은 약자이지만 그들 사이에서도 권력 다툼이 발생한다. 이때 권력 다툼이라 함은 표면적인 의미이기보다는, 생존을 위해 조금이라도 더 우위를 점하려는 발버둥에 가깝다. 우위를 점하더라도 다시 전복된다. 그 과정에서 서로에게 끊임없이 상처를 준다. 상처를 받은 사람도 상처를 주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상처를 준 사람이 상처를 받기도 한다.


결국 이러한 다툼은 왜 생겨나는가? 인간들이 공존하고 있기에 생겨나는 것이다. 괴물은 격투장에서 학대받고 배신당하며 결국 혼자가 되고, 그 고독과 괴로움을 빅터에게도 안겨준다. 소중한 사람들을 모두 잃고 북극에 홀로 남은 빅터. 자신에게 상처를 줄 사람도, 자신이 상처를 줄 사람도 없는 철저히 혼자만의 공간에 남겨진다. 그런데도 이것이 빅터와 관객에게 비극적인 결말로 느껴지는 이유는 결국 인간은 인간과 공존함으로써 존재 의의를 얻기 때문이다. 상처받으면서도 공존하고자 하는 모순적인 인간상, 그것이 <프랑켄슈타인>이 전하고자 하는 주제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싶다.

 

*


개인적으로 지나치게 음울하거나 어두운 뮤지컬은 취향에 안 맞는 편이었는데 <프랑켄슈타인>은 서사와 등장인물의 감정선이 촘촘하게 짜여 있어 흥미진진하게 볼 수 있었다. 어려운 난이도의 넘버와 극한으로 치닫는 감정선에도 불구하고 배우들이 모두 그것을 해내는 실력이 뛰어나고, 같은 캐릭터를 맡은 배우들이라도 해석의 차이가 꽤 있어서 여러 캐스팅으로 보더라도 다른 뮤지컬을 보는 것 같은 색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아쉽게도 코로나로 인해 보려던 여러 회차가 취소되고, 마지막 공연까지 이어갈 수 없었다는 점이 안타깝지만, <프랑켄슈타인> 10주년을 맞는 2024년을 나름 기대해본다.

 

 

[김민성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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