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인생의 끝자락에서 이르러서야 자신을 마주하다 - 도서 ‘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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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마, 그는 누구인가?
이 책은 분명 한 인물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다. 그는 때로 신의 자궁에서 갓 태어나 신의 개념을 쫓아가던 소마였으며, 때로는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낯선 환경에 우뚝 심어져 이유모를 힐난을 받아야 했던 사무엘이었고 또 언젠가는 불씨 붙은 마른 장작처럼 활활 타는 복수심으로 점철되어 전장을 누비는 괴물 이틸라였다.
페이지를 한 장 한 장 넘기며 그의 다사다난한 인생을 뒤따르다 보면 그래서 이 아이가, 이 청년이, 이 노인이 누구인지에 대한 의문을 멈출 수 없게 된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는 언제나 ‘소마’였음을 깨닫고 나는 자꾸만 이전 문장, 이전 페이지로 돌아가고 마는 것이다. 채사장 작가의 소설에는 그런 힘이 있다. 처음 접했을 때는 ‘소마’라는 인물의 행동이, 그의 생각과 내면이 이해가 가지 않지만 다음 페이지에서 서술되는 그의 또다른 인생의 조각을 접한 후 그에게 동감하지 않을 수 없다.
책장의 마지막까지 넘긴 후 내가 내린 결론은 결국 소마는 사무엘이자 이탈리였고 모든 것을 잃어야 했던 안타까운 소년이었으며 다른 이의 모든 것을 앗아가는 괴물이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소마의 이 너무나 대립되는 행동과 사상들은 그를 다른 인물처럼 느껴지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소마라는 한 사람이 분명한 이유는 그가 영웅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인간이며, 그리하여 우리와 같은 인생을 살아가는 한 남자였을 뿐이다.
영웅이라는 이름의 인간
‘영웅의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났어야 했다’
도서 <소마> p.302 中
작가는 이 한문장을 시작으로 소마가 그가 경멸해 마지 않던 이들과 닮아가는 과정을 담담히 보여준다. 그는 넘치는 군의 에너지를 밖으로 소비하고자 의미 없는 탄압을 이어갔고 어쩌면 그의 부모와 다름없었을 처지의 민간인들이 마지막 희망을 찾아 들어간 건물을 불태우는 일을 방관하기도 한다. 이는 분명 전쟁의 실체를 알게 된 청년 사무엘이 중년의 이탈리로 성장하게 된 원동력이 되었던 ‘복수’와 ‘세상을 바로잡는 일’에 반하는 일이다.
그가 이토록 자신의 닳고 닳은 삶을 굴려가던 원동력이었던 사상과 신념을 잃게 된 것은 어쩌면 그가 인간이기 때문에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인간은 언제나 주변의 환경과 상황에 영향을 받기 마련이고 그 안에서 한 인간은 결국 여러 잔상으로 존재한다. 누군가에게 은인이었던 사람이 또다른 누군가에게는 원수일 수 있는 것처럼.
결국 소마는 끊임없이 반복되는 전쟁의 굴레로부터 세상을 구한 영웅이기도 했지만 왕관을 쓴 이후 그의 행보는 또 다른 전쟁을 일으키고 그의 반대편에 있던 이들의 무고한 희생을 일으키고 말았다. 그렇다면 그가 다녀간 세상은 결국 원점이 되고 말았던 것인가? 결국 그리하여 이 광활하고 광막한 세상에서 인간이라는 한 존재의 인생은 어떠한 의미도 가지지 못하는 것인가? 그러한 비관적인 의문이 들때쯤 작가는 ‘이오페’라는 존재를 등장시킴으로써 소마가 다시금 자신의 잊고 있던 내면을 들여다보게 한다.
생의 끝자락에서 내면을 마주하다
소마는 매번 죽음의 순간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는 내면의 목소리에 삶을 구걸했다. 때로는 한나, 때로는 복수심, 때로는 욕망으로 인해 소마는 세상에서의 자신의 존재를 놓지 못했다. 어린 시절 느끼려 노력하지 않아도 항상 그와 함께 했던 내면의 목소리는 어느 새부터 그의 인생을 그저 관전하다 생사의 기로에 놓인 순간 소마에게 무엇일지도 모를 것을 결정하기를 강행했고 소마는 그 내면의 목소리를 찬찬히 들여다보기 전에 결정을 내리기에 급급했다.
그런 소마의 앞에 부모를 잃으며 삶의 첫 상실을 경험했던 어린 시절의 그를 똑닮은 처지의 이오페가 등장한다. 이오페는 맹인이었지만 내면의 눈으로 세상을 볼 줄 아는 아이였다. 소마는 그녀와 대화를 나누며 새삼 자신이 눈에 담고, 코로 맡고, 손으로 만지고, 귀로 듣고, 입에 담는 모든 감각을 다시금 되뇌일 수 있었고 그것은 그의 내면에서 융합되며 하나의 커다란 세계를 만들어 냈다.
자신의 아들 에다의 복수로 모든 것을 잃은 처음으로 돌아간 그가 모든 감각기관을 잃은 후에도 끊임없이 걸을 수 있었던 데에는 이오페가 가르쳐준 내면의 세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소마는 그리하여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었던 공허한 마음을 온전한 행복으로 충만하게 채울 수 있었다. 그의 외관과 몸뚱어리는 그 어느때보다 초라했지만 그의 내면은 그 어느때보다 찬란했고 살아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결국, 화살은 궤적을 따라 처음으로 돌아왔다
결국 소마는 이 여정이 시작된 첫 순간 그의 과제였던 ‘화살을 되찾는 일’을 물리적으로 실행하지 못하였다. 세상에서의 여정을 끝낸 그의 손에는 화살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버지, 어쩌면 신일지도 모르는 그 존재는 소마를 인자하게 안아 올리며 제대로 돌아왔다고 말한다. 새삼 어린 소마에게 아버지가 당부하던 말귀가 뇌리에 박힌다.
‘잘 다듬어진 화살은 궤적 위에서 방향을 틀지 않는다. 올곧은 여행자는 자신의 여정 중에 길을 바꾸지 않는다. 소마는 잘 다듬어진 화살이고 올곧은 여행자다. (중략) 화살이 아니라 화살을 찾아가는 과정이 너를 담대하게 하고 어른으로 만든다’
도서 <소마> p.379 中
어쩌면 아버지가 소마에게 맡겼던 첫 과업인 ‘화살을 찾아라’는 것은 문장 그대로 그 행위 자체를 의미한 것일지도 모른다. 결과가 어찌 되었든 소마는 화살을 찾아 떠났고, 그 여정에서 그는 비록 길을 잃은 적이 있을지언정 영영 집으로 돌아올 수 없는 방향으로 길을 틀어버리지는 않았다. 그리하여 그의 인생은 어쩌면 그 과정 자체로 의미가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화살과는 아무 관계 없이 말이다.
결국 그의 낡은 육신은 어렸을 적 그가 화살을 찾아 나선 뒤 깨달음을 얻었던 처음의 동굴에서 마지막을 맞이하였고 그는 끝없이 펼쳐지는 자신의 내면의 세계 속에서 주마등과 같은 인생을 마주하다가 그 모든 것을 잃고 자신의 진정한 자아를, 내면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 순간 그는 자아의 무한한 고리의 끝에 다다랐고 그는 다시금 신의 아이가 되었다. 다시 한번의 생을 선택할지는 또다시 그의 결정에 맡겨졌다. 어쩌면 그는 또다른 이름으로 세상에 태어날지도 모르지만 그를 과연 소마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여전히 수수께끼 같은 문제이다.
[박다온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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