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태희에게.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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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된다는 건 무엇이며, 내가 되는 건 무엇이길래 이 둘의 개념을 ‘아니’라는 말로 명확하게 갈라놓은 걸까. 책을 집어 들고는 잠시 생각했다. 어른이 되는 주체는 ‘나’이고, 내가 자라서 결국 어른이 되는 것인데, 둘이 같은 개념 아닐까, 하며 잠시 감성 없는 의문을 품기도 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진 그랬다. 책을 다 읽어갈 때 즈음엔, 마지막 장을 붙들고선 문장을 오래도록 눈에 담았다. 머릿속에 던져진 '어른이 된다는 것은 뭘까', 하는 숙제를 남긴 이 책에게 마치 정답을 갈구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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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이태희’의 현재 시점과 과거 시점이 번갈아 가며 이야기가 진행된다. 어떠한 사건에 중점을 둔다기보다, 태희를 둘러싼 환경과 주변 인물들에게 느끼는 그녀의 생각과 감정에 더욱 집중한 채 흘러간다. 과거 태희의 생각과 현재 태희의 생각에서 미묘하게 연륜의 차이가 드러나는데, 작가의 섬세한 단어 선택이 묻어나는 부분이다.
나는 조금 무서웠다. 어린 태희의 시점으로 비추어지는 어른들의 세상이. 진실을 감추고, 결국 감춘 것이 진실인 것 마냥 믿어버리기도 하고, 때로는 구질구질해 보이지만 그들도 그들만의 아픔이 있을 거라 짐작되는 어른의 모습이 어린아이의 무구한 시선에 고스란히 담기는 것이.
태희는 자란다. 결국 자라 어른이 되고 현재의 태희가 된다. 결핍과 질투, 모욕감이라는 감정을 깨달으며. 깨달음과 동시에 그 감정을 애써 회피하진 않는다. 느끼는 그대로 맞이하고 받아들이며 현실을 직시한다. 나는 과거의 태희에게 말해주고 싶다.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일은 참 용기 있는 행위라고. 조잡한 변명을 늘어놓으며 어떻게든 스스로를 방어하려는 구질구질한 어른이 아니기에 할 수 있었던 그녀의 용감한 정면 돌파라고.
네가 거기 잘 있다고 상상하면 이곳의 나는 조금 용기가 난다. (p.98)
주인공 ‘이태희’는 현재 해결해야 할 일이 너무나도 많다. 5년간의 사랑을 배신하고 바람을 피운 김선우에게 이별을 고해야 하고, 무례함을 권력처럼 휘두르는 상사 박수원에게 사직서를 내야 하며, 자신의 오랜 친구에게 사과 전화를 해야 했다. 그런데 지금 카페에 앉아 계획에도 없던 편지를 쓰고 있다. 1년 후의 자신에게.
태희는 할머니의 장례식을 핑계로 그간 미뤄왔던 계획들을 해치울 마음으로 카페로 향한다. 카페에 앉아 사직서 혹은 이력서를 쓰거나, 김선우에게 연락해 헤어지자고 말하거나, 친구에게 늦었지만 생일 축하한다며 전화라도 할 셈이었다. 그런데 카페 앞에서 우연히 우체통을 발견한다. 편지를 우체통에 넣으면 1년 후 봉투에 적힌 주소로 편지를 보내 준다는 글귀가 적힌 우체통이었다. 그녀는 복잡한 계획들을 또 한 번 미뤄둔 채, 1년 후 편지를 열어보는 미래의 이태희는 김선우와 헤어지고, 새로운 일을 하고 있기를 바라며 편지를 써 내려 간다.
할머니가 너에게 200만 원을 남겼다는 엄마의 전화에 그 돈 그냥 엄마 써,라며 태희는 짜증 섞인 대답을 던졌고, 그에 대해 태희야 고마운 마음이 먼저야,라며 엄마는 둥글지만 단단한 대답으로 받아쳤다. 엄마가 받아친 말에 태희는 머리를 맞은 기분이었다.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과 동시에 내가 왜 이런 사람이 되었지, 하는 생각에 결국 눈물을 쏟고 만다. 마음속에 넘칠 정도로 가득 고여 어떠한 방식으로든 새어 나올 수밖에 없었던 이 부정적인 감정이 태희와 그녀 주변을 흠뻑 적시고 있더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곧이어 그녀는 어릴 적 할머니와 나눴던 대화를 회상한다.
‘해가 뜨고 진다고 시간이 가는 거겠나. 내가 알고 살아야 그게 시간이지. 네가 지금 부모를 원망할 수는 있어. 원망하는 그 시간은 어디 안가고 다 네 거야. 그런 걸 많이 품고 살수록 병이 든다. 병이 별 게 아니야. 걸신처럼 시간을 닥치는 대로 잡아 먹는 게 다 병이지.’
(p.22)
시간을 닥치는 대로 다 잡아먹는 게 병이라면, 본인은 지금 병이 든 상태일지도 모르겠다고 그녀는 생각한다.
태희는 편지에 그녀를 괴롭게 하는 것들에 대해 잔뜩 쓴다. 현재의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고 모르겠다는 말은 지겨울 정도인데, 미래의 너는 평안하냐고 묻는다. 태희는 자신이 어쩌다 이런 사람이 되었는지, 이런 현재를 살려고 수많은 과거를 거쳐 왔는지 스스로를 자책하며, ‘아무도 내가 될 수 없고 나도 남이 될 수 없다. 내가 될 수 있는 건 나뿐이다. 자칫하면 나조차 될 수 없다.’는 말로 편지를 마무리한다.
엄마가 내 핑계를 대고 잘 지내면 좋겠다고. (p.181)
신기하게도, 그 편지는 과거의 이태희에게 발송된다. 그러니까 과거 태희의 일상 속에 현재의 태희가 쓴 편지가 도착한 것이다. 과거의 태희는 편지를 받았을 즈음 막 중학생이 되던 참이다. 무슨 이유에선지, 엄마는 경기도에서, 아빠는 부산에서 지내기로 결정이 났고 태희는 이모도 있고 삼촌도 있고 할머니도 있는 외갓집에서 중학교를 다니기로 한다.
태희는 엄마와 아빠 사이의 일에 대해선 늘 명확한 이유를 알지 못했다. 확실한 건, 따로 살겠다는 것은 한 지붕 아래에서 지내며 어쩔 수 없이 서로의 흔적을 보며 존재를 확인할 수밖에 없는 최소한의 인식조차 하지 않겠다는 것. 그러니 엄마 아빠는 서로 사랑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리는 태희다.
태희가 생각하는 아빠는 늘 뻔한 질문을 하는 사람이다. 학교는 잘 다니냐, 요즘 누구와 친하게 지내냐 따위의 시간과 정성을 들이지 않고 상대를 본인의 틀 안에서 대충 파악하려는 질문. 그래서 태희는 아빠에게 기대하는 게 없다.
태희는 아빠보다는 엄마를 더 좋아했지만, 엄마도 그녀만의 방식으로 태희를 외롭게 했다. 태희는 자신을 ‘태니’라고 부르며 귀여워하는 이모와 좁은 방을 함께 쓰며 외갓집을 떠나고 싶어 한다. 외갓집을 떠나면 자신이 갈 수 있는 곳은 경기도의 엄마 집뿐인데, 엄마는 늘 바빴다.
서운해?
엄마가 물었다.
아니.
서운하면 서운하다고 말해도 돼.
아니야.
뭐 필요한 건 없어?
없어.
학교에서도 별일 없고?
응.
엄마한테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해.
그런 거 없어.
화나면 화난다고, 속상하면 속상하다고 얘기하고.
엄마는 그래?
응?
엄마는 할머니한테 다 말해?
그렇진 않지.
그럼 엄마는 나한테 다 말해?
엄마는 어른이잖아.
그게 무슨 상관이야.
엄마가 미안해서 그러지.
그럼 미안하다고 하면 되지.
미안해.
알았어.
이것 봐.
뭐가.
미안하다고 말해 봤자 달라지는 건 없잖아.
그건, 미안하다고 말한 사람이 달라져야지.
…우리 딸이 점점 똑똑해지네.
떨어져 있을수록 변화를 더 크게 느끼는 거야.(p.156)
이번 주도 일이 바빠 외갓집에 들르지 못할 것 같다는 엄마의 전화에도 담담하게 대답하는 어린 태희다. 엄마 아빠에게 자신의 서운한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태희는, 자신이 엄마가 보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 엄마가 필요 없는 사람이 되길 바랐다.
태희는 늘 지니고 다니는 보라색 장난감을 바라보며 그들만의 '천사'가 사라진 때를 떠올린다. 세상에 나오기로 되어 있었지만, 끝내 나오지 못했던, 태희의 동생으로 불리기도 전에 '천사'의 존재로 사라져버린 날. 그날 이후로, 엄마는 방에서 잘 나오지 않았고 엄마의 방은 새카맣게 변해버렸다. 엄마는 늘 어둠 속에 갇혀 있었다. 태희는 '천사'가 세상에 나오지 못한 것이 자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천사'가 죽었을 때는 그렇게 슬퍼했으면서 살아있는 자신을 버렸다고, 갈증에서 비롯된 미움을 엄마 아빠에게 쏟는다.
태희는 며칠 전 우편함에 꽂혀있던 '태희에게'라고 적힌 편지를 떠올린다. 이 편지는 다른 이태희에게 갔어야 했는데 자신에게 잘못 온 편지라고 생각하며, 이 편지를 쓴 사람은 분명 마음에 있던 무언가를 여기에 써서 버렸다고 생각한다. 태희 또한 마음에 있는 것을 버리기로 결심하며 편지를 써 내려간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나쁜 생각을 종이에 가득 담아 우체통에 넣는다.
여름 방학은 경기도의 엄마 집에서 보내게 된다. 엄마는 태희에게 아빠가 보고 싶어 한다며 부산을 다녀오자고 제안하고, 부산에서 태희는 엄마 아빠와 조심스러운 시간을 보낸다. 조심스러운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서로에게 너무 가까이 다가가지 않아 상처 주는 일이 없음을 뜻하며, 동시에 마음 깊숙이 존재하는 진심을 건드리기도 어려운 일이라는 얘기다.
돌아오는 기차에서 엄마는 태희에게 말한다. 아빠를 너무 미워하지 말라고. 미워하는 건 엄마와 아빠가 많이 했으니 너는 하지 않아도 된다고. 태희는 엄마와 아빠가 서로 싫어한 게 아니라 미워한 것이라는 말에 조금이나마 안심한다.
개학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 엄마는 자격증 문제집을, 태희는 방학숙제 문제집을 풀고 있던 때였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엄마와 운동을 하고 목욕을 하고 막국수를 사 먹은 날이었다. 엄마는 태희의 문제집에 조용히 글자를 적는다.
엄마는 형편없어.
나는 고개를 들지 않고 엄마의 글자가 이어지는 걸 바라봤다.
아빠도 형편없지. 형편없는 우리를 위해서는 뭔가를 할 자신이 없어. 그래서 핑계가 필요해. 지금보다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는 핑계. 네가 핑계가 되어 주면 좋겠어.
그렇게 쓰고, 엄마는 자기가 쓴 문장을 지우개로 천천히 지웠다.
태희는 이모가 엄마를 '추운 사람'이라고 말했던 것을 떠올린다. 그때는 그게 주변을 차갑게 만드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엄마는 정말 추운 상태로 존재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어쩌면 엄마는 훨씬 서투른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태희는 자신의 핑계를 대서라도 엄마가 잘 지내기를 바란다.
이거 야광이다. (p.192)
현재의 태희는 기어코 박수원에게 사직서를 냈으며, 김선우에게 이별을 말했다. 사직서를 내는 순간까지도 박수원이 퍼붓는 온갖 모욕을 감당해야 했으며, 김선우와 헤어질 때에는 둘 사이에 고스란히 녹아 오랜 습관이 되어버린 그의 친절이 태희를 아프게 했다.
어른이 누리는 가장 큰 특권은 '선택의 자유'다. 선택한다는 것은 그에 따르는 결과 또한 스스로 책임져야 하며, 책임져야 할 것에는 잘 삼켜내야 할 감정도 포함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어른이라고 모든 감정을 빠르게 소화해낼 수 있는 건 아니다. 잘 삼키는가 싶다가도 때로는 목구멍이 꽉 막혀올 때가 있는데, 미처 삼켜내지 못한 감정은 눈물로 대신 토해내곤 한다. 태희는 지금 그런 상태다. 사직서를 내고 돌아오는 길, 자신의 행복했던 순간들을 가장 많이 담고 있던 김선우와의 이별은 부러지기 직전의 그녀를 결국 꺾이게 만든다.
그런 태희에게 과거의 태희가 보낸 편지가 도착한다. 처음 편지를 받고서는 이게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싶다가, 편지에 담긴 세월의 흔적에 바스러지지 않은 생생한 어릴 적 감정과 기억은 믿기 힘든 일도 기어이 믿게 만든다.
태희는 편지를 읽고서는, 어릴 적 엄마 아빠가 서로의 가슴을 때리며 소리 지르고 싸우던 때를 회상한다. 그때 그녀는 저러다 혹시 서로를 죽이진 않을까 두려워하며, 책상 밑에 숨어 학교 앞에서 산 야광볼을 가만히 쥐고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만하라며 자신이 화를 내봤자 그건 싸움을 더 키우는 일이라는 걸 이젠 알기에, 야광볼에서 시선을 떼지 않는 일 밖에 할 수 없었다. 엄마는 아빠와 싸우면 늘 태희를 데리고 외갓집에 갔듯이 이번에도 책상 밑에 숨어 있는 태희를 억지로 일으키려 했고, 태희는 울지 않기 위해 목울대를 꾹 누르며 엄마에게 야광볼을 내밀고는 천연덕스럽게 말한다. 이거 야광이다. 그러자 엄마는 울었다.
젊은 시절의 엄마 아빠처럼 자신을 견딜 수 없어 상대를 증오하는 방법으로 정신없이 화를 내며 살고 있는 나를 찾아왔다. 어린 시절의 내가.
이거 야광이다.
말해 주려고.
(p.192)
같은 다짐을 계속하며 우리는 어른이 되겠지.
남들은 절대 알지 못할 하루와 마음을 끌어안으며. (p.210)
태희는 과거의 자신에게 답장을 보내려고 편지를 썼다가 이내 찢어버린다. 어린 그녀에게 나는 불행하지는 않지만 너는 행복했으면 좋겠어, 같은 말을 전하려 하다가도 그럴 수 없음을 깨닫는다. 행복은 온전히 본인의 몫이기에.
어릴 적 태희는 어른들에게 충분한 애정을 받지 못한 결핍이 있었지만, 어른들에게는 어린 태희만이 지니고 있는 순수하고도 아름다운 시선이 결핍되어 있다. 어른들의 보살핌과 올곧은 사랑을 받아야만 했던 나이에 그녀는 늘 갈증을 해소하지 못한 채 성장한다. 초등학생 때 남자 선생님에게 느꼈던 모욕감과 수치스러움, 중학교를 다니면서도 가난과 결핍으로부터 오는 자격지심은 그녀에게 나름의 성장통이 되었다. 왜 어른들은 원하지도 않는 통증을 주면서 그게 다 커가는 과정이라고 치부해버리는 걸까. 태희는 그럴 때마다 목울대를 눌러 무언가 터져 나오려는 것을 자꾸만 삼켰다.
나는 '이태희'라는 한 사람의 인생을 엿본 느낌이다. 사실 엿보았다는 표현은 어쩐지 싱겁다. 말이라는 게 참 그럴 때가 있다. 내가 느낀 마음은 이만큼인데 “좋다.”라고 말을 뱉어버리는 순간, 왠지 농도 짙은 감상이 미미해지는 기분이다. 하나의 문장으로 축약하기엔 감정의 부피가 꽤 크다. 그러면 어떤 말 그릇에 이 감정을 담아 진심 어린 감상을 요리해낼지 고심해 본다.
이해를 넘어서면 공감이 되고, 공감을 넘어서면 투영된다고 하던가. 나는 잠시나마 이태희라는 인물의 시선에 나의 시선을 포개었다고 말하고 싶다. 어릴 적 부모도, 친구들도 그 누구도 대신 겪어줄 수 없었던, 자신만이 감당해 내어야 했을 수많은 감정들과 순간들을 용감하게 통과 해온 그녀를 바라보다가, 이해하기 시작했고, 공감하기도 했으며, 끝내 책을 덮으며 그녀를 껴안았다. 동시에, 어린 시절의 나를 품에 안는 순간이기도 했다.
[최유정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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