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중세 최후의 결투, 라스트 듀얼 [도서]

글 입력 2021.11.10 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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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듀얼 - 최후의 결투>(이하 <라스트 듀얼>)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중세 시대 마지막으로 일어났던 결투의 내용을 담고 있다.

 

 

파리 시내의 종들이 일제히 울리며 시각을 알리자 국왕 직속 의전관은 결투장 안으로 걸어 들어갔고, 손을 들어 올리며 정숙을 명했다. 결투에 의한 재판이 바야흐로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프롤로그> p.13

 

 

고요함이 감도는 결투장이 그려지는 장면으로 책은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들은 누구이고, 왜 결투를 하는 것일까, 결투의 승패에 따라 달라지는 결과는 무엇일까 같은 생각들을 떠올리며 책을 읽기 시작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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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세기 프랑스에서 두드러지는 '카루즈-르그리 결투' 사건을 다룬 <라스트 듀얼>은 역사서와 소설의 조건을 모두 갖춘 책이다. 10년의 사료 조사를 통해 저자 에릭 재거는 중세 시대의 모든 것을 빠짐없이 그려냈다.

 

특히 이 책의 1부, 대략 4대에 걸친 카루즈와 르그리 가문의 역사를 간결하고 빠르게 정리하는 부분에서 방대한 자료 조사가 느껴졌다. 하지만 저자는 사실들을 단순히 나열하지 않는 대신 인물들에게 숨결을 불어넣어 소설의 서사를 완성했다.


14세기 중반, 노르망디의 유서 깊은 귀족 가문 출신인 장 드 카루주와 신흥 귀족 자크 르그리는 기사가 되기 이전 시절부터 깊은 우정을 나누던 사이였다. 카루주는 르그리에게 장남의 대부가 되어줄 것을 부탁했을 정도로 그를 믿고 신뢰했다.


하지만 그들의 주군인 알랑송 백작 피에르 아래에서 기사로 활동하면서 둘의 사이는 점점 악화된다. 더 많은 영지가 곧 기사의 권위를 말해주던 중세 사회에서 백작이 카루주가 새 아내 마르그리트의 지참금으로 받을 영지를 가로채 르그리에게 하사한 것이다. 카루주에겐 오랜 가문의 전통은 있었지만 언변술은 부족했고, 르그리에겐 가문의 힘은 적은 대신 뛰어난 처세술이 있었다. 백작의 보살핌을 받으며 르그리의 힘은 더욱 커지고, 카루주의 입지는 줄어들고 있었다.


카루주가 새로운 성공의 기회를 얻기 위해 잉글랜드 전쟁으로 향한 어느 날, 르그리는 마르그리트를 강간한다. 아내의 말을 전해 듣고 분노한 카루주는 르그리를 향해 결투 재판을 신청한다.

 

 

라스트_듀얼-표1.jpg

 

 

"따라서 여기서 저는 언제든 지정된 시작에 상대가 죽거나 완패할 때까지 신명(身命)을 걸고 대결함으로써, 제 고발의 정당성을 입증할 용의가 있음을 맹세합니다."

 

<결투 신청> p.148

 

 

카루주의 탄원에서 알 수 있듯이 결투 재판은 누군가 목숨이 다할 때까지 결투를 치루는 재판이다.결투의 패자는 죽음을 맞고, 신은 정의로운 사람을 이기게 할 것이라는 믿음 덕분에 승자는 명예와 함께 자신의 주장을 진실로 입증할 수 있다.

 

현대에서 강간은 당연한 범죄이지만 여성이 재산으로 여겨지던 중세 사회에서 강간은 여성의 소유자인 남편의 재산을 훼손한 것, 기물파손죄에 불과하다. 따라서 재판을 여는 주체도 남성이다. 카루주가 원한 것 역시 결투를 통한 승리와 자신의 명예 회복이었다.

 

성폭행의 피해자이면서 사건의 중심 인물, 이 사건의 진실을 알고 있는 마르그리트는 재판에서 철저히 배제된다. 중세 프랑스에서 여성은 남성 보호자 없이는 고소를 진행할 수 없을 뿐더러 마르그리트는 대역 죄인의 딸이자 백작의 눈에 난 기사의 아내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결투 재판에서 카루주가 패배한다면 거짓 선서를 했다는 죄로 화형을 당해야 한다.

 

다행히 신은 카루주의 손을 들어주었고(중세의 표현을 빌리자면), 카루주와 마르그리트의 명예는 표면적으로 복구되었다. 진실을 입증했지만 책을 읽는 내내 어딘가 후련하지 않았던 이유는 아마 마르그리트의 목소리를 한번도 들을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여성의 목소리를 기록하지 않았던 그 당시 시대상을 고려하면 저자가 마르그리트의 시선을 책에 담을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마르그리트의 용기 덕분에 몇 백년이 흐른 지금, 지구 반대편에 있는 이 곳에서도 마르그리트를 알게 되었다. 과거의 역사는 그녀의 목소리를 담지 못했지만 지금 다시 우리는 그녀의 목소리를 되새기며 기록하고 있다. 소설을 원작으로 최근 개봉한 동명의 영화 [라스트 듀얼]은 마르그리트의 시선을 반영했다고 하니 영화가 내리기 전, 꼭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과거의 사건을 세밀하게 조사한 사료들에 기반해 생생하게 전달하는 역사 소설, <라스트 듀얼 - 최후의 결투>는 중세 프랑스의 모습부터 유럽 전반의 역사까지 함께 전달하고 있다. 방대한 자료들이 뒷받침하는 중세 시대를 느껴보고 싶은 독자들에게 이 책을 적극 추천하고 싶다.

 

 

[정선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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