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블랑쉬, 그 여자 -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글 입력 2021.10.30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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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동물원>에 이어 두 번째 테네시 윌리엄스의 작품이었다. 테네시 윌리엄스은 미국 남북 전쟁의 전후를 대표하는 극작가로서 작품의 배경은 대부분이 남부 지방이다. 그는 그곳에서 과거의 생활을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며 살아가는 여성들의 애처롭고도 비극적인 삶을 그리고 있다. <유리 동물원>이 1930년대 미국의 대공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면,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남북전쟁 직후 몰락한 남부 지방의 귀족의 삶을 그리고 있다. 윌리엄스는 전통적인 남부 작가로 미국 남부를 이제는 잃어버린 낙원으로 언제나 의식하였으며, 특히 남부의 역사와 신화를 현실과 이상향 사이를 명상하는 자신의 작품 주제로 삼았다.*


이 작품은 한국에서 여러 차례 상연되었는데, 이번 연출에서는 인종적인 부분을 제외함으로써 인종혐오와 관련한 부분에 있어 신경을 많이 쓴 듯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극본의 많은 부분을 생략함으로써 처음 이 작품을 접하는 사람은 다소 줄거리 파악이나 극의 메시지를 한 번에 파악하기 힘들듯 했다.


 

줄거리

 

미국 남부(로렐)의 명문가 출신 블랑쉬 뒤브아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앨런)으로부터 외면받고 자신의 동생을 찾아가기 위해 ‘욕망' 이라는 전차를 타고 동생이 사는 뉴올리언즈로 가게 된다. 동생 스텔라는 허름한 빌라에서 폴란드 출생의 거친 자동차 정비공인 스탠리 코왈스키와 함께 살고 있다. 블랑쉬는 근무하던 고등학교에서 쫓겨나, 갈 곳 없이 스탠리의 허름한 빌라에 살게 되었음에도 지난 과거 속에서 살며 거짓말로 현실을 외면한다 현실적, 물질적 욕구에 충실한 스탠리는 환상 속에서 살아가는 블랑쉬를 참을 수 없다. 그러나 그의 친구 미치는 이 뉴올리언즈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블랑쉬에게 첫눈에 반해 블랑쉬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간다. 스탠리는 블랑쉬를 끝까지 인정하지 않고 결국 블랑쉬의 과거의 행적과 소문을 알아내 스텔라와 미치에게 말한다. 미치는 블랑쉬의 과거 이야기를 듣고 이내 블랑쉬를 외면해버리고 스탠리는 그녀를 능멸한다. 결국 그녀는 파멸에 이르고 정신병원으로 이송 당한다. 블랑쉬는 처음에는 정신병원으로의 이송을 거부하지만 낯선사람들의 친절에 의지해왔던 것처럼, 의사의 친절한 태도에 함께 병원으로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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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자신이 살던 곳과는 너무나도 다른 곳에 ‘욕망’이라는 이름의 이름의 전차를 타고, 묘지에서 환승해서 ‘극락’이라는 곳에서 내린 블랑쉬. 그녀는 자신의 동생, 스텔라의 집을 찾아 이곳으로 왔지만, 이 현실을 마주한 순간 그녀는 자신의 현 상황을 부정한다. 그녀는 집에서 들리는 고양이 울음소리에도 소리를 지르며 놀라며 방이 두 개밖에 없고, 전혀 꾸며지지 않는 집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 하지만, 스텔라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그녀를 대하고 블랑쉬는 자신의 동생이 이렇게 사는 것에 슬퍼한다.

 

이곳에서 수없이 오르락내리락 거리는 ‘욕망’이라는 이름을 가진 전차처럼 이 동네는 사람들이 자신의 감정과 욕망을 드러내는데 거리낌이 없다. 욕망은 인간에게 가장 근본적인 감정이다. 이곳 사람들은 꾸밈이 없으며, 심지어는 자신의 본능에 따라 폭력적인 모습도 서슴지 않는다.

 

블랑쉬는 스텔라와 마주하며 자신들의 외부적인 모습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넌 몸이 늘었는데. 그래, 작은 메추라기처럼 포동포동해졌다! 그리고 그게 너한테 참 보기 좋아! …….. 내 몸은 어떤지 봐! 십년 동안에 일 온스도 늘지 않은 거 있지!”

 

- 블랑쉬

 

 

이 대화에서부터 블랑쉬와 스텔라의 상황이 다르다는 것이 나타난다. 벨 레브를 떠났던 시점의 스텔라와 현시점의 스텔라는 달라졌다. 하지만, 블랑쉬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이런 육체적인 차이가 정신적인 차이까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리고 그들은 곧 벨 레브에 대해 이야기 시작하며 블랑쉬는 계속해서 괴로워하며 다음 대사를 반복한다.

 

 

“잃어버렸어.. 잃어버렸어.. 벨 레브를… 잃어버렸어.. 벨 레브를…”

 

 

스텔라가 깜짝 놀라며 그에게 되묻자 블랑쉬는 불같이 화를 내며 스텔라에게는 자신을 비난할 여지가 없음을 내세운다. 그렇다면 도대체 벨 레브는 무엇일까? 바로 남부 귀족 문화의 전통적인 가치관이자 자아의식이라 할 수 있다.** 즉 남북전쟁 직후 몰락해 가던 남부의 영화 속에서 블랑쉬는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것이다. 블랑쉬는 극 속에서 계속해서 자신을 치장하는데 열중하고 자신의 불빛 아래서 자신의 모습을 절대 남에게 보여주지 않는다. 이러한 모습은 집착적이다 못해 광적으로까지 보인다. 또한 그녀의 모든 대사는 매우 감성적이며, 그녀의 감정의 변화 또한 매우 극적이다.

 

블랑쉬는 왜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일까? 그녀는 이 동네에서 유일하게 전통적인 남부 사람이기 때문이다. 남부는 ‘감수성’과 ‘부패’를 특징으로 하고 있었다. 이런 모습이 투영된 인물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았을 때 그녀의 모습은 매우 부자연스러워 보이는 동시에 그녀의 모습 자체가 남부의 모습임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북부는 상공업이 발달하고 남부는 농경이 발달한 사회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북부 입장에서 남부는 감성적으로 보이고, 남부의 관점에서는 북부는 이성적이고, 심지어 비인간적으로까지 보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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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랑쉬의 모습은 크게 3가지로 설명될 수 있다. 첫째 그녀의 이름의 뜻이 ‘하얀 숲’이라는 것이다. 그녀의 이름 뜻은 그녀가 남부의 영화를 잊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며 계속해서 변화해가는 사회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잃고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여러 가지 색의 빛이 동시에 한자리를 비추면 그곳은 흰색이 된다. 마치 이것처럼 너무나도 많은 빛이 그녀를 쬐어 그녀가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채 백지상태가 된 사람임을 나타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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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그녀는 맨 불빛을 싫어하고 항상 어두운 곳에서만 자신의 얼굴을 보인다. 그녀는 맨 불빛이 싫어 갓등까지 씌운다. 그녀는 자신의 절대 환한 불빛 아래에서 드러내지 않는다.

 

 

“난 그냥 맨 불빛이 싫거든요. 무례한 말이나 야비한 행동보다 더 싫어요.”

 

 

“열여섯살 때 난 사랑을 발견했어요. 갑자기 많은 걸 너무나 완전하게요. 그건 마치 언제나 어둠 속에 잠겨 있던 어떤 것에 눈부신 햇빛이 갑자기 작렬하는 것 같았지요. …. (앨런이 자살함) 그 때 세상을 비춰 주던 불빛은 다시 꺼져버린 거예요. 그 후론 이 양초 불빛보다 더 밝은 빛은 한 번도 비친 적이 없었어요”

 

 

블랑쉬 : 불이요? 무슨 불을? 뭣 때문에?

미치 : 종이 갓을 단 이거 말이요. (그가 전구에서 종이 갓을 찢어낸다.)

블랑쉬 : 뭣 때문에 그런 짓을 하죠?

미치 : 그래야 당신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으니까. 

블랑쉬 : 물론 일부러 날 모욕하려는 건 아니겠죠!

미치 : 아니요, 다만 현실을 보고 싶은 거요.

블랑쉬 : 난 현실을 원하지 않아요. 난 마술을 원해요. 그래요, 마술이요! 난 사람들한테 그걸 주려고 애써요. 난 일부러 거짓을 말해요. 난 사실을 말하지 않아요. 나 사실이어야 하는 걸 말해요.그게 죄가 된다면 천가지 벌을 받겠어요. 불을 키지 말아요!

 


그녀에게 맨 불빛은 절대로 견딜 수 없는 것이다. 맨 불빛은 곧 사실이다. 그녀는 현실(사실)을 제대로 마주할 용기가 없으며 그 불빛 아래서 드러나는 자신의 망가진 모습을 마주할 수 없다. 맨 불빛을 감싸는 갓등은 마치 남부의 전통적인 가치관인 것이다. 그녀는 그 안에서만 평화로울 수 있는 것이다. 이는 그녀가 자신은 사실을 말하지 않고 ‘사실이어야 하는걸’ 말한다는 대목에서 잘 드러난다. 덧붙여 바로 전에 언급했던 백색과도 연관될 수 있다. 맨 불빛은 흰색 조명이다. 이런 측면에서 흰색이 블랑쉬의 자아상실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색이라면 블랑쉬는 그것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절대로 맨 불빛 아래에 서지 않으며, 미치가 갓등을 찢어버리고 그들이 맨 불빛 아래에 서는 순간 블랑쉬는 소리를 지르며 발작한다.


셋째, 그녀는 영어 선생님이다. 남부는 전통적인 백인 사회였던 반면, 북부 지역은 수많은 이민자 노동자들이 몰려오던 곳이었다. 이런 대목에서 미국의 언어인 영어를 가르치는 선생이라는 신분(직업) 또한 그녀가 전통적인 남부의 가치관에 매몰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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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텔라의 남편인 스탠리와 블랑쉬의 갈등은 극 전반에서 이루어진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스티브는 날 것의 사람이다. 그는 감각적이다. 반면 블랑쉬는 꾸며진 사람이며 감성적인 사람이다. 이 둘의 선천적인 태생으로 인해 갈등은 운명적으로 치닫게 되고, 꾸며진 것은 날 것에게 잠식당하게 된다. 이러한 모습은 마치 남북전쟁에서 남부가 패배하고 그 이후에 북부에게 군사통치를 받게 된 것을 보여준다.


스탠리는 ‘나폴레옹 법전’을 강조하며 수차례 반복하여 이야기한다. 왜 수많은 법전 중 ‘나폴레옹 법전’일까? 물론 극 속에서 스탠리가 유산에서 자신의 몫을 갖기 위해 이야기하는 수단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나폴레옹은 유럽뿐만 아니라 미국의 독립선언에도 영향을 끼쳤다. 나폴레옹 법전은 ‘인권’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냈고 이는 미국의 남북전쟁과도 어느 정도 관련성을 맺고 있다. 어떻게 보면 노예제도를 찬성했던 남부는 인권의 부정을, 노예제도를 반대했던 북부는 인권의 인정을 말이다. 북부의 인물(물론 폴란드 출신의 미국인이지만)로 대표되고 있는 스탠리가 남부 지방의 영화를 상징하는 벨 레브의 서류를 찾는 모습은 마치 북부가 남부를 전쟁에서 이기고 그의 체제하에 굴복시킨 모습을 연상시킨다.


극은 블랑쉬의 아래 대사로 끝을 맺는다.

 

 

“당신이 누군지 몰라도 난 언제나 낯선 사람들의 친절에 의지해 왔어요,”

 

 

이 말이 극이 끝나고 나서도 계속해서 머릿속에 맴돌았다. 이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하나의 답을 내건데, ‘낯선 사람들의 친절’은 진실되지 않은 것이다. 즉 형식적이며 심지어 거짓된 것이다. 이런 면에서 블랑쉬는 ‘익숙한 사람들의 친설’이 아닌 ‘낯선 사람들의 친절’에 기대어 살아왔다는 것은 사실(진실)은 외면한 채 자신이 만들어낸 허구의 세상 속에서 계속 해서 살아왔음이 드러난다고 할 수 있는 대목이 아닐까 싶다.

 

*

 

정리하자면, 이 극은 ‘블랑쉬’라는 인물을 통해 당시 남부의 상황을 비유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북부와 남부 간의 대립, 남부의 자아상실과 북부의 지배 등과 같은 사회적 상황을 각 인물에 투영하여 보여준다. 하지만 이 극이 호평을 받는 이유는 비단 당시의 사회적 구조를 드러내는 희곡이어서만 아닐 것이다. 바로 시대상은 다르지만, 이러한 인물들 속에서 지금의 사회의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극을 보면서 각 캐릭터 중 한 명에게 누군가는 자신의 현 상황을 투영시켜볼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강제적 외압으로 인한 ‘자아상실’의 문제는 현재까지도 끊임없는 문제이기 때문에 이 작품의 시대적 배경이 오래전이라 하더라도 아무런 이질감이 존재하지 않는다.

 

 

* 인복송, 『유리 동물원』과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 나타난 현실과 환상의 갈등양상, 제주대학교, 2005.

** 백동은,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 나타난 인물 분석, 동덕여자대학교, 2004.

 

 

컬쳐리스트 김소정 명함.jpg

 

 

[김소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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