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카메라를 무대 안으로 옮겨 새로운 시선을 제공하다 - 뮤지컬 엘리자벳 : 더 뮤지컬 라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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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의 발전, 그리고 팬데믹을 거치며 공연 영상화 작업은 이전에 비해 보다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현장 예술’을 가장 중요한 속성으로 손꼽던 공연은 이제 더 이상 현장에 가야만 볼 수 있는 예술이 아니게 되었고, 이에 따라 새로운 흐름이 공연계에 구축되었다. 예술의전당, 국립극장, 국립극단 등 다양한 국공립 단체가 공연 영상화 작업에 앞장섰고, 이와 더불어 뮤지컬의 경우 각 제작사에서 네이버 TV를 필두로 실황공연 중계(유료)를 진행했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에서 또 다른 흐름이 나타났다.
바로, 뮤지컬 실황 영화의 개봉이다. 이전까지 뮤지컬과 영화 사이에는 뮤지컬 영화만 존재했다. 그러나 뮤지컬 실황 무대를 찍어 영화로 개봉한, (아직 정확한 명칭이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일명 ‘뮤지컬 실황 영화’라 할 수 있는 형태가 나타났다.* 2021년 <몬테크리스토: 더 뮤지컬 라이브>, <팬텀: 더 뮤지컬 라이브>를 시작으로, <뮤지컬 레드북>(2023), <사랑의 불시착: 라이브 인 서울>(2023), <영웅: 라이브 인 시네마>(2024)가 개봉했다. 그리고 이번 <엘리자벳: 더 뮤지컬 라이브>는 앞선 작품과 동일한 성격을 띠면서도, 처음으로 돌비 애트모스 사운드를 도입해 영화관에서도 극장에서와 마찬가지로 입체적인 사운드를 경험할 수 있도록 차별화된 작업을 진행했다. 앞서 다수의 실황 영화화 작업을 했던 박재석 감독이 이번에도 메가폰을 잡았다.
뮤지컬 <엘리자벳>은 빈 뮤지컬로, 이미 국내에서 오랜 시간 사랑을 받아온 작품이다. 최근 10주년을 맞은 기념으로 국내에서 제작을 맡았던 EMK가 영화 <엘리자벳: 더 뮤지컬 라이브>을 제작했다.** 엘리자벳 황후 역에는 옥주현, 죽음(토드) 역에는 이해준, 루케니 역에는 이지훈,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 역에는 길병민, 소피 대공비 역에는 주아, 황태자 루돌프 역에는 장윤석이 참여했다. 10월 14일 언론/배급 시사회가 진행되었고, 10월 16일 메가박스에서 단독 개봉한다.
앞서 말했듯이, 뮤지컬 실황 영화는 뮤지컬과 영화 사이에서 어디에 위치하는지를 생각해 본다면, 뮤지컬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는 카메라의 시선이 이끄는 대로 작품을 감상하도록 작품이 만들어지지만, 뮤지컬은 공연예술이라는 장르적 특성상 특정하게 고정된 시선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뮤지컬 실황 영화는 ‘영화’라는 명칭에도 불구하고, 실제 상연되었던 무대를 촬영한 것이기에 영화와 다른 성격을 띨 수밖에 없다. 이는 고정되지 않은 시선을 감독의 선택으로 고정된 시선으로 이동시켰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미 이 작품을 관람한 관객의 경우, 어떤 씬(scene)에서 자신이 중점적으로 보는 장면을 볼 수 없을 수도 있고, 혹은 기존의 관람에서는 놓쳤던 부분을 새롭게 인지할 수도 있다는 장단점이 필연적으로 존재하게 된다.
<엘리자벳: 더 뮤지컬 라이브>는 영화와 뮤지컬 사이의 시선에서 감독이 가지고 있었던 갈등을 어느 정도 보여주는 작품이다. 대부분의 화면이 전체 무대를 보여주기보다는, 감독이 선택한 인물을 굉장히 밀접하게 클로즈업(close-up)하면서 일명 ‘얼빡샷(카메라 화면에 얼굴이 여백 없이 빡빡하게 들어가 있는 구조)’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실제 공연장에서 오페라글라스를 사용하더라도, 볼 수 없는 엄청난 근접률을 보여주며, 인물의 표정과 감정이 엄청나게 부각된다. 이러한 연출은 관객을 엄청나게 감정적으로 이끄는 동시에, 뮤지컬 무대가 갖는 전반적인 미학을 살리지 못한 양가적인 결과를 도출해 낼 수밖에 없는 선택이다.
덧붙여, 실황중계에 있어 생각해 볼만한 지점들을 보여준다. 먼저, 음향이다. 실황을 촬영한 공연장의 음향적 문제로, 영상 자체에 사운드가 깨끗하게 녹음되지 못하면서 애트모스 사운드를 도입했음에도 사운드 구현에 아쉬움을 남겼다. 이 지점에서 한국에는 샤롯데씨어터를 제외하고는 뮤지컬 음향을 깨끗하게 구현해 내기 적합한 공연장을 찾기 힘든 만큼, 실황 영상을 만들 경우 음향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성이 느껴졌다. 다음으로, 관객의 박수이다. 본 영상은 실황 영상인 만큼 무관중이 아닌, 실제 관중이 있는 실연 영상이다. 그런데, 이때 장면이 끝날 때마다 관객의 박수 소리가 영상 안에 굉장히 크게 들어가 있다. 물론, 관객의 우렁찬 박수는 당시 공연의 현장감을 느낄 수 있는 장치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영화관에 앉아 이 영상을 보는 사람들의 소외감을 일으킬 수 있다는 문제점 또한 존재한다. 이런 지점에서 과연 실황 영상에 관객의 박수 소리를 포함하는 것이 득일지 실인지에 대한 고민 또한 선행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렇지만, 이 작품은 지금까지 네이버 TV를 통해 중계되던 뮤지컬 실황 영상과는 분명 다른 지점이 있다. 바로, 카메라를 무대 밖에만 위치시킨 것이 아니라, 무대 안쪽에도 카메라를 배치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카메라의 시선은 관객의 입장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무대 위에서 연기하고 있는 배우의 시선이 되기도 하고, 무대 뒤에서 혹은 무대 옆 소대에 위치한 누군가의 시선이 되기도 하는 등 굉장히 유동적인 변화를 보인다. 이에, 관객은 몇 장면에서는 마치 자신이 무대 위에 서서 연기하는 배우가 된 것 같은 특별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이와 더불어 주목할 만한 몇 장면을 추천하고자 한다.
첫째, 넘버 <마지막 춤>와 <내가 춤추고 싶을 때>이다. 이 두 넘버에서는 카메라가 죽음을 보는 엘리자벳의 시선을 대신하게 되면서 엘리자벳과 죽음 간의 변해가는 관계를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넘버 <마지막 춤>에서는 엘리자벳이 완벽하게 죽음에게 압도당하면서 그녀가 느끼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엘리자벳을 압박하는 죽음과 죽음의 천사들의 움직임이 실감 나게 다가오며, 관객은 마치 자신이 엘리자벳이 된 것만 같은 두려움을 느낀다. 한편, 넘버 <내가 춤추고 싶을 때>에서는 성숙해진 엘리자벳이 더 이상 죽음에게 휘둘리는 것이 아니라, 그를 정면으로 쳐다보며 당당하게 맞서는 모습이 그려진다. 이에 따라 엘리자벳의 시선에 당황하는 죽음의 모습이 그려지기도 하고, 죽음의 천사가 그녀의 손짓으로 동요하는 모습까지 그려지게 된다. 이에 관객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달라지는 엘리자벳의 모습에 자연스럽게 관심과 애정을 가질 수 있게 된다.
둘째, 넘버 <나는 나만의 것> 장면이다. 이 넘버는 <엘리자벳>을 대표하는 넘버이다. 사실 무대 배경이 거의 없고, 엘리자벳이 혼자 절절하게 자유를 향한 자신의 감정을 절절하게 이야기하는 부분인 만큼, 이 작품에서의 카메라 기법이 가장 빛을 발하는 부분이다. 클로즈업된 엘리자벳의 얼굴을 통해 자신이 황후가 되어 자유를 억압당하는 상황에도, 눈물을 흘리며 그럼에도 자유를 갈망하고 열망하겠다는 그녀의 다짐과 감정이 관객에게 극장에서보다 크고, 감각적으로 전달된다.
마지막으로, 넘버 <베일은 떨어지고>이다. 이 장면에서 죽음이 다리 위에서 등장하는 것을 정면으로 담아낸 것이, 이 작품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이것을 차치하더라도, 마지막 장면의 완성도는 이 작품의 장면 중 가장 뛰어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리 위에서 내려오는 죽음을, 극장에서 관객은 측면으로 밖에 볼 수 없지만, 이번 영화에서는 관객이 죽음을 정면으로 볼 수 있게끔 카메라를 배치함으로써 관객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한다. 더불어 멜로디가 끝나기 직전 루케니가 무대에 등장해서 에반스 매듭을 향해 걸어가는 장면을 무대 정면이 아닌, 무대 안쪽에서 촬영함으로써 무대를 향해 걸어가는 루케니의 시선을 담아냈다. 이 또한 관객 입장에서는 절대 볼 수 없었던 무대에서 보는 관객의 시선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할 수 있는 색다른 경험이 된다.
*여기서 뮤지컬 DVD는 영화관에서 영화로 개봉한 것이기 아니기 때문에 논의에서 제외한다.
**이후 국내에서 상연될 뮤지컬 <엘리자벳>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버전으로 리뉴얼되어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김소정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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