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심청전, 춘향전, 흥보전을 엮어, 마당에서 신명 나게 다 함께 놀아보세! - 국립극장 '마당놀이 모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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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장 <마당놀이 모듬전>은 지난 국립극장 마당놀이 산물의 총집합체이다. 지금까지 국립극장은 2014년 <심청이 온다>로 시작해 <춘향이 온다>(2015), <놀보가 온다>(2016), <춘풍이 온다>(2018~2020)까지, 총 네 편의 마당놀이를 선보여왔다. <심청이 온다>는 '심청전'을, <춘향이 온다>는 '춘향전'을, <놀보가 온다>는 '흥보전'을, <춘풍이 온다>는 '이춘풍전'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그리고 이번 <마당놀이 모듬전>은 ‘모듬전’이라는 이름답게, <심청이 온다>, <춘향이 온다>, <놀보가 온다> 세 작품의 가장 대표적이고 흥미로운 장면을 엮었다. 극은 세 이야기의 공통 분모를 연결점 삼아, 자연스럽게 이야기들이 교차하며 전개되는 방식이다.
마당놀이는 ‘마당극*’과 다른 '마당'과 '놀이'의 합성어로, 마당에서 이루어지는 연극을 말한다. 한국 전통연희와 판소리 12바탕을 토대로 주로 공연이 이루어지며, 1981년 MBC 창사 20주년 기념 공모전에 극단 민예의 마당놀이 <허생전>이 채택되어 문화체육관에서 초연되었다. 이후 1987년 연출가 손진책이 새로 창단한 극단 미추가 이어받아 MBC와 함께 제작했으나, 마당놀이에 대한 견해차로 결별했다. 마당놀이의 대표 배우로는 대개 윤문식, 김성녀, 김종엽이 손꼽히며, 극단 미추의 작업이 정통이라 여겨졌다. 30년간 전국을 돌며, 3,000회 이상 공연하며 250만 관객을 동원하기도 했지만, 2010년 30주년 기념 공연인 <마당놀이전>을 끝으로 중단되었었다. 그러나 2014년 국립극장 기획 공연으로 부활했으며,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뺑덕(김성녀)과 심 봉사(윤문식)의 모습 - 한양 가는 길
이번 <마당놀이 모듬전>는 마당놀이 10주년을 맞아 선보이는 특별한 무대로, ‘원조 마당놀이 스타 3인방’이라 불리는 이 세 명의 배우가 다시 모였다. 윤문식이 심 봉사 역을, 김성녀는 뺑덕 역을, 김종엽은 놀보 역을 맡았다. 손진책이 연출을 맡았으며, 연희감독 김성녀, 극작가 배삼식, 안무가 국수호, 작곡가 박범훈, 무대디자이너 박동우, 조명디자이너 김창기, 의상디자이너 김영진, 소품 디자이너 김상희 등이 참여했다. 국립창극단의 스타 배우 민은경(심청 役), 이소연(춘향 役), 김준수(이몽룡 役), 유태평양(흥보 役), 조유아(월매 役) 등이 참여했고, 치열한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젊은 배우들이 함께 구성되어 ─ 송나영, 백나현, 정보권, 이재현, 전애현 등이 각각 심청, 춘향, 몽룡, 흥부 역에 더블 캐스팅되었다 ─ 38명의 배우와 무용수, 20명의 연주자, 총 58명이 참여했다. 국내 최초의 돔형 공연장인 하늘극장의 공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원형무대를 구상하여 관객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구조를 갖췄다. 무대 상부에는 지름 19미터의 천으로 만든 거대한 연꽃 모양 차일(遮日, 천막)을 설치해 전통적이면서도 감각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며, 차일을 둘러싼 64개의 청사초롱으로 연말연시의 정취를 돋았다 무대 바닥 일부에는 LED 패널을 설치해 젊은 감각을 더하고, 다양한 이야기 속 시공간의 변화를 영상으로 표현해 관객의 몰입감을 높였다.
출연진, 창작진, 관객이 함께 고사를 지내는 장면
공연이 시작되기 전, 배우들이 나와서 엿을 팔고, 공연이 시작되면 배우와 관객들이 다 함께 돼지머리에 돈을 꽂으며 새해의 행복을 기원하는 고사를 지낸다. 극은 춘향과 몽룡의 첫 만남을 그리는 춘향전으로 시작한다. 몽룡과 춘향이 첫날밤을 치르려는 순간, 갓난아기 심청을 안은 심 봉사가 갑자기 나타나고, 이내 곽 씨 부인의 장례식이 진행된다. 어엿이 자란 심청이가 동냥하러 다니는 장면에서 흥부 부부가 등장하고, 다시 심 봉사가 등장한다. 심청이가 선인들에게 자신을 팔기로 결정하고 심 봉사와 함께 들어가는 순간, 이몽룡이 곡소리를 내며 등장한다. 심청이가 인당수에 빠져 연꽃에 감싸지는 순간, 흥보 마누라는 연꽃 꿈을 꾼다. 제비는 강남으로, 몽룡은 한양으로, 심청은 인당수로 가고 신관 사또는 남원골로 온다. 놀부가 회개하며 크게 잔치를 열자고 말하자, 장원급제한 이몽룡이 등장한다. 황후가 된 심청은 심 봉사를 그리워하며 노래하고, 옥에 갇힌 춘향은 몽룡을 기다리며 노래하는 모습이 교차하여 동시에 진행된다. 이렇게 세 이야기 속 공통 소재가 교차점이 되어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전개되고, 몇 군데에서는 김종엽이 사회자로 등장해 이야기를 매끄럽게 진행하기도 한다.
춘향(이소연)과 이몽룡(김준수)이 만나는 장면
선인들에게 팔려가는 심청(민은경)을 붙잡는 심 봉사(윤문식)
심청 인당수에 빠지는 장면
흥보(유태평양)네가 가난의 힘듦을 말하는 장면
<마당놀이 모듬전>에서는 판소리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심청전, 춘향전, 흥보전의 눈대목이 나오기도 하지만, 상엿소리와 같은 민요들도 등장한다. 이렇게 한국의 전통 음악과 소고춤, 북청사자놀음, 승무, 탈춤 등 다양한 한국 전통 무용이 함께 등장해 볼거리와 들을 거리를 충만하게 해 즐거움을 더한다. 마치 종합 선물 세트 같은 무대이다. 더불어 흥부 가족들은 힙합의 멜로디에 자신들의 가난을 익살스럽게 노래한다. 이렇게 극은 음악과 춤, 그리고 재담 등을 활용해 희극적인 요소를 곳곳에 사용함으로써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비극적인 장면에서도 전반적으로 즐거운 분위기를 유지하며,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다.
앞서 언급했듯이 원형 무대에, 원형 객석으로 되어 있는 만큼 무대 연출은 어느 각도에서도 무대를 보는 데 무리가 없어야 한다. 연출은 원형적 움직임을 통해 이를 적절하게 그려냈으며, 어느 방향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각도적으로 이야기를 볼 수 있도록 했다. 특히, 상당히 많은 인원이 등장하는 작품이고, 암전 없이 대략 120분 동안 극이 진행될 뿐 아니라 무대 전환이 오로지 배우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렇기에 배우들의 합이 굉장히 중요한데, 배우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네 곳의 통로를 통해 빠르게 등퇴장하며 무대를 자연스러우면서도 빠르게 전환한다. 더불어 이야기 중간중간 배우들이 관객석으로 도피하기도 했다가, 관객에게 말을 거는 등의 행동을 통해 관객과 계속해서 소통한다. 다만, 마당놀이에 대한 향수가 없고, 이를 잘 알지 못하는 젊은 관객에게 김종엽, 김성녀, 윤문식의 존재가 다소 낯설게 다가왔다. 세 명의 인물이 가지는 의미가 큰 만큼, 이들의 존재에 정당성이 부여되었다면 더 좋았으리라. 이 작품은 이미 마당놀이와 이들에 대한 추억이 있는 관객을 기준으로 만들어졌다는 점, 그리고 뺑덕어멈으로 분한 김성녀와 심 봉사로 분한 윤문식이 나누는 재담에 가까운 대화가 상당히 오랜 시간 진행되는 데 반해 극 중 별다른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는 점이 다소 아쉽다.
축제 같이 끝나는 마지막 장면
연출 손진택은 “어린이부터 할머니까지 한자리에 모여 함께 즐길 수 있는 공연 장르는 마당놀이가 거의 유일하다”라며 마당놀이에 대한 자긍심을 드러냈다. 연희감독 김성녀도 “마당놀이 모듬전은 이야기를 모은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모은다는 뜻도 있다”고 말하며 마당놀이에 대한 사랑을 비췄다. ‘세대를 뛰어넘어 사람들의 마음을 모은다’는 이들의 말처럼, 이 작품은 <춘향전>에서는 남녀의 사랑, <흥보전>에서는 형제 간의 사랑, <심청전>에서는 부녀의 사랑 이야기를 부각하며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사랑’을 대주제로 한다. 사랑은 내가 아닌 타인을 위하는 마음이다. 이 작품은 서로 다른 타인을 사랑할 줄 아는 마음을 강조하며, 사랑으로 화합하는 인간상을 그린다.
그렇기에 이 작품은 대사 작업에 있어 조금 더 신중을 기울였어야 하지 않았나 싶다. 심 봉사의 젖동냥 장면, 변 사또의 기생점고 장면을 포함하여 몇 장면의 대사에서 자칫하면 관객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거나, 현재 가장 논쟁점에 서 있는 사회적 문제를 표면적으로만 바라보며 희화화하는 것으로 읽힐 수 있는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극의 처음과 마지막에서 모두 와주신 손님네들에게 감사를 전하고, 커튼콜에서는 관객들을 무대로 데려와 출연진과 관객이 함께 춤을 추는 만큼, 관객들은 마음속에 조금의 불편함도 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춤출 수 있어야 하지 않는가. 이렇게 다소 아쉬웠던 점만 보완된다면, 우리의 전통 연희로 만들어진 마당극은 연말 음악회, 신년 음악회처럼 연말연시를 대표하는 하나의 레퍼토리로, 계속해서 그 역사를 이어 나갈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마당놀이 모듬전>은 2024년 11월 29일부터 2025년 1월 30일까지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상연된다.
* 마당극은 1970년대 이후 한국의 전통적인 연희인 탈춤, 풍물, 판소리 등에서 영향을 받아 형성된 야외 연극이다. 마당극은 군부독재 시절 강한 사회비판성과 민중지향성을 보인 데 반해, 마당놀이는 전통 설화나 판소리 등을 바탕으로 노래와 춤, 이야기가 강조되면서 관객과 함께 ‘논다’는 개념이 강하다. (장지영, “상표권 분쟁, 암표상 등장, 문체부 검열까지...파란만장한 마당놀이의 역사”, 올댓아트)
[김소정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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