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사회심리학이 이렇게 재밌을 줄이야 - 피그말리온의 자아상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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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는 인간의 사고회로에 마법을 부린다. 아무런 낌새조차 없어 알아차릴 수가 없다. 정신 차리고 나면 그때는 이미 늦었다. 사회의 마법에 빠져 올바른 것을 놓친다. 심리작용이라는 이름의 그 마법은 사회를 무척 거대하고 방대한 것으로만 여기게끔 사고회로를 휘저어놓는다. 실제의 진실을 바라보는 이성을 괴롭혀 심리적 판단에 휩쓸리게 만든다. 심리학적 지식에 능통한 사람들도 이따금 사회가 부리는 그 마법에 정신을 빼앗긴다.
심리라는 인간의 감정이 유발하는 작용이 언제나 나쁜 것은 아니지만 항상 좋은 것도 아니다. 그 좋고 나쁨을 판단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인데, 심리에 대해서 쥐뿔도 모르면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수가 없다. 식당 아르바이트 좀 해봤다고 조리병으로 끌려가는 비극이 인간의 심리에도 일어나서는 안 된다.
일단 뭘 알아야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 지나친 비약 같아도 그렇지 않은 문장이다. 말 한마디 잘못해서 친구 사이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틀어질 때가 있다. 그 날따라 유달리 귀찮아서 한 번 더 확인 안 해보고 넘긴 결제 안을 다음 날 보니 수량에 0 하나가 더 붙어 회사가 뒤집히는 날도 있다. 머리는 절대 그러면 안 된다고 하는데 나도 모르게 그 하면 안 되는 선택지를 골라버리기도 한다.
이 모든 선택의 끝에는 후회라는 결과물을 붙잡고 쓰러진 누군가의 모습만 남아있다. 후회 속에 담긴 내가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라는 보기에는 아주 간단한 이 질문에 답하는 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고민하고 고민하다 우리가 내린 답은 ‘나도 모르게’ 혹은 ‘그런 기분이라서’ 중에 하나다.
‘나도 모르게’라는 짧은 구절에는 논리적인 사고보다 감정의 작용에 내 의사 결정권을 넘겼다는 속뜻이 숨어있다. 사람이라는 존재는 생각보다 쉽게 감정에 휩쓸린다. 나는 안 그러겠지 생각하는 사람도 이 명제의 예시 중 하나일 뿐이다. 사람으로 태어났고, 크건 작건 어떤 사회에 속해 살아가며, 뇌와 신경이 작동하는 한 감정이 유발하는 반응을 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불가능하기에 할 수 있는 한 모든 상황을 예측하고 그에 맞춰 대비해두는 것만이 위험을 줄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사람의 심리가 전개 과정은 복잡하면서도 작동 원리는 그렇게 어렵지 않다. 잘 알아두기만 하면 충분히 내 감정이 이끌어내는 반응을 통제할 수 있다.
개인이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도 분명 중요하지만 넓은 관점에서는 사회 속에서 다른 사람과 만날 때 일어나는 감정의 작용이 더 중요하다. 군중심리가 무서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느 사회의 일부 구성원이 어떤 행동을 했을 때, 그게 군중이라는 파도에 올라타는 순간 삽시간에 그 사회 전체의 이성적 사고를 마비시킨다.
어떤 경우에는 사회가 그 군중심리를 만들어낸다. 실제로 그런 상황인 것이 아니라 감정의 작동으로 인해서 내가 생각하고 있는 상황으로 보일 뿐이라는 걸 알고 있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지만, 모르고 있다면 그저 휩쓸려 가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면 어느 쪽이 더 유용한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거라 믿는다.
피그말리온의 자아상
자신이 만든 조각상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사랑에 빠졌고, 끝에는 신의 힘으로 생명을 얻은 조각상과 함께 살아간 피그말리온은 성취감이라는 감정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극단적인 예시다.
내가 이뤄낸 것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그 사랑의 기쁨을 조금이라도 더 느끼기 위해 주어진 삶을 불태운다. 자기를 비관하고 남을 깎아내리는 쓸데없는 짓을 하는 데 허비할 시간 따위는 없다. 이 단순한 명제를 당연한 진리로 받아들이고 실천하는 사람의 수가 늘어나면 자연스럽게 피그말리온의 사회가 만들어진다.
피그말리온의 사회는 이제 하나의 문화로 정착된 그 공식을 바탕으로 제2, 제3의 피그말리온이 태어날 수 있는 기반을 다지고, 세상은 성취감과 뿌듯함이라는 긍정적이며 유용한 감정으로 가득 찬다.
피그말리온으로 태어나 피그말리온의 사회에서 살아갈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는 피그말리온의 자아상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내 주변의 이들은 나를 무엇인가를 이루고자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으로 바라본다. 어떤 형태로건 나를 향하는 기대가 곳곳에 널려있다. 해도 감정이 내 안에서, 나에 의해서 일어나는 작용이라는 본질을 놓쳐서는 안 된다.
군중심리니 피그말리온 효과니 하는 것들이 아무리 나에게 힘을 가해봐야 내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 힘을 받아들여 나를 위한 에너지로 만들어 줄 ‘자아상’이라는 도구를 제대로 쓸 줄 알 때 비로소 주어진 삶을 의미 있게 살아갈 수 있는 개인으로 거듭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지만 ‘사회적으로 개인적인 동물’이라 정의하는 게 맞는다고 본다.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끼리의 상호작용 속에서 나라는 개인을 점점 가꾸는 게 사람이다. 이성적 사고로 판단을 내리려 노력하지만, 결코 감정이 만들어내는 심리라는 그물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도저히 바꿀 수 없는 법칙이라면 이용하는 쪽이 현명하다. 그 심리의 작용을 배웠기에 피그말리온의 사회를 만들어내는 피그말리온의 자아상을 가진 사람의 인생을 살고 싶다. 사회라는 터전에서 개인이 겪는 그 복잡하고도 미묘한 심리를 파고든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나는 피그말리온의 자아상을 가진 사람으로 자라고 싶다.
[김상준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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