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사회심리학이 이렇게 재밌을 줄이야 - 피그말리온의 자아상 [도서]

글 입력 2021.08.21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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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는 인간의 사고회로에 마법을 부린다. 아무런 낌새조차 없어 알아차릴 수가 없다. 정신 차리고 나면 그때는 이미 늦었다. 사회의 마법에 빠져 올바른 것을 놓친다. 심리작용이라는 이름의 그 마법은 사회를 무척 거대하고 방대한 것으로만 여기게끔 사고회로를 휘저어놓는다. 실제의 진실을 바라보는 이성을 괴롭혀 심리적 판단에 휩쓸리게 만든다. 심리학적 지식에 능통한 사람들도 이따금 사회가 부리는 그 마법에 정신을 빼앗긴다.


심리라는 인간의 감정이 유발하는 작용이 언제나 나쁜 것은 아니지만 항상 좋은 것도 아니다. 그 좋고 나쁨을 판단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인데, 심리에 대해서 쥐뿔도 모르면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수가 없다. 식당 아르바이트 좀 해봤다고 조리병으로 끌려가는 비극이 인간의 심리에도 일어나서는 안 된다.

 

 

 

일단 뭘 알아야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 지나친 비약 같아도 그렇지 않은 문장이다. 말 한마디 잘못해서 친구 사이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틀어질 때가 있다. 그 날따라 유달리 귀찮아서 한 번 더 확인 안 해보고 넘긴 결제 안을 다음 날 보니 수량에 0 하나가 더 붙어 회사가 뒤집히는 날도 있다. 머리는 절대 그러면 안 된다고 하는데 나도 모르게 그 하면 안 되는 선택지를 골라버리기도 한다.

 

이 모든 선택의 끝에는 후회라는 결과물을 붙잡고 쓰러진 누군가의 모습만 남아있다. 후회 속에 담긴 내가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라는 보기에는 아주 간단한 이 질문에 답하는 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고민하고 고민하다 우리가 내린 답은 ‘나도 모르게’ 혹은 ‘그런 기분이라서’ 중에 하나다.


‘나도 모르게’라는 짧은 구절에는 논리적인 사고보다 감정의 작용에 내 의사 결정권을 넘겼다는 속뜻이 숨어있다. 사람이라는 존재는 생각보다 쉽게 감정에 휩쓸린다. 나는 안 그러겠지 생각하는 사람도 이 명제의 예시 중 하나일 뿐이다. 사람으로 태어났고, 크건 작건 어떤 사회에 속해 살아가며, 뇌와 신경이 작동하는 한 감정이 유발하는 반응을 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불가능하기에 할 수 있는 한 모든 상황을 예측하고 그에 맞춰 대비해두는 것만이 위험을 줄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사람의 심리가 전개 과정은 복잡하면서도 작동 원리는 그렇게 어렵지 않다. 잘 알아두기만 하면 충분히 내 감정이 이끌어내는 반응을 통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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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이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도 분명 중요하지만 넓은 관점에서는 사회 속에서 다른 사람과 만날 때 일어나는 감정의 작용이 더 중요하다. 군중심리가 무서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느 사회의 일부 구성원이 어떤 행동을 했을 때, 그게 군중이라는 파도에 올라타는 순간 삽시간에 그 사회 전체의 이성적 사고를 마비시킨다.

 

어떤 경우에는 사회가 그 군중심리를 만들어낸다. 실제로 그런 상황인 것이 아니라 감정의 작동으로 인해서 내가 생각하고 있는 상황으로 보일 뿐이라는 걸 알고 있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지만, 모르고 있다면 그저 휩쓸려 가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면 어느 쪽이 더 유용한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거라 믿는다.

 

 

 

피그말리온의 자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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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만든 조각상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사랑에 빠졌고, 끝에는 신의 힘으로 생명을 얻은 조각상과 함께 살아간 피그말리온은 성취감이라는 감정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극단적인 예시다.

 

내가 이뤄낸 것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그 사랑의 기쁨을 조금이라도 더 느끼기 위해 주어진 삶을 불태운다. 자기를 비관하고 남을 깎아내리는 쓸데없는 짓을 하는 데 허비할 시간 따위는 없다. 이 단순한 명제를 당연한 진리로 받아들이고 실천하는 사람의 수가 늘어나면 자연스럽게 피그말리온의 사회가 만들어진다.

 

피그말리온의 사회는 이제 하나의 문화로 정착된 그 공식을 바탕으로 제2, 제3의 피그말리온이 태어날 수 있는 기반을 다지고, 세상은 성취감과 뿌듯함이라는 긍정적이며 유용한 감정으로 가득 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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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그말리온으로 태어나 피그말리온의 사회에서 살아갈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는 피그말리온의 자아상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내 주변의 이들은 나를 무엇인가를 이루고자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으로 바라본다. 어떤 형태로건 나를 향하는 기대가 곳곳에 널려있다. 해도 감정이 내 안에서, 나에 의해서 일어나는 작용이라는 본질을 놓쳐서는 안 된다.

 

군중심리니 피그말리온 효과니 하는 것들이 아무리 나에게 힘을 가해봐야 내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 힘을 받아들여 나를 위한 에너지로 만들어 줄 ‘자아상’이라는 도구를 제대로 쓸 줄 알 때 비로소 주어진 삶을 의미 있게 살아갈 수 있는 개인으로 거듭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지만 ‘사회적으로 개인적인 동물’이라 정의하는 게 맞는다고 본다.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끼리의 상호작용 속에서 나라는 개인을 점점 가꾸는 게 사람이다. 이성적 사고로 판단을 내리려 노력하지만, 결코 감정이 만들어내는 심리라는 그물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도저히 바꿀 수 없는 법칙이라면 이용하는 쪽이 현명하다. 그 심리의 작용을 배웠기에 피그말리온의 사회를 만들어내는 피그말리온의 자아상을 가진 사람의 인생을 살고 싶다. 사회라는 터전에서 개인이 겪는 그 복잡하고도 미묘한 심리를 파고든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나는 피그말리온의 자아상을 가진 사람으로 자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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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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