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피로 사회를 넘어 복수 사회로 [사람]

미스백 이야기, 두 번째 페이지.
글 입력 2021.08.08 15:42
댓글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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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이런 생각, 한 번쯤 해보지 않았을까?

 

 

'아, 저거 진짜 죽여버리고 싶다.'

 

 

영문도 모른 채 과격한 문장에 당황했다면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전한다. 하지만 놀랄 땐 놀라더라도 생각은 해보도록 하자. 밖에서 제아무리 순한 맛 자아를 내보이고 있다고 해도, 우리의 내면은 항상 들끓고 있다. '나는 그래도 저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고?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감정이 있는 인간이라면 우리는 누구나 나를 힘들게 했던 대상에 대하여 '복수'를 꿈꿔본 적이 있다는 것이다.

 

 

 

"네가 불행했음 좋겠다."


 

이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현재 연예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이른바 '학폭 논란'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학교폭력'은 학교 안팎에서 학생들 간에 이루어지는 상해, 폭력, 감금, 협박, 약취ㆍ유인, 명예 훼손, 성폭력, 따돌림 따위를 의미한다. "학교폭력은 근절되어야 한다"는 명제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애초에 폭력은 함께 사회를 살아가는 다른 누군가를 물리적/심리적으로 다치게 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폭력은 흔히 존재해서는 안 되는, 적어도 사회에서 지양해야 하는 요소로 간주되어 교정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이유로 필자가 보기에 최근 '학교폭력'은 아이돌 은퇴에 아주 성역에 가까운 만능 열쇠가 되어 가고 있다. 난다긴다하는 아이돌들이 '학폭 논란'만 뜨면 맥을 못 추고 추락한다. 대중들은 '학교 폭력 사건'이 있었다는 기사가 뜨는 순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해당 연예인을 연예계에서 매장시킨다. 긍정적인 반응이 가득하던 팬페이지들은 악플로 쇄도하고, 폭로 뒤 해당 연예인이 어떻게 사는지는 아무도 관심이 없다. 피해자에게 찾아가서 직접 사과를 했는지, 피해자가 그 사과를 받아줬는지는 우리가 알 바 없는 일이 되어버린다. 더 나아가 수 년이 지나 해당 연예인이 그럭저럭 살고 있다는 소리를 들으면 왜 불행하게 살고 있지 않냐며 불쾌해한다. 왜냐하면, 그 연예인은 '학폭 연예인'이니까. 앞으로의 인생이 모두 망해야만 하는 존재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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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질문이 있다. 피해자의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필자가 모든 학폭 논란 사례들을 기억하고 있는 것은 아닐테지만 보통의 경우 피해자들이 익명의 신분으로 인터넷 사이트에 "옛날에 그랬었다"는 식의 사연글을 올리고, 그것이 인기를 끌어 수면 위로 끌어올려지는 식이었던 것 같다. 잘잘못을 떠나서 그냥 이 상황 자체만을 놓고 생각해보면, 필자는 인간적으로 조금 께름칙한 기분을 지울 수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피해자와 대중들이 바라는 것이 '가해자의 진심 어린 사과' 혹은 '죄에 상응하는 처벌'이 아닌 것 같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고 다만 '가해자의 철저한 불행'을 원한다.

 

그래서 그것이 뭐가 잘못됐냐고? 맞다. 사실 잘못된 것이라고 단정짓기는 어렵다. 필자가 이 문제를 주목하고 있는 이유는 가해자의 불행을 원하는 것 자체가 잘못되어서가 아니라, 피해자 그리고 대중들이 '가해자가 진심 어린 사과를 하고 있는가'보다 '가해자를 어떻게 하면 더 불행하게 할 수 있을까'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 이상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가. 피해자가 가해자의 진심 어린 후회와 사과를 원했다면 인터넷 카페 자유게시판에 '옛날에 그랬었다', '잘나가는 거 꼴보기 싫다'는 식의 이야기만 던져 놓는 것이 아니라, 소속사에 직접 연락을 하거나 법률 기관에 연락해서 가해자의 사과를 포함한 자신이 받은 상처에 대한 구체적인 보상을 요구하는 쪽이 더 빠르지 않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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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현재 한국 사회는 잘못이 드러난 누군가를 일대다(1:多)로 매장시키고 본다. "다 모르겠고 남을 상처입혔으니 너는 영원히 고통 속에 살아야 해", 혹은 "남을 상처입혔으니 너도 상처입어도 할 말 없어", 라는 식이다. 일단 연예인이 한 번 혐의를 인정하면, 대중은 그를 쏟아지는 악플들 ― 심지어 그것이 논란이 된 사건과 무관한 비난을 담고 있더라도 ― 을 모두 감수해야 하는 존재로 만들어버린다. (실제로 논란과 무관한 외모 비하부터 성희롱까지 다양한 비난이 합리화되고 있다) 그리고 대중들은 연예인이 '자신'에게 해를 끼친 것이 아닌데도 수 년이 지난 후까지 해당 연예인을 미워하고 쫓아다니며 그의 영원한 인생 실패를 염원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수많은 피해자들은 바로 이것을 바라고 익명 게시판에 글을 남긴다.

 

누군가가 법적으로 정당한 처벌을 받는 것, 진심으로 전하는 사과를 받는 것, 본질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무조건 타인이 자신만큼 혹은 자신보다 더 큰 고통을 받도록 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는 사회. 필자는 이것이 바로 '복수 사회'라고 생각한다. 이런 '복수 사회'의 예는 연예계까지 가지 않더라도 우리 주변 어디에서든지 찾아볼 수 있다. 취업난을 호소하는 청년 세대에게 "우리 때는 더 힘든 것도 감수했었다"고 말하는 기성 세대부터 교복 디자인을 바꾸는 투표에서 "우리도 예쁜 교복 못 입었는데"라고 말하며 촌스러운 디자인을 고르는 학교 선배까지도 모두 크게 보면 타인이 나만큼의 고통을 받기를 바라는 '복수 사회'의 한 예이다.

 

 

 

빈 호수는 꼭 메워야 하나요?


 

필자는 어렸을 때부터 지극히 자기 중심적인 사고를 해왔으며 '나에게 해를 끼치는 것들'에 대해 분노를 숨기지 않는 편이었다. 그리고 그 분노는 대부분 과격하게 표출되었다. 따라서 자연스레(?) 입이 거칠어졌는데, 조금 특이한 점은 한 번 험한 말을 하고 나면 이 분노가 삽시간에 사그라들며 초반의 격렬함에 비하자면 거의 없던 감정처럼 변해 버리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필자는 싫은 사람이 생기면 온 우주의 기운을 모아 "나는 네가 싫단다 가까이 오지 말아주렴"이라고 염불을 외우며 접촉 자체를 차단함으로써 내가 상대를 미워할 만한 계기가 더 생겨나는 것을 막는다. 다시 말해 '증오'의 원천을 막아버린다. 이후 호수처럼 고여 있는 '증오'를, 매우 직설적인 언어로 질겅질겅 씹으면서 밖으로 퍼다 나른다. (안타깝게도 필자는 이 행위를 당사자 앞에서 하는 경우가 많다. 대신 마지막 양심을 붙잡고 상대 자체를 지칭하는 비속어는 지양하려고 분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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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한바탕 소동을 치른 후 내 안에는 텅 빈 호수터만 남는 것이 당연지사다. 사실 오며가며 텅 빈 호수터를 마주치게 되면 기분이 썩 좋진 않은 것이 사실이다. 모름지기 빈 호수터라는 것은 그 자체로 을씨년스럽기 때문에 필자는 호수를 비워낸 후에도 그 근처에 가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딱히 "그 요망한 호수터는 내 눈에 띄지도 못하게 없애버려야 해. 간척 사업을 진행하자."라거나 "저런 호수터는 비쩍 말라 황무지가 되어버려야 마땅해."와 같은 생각을 하지도 않는다. 그저 그것은 그렇게 존재할 뿐이다.

 

동일한 원리로, 필자는 과거에 본인을 괴롭혔던 수많은 사람들에 대하여 "걔네 인생이 반드시 X됐으면 좋겠다"는 식의 생각을 구태여 하지 않는다. 물론, 그 사람들의 앞날이 창창했으면 하는 축복을 내려줄 생각은 전혀 없다. 그리고 내게 그 사람들을 위한 기도를 하라고 강요한다면 앞날이 꼬이기를 기도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굳이? 두고두고 그 사람들이 내게 준 상처를 되씹으면서 그 사람들의 인생이 조져지기를 기다릴 바에야 내 인생의 높이를 높여서 그들을 내려다보는 편이 더 생산적이지 않은가? 또는 그렇게 억울할 바에야 직접 연락해서 사과 또는 보상을 받아내는 편이 더 낫지 않은가?

 

잘못에 대한 정당한 처벌을 받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정당한 처벌에는 관심이 없고 누군가의 영구적인 불행만을 바라는 것이 정말 바람직한 사회일까. 사실 우리는 누군가를 다치게 했다는 사실을 빌미로 나와 상관없는 또 다른 누군가를 합법적으로 다치게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필자는 '처벌'과 '매장'은 다른 일임을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처벌은 죄에 대한 것이지만 매장은 사람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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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나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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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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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정
    • 마음 속 내재되어있는 분노를 무차별적으로 유명인에게 쏟아내며 쾌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불행에 자극을 느끼고 기뻐하는 대신, 위로와 조언의 말을 건네기 위해 노력해야할 것입니다 정당한 비판을 하되, 인격을 존중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서로를 존중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슴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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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모
    • 복수사회라... 정말 그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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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IRO
    • 에디터입니다. 댓글을 너무 늦게 확인하여 죄송하다는 말씀을 먼저 드립니다.

      혹여나 '모든 논란을 덮어주자'는 주장으로 오해를 살까 우려되어 글을 상당히 조심스럽게 썼습니다만, 세 분께서 공감해주셨듯 어디까지나 연예계의 갖가지 사건에 대하여 대중은 제3자의 위치에 있습니다. 해당 사건들은 (태도논란이 아니라면) '연예인'으로서 저지른 것이 아니라, '개인'으로 저지른 것이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대중들이 너무 과하게 욕하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따뜻한 공감의 말씀 감사합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께서 부디 분노를 마주치지 않는, 좋은 하루를 보내시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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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그라미
    • 안녕하세요, 나경님. 컬쳐리스트 서지유입니다.

      복수사회에 대한 글 정말 잘 읽었습니다. ‘처벌’은 응당 ‘매장’이라고 생각되기 십상인데, 이런 일이 수면 위에 오를수록, 둘의 구분이 절실해지네요.

      사회에 대한 글이지만, 저를 반추해보는데에 더 깊이 글을 향유할 수 있었습니다.

      서두에 나온 문장에 곧바로 생각 난 증오하는, 불행을 바란 ‘누군가’를 향했던 저의 질겅임은 그로부터 제대로 된 사과를 받지 않았으며, 실은 마음에 들지 않아-그냥 보기 싫어서 기회를 주지 않은 채로- 남겨놨기 때문이란 걸 깨달았어요.

      호수의 물을 밖으로 퍼다 나르면서 내 의견을 표명하는 것을 우선하고, 회피와 타인의 생각을 후자로 두었다면, 더 후련하게 빈 호수 터로 존재했을텐데. 그랬다면 이 정도는 아니었겠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심 아쉽지만, 다음에는 좀 더 후련한 방식을 택하기로 마음먹을 수 있던 글이었습니다. 사과 할 줄 모르는 사람을 만날까 두려워하는 것보다, 나중의 저를 위해서 제 할 말 하는 데 거리낌 없는 사람이 되고자 다짐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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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IRO
    • 2021.10.02 00:3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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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그라미반갑습니다, 서지유 님.

      사실은 '미련'이 복수사회 형성의 가장 큰 요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지유님께서 언급하신 사례 역시 "그때 시원하게 욕이라도 할 걸" 하는 미련이 호수처럼 고여 복수심으로 바뀐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지유님처럼 보통의 사람들이 저마다의 호수를 가지게 된 것은 아마도 '예의'라는 개념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부족하기 때문이 아닐까 해요.

      사실 우리 사회에서 '예의'라는 개념은 참 모호합니다. 면전에서 욕하는 것이 '예의'가 아니라면, 면전에서는 꾹꾹 참고 속으로 두고두고 상대를 저주하는 것은 과연 예의일까요? 저는 가끔 우리 사회의 '예의'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고민할 때가 많습니다. (물론 상대에 대한 인신공격에 해당하는 과격한 비속어는 자제해야 마땅하겠지요.)

      지유님께서 추후 결론내리실 '진정한 예의'가 궁금해지네요. 제 생각에 귀 기울여주셔서 감사합니다. 평안한 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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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yul
    • 안녕하세요. 에디터 강득라입니다.

      연예인 학폭 논란에 대해서 완전히 피해자 편이었는데요.
      그 만큼 폭로를 보며 오죽하면 그러겠어, 사과를 얼마나 받고 싶으면 그럴까.라는 생각만 했어요.

      여전히 완전히 피해자편이긴 하지만, 폭로에 대해 다르게 생각해보게 되는 것 같아요.
      폭로 후의 상황이나 피해자와 가해자의 태도를 종합하여 보면,
      어쩌면 정말, 사과가 목적이 아닐 수도 있겟구나 라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봅니다.

      동시에 '난 상대의 사과를 받고 싶은 마음이 더 컸을까. 복수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을까'라며
      제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생각보다 꽤 가까이, 일상 곳곳에서, 순간순간에 '복수'라는 것이 존재하고 있었구나를 느꼈습니다.

      조심스러웠을, 그리고 깊은 곳을 들여다보지 않고 지나칠 법한 주제를 다뤄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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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IRO
    • 2021.10.02 01: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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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yul반갑습니다, 강득라 님.

      물론 "오죽하면 그러겠어"라는 입장도 충분히 타당합니다. 그래서 저 역시 '가해자들의 불행을 바라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또한 수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는 연예인에게 피해 보상을 요구하고자 하는 일반인은 그 힘의 차이에 있어 리스크가 클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기에 많은 피해자들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정식 고발이 아닌, 익명의 힘을 빌린 '폭로'를 선택하는 것이겠지요. 기업 내 내부고발자를 보호하기 위해 '익명'이 필요한 것과 비슷한 이유로요.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한 번쯤 생각해보아야 할 점은 '과연 이 처벌(=매장)이 해당 연예인의 죄목에 적절한 죗값인가?' 라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가해자가 잘못했지요. 그런데 과연 '사건과 관계없는 제3자들이 무차별적으로 행하는 매장'이 해당 죄에 적합한 처벌일까요? 이것은 사람마다 그 의견이 다르겠지만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래에 댓글을 달아 주신 분께서 지적하셨듯, 연예인에 대한 뉴스는 그 화제성 때문에 그 진위여부가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너무나 쉽게 퍼집니다. 학교 폭력 폭로 사례는 아닙니다만 걸그룹 티아라 역시 성급한 보도로 부당한 이미지 손상을 입었었지요. 최근 티아라와 유사한 폭로가 있었던 걸그룹 AOA와 관련하여서도 숨겨졌던 피해자 측의 과오가 하나 둘 떠오르고 있습니다. 이를 보면 알 수 있듯 우리 대중들은 제3자일 뿐,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에서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지 못합니다.

      설령 가해자가 스스로 혐의를 인정했다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대중들 사이에서는 '담배를 피고 + 친구에게 침을 뱉고 + 머리채를 잡았고 + ...'의 갖가지 소문들이 돌기 시작했는데, 연예인은 사과문에 '제가 이것은 했고 저것은 하지 않았으며 이것은 피해자가 지어낸 말입니다' 라고 잘잘못을 따질 수 없습니다. '이것은 했다'라고 인정하면 대중들은 '거 봐라 그럴 줄 알았다'라고 반응하며, '저것은 하지 않았습니다'라고 반박하면 대중들은 '이게 사과문이냐'라고 분노하기 때문이지요. 실제로 (여자)아이들의 한 멤버가 이런 식으로 반응을 했다가 '질질 끌지 말고 탈퇴해라'는 질타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우습게도 이 사건의 전말은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고, 대중들은 이미 관심을 끈 상태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의 고객인 대중들의 비난을 조금이라도 덜어보기 위해,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 보다는 단순히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는 식으로 무마하려고 하게 됩니다. 그리고 반성은 모르겠고 쥐죽은 듯이 자숙하며 대중들이 그 사건을 '잊어버리기'를 바랍니다. 가해자든 피해자든 사건의 본질에 접근하여 진실된 반성을 끌어내는 것보다 당장의 복수, 당장의 회피를 중요하게 여기는 이 상황이, 저는 상당히 기이하다고 생각합니다.

      득라님이 제공해주신 생각거리에 대하여 저의 의견을 풀어 쓰다 보니 댓글이 길어졌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부디 분노 없는, 행복한 하루를 보내시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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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에디터 장현채입니다.

      도서 <피로사회>를 꽤 인상 깊게 읽었던지라, ‘피로 사회를 넘어 복수 사회로’라는 타이틀에 기대하며 읽어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갈등을 피하고 싶어하는, 어떻게 보면 평화주의자라고 불릴 수 있을 만큼 무언가 대치되는 상황에서 대부분 중립적인 자세를 취하고는 합니다. 물론 도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명백히 잘못된 일을 저지른 경우는 예외이겠지만요. 나경님이 글에서 중점적으로 이야기하고 계신 연예인을 둘러싼 논란의 경우에는 어떤 입장을 취하기에 참 애매한 부분이 많다고 평소 생각해왔습니다.

      첫 번째로는 언론을 통해 대중들에게 알려지는 이슈의 진위여부가 불확실하다는 점 때문이었습니다. 자극적인 보도 이후, 알고 보니 사실이 아니었다는 식의 무책임한 매체와 해명에는 관심이 없는 대중들의 태도에 큰 환멸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두 번째로는 나경님이 말씀하고 계시는 목적을 잃은 분노입니다. 합당한 처벌과 반성을 원하는 것인지, 정도 없는 파멸을 저주하는 것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의 폭력적 언사는 지켜보는 대중들에게도 큰 피로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나경님이 풀어주신 이 ‘복수 사회’가 참 와닿았습니다. 대상을 찾아 거리낌 없이 분노를 표출하는 사회 분위기가 기형적이고 거북하다고 느껴지고는 합니다. 날카로운 통찰로 생각할 여지를 던지는 나경님의 글을 통해 저 또한 여러 가지 되짚어 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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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IRO
    • 2021.10.02 01:4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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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갑습니다, 장현채 님.

      사실 책 <피로사회>는 몇 년 전 읽다가 포기했지만(..) 제목을 짓다가 문득 '복수 사회'라는 워딩이 생각나서 끼워 넣었습니다. 타이틀에 기대를 거셨다니 제 글이 만족스러우셨을지 조금 걱정이 되는군요.

      댓글 내용으로 돌아가자면, 현채님께서 지적해주신 것이 정확히 제 생각과 일치하는 것 같습니다. 피해자들의 가족이나 지인이라면 가해자에게 충분히 험한 욕을 할 수 있습니다. 법적으로는 모욕죄에 해당할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심적으로는 무죄라고 봐요. 내 소중한 사람을 다치게 한 사람이니까요.

      하지만 이해관계가 전혀 없는 대중이 험한 욕을 한다면? 그들은 과연 어떤 동기가 있기에 그렇게 흥분하게 되는 것일까요? 제가 보기에 그들은 학교폭력 자체의 근절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들은 '누군가가 학교폭력을 당했다'는 사실에 분노하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가 무차별적으로 비난받아도 반항하지 못할 잘못을 저질렀다'에 환호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뒤늦게 밝혀진 해당 사건의 진위 여부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지요. 그들은 이미 '반항하지 못하는 존재에게 마음껏 비난 퍼붓기'라는 자신의 목적을 달성했으니까요.

      저의 의견을 꿰뚫어보신 현채님의 댓글 덕분에 그래도 누군가가 나의 창작 의도(?)를 파악해줬구나, 하는 뿌듯함이 밀려오네요. 꼼꼼히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평화로운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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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푸른하늘
    • 나경님 안녕하세요. 컬쳐리스트 김재훈입니다.

      우선, 민감할 수 있는 주제에 대해 용기있게 글을 써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저 또한 이런 글을 써보고 싶었지만, 사람들의 시선이 무서워 자신있게 써내려가지 못했어요.

      저 또한 언제부턴가 그런 꺼림직함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매장당하지 않으면 만족하지 않는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모습을 보면서 조금은 섬뜩함을 느꼈던 것 같아요. 해당 기사나 영상 댓글에 보면 거의 죽이고 싶어하는거나 다름없는 사람들의 말들을 보며 '이건 아닌데' 싶은 생각이 참 많이 들었습니다.

      범죄를 저질렀다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의 인격이 짓뭉개질 이유는 없는데 말입니다. 범죄를 저지른 것에 대한 대가를 받는다면 그 이상으로 나아갈 이유는 없겠지요.

      하지만 왜 사람들이 그토록 가해자의 추락을 원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해보니,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았기에 그렇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보통 청소년 시기에 저지른 잘못들은 성인보다는 덜한 처벌을 받으니까요. 학폭 같은 경우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고요. 우리 사회는 아직 벌에 대한 대가가 약하다는 인식이 많은 것 같습니다. 성폭력 문제, 음주 후 하는 범죄 모두 다른 나라에 비해 약하다고 생각하니까요.우리나라 법은 너무 약하다, 라는 인식이 커져 대중들 사이에서는 '우리라도 저 사람을 제대로 처벌하자'라는 마음 때문에 위와 같은 일들이 발생하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안티 히어로물이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는 이유도 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보통 히어로들이 항상 선한 모습으로 등장하는 모습과 달리 안티 히어로들은 악한 행동은 악으로 받아쳐버리잖아요. 그런 처벌에 대리 만족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기에 그런 영화가 인기를 얻지 않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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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IRO
    • 2021.10.02 02: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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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푸른하늘반갑습니다, 김재훈 님.

      저도 실은 두 번의 피드백 모집이 있었음에도 매번 다른 글을 피드백 대상 글로 골랐습니다. 쓰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았지만, 민감한 주제이기에 제가 직접 나서서 불특정 다수의 피드백을 요청하기에는 두려움이 컸던 것 같아요. 하지만 에디터 활동이 끝나기 전에 한 번쯤은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들어보고 싶었던 글이라 고민 끝에 피드백 모임에 (드디어) 제출하게 되었습니다.

      앞선 댓글에서는 '복수사회'를 도래하게 한 가장 큰 원인이 분노를 표출하지 못한 것에 대한 '미련'이라고 언급하였는데, 재훈님의 댓글을 보니 마음이 흔들리는 것 같습니다. 맞아요. 적절한 '처벌'이 힘들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기 대문에 다들 본인이 대신 판결을 내려주는 정의의 사도 역할을 수행하고자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정말 대중들이 정의의 사도를 자처한 것인지는 의문입니다. 대중들이 정말로 제대로 된 처벌을 원했다면, 티아라 등 여론몰이로 엉뚱한 처벌을 받은 사례에 대해서도 함께 분노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조금 다른 이야기입니다만, 재훈님께서 언급하신 '안티 히어로'는 제가 이해한 그것(크루엘라, 조커 등)이 맞나요? 저는 '안티 히어로'물을 보며 한 번도 재훈님과 같은 발상을 해본 적이 없어 신선하네요. 저는 안티 히어로물위 메인 주제는 '악인에게도 이유는 있다'라고 생각해왔는데, '악에는 악으로 응수한다'가 주제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해보지 못했습니다.

      악인에게 굳이 서사를 부여하는 내용이 흥미롭지는 않을 것 같아 조커는 아직 보지 못했는데, 시간을 내어 한 번 찾아봐야겠습니다. 좋은 인사이트를 제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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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o__oy
    • 안녕하세요. 안지영입니다.

      '복수 사회' 정말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하는 주제인 거 같아요. 문화예술 분야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모든 분야에서 누군가를 복수하기 위한, 또는 그런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 같아서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학폭 논란'이 연예계에 이슈로 떠오르고 그에 따라서 대중의 시선이 특정한 부분에만 더욱 몰입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저 역시도 죄를 지었으면 당연히 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해자는 진심 어린 사과를 해야 하고 그에 따른 처벌도 필요합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만큼 괴로운 일이 또 있을까요? 아픔의 크기는 잴 수 없다지만, 누군가를 미워하는 건 정말 괴로운 일이에요. 

      이에 따라서 여러 매체나 콘텐츠에서도 좀 더 자극적인 요소를 부각하고 내가 괴로운 것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고통을 바라는 부분은 이제 버겁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죄' 그 자체에 대한 비난과 사과를 촉구하는 의견을 우리 사회에서 필요한 부분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나경님의 말처럼 법적으로 정당한 처벌을 받는 것, 진심으로 전하는 사과를 받는 것 등의 본질적인 문의 해결이 선행되기를 바랍니다.

      저에게도 불쑬불쑥 나타났던 '복수'의 의미와 그것을 바라보는 태도, 여러 관점을 생각해볼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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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IRO
    • 2021.10.02 02: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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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o__oy반갑습니다, 안지영 님.

      물론 제가 연예인 학교폭력 사태를 예로 들긴 했지만, 사실 사례는 우리 주변에 훨씬 더 많습니다. 저는 '내가 그랬으니까 너도 그래야 해'가 정말 위험한 발상이라고 생각해요.

      맛없는 것을 먹고 '나만 이걸 느낄 순 없지'라는 생각에 친구를 속여 기어코 그 불행을 나누는 것도 사실은 엄밀히 말하자면 목적 없는 복수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만 아니면 돼'라는 유명한 캐치프레이즈도요. 저는 가끔 연예인을 정도 없이 비난하는 사람들을 보면 '이 사람들은 자신의 주변 사람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도 이렇게 격한 비난을 전할까'하는 생각을 하게 되거든요.

      이처럼 복수사회의 양상은 다양합니다. 일단 저는 복수사회가 께름칙하긴 합니다만, 이것 역시 무조건 잘못된 현상이라고 잡아뗄 수만은 없겠지요. 여러 관점을 허용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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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리지날
    • 안녕하세요, 23기 에디터 박대현입니다.

      나경 님의 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그런데 나경 님의 글과는 다른 관점의 댓글을 달아야 할 것 같아서 먼저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저는 제가 당한 것이 있으면 반드시 되갚음을 하는 성격입니다. 저는 복수를 신조로 여기고 살아왔습니다. 물론 그 복수란 정말 남에게 신체적 정신적 위해를 가하는 정도로는 절대 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보면 '정신승리'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지도 모릅니다.

      제가 관심이 있었던 여자와 잘 되고 싶어서 대시를 할 때, 그 관계를 망쳐버린 제 친구에게, 언젠가를 위해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는 중입니다. 그전에도 저를 뭐라고 했던 친구에게 제가 희열을 느끼는 방식으로의 복수를 행한 적 있습니다. (거듭 말씀드립니다만, 정신승리 수준입니다 ^^)

      그래서 저는 '복수 = 매장'인 것 자체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피해자, 또는 피해자에게 깊이 공감하는 사람에게 이성적인 수준에서의 처벌은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단, 여기서 저는 그것이 사실인지는 신중하게 가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학교 폭력의 가해자라는 것이 밝혀지며 매장된 연예인들은 그것이 사실이고 충분히 입증되면 아마 더 이상 관련 일을 하는 것이 불가능하겠죠. 다만 A와 B 사이에 있었던 일은 C가 절대 객관적으로 판단하기가 불가능합니다. 법원에서 결론이 난 것도 아니고요. 그런데 우리 주변에서는 대중의 판단이 뒤집히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습니다.

      매장 그 자체보다, 비난을 가할 때의 신중함 역시도 요구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A와 B 사이에 일어난 일을 판사가 판단해주면 그것은 곧이곧대로 믿어야 할까요? 판결에 의문이 드는 경우도 상당히 많습니다. 이렇게 되면 결국 대중의 '뇌피셜'이 사건을 바라보는 유일한 열쇠가 됩니다. 이건 정말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말은 조금 다르지만 적고 나서 보니 나경 님과 제 생각이 궤를 같이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다음에 <Project 당신> 인터뷰 기회가 주어진다면 인터뷰를 요청드리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앞으로 올리는 글도 기대하겠습니다!

      박대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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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IRO
    • 2021.10.02 03:2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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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리지날반갑습니다, 박대현 님.

      사과는 받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하실 필요가 없거든요(!). 애초에 이렇게 논쟁의 여지가 있는 주제의 글을 피드백 대상으로 내보인 것은, 제 글에 어떤 반박이 가해지더라도 즐겁게 경청하겠다는 제 의지의 표현이었습니다.

      다만 저도 여쭈어보고 싶은 부분이 있어 잠시 언급을 하겠습니다. "피해자, 또는 피해자에게 깊이 공감하는 사람에게 이성적인 수준에서의 처벌은 불가능하다." 정말 맞는 말입니다. 저도 피해자와 그 주변인들이 가해자를 미워하는 것 자체는 매우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대중'들은 왜 그리도 흥분하는 것일까요? 그들은 정말로 어디에 사는 누구인지도 알지도 못하는 피해자에게 '깊이 공감하기 때문에' 비이성적인 욕설을 퍼붓고 있는 것일까요? 저는 당사자도 아닌 그들이 행하는 미움에 면죄부가 주어져야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논점과 별개로 관계를 망쳐버린 친구분께서는 정말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신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혹시 그분이 나중에 사과를 하러 온다고 하더라도 용서해주지는 마세요.)

      그리고 "비난을 가할 때의 신중함이 매장 그 자체보다 더 중요하다"는 말씀에 정말 동의합니다. 그래서 저는 저와 일면식 없는 사람에 대한 안 좋은 소문들에 그다지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극단적인 소문들은 대개 와전된 것이 많기 때문이지요. 이렇게 놓고 보니 말씀해주신 것처럼 대현님과 제가 아예 다른 의견은 아닌 듯 싶습니다.

      나와 다른 사고 회로를 가진 사람과의 교감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기회가 생겨 한 번 뵐 수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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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린안경
    • 에디터 노상원 입니다. 반갑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에디터 님이 글을 쓰신 전반적인 방향이나 스탠스가 저에겐 상당히 추상적으로 여겨졌습니다. 연예인들에 대한 학폭 논란은 죄와 벌, 사과와 용서에 관한 관념적인 논의 보다도 청소년 범죄에 대한 처벌법, 공교육 교사들의 학급 생태계에 대한 처참한 수준의 이해도, 인터넷 실명제 도입(도입하자는 식의 특정한 주장은 아닙니다.) 같은 구체적인 논의가 더 필요한 영역이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우선 대표적으로 죄와 사람을 분리해서 보는 것이 가능한가에 대한 의문이 남습니다. 그런 시선을 견지하는 것이 현실성 있느냐는 것이죠. 저에게는 죄는 미워하되 죄인은 미워하지말라는 식의 성경 속 말씀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정당한 처벌이란 것이 공적 법치주의 아래에서 법의 심판을 받는 것인지 다른 무언가를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가해자가 진심어린 사과를 하고 있는가'가 '가해자를 어떻게 하면 더 불행하게 만들 수 있을까' 보다 중요하게 여겨지려면 가해자의 교화 가능성이 전제 되어야 합니다. 가해자가 시간이 지나고 자신의 잘못을 제대로 따져보고 정말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어린' 사과를 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변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인데, 저는 이 부분에 있어서 상당히 회의적 입니다. 또한 사과의 진심은 어떻게 검증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습니다. 물론 엄밀한 검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피해자가 그 사과를 어떻게 느끼느냐가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겠죠. 그러나 학폭은 특정 가해자-피해자 관계의 개인 대 개인의 문제라기 보다 부분적으로는 사회현상으로 볼 여지도 있고 학교 시스템 전반의 부조리에 대한 생각도 안 할수가 없어서 단순히 느낌적인 느낌이야 라고 퉁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사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 저의 입장입니다. 처벌에는 응징의 목적도 있지만 재발 방지의 기능도 있으니까요.

      그러나 인터넷 공간에서 벌어지는 과도한 집단 린치에 대한 피로감은 저를 포함해 많은 분들이 공감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다치게 했다는 사실을 빌미로 나와 상관없는 또 다른 누군가를 합법적으로 다치게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라는 문장에 크게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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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IRO
    • 2021.10.02 11:5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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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린안경반갑습니다, 노상원 님.

      먼저 제 글이 모호하게 느껴지셨다니 유감스럽습니다. 뒤늦게나마 첨언을 해 보자면 제가 본 글을 작성한 목적은 "눈 앞의 '잘못'에는 칼을 갈면서 복수를 다짐하지만, 정작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에는 관심이 없는 사회"가 과연 바람직한가에 대한 의문 제기였어요.

      학교 폭력 논란도 이것을 단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끌고 온 예시였다고 생각하시면 이해가 편하실 것 같습니다. 피해자는 공공의 힘을 빌려 한 사람을 매장시키지만 그것은 공공의 이익, 즉 '학교폭력의 근절'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저 '나를 괴롭게 했으니 너는 행복하면 안 돼'라는 사적인 마음에서 자신의 문제와는 전혀 무관한 제3자들을 끌어들이고 있는 것이죠.

      또한 대중 역시 '학교폭력의 근절'에는 관심이 없고 '내가 무차별적인 비난을 해도 되는 대상'을 찾았다는 점에 환호하며 진위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소문들을 퍼다 나릅니다. 한 연예인을 매장시키려는 증오의 열기는 뜨겁지만 그 열기가 학교폭력 해결 프로세스의 제도적 문제점을 해결하려는 노력으로 이어지는 것은 매우 드뭅니다.

      물론 이로써 결과적으로는 연예계에 "학폭 논란이 터지면 죽는다"는 위기 의식이 퍼지면 연습생들이 다들 몸을 사리는 효과가 발생할 것 같긴 합니다. 하지만 '학교폭력'이 진실로 어떤 점에서 잘못된 행위인지는 모른 채, 다만 대중의 처벌이 두려워 몸을 사리는 것이 과연 본질적인 해결법인가는 의문입니다.

      되짚어보니 상원님 말씀처럼 죄와 사람은 분리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사람을 죽이는 것이 왜 잘못된 것인지는 모른 채 그저 감옥 가기 싫어서 살인을 하지 않는다면, 결과적으로는 죄를 저지르지 않겠으나 그것이 과연 제대로 된 사람인가 하는 생각입니다. 상원님 덕분에 다른 관점에서 좀 더 깊이 사유해볼 수 있었습니다. 예리한 통찰을 제공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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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두슴
    • "네가 당해서 싫은 일 다른 사람에게도 하지 마라."폭력이 존재했다면, 폭력에 집중해서 해결(사과를 하든 보상을 하든)하는 노력이 중요하지요.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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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IRO
    • 2022.06.01 15:5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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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두슴소중한 의견 감사합니다, 바두슴 님.
      폭력을 폭력으로 갚는 문화보다는, 폭력을 해결해가는 문화가 더 생산적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부디 좋은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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