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적인 폭력] 17. 품위 있게 점심 메뉴를 고르는 법

글 입력 2021.08.03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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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품위 있게 점심 메뉴를 고르는 법 


 

쳇바퀴 굴러가듯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도 가끔 멈칫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평소의 관성대로 이 행동을 지속해도 되는지, 반성하고 다른 방안을 찾아야 하는지 고민하는 순간이다. 최근 그 순간이 찾아온 건 며칠 전 아무 생각 없이 들어선 샌드위치 가게에서였다. 메뉴판을 보자마자 아보카도 랩이 눈에 들어와 그대로 주문하려던 찰나, 아보카도 생산이 환경에 안 좋다는 생각이 번뜩 머리를 스쳐지나 주문하기 직전 다급하게 다른 메뉴로 변경했다.

 

나 한 사람의 한 끼 식사가 세상에 미치는 영향력은 대단히 미미하다. 그럼에도 나는 주문하기 전에 멈칫했던 내가, 아보카도를 포기하고 다른 메뉴를 주문한 내가 대견했다. 내가 아보카도를 먹는 시간은 잠깐이지만, 아보카도 하나가 내 앞에 놓이기까지의 과정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보카도 2개를 생산하고 중남미에서 아시아·유럽으로 유통하는 데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는 바나나 1kg을 생산·유통·섭취하는 데 발생하는 이산화탄소의 두 배라고 한다. 탄소발자국으로 비교하면 바나나 1kg은 480g인 반면, 아보카도 2개의 경우 846.36g에 달한다. 그뿐만 아니라 아보카도는 물 부족도 야기한다. 아보카도 농장 1헥타르를 재배하는 데 하루에 10만 리터의 물이 사용된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칠레 페토르카 지역은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게 되었고, 트럭에 운반되어 오는 급수를 사용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글을 쓰기 위해 관련 자료를 더 찾아보면서 아보카도의 폭발적인 인기로 범죄까지 일어난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아보카도의 주 생산지인 멕시코에서 아보카도 판매가 돈이 되는 것을 알고 마약밀매 조직이 아보카도 농장주들을 납치하고 약탈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아보카도는 단지 영양가 많은 과일일 뿐, 아무런 잘못이 없다. 문제는 인스타그램을 중심으로 퍼져나간 유행이 끝을 모르고 치솟으면서 평범한 과일로만 남을 수 있었던 아보카도가 탐욕의 산물로 변질하였다는 데 있다. 갑작스럽게 분 아보카도 열풍에 제동을 걸고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사람이 많았다면 이야기는 달라졌을 것이다.

 

사실 아보카도에 대한 비판적인 논의는 오래전부터 진행되었다. 아보카도가 전 세계인의 건강식품으로 자리 잡은 것은 2, 3년 전의 일이며 지금은 문제를 인식하고 소비를 지양하는 사람의 수가 적지 않다. 이미 한참 전에 논의된 이야기를 이제와서 굳이 반복하는 이유는 이 글을 읽게 될 사람 중 한 명쯤은 여전히 아무 문제의식 없이 아보카도를 먹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 때문이다.

 

학교 학생들 사이에서 한 식당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그 식당의 시그니처 메뉴는 아보카도를 곁들인 덮밥이었다. 그 당시 아보카도는 한창 SNS 게시물을 장식하고 있었고, 나 역시 주류에 편승해 몇 번 아보카도가 들어간 덮밥을 먹었다. 그게 고작 2년 전의 일이었다. 2년 사이에 내 의식이 변한 건 어떤 권위 있는 자의 거창한 움직임이 아니라 나처럼 평범한 사람이 환경을 위해 아보카도를 먹지 않겠다고 말하는 걸 목격한 경험에 의해서였다.

 

최근 악셀 하케의 <무례한 시대를 품위 있게 건너는 법>이라는 책을 읽었다. 제목 그대로 혐오, 차별, 배제가 판치는 세상에서 어떻게 품위를 유지할 수 있는지 고민해보는 내용의 책이었다. 이 책에서 ‘품위’는 ‘사람이 갖추어야 할 위엄이나 기품’을 뜻한다. 사전적인 정의만으로 파악하기에는 추상적인 단어이다. 그래서 저자는 독자들의 수월한 독서를 위해 책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인 ‘품위’를 이해할 수 있는 일화를 제시하며 책을 시작한다.

 

한 주점에 자리를 잡은 저자와 친구는 주점 주인이 열거하는 맥주의 종류를 들으며 별생각 없이 맥주 한 종류를 선택했다. 그런데 맥주가 나오자 친구는 자신이 원래는 이 맥주를 마시지 말아야 한다고 토로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그 맥주를 만드는 양조 업체는 시민 의식도 없이, 자연 보호는 고려하지 않은 채 무분별한 확장을 감행하여 온갖 환경 파괴를 저지른 책임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지역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해당 업체의 맥주를 보이콧하고 있으며, 내 친구 또한 이 행동에 동참해야 하지 않을까 고민 중이라고 했다.

 

-P.9

 

 

저자는 친구의 태도에 대해 이러한 평가를 남겼다.

   

 

내가 보기에 그는 분명 품위 있고 올곧은 사람이다. 그는 맥주를 마시면서도 세상을 생각했고 세상에 유익하지 않은, 혹은 바이에른 산지의 환경에 악영향을 주는 맥주에 돈을 쓰려 하지 않았다. 그는 ‘품위 있는 인간으로 살고자’ 했다. 친구는 분별력이 몸에 밴 사람이었다. 맥주를 마실 때조차 분별 있게 그리고 품위 있게 행동하려 했다.

   

-P.10

 

 

책에서 인용한 칸트의 정의에 따르면 품위란 타인의 운명에 동참하는 것이다. 저자의 친구는 맥주 한 잔 주문하는 사소한 행위에서도 양조 업체의 횡포로 파괴된 환경과 피해받은 지역 주민들을 생각했고 기꺼이 그들의 운명에 동참했다.

 

그렇다면 아보카도를 먹지 않은 나의 행위도 그만큼 품위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분명 나는 점심 메뉴를 고르는 짧은 순간에서조차 내 선택이 미칠 부정적인 영향력을 생각했고, 이 세상에 조금이라도 덜 피해 끼치기 위해 다른 메뉴를 선택했다. 그러나 이 한 번의 선택으로 나의 품위가 완성되었다고 말하기엔 너무나 부끄럽다. 2년 전의 내가 아무 생각 없이 아보카도 덮밥을 즐겨 먹었던 것처럼 지금의 나에게도 아무렇지 않게 타인의 운명을 외면하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뿌듯한 마음으로 아보카도를 선택하지 않은 나는 그 대신 새우가 들어간 메뉴를 주문했다. 그날 점심 메뉴의 주재료였던 새우는 몇 개월 전 내가 비건(Vegan)인 지인과 채식주의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아무렇지 않게 집어 든 튀김의 재료이기도 했다. 지인과 헤어지기 직전에야 내가 고른 새우튀김이 우리가 나눴던 대화와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 깨달았다.

 

지인은 내 행동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자신이 비건이라고 해서 남에게 강요할 자격은 없으며 당장 본인도 별생각 없이 종종 원칙에 어긋나는 음식을 입에 대곤 한다며 나를 다독였다. 그렇지만 나는 집으로 가는 내내 손에 든 새우튀김이 부끄러웠다. 새우를 먹어서가 아니라 채식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간식을 고르고 집으로 향하는 그 긴 시간 동안 아무런 의식도 하지 않았다는 게 부끄러웠다.

 

무려 1년 4개월 만에 ‘나의 사적인 폭력’이라는 카테고리를 달고 글을 쓴다. 1년 4개월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사회의 폭력성과 나의 관계를 조금은 다르게 인식하게 되었다. 오랜만에 예전에 쓴 글을 다시 읽어보니 글 곳곳에 순수한 분노가 느껴져 지금의 나와 사뭇 다른 모습에 낯설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다.

 

이제 나는 세상을 좀 더 차분하게 바라보게 되었다. 내가 피해자인 상황만큼이나 가해자인 상황도 많음을, 사회의 폭력성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게 우리 일상에 존재하고 있음을 느꼈다. 문제는 이렇게 폭력적인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이다.

 

악셀 하케가 친구에 대해 묘사한 것처럼 나도 그렇게 품위를 유지하며 살고 싶다. 하지만 그 길은 쉽지 않다. 아무리 조심한다고 해도 나도 누군가한텐 폭력적인 사회의 일부분으로 보일 것이다. 경험이 쌓이고 생각이 더해지면서 세상에 분노보다 무력감이나 부끄러움을 느끼는 날들이 더 많아졌다. 그래서 글 쓰는 행위가 조심스러워졌다.

 

그런데 지금 나는 기어코 글을 쓰고 있다. 내게 폭력적인 사회를 비판할 자격이 있는지 여전히 확신할 수 없지만, 속에서 차오르는 말들을 모두 외면할 수는 없었다. 강력한 주장이 가득한 세상에서 이런 조심스러운 글도 하나쯤은 있어도 될 것 같았다.

 

이제부터 내가 써 내려 갈 글은 이전에 쓴 글보다 조금 소극적일지도 모른다. 이 글도 우리 모두 아보카도를 불매하고 채식주의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기 위해 쓴 글이 아니다. 그저 평범하게 일상을 살아가다 한 번쯤 멈칫해볼 필요는 있다고 말할 뿐이다. 그래, 아주 잠깐의 멈춤. 내 글이 딱 그 정도로만 타인의 운명에 동참해도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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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금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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