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그래피티, 예술로서 그들이 보여줄 것들 - 스트릿 노이즈 STREET NOISE

특히 그래피티 작품에서는 누군가의 개입 없이 표현하는 사람의 생각과 의지가 온전하게 그리고 강하게 드러난다.
글 입력 2021.03.10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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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내게 그래피티 하면 생각나는 이미지는 스프레이와 지하철, 얼룩이 묻은 작업복이다. 스프레이는 그림을 빠르게 그리기 위한 도구였고 지하철은 행위가 일어나는 장소였으며, 작업복은 정통적인 예술가와는 사뭇 다르게 슬럼가에서 주로 활동하는 행위 예술가에 가까운 인상을 준다.


이들이 사람들이 많이 볼 수 있는, 도심의 공공 시설-지하철 승강장이나 건물의 벽, 셔터 등에 빠르게 그리고 도망가면서도 그림을 그렸던 이유는 반항과 저항의 메시지를 남기기 위함이었다. 처음에는 이렇게 사회의 부조리함과 현대인의 소외감 등을 표현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점차 회화와 팝아트와 비슷한 형태로 변화해 가는데 이 과정을 전시에서 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미술의 분야로 이제는 인정받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주요한 관심 분야로 별로 언급되지는 않았던 그래피티라는 주제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어 신선한 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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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긁다, 긁어서 새기다'라는 뜻의 어원을 가진 그래피티(Graffiti)는 '거리의 예술(Street art)'로서 오랜 기간 젊은 에너지와 기발한 상상력을 보여주었다. 낡고 오래된 생각들에 반(反)하여 새로운 메시지를 전하고자 노력한 그래피티 아티스트들은 작품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세상에 새겨왔다.

 

[STREET NOISE]는 단순한 낙서를 넘어서 하나의 장르가 된 세계적인 그래피티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통해 팝아트 이후 미술계를 선도하고 있는 그래피티를 생생하게 보여줄 것이다. 관람객들은 실제 그래피티 아트가 발전한 미국의 사우스 브롱스를 연상시키는 거리 연출과 작업 특성을 최대한 살려 설치된 대형 작품들을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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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는 최신 트렌드와 이색적인 경험을 추구하는 MZ세대에게 새로운 문화 소비 경험을 제공하는 예술복합문화공간으로 단순히 상품을 판매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고객은 거리를 거닐며 경험하고 특별함을 소비한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거리의 풍경과 같이 P/O/S/T도 여러 브랜드, 아티스트, 기업과 협업하여 다양한 콘텐츠를 준비 중이며 특히 상품을 구입하는 고객들을 위한 팝업(POP-UP) 행사는 또 하나의 즐거움을 제공한다.

 

코로나 시대를 맞아 정서적 위안, 특별함을 소비하는 성향이 늘고 있는 요즘, 온라인으로 대체되지 않는 오프라인 경험에 목마른 대중들이 늘어가고 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해 P/O/S/T는 브랜드 아이덴티티에 대한 경험을 제공할 라이프스타일 공간을 조성하였으며 새로운 문화 소비 경험을 가능케 할 것으로 예상된다.

 

 

 

회화를 닮아가는 그래피티



그래피티는 과거에는 시간 예술이라고 할 정도로 작품이 완성 된지 얼마 되지 않아 빠르게 지워져야 했을 것이다. 내가 살아보지 않은 시공간이긴 하지만, 스프레이 물감을 들고 밖으로 나와 굳이 금지된 구역에서 그림을 그렸던 이유는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가 그만큼 컸기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감상을 위한 예술이 아니라 표현과 표출에 가까운 예술. 다른 누군가의 개입 없이 표현하는 사람의 생각과 의지가 강하게 드러나는 그래피티에서는 그래서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활력과 개성이 느껴진다.

 

 

ⓒCrash - 복사본.jpg
ⓒCrash

 

 

그래피티에 '~해야만 한다'는 암묵적인 규칙은 없지만, 필자의 경험으로는 초창기의 작품들은 색조가 최소 3가지 이상이며 전통적으로 화면을 구성하지 않는 것이 특징적이었다. 그리고 오브제가 동적이라 정적인 느낌은 잘 찾아보기 어렵다. 정적인 오브제라 하더라도 대중적인 이미지를 차용했기 때문에 사람들의 시선을 충분히 사로잡는다.


그러나 뒤쪽의 전시 섹션으로 갈수록, 비록 이것이 어느 정도는 시간 순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그래피티가 점점 전통적인 회화의 모습을 닮아간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제 그래피티가 엄연히 예술 분야의 하나로 인정받고 있어서 더 이상 새로운 표현 수단이 아니게 된 때문인지, 혹은 그래피티 분야 내에서 화려하고 무질서해 보이는 이미지보다 더 다양한 대상을 표현하기 위해 분화하는 과정인지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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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과거의 그래피티와 그다지 닮지 않아 보이는 작품들도 스프레이와 스텐실을 이용해 그렸다면 계속 ‘그래피티’라 부를 수 있는 것인지, 사회를 비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면 그 타이틀이 유효한 것인지에 대해 의문이 생겼다.

 

어느 쪽으로도 확답할 수는 없고 좀 더 생각해보아야할 현상이겠지만 그간 해보지 않았던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어 좋았다.


비슷한 결이지만 팝아트와 그래피티가 만나는 지점에서도 위와 같은 의문이 떠올랐다. 팝 아트가 먼저 시작되기는 했지만 그래피티가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이 대중문화와 자본주의 비판과 같은 주제들로 넓어짐에 따라 두 분야의 경계는 과거보다 많이 모호해진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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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이미 있는 팝 아트 작품을 오마주하기도 하고, 표현 방법과 재료 측면에서도 둘 사이에 차이가 옅어지다 보니 어떤 작품은 그래피티이고 팝 아트라고 구분하여 명명하기가 애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팝 아트 전시에서도 하나의 섹션을 그래피티 작품으로 채워도 무방하겠다 싶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래피티가 전과는 달라지는 것 같아 아쉽고 이러한 변화가 달갑지 않다는 건 아니다. 어떤 것이든 불변하는 것은 없고, 한 때 새로웠던 것도 언젠가는 의미가 퇴색되기 마련이다.

 

그래피티의 역사는 다른 것에 비해 짧긴 하지만 시작이 강렬했던 만큼, 감상자로서 개인적으로 원하는 바는 초기의 그래피티 작가들이 가졌던 비판 정신과 개성을 현대의 그래피티 작가들이 좀 더 오래 잃지 않았으면 하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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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스프레이 물감의 특성 상 우연한 그래픽 효과를 다른 재료보다는 더 풍부히 만들어낼 수 있으니 ‘이런 것도 그래피티로 표현이 가능하다고?’싶을 만큼 새로운 대상을 표현하는 것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두 점만이 소개되었지만, 국내 그래피티 작가들이 그려낼 앞으로의 작품에서 그 정도로 새로운 소재들을 많이 만나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컨셉에 충실한 전시 디자인



전시 공간의 디자인도 개인적으로 기억에 많이 남는다. 쇼핑몰 안에 자리한 전시 공간이라 어떻게 기존 시설 내에 배치되었을지, 규모나 공간 구성은 어떨지 궁금했었다.


우선 전시 공간에서는 외부의 빛을 차단하기 때문에, 전시장 P/O/S/T는 출입구나 전면부 외에는 창이 없다시피 한 쇼핑몰 안에서도 가장 구석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리고 워낙 사람들이 많이 드나드는 상업 공간이다보니 자연스럽게 전시를 보러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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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모는 생각보다 매우 컸다. 입구와 매표소, 기념품점, 전시 공간의 구분이 모호해서 더 그렇게 느꼈던 건지도 모르겠다.

 

모든 공간이 전시에 적합하게 디자인되어 있어 입구에 도착한 순간부터 커다른 전시 공간 안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작은 signage, 조명, 패턴, 부스, 작품을 지탱하는 구조까지 하나의 컨셉 아래에서 제 몫을 잘 하고 있는 듯했다.

 

그래피티라는 힙하고 튀는 주제와 방문객이 잘 어우러져, 이런 공간을 방문하는 것만으로도 방문객 스스로를 ‘개성을 잘 표현하는 사람’ 혹은 ‘힙스터’로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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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아쉬웠던 점은 전시된 작품 수에 비해 공간이 넓었는데, 벽면을 제외한 가운데 공간은 잘 활용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작품의 색조나 구도가 워낙 화려하기 때문에 모든 부분을 꽉 채우면 답답했을 수도 있지만, 입구에 비해 정작 전시 공간은 비어 보이는 느낌이 들어 아쉬웠다. 어울리는 오브제나 관객 참여 공간을 더 만들어 뒀어도 괜찮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pilogue.



이번 전시를 보러 간 것은 두 가지 이유였다. 첫째로는 다른 전시에서는 소재로 많이 다루지 않았던 그래피티라는 주제에 대한 기대감이었다. 화려한 색조와 틀을 깨는 화면 구성, 흩어진 스프레이 물감이 주는 적절한 쾌감이 감상하는 동안 나에게 활력을 줄 것 같았다.

 

또 하나는 롯데월드몰 아래에 새로 마련되었다는 문화복합공간인 P/O/S/T에 대한 호기심이었다. 얼마 전까지는 없었던 것 같은데 이 곳에 전시장이 생겼다니 한 번은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간이 어떻게 구성되었는지 다른 리뷰를 보고서는 호기심이 충족되지 않을 것 같았다.

 

결과적으로는 매우 만족한 전시였다. 그래피티에 대해 그다지 관심이 없는 편이었는데 이렇게 다른 분야에 대해 또 알아갈 수 있어 좋았고 새로운 전시 공간을 다녀온 것도 일상을 환기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차소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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