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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열정 가득히 생생한 눈을 좋아한다. 그런 여섯 눈동자를 발견한 공연.

 

반복되는 일상이 주는 안정감 속에서 균형을 잘 잡는 것은 중요하다. 자칫 빠지기 쉬운 권태에 스미지 않으려 고요함을 흐트리는 연습은 일상의 중요한 꼭짓점이 된다. 누군가의 창작물을 직간접적으로 찾아보는 즐거움은, 가장 큰 감흥과 배움을 주며 굵직한 선으로 남아 이어진다.

 

재즈를 찾아 듣게 되는 이유는 그런 점에서 명확하다. 최소한의 규칙을 갖고 세션들의 개성과 합에 따라 마음껏 세계를 확장하고 구축해 가는 모든 과정을 눈앞에서 경험할 수 있다. 우리니라의 재즈는 대중성 있는 올드 재즈 위주로 흘러가며 현대성과 다양성이 해외에 비해 떨어진다는 말을 한 보컬리스트로부터 들은 적이 있다.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로 음악 활동을 이어가는 로컬 재즈뮤지션들이 있음을 안다. 소수이기에 그들을 여러 곳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다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컨템포러리 재즈 장르에 대한 인지도가 높지 않고 자연스레 그 수요도 적다 보니, 국내외를 막론하고 온전히 그를  경험할 공연장이나 공연이 흔치 않다는 사실이 그 말을 들은 뒤로 자주 와닿았다.  그러니 해외 재즈 뮤지션들의 내한 공연은 문바깥에서 이따금씩 고개를 내밀곤 하는 세미 애호가같은 나에게도 당연히 반가운 소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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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만 30세가 (1995년생) 되는 프랑스-마다가스카르 출신 재즈 피아니스트겸 작곡가인 마티스 피카드는, 현재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가장 창의적인 피아니스트 중 한명이다. 그가 2023년에 발표한 첫 정규 음반 “Heat of the Moment”는 The Times로 부터 별점 5점 만점을 받으며 “찬란한 음악 (glorious tonic)” 이라고 평가를 받았고, 매력적인 작곡과 깊이와 창의성 가득한 연주를 떠나서라도, 이 음반과 연주가 탁월한 지점은 바로 그의 폭넓은 상상력이 그의 강렬한 음악적 개성에 기반하기 때문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프랑스인 아버지와 마다가스카르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어릴적부터 프랑스 퐁텐블로, 미국 시카고, 영국 맨체스터 등 다양한 곳에서 살면서 다국적 배경의 음악과 문화를 습득하였고, 17세의 어린 나이로 줄리어드 음대 재즈과를 입학하게 되었다. 줄리어드의 학과장인 윈턴 마살리스는 물론 그의 멘토인 케니 배런도 그의 재능을 일찍 눈여겨 보았고 2016년에는 윈턴 마살리스와 함께 미국을 대표하는 젊은 라이징스타들이 대거 참여한 “The Young Stars of Jazz” 공연을 Jazz in Marciac 페스티벌에서 선보였다. 국내에서는 2023년 브리아 스콘버그, 2024년에는 시릴 에메와 함께 내한하며 관객들에게 특유의 그루브 넘치는 리드미컬한 연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마티스 피카드. 드디어 그가 자신의 트리오와 함께 첫 내한공연을 펼치며 그의 생생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연주를 국내 관객들에게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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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감상은 쉽지만 그에 대한 평을 늘어놓는 것은 늘 어렵다. 하지만 알아갈 수 있다는 설렘이 있어 나의 미숙함이 인정되는 영역 같기도 하다. 낯선 이를 대하는 이상한 편안함으로, 열정적이었던 세 연주자들의 공연을 되짚어 본다.


특히 기억에 남는 세 곡이 있었다.

 

Penthouse serenade

For mom

Space between breat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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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티스 피카드 트리오는 피아니스트이자 프론트맨 마티스 피카드, 베이스의 '파커 맥앨리스터', 드럼 '조에 파스칼’로 구성되었다. ‘Penthouse serenade’는 현재 그들이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음을 자연스럽게 알려주는 곡이었다. 단연 이 시대 가장 현대적이고 다수의 아티스트들이 집결하는 그 도시, 뉴욕으로 여러분을 초대한다는 능글맞은 멘트까지 밉지 않고 곰살맞았다. 제각각의 펜트하우스를 머릿속에 떠올리게 하고 관객들을 환상속으로  데려가서는, 장인이 만든 스웨이드 카펫 위에서 호사스러운 브런치를 떠먹여주는 것 같았다고 하면 그 감동이 충분히 전달될까.


마티스 어머니의 고향인 마다가스카르를 떠올리며 썼다는 'For mom'(원어 제목이 따로 있었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은 금세 아프리카의 자연 속으로 나를 옮겨주었다. 어머니에 대한 찬사와 감사, 마다가스카르라는 아름다운 섬과 마티스 자신의 연결점을 꾸준히 고민하며 마침내 자부심을 찾은 듯한 고뇌가 담겨있었다. 재즈에서 이 정도의 다양함이 허용되는구나라고 느낀 곡이기도 했다. 유쾌함, 발랄함이 한데 버무려져 이런 재즈를 들어본 적이 있었나 한참 생각하며 즐거움에 빠져들었다.

 

 

조에 파스칼_ 드럼 (2).jpg

 

 

가장 길었던 곡이자 변주가 화려했던 ‘Space between breathe’에서는 이제껏 보여주었던 경쾌함보다 진지한 면을 드러냈다. 개인적으로는 최근에 요가를 다시 시작하며 했던 호흡에 대한 생각들을 조용히 톺아보는 시간이었다. 요가에서의 호흡은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육체적 행위를 넘어 수련의 과정, 크고 작은 플로우 모두를 의미한다. 호흡은 다음 플로우를 이어가기 위한 단계이며 플로우를 수행하는 중에도 잊지 않아야 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호흡 없이는 어떠한 플로우도 이어갈 수 없기에 종종 요가와 삶을 겹쳐보곤 한다. 그 호흡 사이의 모든 공간이란 대체로 괴롭지만 결국 삶 자체라는 것을 마티스도 알았던 게 아닐까.


한 시간 반의 열띤 공연 뒤에 이어진 앙코르까지, 거진 두 시간 동안 땀흘려 일군 재즈 콘서트는 한 주의 힘들고 가빴던 숨을 달래주었다. 부담없이 나누어준 대화와 에너지에 감사하며, 야무지게 사인까지 받아들고 공연장을 나섰다. 잠깐 맞추었던 그들의 여섯 눈동자에도 그간의 노고와 공연이 무사히 끝났다는 안도, 호응에 대한 감사가 묻어있었다. 그리고 주고받았던 담백한 응원과 인사.

 

이토록 달큰한 숨 한 컵이라니, 사장님 혹시 리필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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