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무더운 여름날의 무기력과 우울 - 이상 '권태' [문학]

글 입력 2020.08.26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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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여름,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나날을 맞이한다면 어떨까?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라면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큰 휴식과 위로로 다가올 것이다. 월화수목금 출근한 직장인에게 주말이 소중한 것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만약 평일과 휴일의 구분이 없는 사람이라면 어떨까? 할 일이 없는 오늘이 지나가고 계획 없는 내일이 다가오는 삶이라면 휴일이 그다지 소중하지 않을 것이다. ‘자는 것도 권태’라고 정해버리는 <권태> 속 이상도 아마 그러한 단조로운 일상에 젖어 있던 것 같다.

 

 

권태.jpg

 

 

 

생각마저도 번거로운 지독한 권태



 
내게 남아 있는 이 치사스러운 인간 이욕이 다시없이 밉다. 나는 이 마지막 것을 면해야 한다. 권태를 인식하는 신경마저 버리고 완전히 허탈해 버려야 한다.
 

 

작중에서 작가는 최서방의 조카와 함께 장기를 둔다. 자주 두는데다가 매번 작가가 이기다보니 작가는 지루해하지만 딱히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장기를 둔다. 그에 반해 최서방의 조카는 ‘아주 영영 방심 상태’가 되어 지루함도 모르는 이처럼 묘사된다. 작가는 ‘이 질식할 것 같은 권태 속에서도 자세한 승부에 구속을 받나’며 ‘아주 바보가 되는 수가 없나?’고 한탄한다.

 

그는 권태를 모르고 싶다. 최서방의 조카처럼 권태조차 모르는 사람이 되고 싶어한다. 농민들에 대해서도 비슷한 태도다. 끝없는 내일이 오는 것을 두려워하지도 걱정하지도 않고 그저 계절에 맞게 농사를 짓는 농민들. 이들에 대해서 ‘불행하다’고 평가하면서도 ‘그럼 – 이 흉학한 권태를 자각할 줄 아는 나는 얼마나 행복된가’라고 자문하는 이상의 모습에서는 어떠한 우월감이나 기쁨도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자조(自嘲)에 가까운 헛웃음을 짓는 느낌이다.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는 상태 이상으로 괴로운 상태가 또 있을까’
 

 

이상은 권태가 스스로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온다고 본다. 따라서 ‘자의식 과잉’은 권태로운 상황에서조차 끊임없이 사고하고 분석하고 고뇌하는 사람들이 갖는 질환이다.

 

가만히 있을 줄 모르는 현대인의 병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작가는 그보다 더 심한 권태에 시달리고 있다. ‘아무것도 생각하기 싫다. 어제까지도 죽는 것을 생각하는 것 하나만은 즐거웠다. 그러나 오늘 그것조차가 귀찮다.’라고 드러낼 정도의 권태는 앞서 인용한 대로 ‘괴로운 상태’에 불과했다. 권태를 이겨낼 기력이 없는 것이다.

 

권태에 질려버린 그에게 ‘소’는 ‘식욕의 즐거움조차 냉대할 수 있는 지상 최대의 권태자다. 소의 되새김질(反芻)이 바로 그 증명인 셈인데, 자신의 고독과 사색을 반추하며 소처럼 권태에 무감해지고자 하는 듯 보인다.




고독과 권태에도 남아있는 ‘연민’


 

 
아― 조물주여, 이들을 위하여 풍경(風磬)과 완구(玩具)를 주소서.
 


하지만 권태를 모르는 모두에게 부러움을 느낀다거나 모자란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권태를 권태인 줄 모르는 어린아이들에게는 안타까움을 분명하게 표현한다.


가난하고 열악한 환경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은 노는 방법도 모른다. 그저 풀을 돌에 찧어 색을 내다가, 소리를 지르다가, 선 채로 뛰어 오르는 것만 아이들의 ‘유희’이다. 아이들의 부모는 장난감을 사줄 여력이 되지 않고, 형 누나는 모두 바빠 아이들과 놀아줄 수도 없다. 동네의 개도 주인도 없고 도둑도 없어 짖을 줄을 모르는 탓에 아이들과 놀 수 없다. 아이들은 그저 자기들끼리 무언가를 하고 있다.


작가는 아이들의 유희가 유희라고 보기 어려움에도, 아이들이 끊임없이 놀 거리를 만들어내는 것을 지켜본다. 심지어는 앉아 볼일을 보는 것이 아이들의 놀이가 되는 것을 보며 ‘아― 조물주여, 이들을 위하여 풍경(風磬)과 완구(玩具)를 주소서.’라고 기원한다. 이렇게밖에 놀 줄 모르는 아이들과 아이들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안타까워하는 작가에게 ‘권태’는 마냥 개인적인 감정은 아닐 것이다.


***

 

이상에게 권태는 개인의 것이든, 세상의 것이든 마냥 끝날 기미가 없다. 우주의 암흑이나 ‘이 좁은 방의 것’이냐 ‘분량 상 차이가 없’을 것인데, 끝 없이 이어지는 내일이 기다리고 있음이 얼마나 막막한 사실인가.

 

작가는 권태에 지쳐 권태에 대한 글을 남겼다. 나의 권태와, 그의 권태와 그들의 권태를 탐구했다. 그 끝에서 그가 깨달았던 것은 무엇일까. 권태에 관한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이미 권태에 대한 지각을 벗어날 수 없으며 다가올 나날에 대한 공포도 떨쳐낼 수 없다는 것을 확인했을 것이다.

 

여름은 눈부신 햇빛과 박동하는 생명력의 계절이자 무더위의 진득함이 숨을 조여오는 계절이다. 이상에게 여름은 아마 습기과 무력함을 안겨다 준 모양이다.


 

 

네임 태그 이승희.jpg

 

 



[이승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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