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색면으로 된 대화의 창을 보다 - 마크 로스코, 내면으로부터

글 입력 2024.10.09 0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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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로스코를 처음 들은 것은 어느 미술 관련 수업이었고 화폭을 색으로 구성하는 화가라는 인상만 남아있었다. 인터넷 사이트나 교재 속 그의 그림은 작고 단조로운 색으로 칠해진 것 같았다. 그 후 유명한 화가로만 기억하다가 샌프란시스코 현대 미술관에서 그의 작품을 보며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실물은 생각보다 크고 관람자를 압도했다.


내가 보았던 그림은 무제 No.14로 붉은 주황빛과 군청색으로 칠해진 작품이다. 로스코의 작품은 겹겹이 쌓인 색을봐야 한다고 했던 수업 내용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주황색 혹은 붉은색이라고만 쓰게 되는 것이 너무나 아쉽다. 붓 자국에 따라 물감이 칠해진 정도도 다르며 밑 색이 비치는 정도도 다르다. 그에 따라 하나의 색으로 칠해졌다고 생겼던 화면이 다채롭게 느껴지고 깊이가 보이기 시작한다.


화면에서 울렁이는 질감을 바라보고 있자니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슬픔도 감동도 기쁨도 아닌, 형용하기 어려운 감정적인 반응이 어색해 한동안 그 자리에 머물렀다. 그날 주어진 시간이 적어서 이리저리 뛰다시피 관람하던 하루 중 가장 오래 감상한 작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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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로스코, 내면으로부터>를 통해 그때 나타났던 감정적인 반응에 대한 해답을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가지고 책을 읽어 나갔다.


마크 로스코의 아들인 크리스토퍼가 마크 로스코의 생애와 작품 세계를 소개하는 책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작품 경향이 달라지는 모습을 설명하며 당시 작품을 만들던 로스코의 고민이나 지향점을 서술한다. 자신만의 예술적 언어를 만들기 위해 로스코가 걸었던 길을 살펴볼 수 있다.


로스코의 예술 세계 전체를 살펴보며 알 수 있는 것은, 각 시기마다 로스코가 찾아내려 애쓴 ‘무언가’가 화폭에 어떻게 형상화되는지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다. 관객과 끊임없이 대화하고자 했던 예술가는 사람들이 자꾸만 자신이 그려낸 ‘형상’에 관심을 갖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가 작품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현실의 무엇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실주의와 초현실주의를 거치며 형상을 버림으로써 로스코가 전달하고자 한 ‘내면의 빛’이 표현되기 시작한다.


모방된 현실을 대신하여 관람자는 로스코의 내면을 본다. 그가 겪은 현실이 재구성된 내면을 바라보며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에 접근한다. 이렇게 로스코의 작품은 내면에서 시작되어 감상자의 내면에 도달한다.


이를 위해 관객을 철저하게 혼자로 만들면서 작품에 집중하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작품을 바라보는 시간이 침묵과 성찰의 시간으로 탈바꿈되는 것이다. 관객의 시야를 가득 채운 직사각형 안에서 새로운 경험이 시작된다. 로스코가 눌러 담은 그의 내면을 쫓아가다 자신의 내면을 새삼스럽게 감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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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코의 작품은 로스코가 만들어낸 언어이다. 로스코의 화폭에서 그의 내면과 감상자의 내면이 맞닿는다. 대중과 소통하고 대화하고 싶었던 화가는 말을 걸듯 그림을 선보인다. 사람들은 그의 그림을 보며 개별과 보편을 넘는 시각적 대화를 시작하고 저마다의 후기를 가지고 대화를 마친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느꼈던 충격은 아마도 아무런 준비 없이 대화에 참여했기 때문일 것이다. 내게 말을 걸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한 곳에서 대화가 시작되었다. 대답할 방법도 무엇을 대답해야 하는지 모른 채로 들려오는 말과 던져지는 질문들을 손대지 못했다. 아마 한 번 더 보게 된다면 그때는 감정적인 반응을 적절히 묘사할 수 있는 표현을 떠올릴 수 있지 않을까? 그림 너머로 다시 대화할 날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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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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