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을린 사랑>은 그리스 고전의 서사 구조를 종교적 갈등이 극심했던 레바논 내전을 배경으로 해석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잔혹한 전쟁과 그 이후를 살아가는 인간을 통해 비극이 얼마나 대상을 가리지 않고 발생하는지 보여준다. 전쟁과 전쟁이 끝난 현재를 번갈아 비추며 과거와 현재가 끊임없이 연결되어 있음을 연상시킨다. 그 속에서 관객은 평범한 삶에 자리잡은 21세기의 비극과 그 비극을 품고 사는 삶의 숭고함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특히 캐나다에 살고 있던 한 여인 '나왈'이 세상을 떠나며 영화는 시작되는 구성이 이를 강조한다. 나왈의 쌍둥이 자녀 잔느와 시몽은 유언에 따라 아빠와 오빠를 찾아나선다. 어머니가 아빠와 오빠의 앞으로 편지를 남겨두었기 때문이다. 두 통의 편지를 배달하기 위해 점점 더 어머니의 과거로 깊이 다가간다. 어머니가 머물던 지역을 찾아가 어머니를 아는 사람들을 만난다. 대화를 나누고 어머니, 어머니의 가족, 어머니의 고향, 학교 등 이전에는 무관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 자신의 시작과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는다. 이미 오래 전부터 쌍둥이는 가본 적도 없는 곳에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연루되어 있었다.
운명이 신탁을 실현하며 실체를 보여준다면, 영화 속 진실은 지나간 과거로 만든 퍼즐처럼 등장한다. 겪고 나서야 참 의미를 깨달을 수 있는 신의 말처럼 모든 것을 알고나서야 편지 두 통이 가야 할 곳을 확신한다. 완성된 퍼즐을 어떻게 할 것인가. 그것은 남겨진 이들의 몫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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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탁을 알고 그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모든 과정이 신탁의 실현을 돕는 전개가 비극의 한 측면이라면 이 이야기는 조금 다르다. 아무것도 몰랐으나 휘말리고만 평범한 인물을 주인공으로 채택했다. 그리스 고전 비극이라면 조연이었을 사람이 전면에 나서자 '주인공이라면 그렇지'라는 당위가 사라진다. 절망적인 운명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 끝에도 파멸에 이르고 마는 엔딩은 매 순간 다른 목적을 갖지만 매 순간 최선을 다한 이의 노력이 무용지물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가 겪었던 폭력과 슬픔에 이유는 없었고 어쩌면 더 큰 고통을 야기하는 굴레의 일부였을 뿐일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비장한 얼굴로 운명을 각오하는 고귀함는 사라진다. 대신 노래로 매 순간을 견뎌야 했던 사람이 남는다. 대신 평범한 사람이 긴긴 세월을 견딘 이유는 사랑이라고 보여준다. 모든 것이 불타버린 곳에도, 내면까지 재가 되어버리는 재난, 재앙 속에서도 딛고 일어나는 동력을 사랑에서 찾는다. 어쩌면 사랑은 불타는 감정이기에 더 큰 불꽃속에서도 여전히 타오르는지 모른다.
사랑도 불에 비유하지만 삶 역시 불꽃과 불에 비유된다. 인간의 악의와 폭력이 덧대진 무게는 한 생명을 꺼트릴 만큼이나 잔인하다. 그렇기에 사랑의 아름다움에도 그것을 위대함의 이유로 삼는 일은 경계해야 하고 싶다. 당했고, 살기 위해 인내해야 했고, 말할 수 없었다. 사랑이거나 용서거나 포용이거나 어떠한 이름으로든 승화해내야 살아갈 수 있는 삶. 이런 상황에서 사랑은 자기 희생을 당연시하는 명분이 되기 슆다. 용서와 사랑이 핑계로 전락하는 상황은 달갑지 않다.
생전에는 진실을 밝힐 수 없었고 자신의 사후 남은 사람들이 진실을 알아내도록 만든 이유를 생각해본다. 비극적인 이야기는 자신이 안고 떠났으니 슬퍼하지 말라는 것일까? 언제든 밝혀질 수 있는 진실을 가능하면 스스로 알아내기를 바란 것이라고 짐작해본다. 물론 두 자녀에게는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또다른 주요 인물에게는 복합적인 심경이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비극의 주인공에 위치하는 그가 편지를 읽는 장면을 보면 진실 - 사랑이 담긴 용서의 순서로 제시된다. 진실을 알게 된 그가 주인공의 묘지에 방문하는 것으로 영화는 마무리된다. 폭력의 굴레. 죄가 불어온 업보는 결국 자신에게 향했다. 모든 선택은 결과를 수반한다.
그런데 주인공이 겪은 업보는 어떤 죄에서 시작되었나? 비극의 인과를 개인에서 찾기란 쉽지 않다. 조금 더 멀리 조금 더 추상적일지라도 넓은 범위에서 접근해보자. 인간의 규범은 사랑을 벌하고 다른 규범을 가진 사람을 배척한다. 구분하고 나누고 멀리하는 태도는 이를 지지하는 갖가지 체계들에 근거하여 힘을 얻는다. 타당함은 생각보다 가변적이다. 다시 말하면 언제나 변화의 여지는 존재한다.
이 이야기가 어디서부터 시작된 건지 모르겠구나. 너희가 태어난 순간부터가 시작이라면 그것은 공포였을 테고, 너희의 형이 태어난 순간부터 시작된 것이라면 그것은 위대한 사랑이었을 것이다.
비유적인 의미로도, 서사적인 의미로도 비극적인 운명을 가진 주인공의 이야기가 화면에 펼쳐지고, 다소 정적인 화면은 그가 겪는 폭력과 슬픔에 눈을 고정시킨다. 무기력하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채로 화면 속 사건을 지켜봐야 한다. 나왈의 이야기가 너무나 고통스러운 나머지 이러한 이야기가 어디에서도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게 되었다. 동시에 지금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조차 멀리서 관망하지는 않는지 돌아본다.
나왈이 세상이 떠난 후 모든 것을 알게 된 쌍둥이들과 주변인들은 과거는 생각보다 깊게 현재에 영향을 준다고 느꼈을 것이다. 무너진 건물이 다시 세워지고 총탄이 오가던 거리에 사람들이 북적이더라도 흔적은 남는다. 갑자기 벌어지는 일도 생각보다 오래된 징후와 함께하듯 말이다. 그러니 계속해서 서로를 서로를 지켜보고 이야기를 듣고 말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사랑을 사랑으로 남게 하기 위해서라도. 처음 보는 아이를 위해 용기내었던 나왈을 잊지 않기 위해서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