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심연의 관찰자 - 트라우마 사전 [도서]

사람이란 결국 과거의 산물, 역사적 존재이다.
글 입력 2020.06.09 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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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아마 언제나 스스로를 들여다보고 있다. 의식 전면에서건, 배면에서건 인간은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존재이다. 그래서 우리를 표현하는 낱말 중에 그 유명한, 심연의 비유가 생겨난 것일게다. 이 안에는 끝을 알 수 없는 시커먼 늪이 자리해 있기에.

 

인간에게는 제 존재가 자꾸 인식된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가 심연을 앓고 있기 때문이고, 그보다 먼저는 생에 슬픔이 많은 까닭일게다. 자기인식이란, 결국 더 나은 삶을 바라는 몸짓이거나, 하다못해 아픈 경험과 그 기억으로부터의 벗어나고자 하는 의지, 그 소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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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안을 들여다보면, 내가 있고, 아니 나의 과거로부터의 이력이 있고, 뭇 경험과 그 경험 위에 발아한 나의 반응과 행동이 있으며, 그에 따른 나의 감상들마저 얼뭇 갈무리 되어 있다. 이러한 것들은 하나의 내력을 이루고 있다. 자기 이해는 대략 이러한 전처를 통해 짜이는, 하나의 선형 구성이다.

 

선형으로 구성된 나의 내력은 꽤 오랫동안 거기에 자리하여 있고, 잊으려도 잊혀지지 않는 것으로서 자리 잡아 있다. 비로소 그것들을 내가 잊고 싶을 때, 혹은 반드시 잊어야 할 때가 오면 이 기억의 내력들이 가지는 질긴 속성들이 발현되고 인식된다. 니체 말을 빌리자면, ‘우리는 참으로 역사적 감각의 소유자’들인 것이다.

 

필요에 따라 기억을 잘라낼 수 없는 존재들. 그 기억들의 타래가 모이면, 자신에게 질긴 구속력을 가진다. 그리고 개중, 너무도 크나큰 부정의 경험을 겪어버리면, 끝없을 고통의 인식 속을 살아가야 하고 그것에 얽매인 채로 숨 쉬어야 한다. 그것은 참 숙명적이다. 그 숙명의 이름은 트라우마이다.

 

 

“사람이란 결국 과거의 산물이다.”

 

 

사람이란 결국 과거의 산물이다. 그것은 실존과 인식, 모두에게 타당한 말이다. 그리고 캐릭터는 분명, 사람의 모사이다. ‘작가를 위한 캐릭터 창조 가이드’라는 부제를 띄고 있는 이 책은 캐릭터 조형법을 차근차근 알리어주고 있지만, 실상 짚고 있는 것은 그러므로, 대개 인간의 문제이다.

 

 

독자에게 울림을 주는 이야기가 반드시 갖추고 있는 요소란 무엇일까? 그것은 이야기가 항상 추구해야 하는 것, 바로 `맥락context`이다. 맥락은 우리의 인생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인간과 캐릭터의 차이라고는, ‘맥락’의 여부에 불과하다. 그것의 조형원리만 두고 보자면 말이다. 그저 실존하는 인간과 달리, 만들어진 캐릭터에게는 ‘리얼리티’가 필요하고, 그 ‘리얼리티’가 형성되게끔 하는 것이 곧 ‘맥락’이다.

 

즉, 캐릭터는 인간을 먼저 깊이 이해한 다음, 그 인간의 모사로써 태어나는 것이요, 성공적인 모사를 위해서 우리는 맥락의 숨결을 불어넣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존은 우연에 뒤이은 인과율의 결과, 캐릭터는 우연을 가장한 필연한 인과율의 결과이다.

 

 

작가들이 만드는 이야기는 현실 세계를 비추는 거울이며, 이 거울은 독자들이 자신의 심연을 안전하게 들여다보게 해준다. 캐릭터가 어려운 선택, 고통스러운 결과, 힘들게 얻은 성과와 마주할 때, 독자들은 그 모습을 보며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본다. 또한, 캐릭터가 고난과 난제, 변화에 맞닥뜨려 싸우고 이겨내는 일들을 생생히 지켜보면서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자신들이 원하던 `맥락`을 얻는다.

 

 

이 책은 캐릭터의 조형법을, 트라우마 적 관점에서 살펴 들어가고 있다. 캐릭터를 우리 인간들이 깊이 이입할만한 대상, 성공적인 인간의 모사로 만들어내기 위해, 인간에 가장 닮게끔 만들고 또 그에 설득력을 부여하기 위해, ‘트라우마’라는 인간의 속성, 심연적 속성을 부여하는 방법을 설파한다.

 

캐릭터가 이입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그에서 우리가 동질감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캐릭터의 조형법을 본다는 것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그 동질감, 인간의 트라우마적 속성을 바라본다는 뜻이 된다.

  

 

무엇보다 우리는 피폐한 상태에서 완전한 상태로 향해 가는 캐릭터의 내적 여행에 대해 공감한다. 우리 각자도 마음 깊은 곳에 어느 정도 망가진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트라우마를 치유하기 원한다.

 

  

이렇듯 나는 캐릭터 생성법을 보고 있지만, 그 안에서 상기되는 것은 나와 인간의 문제이다. 성공적인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선, 우선 성공적으로 인간을 알아야 하는 때문에. 물론 그것 외에도 시나리오 구성과 막 구성과 같은 작가를 위한 조언들도 실리어 있지만, 이 책은 ‘트라우마의 사전’. 방대한 양의 트라우마들이 낱낱이 실리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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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가 겪을 수 있는 118가지의 트라우마 종류를 소개하고, 그로 인해 캐릭터가 겪는 감정과 행동은 물론, 상처를 악화시킬 만한 사건과 극복할 기회까지 주제별로 묶고 개념화했다.

 

 

실로 방대한 양이다. 인간의 트라우마가 118개에서 그칠지 아닐지는 모르겠지만, 이만하면 정말로 방대한 양이라 말해볼 수 있겠다. 내가 이 모든 유형의 트라우마를 깊이 인식하여, 인식의 지도를 꾸려낼 수 있으리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이 모든 트라우마를 내가 알아야 한다고 생각지도 않는다.

 

그러나 이 안에서는 우리를 설명할만한, 우리의 캐릭터를 규명할만한 근거들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와 너를 설득할, 우리 실존의 캐릭터를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또한 밝혀내야 할 심연을 안고 있기에. 우리 모두는 스스로에 대해 작가여야 할지도 모른다.

 

 

‘인간의 모사’를 위한 책,

그리고 인간에 대한 책.

트라우마의 대사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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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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