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예수가 재림했다고 하면, 당신은 믿겠습니까? [드라마]

넷플릭스 드라마 메시아를 보고
글 입력 2020.02.25 19:53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주의 : 넷플릭스 드라마 메시아를 보고 글을 읽으시는 걸 추천합니다. 이 글에 드라마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메시아, 현대판 예수의 재림


 


엄마, 엄마는 현대에 예수님이 재림했다고 하시면 믿을 거야?


 

필자가 부엌에서 밥을 먹고, 엄마는 소파에 앉아 TV를 시청할 때였다. 이 글을 쓰던 중 기독교 신자인 부모님의 의견을 듣고 싶어, 일부러 저 질문을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던졌다. 내 질문을 들은 엄마는 TV를 바로 끄셨다. 거실에 계시던 엄마께서 부엌까지 오신 뒤 내 앞에서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성경에 따르면 메시아는 예수님 말고는 과거에도, 미래에도 없어. 현대에서 자기가 예수라 하는 사람들은 다 이단이야! 왜, 요즘 누가 현대에서 예수가 재림했다면서 너하고 공부하재?


 

엄마께서 너무 심각한 표정을 하시길래 나는 엄마를 진정시키는데 주력했다. 그리곤 생각이 많아졌다. 넷플릭스 드라마 <메시아>는 분쟁이 심각한 중동 지역에 나타난 한 청년이 기적을 행하며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주장하고 그로 인한 사회적 파장을 보여주는 내용이다. 이 드라마는 주인공 알마시히를 메시아처럼 보이게도 하면서, 그가 행한 기적이 사기일 수 있다는 내용을 뒤따라 보여준다. 그래서인지 드라마의 포스터에도 이렇게 적혀있다.

 

Will he convert you?


 

[크기변환]다운로드.jpg

 


포스터 안에서 Con 뒤 vert는 블러 처리가 되어 있다. Con은 미국식 영어에서 사기를 치다는 뜻이다. Convert는 전환시키다, 개종자라는 뜻이 있다. 이 드라마 리뷰를 검색해봤을 때, 리뷰의 9할 정도가 알마시히가 메시아일까 아님 적그리스도일까에 추론하는 내용이었다. 필자는 드라마를 다 보고 주인공이 메시아라고 결정을 내린 상태에서, 저렇게 엄마께 여쭤본 것이었다. 만약 알마시히가 정말 현실에서 활동을 했다면, 우리 부모님은 알마시히를 이단으로 여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신실한 부모님의 딸인 나는 드라마의 주인공 알마시히가 메시아가 맞다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Will he convert you?


 

드라마에서 알마시히는 러시아의 첩보원(많은 해석의 주장에 따르면)이라고만 하기에는, 설명되지 않는 기적을 수없이 행했다. 그중에서도 필자가 이건 인간 능력으로는 할 수 없는 기적이라고 느꼈던 것 중 하나는 토네이도를 쓸어간 텍사스 지역에서 한 교회만 멀쩡했던 것이었다.


 

[크기변환]Screen-Shot-2020-01-04-at-4.46.27-PM-2048x1025.png

 

 

토네이도를 피해 간 교회의 목사와 목사의 딸은 알마시히의 열렬한 추종자가 된다. 그들이 이해가 갔던 이유는 신앙은 자신의 이야기가 되면 맹목적이게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필자도 기독교 신자인데, 나에게 예수님을 믿는 이유가 뭐냐고 묻는다면 논리적인 대답을 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느꼈던 신, 신이 있다고 믿게 된 개인적인 나의 경험을 이야기를 할 것이다. 이렇게 개인적인 ‘나의 경험’에서 생겨난 신앙에는, 사실 논리가 통하지 않게 된다.

 


내가 만물과 연결된 느낌. 달을 바라보는데 어느 순간 달이 안 보여. 달을 느끼지. 일이 벌어지고 있어. (중략) 다 연결돼 있어. 이 남자도 그래. 이 메시아.


 

알마시히가 사기꾼이라 확신하는 CIA 요원 에바의 아버지조차 이 남자를 메시아로 믿는다고 말한다. 그 주장에 따라오는 설명은 설득력 있는 근거가 아니다. 자신이 만물과 연결된 느낌을 받고, 달을 보는 게 아닌 느끼게 되었다는 어찌 보면 허무맹랑한 이야기다. 그런데 그것이 믿음의 본질이자, 종교가 추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보지 않아도 믿는 것’ 말이다.


 

downloadfile-66.jpg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하시니라


 

성경 속 유명한 이야기다. 자신의 스승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걸 본 제자 도마는 자신이 예수의 상처 안에 손가락을 넣기 전까지는 그의 부활을 믿을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자 예수는 도마 앞에 나타난 뒤 저렇게 말한다.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이 복되다고 말이다.

 

 

 

Will he con you?




그 사람이 오고 다 변했어요. 남편은 나랑 말도 안 하고 딸은 전혀 딴사람처럼 변해가죠. 자기들이 선택됐다고 믿어요. (중략) 내가 그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하는지 알려줘요? 한 가지는 확실히 알죠. 그 새끼는 메시아가 아니에요.


 

드라마 <메시아>는 종교로 인해 생기는 딜레마와 갈등도 깊이 있게 다룬다. 알마시히를 따르는 목사와 딸과 달리, 목사의 아내인 애나는 알마시히를 메시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가정엔 계속해서 불화와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알마시히가 정말 메시아가 맞다는 목사와 딸의 관점에서는, 애나는 아직 믿음이 부족한 자, 안타까운 이일 뿐이다. 하지만 만약 알마시히가 메시아가 아니라 사기꾼이라면 애나가 상식인인 것이고 목사와 그의 딸은 그저 광신도가 되어 버린다. 이들의 갈등은 논리적인 말로 풀 수 없는 ‘종교’ 문제이기 때문에 더더욱 풀기 어려워진다.

 

이런 갈등은 드라마에서 다른 가정에서도 일어난다. 암에 걸린 딸을 가진 엄마는 알마시히를 따라다닌다. 이 과정에서 남편은 자신의 동의 없이 딸의 치료를 중단하고, 딸을 데리고 가출한 아내에게 이혼을 고한다. 어느 관점을 믿느냐에 따라 아이 엄마는 상식도 없는 광신도로 비칠 수도 있고, 이미 가망 없었던 치료보다는 신의 기적에 매달리는 게 합리적인 일이었을 수도 있게 된다.


 

[크기변환]에바 사진다운로드.jpg


 

이 드라마가 후반부에 이르게 되면 CIA 요원 에바가 찾아낸 정보가 사회에 공개된다. 알마시히의 본명은 파얌 골시리로, 어릴 때 마술사인 삼촌 밑에서 길러졌고, 청년 시절부터 자신이 메시아라고 믿는 망상장애 증후군이 있어 정신 병동에 갇혀 있었다는 것이다. 이게 밝혀질 때 카메라는 아이를 살릴 수 있을 것이라 기적을 바란 아이의 엄마 얼굴을 클로즈업한다. 그다음으로 나오는 장면은 알마시히의 가장 열렬한 신도였던 목사가 끝내 자신의 손으로 교회를 불태우는 장면이다.


 

0002253184_003_20200114155203312.jpg

 

 

 

예수, 포퓰리즘 정치인 또는 구원자


 


전 편견의 거울을 깨 여러분이 서있는 곳을 보여주려 합니다. 여러분이 보는 것은 여러분의 선택일 것입니다.


 

알마시히가 물 위를 걷기 전에 청중들 앞에서 한 말이다. 알마시히가 눈앞에서 물 위를 걷는 기적을 행했음에도, 그 자리에 있던 에바와 목사 부인은 그를 메시아로 믿지 않았고 목사와 딸은 그를 메시아로 더 믿게 되었다. 상대가 같은 행동을 했을지라도, 결국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걸 택하여 보고 믿는 것이다.


 

[크기변환]물위걷기드.jpg

 

 

알마시히보다 훨씬 많은 기적을 행한 예수도 결국 사기꾼으로 몰려 십자가형을 당했다. 그리고 현대에서, CIA 요원 에바는 예수를 포퓰리즘 정치인이라고 평한다. 드라마 후반부에서 그토록 열렬한 신도였던 목사는 자신이 속았다 생각해 자신의 손으로 교회를 불태운다. 이는 마치 예수가 십자가형을 당한 뒤 낙담한 제자들을 떠올리게 한다. 결국 예수조차도 믿는 자들에게만 메시아일 것이다. 기독교 신자가 아닌 사람들에게 예수는 그저 3대 성인 중 하나다.

 

현재 예수조차도 이런데, 드라마가 알마시히의 정체에 속 시원히 답을 줄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했던, 알마시히는 그래서 메시아일까 사기꾼일까는 나에게 그렇게 중요한 질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결국 각자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믿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진정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가.

 

 

 

신의 뜻으로,라고 말만 붙이면 되는가.


 

넷플릭스 드라마 <메시아>에서 놀랐던 지점은, 재림 예수라는 알마시히가 이슬람을 믿는 중동 출신이라는 것이었다. 종교와 문화의 차이로 유대교와 기독교는 이슬람과 큰 분쟁을 겪고 있다. 그런데 만약 알마시히가 정말 메시아가 맞다면, 유대교와 기독교의 메시아가 바로 그 적대하는 종교에서 난 것이다. 그래서인지 알마시히가 메시아가 아닐 거라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어떤 리뷰의 밑바탕에는 이런 선입견이 느껴지기도 했다. ‘이슬람을 믿는 메시아라니,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거기서 그치지 않고, 드라마 <메시아>는 알마시히의 정체성을 한 가지 종교로 제한하는 게 아니라, 확장하기까지 한다. 재판에서 검사는 알마시히가 하루에 메카를 향해 다섯 번 기도를 하지 않았다며 그가 무슬림이 맞냐고 의심한다. 검사의 질문에 알마시히는 이렇게 대답한다.

 


검사 : 마시히씨 종교가 무엇이죠?

알마시히: 전 모든 이와 동행합니다.


 

최소한 이 드라마 감독은 신을 어떤 특정한 종교에 소속된 존재가 아니라고 보았다. 그걸 보고, 존 레논의 ‘Imagine’ 노래가 떠올랐다. 존 레논은 노래를 통해 천국과 지옥이 없고, 종교가 없는 세상을 상상해 보라고 했다. 하지만 종교로 일어나는 분쟁으로 인해 죽어나가는 민간인은 얼마나 많은가. 그걸 보면 신이 원하는 것이 이것이 맞을까 고민하게 된다. 지브릴의 친구 사메르가 자신의 종교로 인해 자살 테러를 하게 되는 전개가 나온다. 사메르는 극단적 종교 단체에 가입하긴 하지만 나중엔 자살 테러를 주저한다. 하지만 그가 속한 종교 단체는 그를 몰아붙이고, 결국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폭탄 버튼을 눌렀다. 그걸 본 순간 나에겐, 알마시히가 정말 메시아이냐 아니냐는 더 이상 나에게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IE002592586_STD.jpg

 


신의 뜻으로라는 가호 아래 손쉽게 사람들이 죽어나갔다. 이건 중동 분쟁만의 문제가 아니다. 현재 한국에서도 기독교가 신의 뜻이라는 이름으로 소수자를 쉽게 혐오하고, 그들의 숨을 죄는 걸 본다. 신의 뜻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누군가를 짓밟는 일을 하면 할수록 추종자들은 그들에게 쉽게 권력을 쥐여준다. 신의 뜻이라고 하기에 추종자들은 그 행동에 대해 깊게 반추해보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런 혐오사회를 살아가면서, 동시에 기독교 신자인 나는 그 질문을 평생 놓지 않아야 할 것이다.

 

종교로 인해 일어나는 여러 폭력의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

 

 

 

사랑, 사랑, 결국엔 사랑이.


 

예수가 메시아인지 포퓰리즘 정치가인지에 대해 필자의 입장은 확실히 하고자 한다. 기독교 신자인 필자는 예수가 메시아라고 고백한다. 예수가 메시아일 수 있는 이유는 그가 십자가에 달려 죽음으로써, 철저히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만약 예수가 그의 초기 추종자들이 원하는 대로 식민지 지배를 하는 로마를 쳐부수고, 이스라엘을 굳건히 하고,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으면 그는 그저 역사에 정말로 정치가 또는 성공한 혁명가로만 기록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스라엘 민족을 넘어서, 전 세계를 구원하기 위해 스스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 희생을 통해 자신의 사랑을 보여준 것이다. 필자가 하고 싶은 말은 결국 어떤 종교든 사랑으로 귀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린 출생지를 정할 수 없죠. 운명이 정해준 곳에서 태어나는 겁니다. 당신은 여기서, 난 거기서 태어났죠. 뭐가 우릴 갈라놓나요? 국경은 기득권층이 정한 하나의 개념입니다.


 

드라마 속 알마시히의 말대로 수많은 분쟁의 도화선이 되는 국경은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사람에겐 신성(神性)-신의 성정, 선함-이 있다고 믿고, 그게 그 사람의 문화, 환경, 가치관, 성격 등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것이라고 믿는다. 이 세상의 어느 종교도 사람을 해치고 자신의 욕심대로 살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사랑하고 희생하고 선한 방향을 향해 전진하라 말한다. 유일신을 믿는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신자들 모두 신의 가르침대로 희생하고 사랑하고 선하게 살았다면 자신의 신을 대면할 때 부끄러울 이유가 없다. 그렇기에 반대로, 기독교인인 사람이 사랑이 없는 행위를 한다면 난 그게 신을 오히려 부끄럽게 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크기변환]KakaoTalk_20200225_192643718.jpg

나와 다른 이를 포기하지 않고 사랑하는 것,

그게 결국 종교적인 일이라는 글

 

 

종교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폭력은 신의 뜻이라서 괜찮다는 말에 쉽게 넘어가는 신자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 행위가 옳은가 옳지 않은가의 기준을, 단순히 ‘기독교인가 아닌가’로 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저 이 한 가지를 기억하면 될 것이라 믿는다. 그 끝에 사랑이 있는가.

 

 

 

박해윤.jpg

 


 

[박해윤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6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