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삶이 곧 예술이었던 사람들 - 오늘의 화가 어제의 화가

그리기 위해 그린 것이 아닌, 삶을 살았기에 그려야 했던 화가들
글 입력 2020.01.22 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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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재라는 말로 가려진 화가와

명작이라는 말로 잊혀진 삶을 보다

 


『오늘의 화가 어제의 화가』

_화가 이경남

 

 

오늘의화가어제의화가_표1_웹용.jpg

 

 

 [PRESS]

삶이 곧 예술이었던 사람들



“천재 화가,” 훌륭한 예술가라는 걸 표현하기 위해 꽤나 자주 쓰이는 표현이다. 하지만 필자는 종종 화가를 “천재”라 수식하는 것에 대해 망설임을 느낀다. “천재”는 분명 사람에게 달리는 표현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사람을 지우고 있다는 생각이 떨쳐지지 않아서 그렇다. 보통 작품으로 먼저 확인되는 화가의 존재는 “명작”이라는 이름으로 지워지고, 화가의 삶은 “천재”라는 말로 잊힌다. 그리고 이 거창한 모양의 두 단어는 사람과 미술 세계 사이에 한 뼘의 거리를 더 두는 데 역할 하기도 한다. 언뜻 보면 단번에 공감되지 않는 작품을 명작이라 부르고 천재 화가라 부르면 연결되는 지점 없이 자신과 어긋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아니 왜?”라는 의문은 “역시 나는 미술과 안 맞나봐”로 쉽게 연결되곤 한다.


꼭 그런 모습이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에게 미술 세계는 낯설고 어려워 공감하기 어려운 것으로 남아있다. “예술 세계”라 하면 그저 거대한 미술관 벽에 그림이 수두룩하게 걸린 풍경이 떠오르는 것 같다. 하지만 정말 그런 모습뿐이면 얼마나 공허한 모습인가. 그래서 여기에 한 가지를 더 더해보려 한다. 우리는 그림을 통해 다른 곳에서 느낄 수 없던 위로와 감동을 경험한 이들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들이 감동한 것은 과연 화면에 담긴 그림의 모습뿐일까, 그뿐이 아니라면 앞서 표현한 그 “예술 세계” 속에 걸린 작품과 우리 주변을 감싸는 온기 같은 것이 있는 것이 아닐까.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감동이나 벅차는 순간들도 온전히 느끼고 공감할 수 있는 존재가 사람이라면, 그림 앞에서 무엇인가 느꼈다는 것은 분명 눈에 보이는 이미지를 넘어선 또 다른 지점의 무엇인가를 느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 테다.


그렇다면 그 온기라는 것은 무엇일까. 많은 대답이 나올 수 있겠지만 필자는 결국 모두 “사람”을 향해 연결된다고 생각한다. 그 무엇도 아닌 화가의 삶이 이룬 것이 작품이고, 이를 보고 여러 모습의 울림을 작품 곁에서 이루는 것은 그림 앞에 선 감상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화가의 삶이 없었다면 결국 그의 그림과 작품 세계도 존재할 수 없었다. 기회가 닿을 때 직접 마주하는 작품은 사회적이나 학문적으로 판단하는 가치와 의미를 넘어서, 그 작품을 완성한 화가라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태어나고 지금까지 존재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우리는 이 사실을 자주 잊곤 한다. 작품 뒤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사람의 존재를 적극적으로 마주하는 영역으로 데려오지 않는다. 사실 어렵기도 하다. 미술이 낯선 이들에게는 아무 말 없이 고요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작품 앞에서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필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작품 앞에서 경험하는 감동과 위로는 그 작품이 어디를 독특하게 표현한다거나, 미술사에서 중요한 순간을 만들었다는 부분에서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가 작품에 감동하고, 조금 더 머물며 감상하게 된다는 것은 그 화가가 삶의 풍경 속 경험한 순간에 대해 함께 공감하고 그 감정을 느낀다는 의미라 말하는 것이 더 잘 연결되지 않는가.


작품을 이해하는 데에는 그 그림을 그린 화가의 삶을 이해하는 것이 좋은 도움이 된다고 말하곤 한다. 바로 그곳에 평가나 훌륭한 기술, 기법을 넘어 진심으로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의 존재 가치가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이번 글에서는 그 화가의 삶에 주목하며 예술 세계에 한 걸음 내딛으려는 모두에게, 아니 모두가 예술을 향해 그 한 걸음을 내디딜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려는 책에 대해 리뷰하려 한다. 삶과 밀접하다고 하지만 여전히 낯선 영역인 미술 세계에 화가의 삶을 통해 다가가려는 도서,  <오늘의 화가 어제의 화가>를 소개한다.


 

우리가 그동안 보아온 걸작의 대가들답게 그들의 삶도 그리 평탄하지 않았다. 그동안 거액의 꼬리표가 달린 작품들을 먼저 만났기 때문에 그들의 생을 들여다 볼 기회가 별로 없었다. 그저 막연하게 다른 세계 사람이라고 여겼지만 작품을 감상하기에 앞서 화가를 먼저 탐구하는 것이 온전히 작품을 이해하는 과정이라고 말할 만큼 지금 가장 필요한 일이 아닐까 한다.


- 출판사 리뷰

 


* 

 

“그림 속 화가의 일상으로 들어가다”


<오늘의 화가, 어제의 화가>는 곧바로 “삶”을 조명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더 친밀한 구석인 화가의 “일상”에서 시작하려 한다. 삶에서 일상이라니, 결국에 닮은 말이고 그저 익숙한 것에서 익숙한 것으로 넘어가는 것 같지만, 다르게 보면 이는 화가를 둘러싼 다른 표현들을 거둬내고 화가라는 사람을 향해 한 걸음 내딛는 시선의 이동이다. 삶은 수십 년의 긴 시간 위에서 눈에 띄는 이야기들이 수면 위로 올려져 이야기된다면, 일상은 사소한 행동이나 생각처럼 그 사람을 이룬 작은 부분을 이야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성취한 위대한 삶의 순간은 모두가 함께하고 온전히 공감할 수 없지만, 사람이기에 누구나 가진 인간적인 모습은 보다 더 익숙하게 다가갈 수 있다는 점에서 “일상으로 들어간다”는 시도는 단순해 보이면서도 의미가 있다.


그런데도 작은 의문이 생긴다. 모든 화가가 일일이 자신의 대화 내용이나 평범한 생활을 기록하지 않았을 것이고, 있다 하더라도 그저 그것을 그대로 책에 다시 옮기는 것일까? 만약 그렇게 했다면 이 도서는 다른 미술 도서 사이에서 크게 눈에 띄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의 화가 어제의 화가>는 다른 미술이야기 도서들과는 다른 특별한 점이 있었는데 바로 새로운 방식으로 화가의 일상을 풀어나간다는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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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

<볼레로를 추는 마르셀 렌더>, 1895~1896

 

 

해가 지면 물랑루즈로 향하는 로트렉을 쉽게 찾을 수 있다더니 진짜더군요. 오늘도 어김없이 무대 앞, 술 병이 놓인 테이블에서 이른 저녁에도 불구하고 벌써 살짝 취해 있는 로트렉을 발견했어요. 150cm 정도의 작은 체구의 어른 로트렉은 오늘도 심기가 불편한가 봅니다.


“로트렉 벌써 취했어요? 왜 또 다리 길이 타령해요.”

 

“먹고 살면서 괴로운 인생 잊으려고 이 짓 하는 건데, 다리가 조금만 더 길었더라면 이 짓거리 안하고 다른 인생을 살았을 거라고”

 

“로트렉, 당신 말처럼 어린 로트렉이 건강하고 성장이 멈추지 않았다면 프랑스 귀족으로, 고상한 학자로 바람둥이가 되어있겠지요. 그래도 술마시고 노는 인생은 같았을 텐데 뭘 그래요.”

 

“하하하, 누구신데 나를 잘 아슈? 우리가 구면인가 모르겠네, 거참 통찰력 있는 여성이군. 구면이든 초면이든 상관없고. 다리가 길었다면 그림은 안 그렸을 거라는 것은 분명하오.”

 

(중략)

 

말꼬리를 흐리더니 조금 남은 압생트를 마저 마시고 잔을 들어올려 지나는 직원에게 술을 더 주문한다. 그리고 잃어버린 대상을 찾은 듯 갑자기 스케치를 시작한다. 경렬하게 볼레로 춤을 추는 마르셀 렌더를 드로잉하고 있다.

 

‘이렇게 그려서 작업실에서 마무리하겠지.’

 

(…)그는 여러 컷을 그리고 만다. 무용수가 격하게 고조되는 리듬에 맞추어 홀로 스텝을 밟는 것을 보니 춤의 역동성에 이끌려 손님들도 자리에서 일어나 함께 한바탕 춤을 출 기세다. 그래, 이 맛에 물랑루즈에 사람들이 오는 것이군.


- 9. 당신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 -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

 


처음에 책 속 내용을 마주하면 흔히 미술 도서에서 기대하는 방식과는 달라서 놀라실 수도 있겠다. 필자도 처음 책을 펼치고 글을 읽기 시작할 때 다른 곳에서 보지 못했던 새로운 방식에 놀랐었기 때문이다. 미술관에서 차분하게 작품에 대해 저마다의 방식으로 정리된 내용을 읊는듯한 모습이었던 다른 미술 도서들과 달리 <오늘의 화가 어제의 화가>는 마치 소설을 읽는 듯, 그림책을 읽는 듯하다. “유전병과 사고로 성장이 멈춘 툴루즈 로트렉은 귀족 문화에 어울리지 못했다. 대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그는 물랭루즈를 드나들며 그곳의 풍경을 그리는 삶을 살았다.” 처럼 설명되는 문장보다는 더 생동감 있게 화가의 일상을 들려주고 있었다.


인용한 내용 중 툴루즈 로트렉과 대화를 나누는 이는 책을 쓴 저자다. 저자는 “나미씨”로서 주체가 되어 화가가 살아간 일상에 등장하기도 하고, 때로는 화가의 주변 인물이 되어 화가와 인터뷰를 하거나 관찰하며 그가 살아갔던 일상을 들려준다. 물론 실제 있었던 일이 아니라 상상이지만, 단순한 상상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까지 확인되었던 화가에 대한 사실과 추측들 그리고 전해져오는 내용이 적절히 제 자리에서 역할 하며 구성된 이야기다. 인용된 내용 안에서 우리는 그가 물랭루즈에 자주 갔던 화가라는 것, 성장이 멈춰서 키가 작은 이였다는 것, 프랑스 귀족 출신이었다는 것, 술을 자주 마셨다는 것, 많은 여자들과 관계를 맺었다는 것, 그러면서 물랑루즈의 풍경과 사람을 그 자리에서 드로잉으로 재빠르게 그려냈던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은 이처럼 저자가 화가의 일상 속으로 들어가 나눈 삶과 예술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더 필요한 설명이나 그림에 대한 이야기, 다른 화가들과의 관계나 시대 상황에 대한 내용을 풀어가며 흘러간다.


 

역시 이곳은(물랑루즈) 로트렉의 안식처였어요. ‘녹색 요정”이라고 칭하는 압생트 술이 널려 있고, 각양각색의 인간들을 구경할 수 있으며 넉넉하지 못한 이들이 서로 모여 서로 공감해주고 위로가 되는 곳이죠. 그의 일터이며 놀이터고 사교장이었어요. 자존심 강하고 다혈질인 아버지와 신체적 콤플렉스로 예민한 로트렉과 사이가 멀어지고 급기야 단절되었습니다. 그래서 로트렉이 혼자 파리의 몽마르트에 정착하면서 그의 홀로서기가 시작된 것이죠.

 

- 9. 당신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 -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

 


이 책에서 우리가 만날 수 있는 건 멋진 것으로 보이는 천재나 명작, 거장이라는 말로 포장된 예술가가 아니라 거친 결의 삶에 쓸려온 사람들이다. 복잡한 가정사와 사람 사이의 갈등, 사랑을 원하지만 결속되고 싶지 않아 이곳저곳 상처를 내며 맺은 관계들, 벗어날 수 없는 사회, 갈망, 상실, 그리고 죽음까지 사람으로서 겪어야 했던 순간들이 담겨있다. 단순하게 보면 왜 이렇게 복잡한 삶을 살았나 싶다는 생각이 들 수 있겠지만, 누구나 당황하고 방황할 순간에서 화가들은 누가 뭐라 하든 자신의 마음과 선택을 믿고 따랐던 사람들이었다.

 

 

외젠 마네와는 결혼 후에도 지속적으로 에술 활동을 지지해 주는 조건으로 선택한 것 같아요. 1874년 결혼과 동시에 그해 4월에 열린 제1회 인상주의 전시회에 유일한 여성화가로 참석한 것을 보면 대단한 것이죠.

 

그 시대에 여자가 화가로 미술계의 거장이 되기 위해서는 남성들보다 기본으로 자격 요건이 필요했어요. (...) 적어도 중산층 정도는 되어야 하고 부모님의 전적인 지지가 필요해요. 당시에는 남자들처럼 여자들이 자유롭게 밖으로 돌아다니며 공부할 순 없었으니까요.

 

세 번째로는 일정한 나이에 시집을 가야하고 결혼하면 내조하고 아이를 가르쳐야 하는 책임이 있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느냐 없느냐는 남편의 여력과 지지가 상당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 2. 꿈꾸는 결혼의 일상 - 베르트 모리조

 

 

필자는 13명의 예술가 중 책을 통해 오랜만에 만났던 베르트 모리조의 삶이 기억난다.  친언니와 함께 화가의 길을 걸어가고자 했으나 마주한 억압하는 사회, 부모님의 결혼 강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때문에 남들이 보기엔 위험한 결혼을 선택한 모리조의 삶* 역시 쉽게 흘러가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은 여성 화가들의 삶을 다시 찾아가고 재조명하고 있지만, 오랜 기간 이러한 베르트 모리조의 삶은 그저 화가 마네와 얽힌 스캔들 정도로만 이야기되어왔기 때문에, 여성이라는 이유로 잊혔던 화가들의 이야기는 늘 반가웠고 그래서 더 관심을 두고 읽게 되었다.

*그림을 그리며 화가로서 만난, 유부남이었던 마네와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었고, 거기에 계속된 부모님의 결혼 강요에 베르트 모리조는 마네의 동생 외젠과 결혼한다.


단순히 읊어보면 어쩔 수 없이 휩쓸려 선택한 삶으로 보이지만, 저자는 그런 삶을 선택한 베르트 모리조의 마음을 단정 짓지 않고, 전해지는 사실이 아닌 한 사람의 진심을 찾아가려 했던 것 같다. 내용은 바로 베르트 모리조의 일상 속에 들어간 저자가 모리조와 대화하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삶을 선택했던 순간에 대해 베르트 모리조가 가졌던 생각과 의지에 대한 실마리를 엮어 하나의 이야기를 구성했다. 그렇게 다시 바라본 베르트 모리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삶에서 지키고자 했던 것들을 위해 자신의 의지를 절대 놓치지 않은 사람이었다.


 

“내가 스스로 선택하지 않으면 강제로 선택당하게 되어 있어. 외젠 마네를 선택하지 않으면 그나마 사랑하는 사람을 멀리서라도 보거나 원할 때 공적으로 만나기 어져워져 어찌 보면 사랑을 잃어버리는 거지. 나의 예술 세계를 이해 받을 수 있고 인정해 주는 이들을 한 순간에 잃게 되는데,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겠어요?”


“마네 가문이 우리 집안보다 못한 것도 아니니 그림만 그릴 수 있다면 괜찮은 결정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림자처럼 쫓아다녔던 나를 이제야 의식했는지 외젠과 결혼한 이유와 결혼생활을 이야기해 주었다.


“주말마다 예술 토론회가 열리는데 여자들은 참석하기 힘들어요. 결혼과 동시에 사회활동에 상당한 제제가 생겨요. 그래서 예술인들을 초대하여 토론장소를 제공하며 자연스럽게 어울렸어요.”


가정에서 아내로 엄마 역할을 더 충실해야 할지 예술가로 성공하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할지 고민한 적은 없냐는 질문에 그녀는 말을 아끼며 결혼 후에 그린 작품들을 보여주곤 딸이 있는 곳으로 갔다.


- 2. 꿈꾸는 결혼의 일상 - 베르트 모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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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트 모리조,

<부지 밭에서 딸과 함께 있는 외젠 마네>, 1881

 


온전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결혼으로 이룬 가정이었을 텐데, 그녀가 그린 가족의 모습을 보다 보면 어디선가 따스함이 느껴진다. 저자도 그런 가족을 향한 베르트 모리조의 시선을 느꼈던 것인지, 대화의 마지막에서 그녀에게 어떤 역할을 더 마음에 둘지 고민한 적이 있었는지에 대해 질문하고 있었다.

 

가족을 향한 모리조의 시선이 남겨진 그림은 따사롭게 엉기는 빛들 사이에서 부드러운 살결이 느껴지는 듯하다. 필자는 천진난만한 미소를 짓고 있는 딸과 다르게 곁에 앉아있는 외젠에게서 알 수 없는 쓸쓸함도 느껴지는 것 같았다. 자신의 무릎 위에 장난감을 놓고 놀이를 하는 딸을 가만히 내려다보는 그의 눈은 여러 차분한 감정들이 얽혀있는 모습이었다. 모리조는 외젠과 사랑하는 딸을 그런 모습으로 함께 담았다. 모리조는 자신을 사랑했던 외젠을 어떻게 보았던 걸까. 지나간 삶의 이야기는 모든 정답을 남기지 않듯이, 베르트 모리조의 삶 역시 그렇게 남겨져있었다.


베르트 모리조는 눈에 보이는 모습뿐만 아니라 저마다의 삶을 겪으며 품게 된 내면과 감정도 함께 녹여내며 사람이 살아가는 순간들을 그려냈다. 특히 사회의 억압과 요구 아래에서 살아가야 했던 동시대 여성들에게 관심을 두며, 그들이 여성으로서 살아가야만 했던 일상에서 느꼈을 외로움과 쓸쓸함을 함께 담아냈다. 그는 안정된 삶보다 자신이 걸어가려 했던 화가의 삶을 선택했고, 자신처럼 사회의 억압과 강요를 받는 삶을 살아가는 여성들을 작품의 주인공으로 데려와 자신만의 포근한 색채로 끌어안았던 화가였다.

 

그렇게 필자가 삶을 통해 바라본 베르트 모리조는 현실에 굴하지 않고 그림을 위해 살아간 사람이자 자신의 인생을 그림에 담은 화가였다. 자신도 경험한 쉽게 외면 당하는 여성의 삶과 외로움, 그리고 아주 가까이에 있는 소박한 일상의 모습을 그려냄으로써 자신의 인생을 계속해서 그림에 담은 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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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서 하나 하나 펼쳐지는 화가의 인간적인 모습을 알아가며 자연스레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이 있다. “그렇다면 그 화가는 어떤 예술가였을까”라는 질문이다. 그저 유명한 화가, 거장, 천재라고 아는 것에서 더 나아가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주목하게 된다. 동시에 명작이라 불린 그림들은 그들이 남겨야했던 삶의 흔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명작이 되기 위해 그린 그림이 아닌, 자신이 본 세상을, 그리고 볼 수밖에 없는, 보아야 할 세상을 담은 것이 화가의 그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감상한다는 것은 삶에 들어가는 것이며

삶에 들어간다는 것은 그들의 삶을 공감하는 것이며

공감하는 시간을 통해 성장하게 된다.”


- 저자의 말


<오늘의 화가 어제의 화가>를 읽으며 떠오르는 사색과 질문들은 미술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에 상관없이 그 누구나 할 수 있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 독자와 화가는 살아가는 일상과 예술 세계가 아닌 독자의 삶과 화가의 삶으로서 마주하며 천천히 예술 세계에 한 걸음 내딛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무엇을 그렸는지 정확하게 이해하고 필요한 용어나 작품 자체의 의미나 가치를 알아야만 예술을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닌,  그 세계를 이루고 있는 화가라는 사람과 감상자라는 사람 사이로 다가갈 때 삶과 함께하는 예술을 누리는 모습으로 책을 독자를 예술 세계로 안내하고 있다.


그래서 필자는 이 도서를 아주 처음 미술 세계에 한 걸음 내딛고자 하는 분들에게 추천해 드리고 싶다. 알고 있는 예술이나 미술에 대해 묻는다면 “정말 미술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라요”라는 말이 떠오르는 분들께 추천하고픈 도서다. 현대미술은 마주하려니 복잡해 보이고, 규칙에 맞추어 정교하게 그려진 과거의 예술에서는 막연하기만 해서 아직 무엇인가를 느끼기 어려웠다면, 저자가 선정한 화가들의 삶과 작품세계를 마주하는 것도 좋은 시작이 될 것이다. 책 속 화가들은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았고 한 번쯤 들어 익숙한 화가가 활동했던 서양의 근현대사에 자리잡은 예술가들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어려움이 느껴질 수 있는 어려운 표현이나 단어가 없고, 컬러로 선명하게 수록된 그림들이 있어서 부담없이 읽을 수 있기에 처음 미술 도서를 잡는 분들께 권하고 싶다.


이미 많은 미술 도서를 읽고 전반적인 내용을 알고 있는 분들에게는 책 속 내용 자체는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 대부분이라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 아니라, 상상하는 만큼 보이는 것이다”라고 말한 저자의 사색으로 쓰인 예술가의 삶을 상상의 글을 통해 다시 읽어보는 것은 또 다른 느낌을 안겨줄 것이다. 다수는 아니지만 미술 도서를 계속 찾아보던 필자에게 <오늘의 화가 어제의 화가>의 풀어가는 방식의 첫인상은 흠칫 놀랐으면서도 읽다보니 신선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많은 의미와 가치를 탐구해야 하는 예술 세계에서 잠시 나와 쉬어가며 삶의 아름다움과 인상을 담으려 했던 화가들의 그림을 다시 기억하며 읽기 좋을 도서인 것 같다.

 

다시 "그는 어떤 화가였을까?"라는 질문으로 돌아와 볼까. 생각하다 보면 삶으로 바라본 한 명의 화가를 좋은 화가, 나쁜 화가라던가 유명한 화가, 별로 안 유명한 화가라고만 정의하고 기억할 수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런 단정이 아닌 대화와 이해, 그리고 사색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남겨지고 함께하는 곳이 예술이다. 필자는 이번 글에 리뷰한 도서를 꼭 읽지 않아도, 예술이라는 틀이 딱딱한 것이 아니라 누구나 다가갈 수 있는 것임을 많은 분이 조금이나마 더 알게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글을 써 내려갔다. “이것을 알고, 이렇게 해야 한다”가 아닌 마주한 작품 사이에서 느껴지는 것들과 생각한 것들, 감동하고 위로를 받은 사소한 것에서 삶에서 누릴 수 있는 예술이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책 속의 화가들도 그렇게 살아가며 느끼고 생각한 것을 작품에 담아냈다. 삶이 곧 예술이라는 말은 그렇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어제의 화가들처럼, 우리 또한 지금을 살아가는 오늘의 화가일 것이다.


 


 

 

[도서 정보]

 

"시대를 대표하는 거장들과 나누는

예술과 삶에 대한 뒷담화"

 

『오늘의 화가 어제의 화가』

 

오늘의화가어제의화가_입체_웹용.jpg

 

지은이

이경남

 

출판사

북스고

 

쪽수

248쪽

 

가격

17,500원

 

발행일

2019년 12월 24일

 

분야

교양미술/미술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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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예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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