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무용 문외한의 눈으로 본 피나 바우쉬 [공연예술]

무용은 잘 모르지만 좋아해서 쓰는 글
글 입력 2019.07.27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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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단정하게 머리를 하나로 묶고 마른 몸을 감싸는 검은색 옷을 입었다. 언제나 목소리를 크게 내는 법은 없었다. 조곤조곤 말을 전해도 그 속에서 힘이 느껴졌다.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한 가녀린 몸이지만 쉽게 흔들리지 않았다. 누구라도 강렬한 중심을 가진 사람이라는 걸 단번에 알 수 있다. 독일의 현대 무용가인 피나 바우쉬는 나에게 그런 이미지였다.

영화 <피나(Pina)>를 계기로 피나 바우쉬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되었다. 사실 영화만 보고서 그녀를 논하기에 다소 부족함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는 전기 영화가 아니었을뿐더러 생전의 공연 실황을 온전히 담아낸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만 단원들의 인터뷰를 통해 그녀가 작품, 인간의 감정, 그리고 춤을 어떻게 대하는지 유추할 수 있을 뿐이었다.


영화 <피나(Pina)> 공식 트레일러
 

하지만 그녀의 작품을 얼마만큼 보든 간에 언제나 인상적인 체험으로 기억되는 건 똑같다. 기괴하고 범상치 않은 몸부림들이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시선을 잠시도 떼지 못하게 만든다. 점차 격동적으로 변해가는 몸짓을 지켜볼수록 어떤 전율을 느끼기도 한다. 이토록 강렬한 힘을 가진 그녀는 과연 어떤 사람이었을까.



1. 피나 바우쉬, 그녀는 누구일까?


피나 바우쉬는 1940년 독일의 졸링겐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레스토랑이 딸린 여관을 운영하는 집안의 딸로, 부모의 바쁜 일상 탓에 식당 한구석에서 춤을 추거나 뛰어다니며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레스토랑에 울려 퍼지던 음악과 식당을 오가는 사람들의 감정을 관찰하면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발레에 재능이 있었던 그녀는 에센의 폴크방 스쿨에 진학했다. 그곳에서 독일 표현주의 무용의 아버지라 일걸어지는 쿠르트 요스에게 지도를 받았는데, 이때 처음으로 '탄츠테아터'라는 개념의 자유로운 무용을 배웠다. 이는 기존 고전 발레의 아름답고 정형화된 동작에서 벗어나 완전한 표현의 자유를 허락하는 양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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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그녀는 안무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피나가 이끌었던 '부퍼탈 탄츠테아터'에서 새로운 형식의 무대를 선보였다. 이 무용단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무용단 중 하나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2009년, 암으로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그녀는 마르고 긴 몸을 이끌며 무용단을 지휘했다.



2. 작품의 특징



나는 인간이
어떻게 움직이는가 보다는
무엇이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가에
흥미가 있다.


피나 바우쉬의 발언은 그녀의 예술세계 전체를 조망하게 하는 철학이자, 바우쉬 작업의 가장 기반이 되는 질문이었다. 어떻게 움직일지에 대한 방법보다는 근원에 중심을 둔 질문으로, 이는 무용이라는 장르가 구현했던 움직임의 정형성을 부정했다. 또한 그녀는 몸의 관습과 본성을 실험했으며, 자연이라는 환경, 사회적 조건, 그리고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한 인간관계의 욕망을 탄츠테아터의 무대를 구성하는 핵심적인 주제로 삼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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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피나 바우쉬의 작품을 감상할 때는 지속적인 플롯이나 특정한 캐릭터의 일관성이 없었다. 따라서 의식적으로 서사의 흐름을 이해하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되었다. 그리고 여느 때처럼 공연으로부터 무언가를 얻기 위해 유의미한 발견을 시도하거나 작품을 분석하지 않았다. 바꿔 말하면 그녀의 세계를 이해하는 데에는 특별한 준비가 필요하지 않다는 말이다. 그저 몸으로 무엇을 말하려는 건지, 이미지가 어떤 인상을 주는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되었다.

이처럼 관객들에게 있는 그대로의 체험을 선사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의 작업은 관객들의 인식 체계를 뒤흔들며, 공연을 새롭게 바라보고 체험하도록 만든다. 관객들은 다양한 의미나 상징을 종합해서 연출 의도를 추론하기보다 감각적으로 체험하는 시공간에 자리하게 된다. 따라서 이미지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벗어나 있는 점은 자유로움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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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나를 알아주는 언어


우리는 수많은 욕망과 들끓는 감정들을 품은 채 살아간다. 끝없이 사랑받고자 하는 욕망, 인정받으려는 욕망, 소통의 욕망, 몸서리 칠만큼의 외로움과 그리움, 결핍과 충족, 기쁨과 슬픔까지. 피나 바우쉬는 이를 자연물, 일상의 오브제, 그리고 사람의 몸을 결합해 발산하다 못해 폭발시키려고 했다. 거의 발악에 가까운 몸부림으로 온갖 감정들을 날것으로 끄집어냈다. 이러한 표현이 그녀에게는 숨 쉬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처럼 보였다.


좀 더 미쳐야 해.
좀 더 놀라게 하지 않으면 안 돼.
춤춰, 춤춰, 그러지 않으면
우린 길을 잃고 말아.


가끔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애써봐도 적절한 단어를 찾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책을 읽고, 공연을 보고, 영화를 보곤 했다. 나의 감정을 알아주는 언어를 발견하는 순간 혼자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피나 바우쉬의 작품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단어보다도 명확해서 몸의 언어를 신뢰하게 되는 순간이 찾아오곤 했다. 그럴 때면 외로워지지 않았다. 그 자리에는 따뜻한 온기만이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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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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