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총성과 탄환, 진실을 기록하는 사람들
영화 《암살자들》이 대한민국의 대명절, 추석이 시작됨과 동시에 극장 스크린에 올랐다. 대한민국 현대사 중 가히 화제의 중심이 되는 사건인 ‘육영수 여사 암살 사건’에 대한 의혹과 미스터리를 기발한 상상력과 시대적 상황에 비롯한 추론으로 채워 완성도 있는 영화로 제작했다. 암살당한 영부인과 사라진 탄환, 풀리지 않고 침묵에 묻혀버린 진실을 담은 이 흥미로운 영화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사람들을 극장으로 불러 모았다. 군부독재 시절 압도적 권력을 행사하던 중정(중앙정보부)과 영원한 왕정을 꿈꾸던 대통령의 산하에 운영되던 국가의 참혹한 사건 현장 한가운데, ‘자유민주주의’를 외치는 사람들의 뜨거운 열망을 반백년이 지난 지금 영화는 다시 조명하고 있다.
영화가 그려내는 당시의 언론은 사건의 진실을 전달하는 통로이면서 동시에 가장 먼저 통제되는 곳이었다. 유신 정권기 정부의 언론 보도 통제에 저항하는 ‘동아일보’의 취재 열망을 표현하였다는 점에서, 국민에게 ‘진실’을 전하고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언론사의 필요성에 대해 다시 한번 그 의미를 새길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1974년 10월 24일 동아일보 기자 180여 명은 편집국에 모여 ‘자유언론실천선언’을 발표했다. “자유 언론은 어떠한 구실로도 억압될 수 없으며, 어느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것”이라고 선언한 이들은 외부의 간섭을 배제하고 기관원의 출입과 언론인의 불법 연행을 거부하겠다고 결의했다. 영화 속에서 기자들이 이 선언문을 읽어 내려가는 장면은 단순히 과거의 한 장면을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들이 왜 그 문장을 입 밖으로 꺼내야 했는지, 그리고 그 문장을 말하기 위해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했는지를 함께 떠올리게 한다.

누구나 쓸 수 있는 시대, 우리는 무엇을 책임지는가.
이들의 ‘자유언론실천선언’은 펜을 드는 사람이 마땅히 가져야 할 ‘책임’과 ‘자유’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우리는 누구든 글을 써낼 수 있는 자유를 얻었지만, 책임 없이 방생되는 글들은 내부를 분열하고 사람을 그 어떤 흉기보다도 날카롭게 찌른다. 우리는 통제로부터 빼앗은 자유를 책임을 다해 휘두르고 있는가?
12.3 계엄 이후 대학가에선 수많은 대자보가 학교와 SNS에 부착되었다. 교내 허가를 받고 검수를 받지 않은 글은 게시판에 부착할 수 없다는 학내 권고문엔 ‘정치적 의견 표명에 검수를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다’는 반발의 글들이 다수 부착되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자유언론실천선언’이 말하고 있던 자유가 과거의 언론인들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누군가의 생각을 대신 말해주고, 자신이 본 것을 기록하고, 자신이 믿는 것을 글로 남기는 행위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신문과 방송이라는 매체가 SNS와 대자보, 개인의 계정과 각자의 글로 확장되었을 뿐,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우리 앞에 남아 있다.
영화 속 이들도 같은 고뇌를 한다. 무엇을 말할 것인가, 언론이 다할 수 있는 책임엔 어떤 것이 있는가, 우선시해야 할 의무는 무엇인가. 우리는 영화 속 사람들이 어떤 시대를 지나게 될지 이미 알고 있다. 자유언론실천선언을 읽으며 뜨거워지는 기자들의 마음 뒤에 어떤 현실이 이어졌는지도 알고 있다. 당장 세상이 바뀌지 않았고, 오히려 더 지옥 같은 내일이 이어졌다. 자유 언론 실천운동 역시 결국 기자들의 해고와 탄압으로 이어졌으며 고대하던 유신정권이 무너졌음에도 펜은 총과 칼 앞에 속절없이 움츠러들었다. 그럼에도 영화 속 이들은 선언을 멈추지 않는다. 어떠한 탄압이 이어져도 멈추지 않고 선언문을 끝까지 읽어 내려간다.
당장에 바뀌지 않았지만, 어쩌면 더 지옥 같은 내일이 이어졌지만 서울의 봄은 언론과 국민들의 연대로 끝끝내 쟁취하였다고 스크린을 뚫고가 이들에게 알려주고만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극장에 불이 켜지고 역사는 현재를 비춘다
자유라는 것은 한 번 쟁취했다고 해서 영원히 보장되는 것이 아니다. 자유는 권리이고 이 권리를 책임감 있게 행사하지 않는 순간 다시 빼앗기고 만다. 극장에선 과거 쟁취하기 위해 싸워온 이들을 조명한다.
그렇다면 극장에 불이 켜지고 이제 그 자유를 사용하는 현재를 역사는 조명한다. 자유롭게 쓰되 함부로 쓰지 않는 것. 목소리를 전달하되 그 목소리를 왜곡하지 않는 것. 영화를 보며 내가 다시 생각하게 된 것은 결국 이 단순한 책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