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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신이 아닌 남자의 이야기 - 오디세이아

귀향자와 뱃사람, 그 최초의 모험담

by 조수빈 에디터
2026.08.17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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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세이는 그리스로마신화 속 이야기, 영웅의 이야기이지만 신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전쟁에 휩쓸리고 바다에 떠밀리며 집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다. 고향을 떠난 이가 돌아오며 변한 환경에 적응하고 가족과 재회하는 귀향자의 이야기와 바다를 항해하며 겪는 신비하고 두려운 경험을 다룬 뱃사람의 모티프가 결합된 태초의 모험담. 최근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오디세이라는 같은 소재의 이야기를 영화화한 시점에서 트로이 전쟁 이후 그 방랑과 모험을 담은 '오디세이아'를 다시 읽었다.

 

 

 

신과 운명


 

그리스로마신화에서 신마저 피해갈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운명'이다. 운명을 예고하는 것이 예언이며 신들조차 이 예언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리스로마신들이 가장 '인간적'으로 느껴지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이들은 인간처럼 예언을 피해가려고도 하고 그 예언에 대신 희생될 수 있는 인간을 대신 끼워넣기도 한다.

 

그리스로마신화에서 신마저 피해갈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운명'이다. 운명을 예고하는 것이 예언이며 신들조차 이 예언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리스로마신들이 가장 '인간적'으로 느껴지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이들은 인간처럼 예언을 피해가려고도 하고, 그 예언에 대신 희생될 수 있는 인간을 끼워 넣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발버둥 칠수록 예언은 기어코 실현된다. 신은 인간보다 강하지만 운명보다 강하지는 않다.

 

트로이 전쟁 역시 신들이 인간의 운명에 개입한 결과다. 황금사과 하나에서 시작된 신들의 경쟁은 인간들의 전쟁으로 번지고, 신들은 저마다 편을 갈라 전장에 뛰어든다. 하지만 칼을 들고 싸우고 죽는 것은 인간이다. 신들에게는 자존심과 내기의 문제였던 일이 인간에게는 가족과 친구를 잃고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10년의 전쟁이 된다.

 

그리고 전쟁이 끝났다고 이야기가 끝나는 것도 아니다. 오디세우스에게는 다시 10년이 필요하다. 오디세이아의 시작점에서 트로이 전쟁은 이미 과거지만 그 전쟁이 남긴 것은 곳곳에 남아 있다. 오디세우스는 살아남았고, 그렇기 때문에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의 귀환은 괴물과 신을 이겨내는 영웅의 모험인 동시에 이미 벌어진 일을 되돌릴 수 없는 인간이 어떻게 다시 자신의 삶으로 돌아갈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신이 아닌 남자


 

개인적으로는 책으로 읽는 것보다 영화에서 이야기하는 오디세우스가 지나치게 진지한 모습으로 비치긴 했다. 오디세이아 속 오디세우스가 훨씬 더 입체적이며 인간적이고 희망적이다. 꾀를 부리고 거짓말을 하고 때로는 허영심 때문에 일을 그르치면서도 어떻게든 살아남는다. 반면 실제 영상에서 움직이는 오디세우스는 10년간의 전쟁 이후 전쟁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는 퇴역 군인에 가까운 모습이다.

 

신들의 내기로 이뤄진 전쟁을 인간 하나에 모든 책임을 지워놓은 기분이 들어서 보기가 껄끄러웠던 것일 수도 있다. 살아남은 자들의 죄책감과 책임감만이 오디세이아의 주된 이야기는 아닐진대 영화 오디세이는 줄곧 오디세우스에게 저승의 입을 빌려, 이전의 자신의 목소리를 빌려 '감히 살아남은 죄'를 묻는다.

 

그 청구서를 떠안은 오디세우스는 끝없이 죽음의 시작까지 떠밀려가며 살아남음에 대한, 두고 온 것들에 대한 속죄를 진행한다.

 

그래서 영화에서 반복되는 바다는 원작과 조금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오디세이아에서 바다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을 끊임없이 방해하는 공간이라면, 영화에서의 바다는 오디세우스가 자신의 힘으로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시도를 포기해야 하는 공간처럼 보인다. 발이 땅에 닿지 않는 곳에서 그는 장군도 왕도 영웅도 아니다. 그저 물에 빠지면 죽는 인간 한 명일 뿐이다.

 

오디세이아에서는 신들이 오디세우스의 귀환을 결정하면서 조력자가 생기지만 영화에서는 오직 칼립소만이 그의 조력자가 된다. 칼립소는 살려 애쓰지 않고 오히려 바다에 몸을 맡겨야 살아남을 것이라고 조언한다. 오디세우스는 그대로 바다에 몇 번이나 내던져지면서 고향 이타카로 돌아갈 수 있게 된다.

 

신의 개입을 최소한으로 줄인 영화 속에서 오디세우스는 "신이 아니면서 왜 모든 걸 책임지려 하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그만큼 그의 어깨에 짊어진 것들은 크고 무거워 보인다. 전쟁에서 죽은 사람들, 자신을 믿고 따라왔다가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 20년 가까이 자신을 기다린 가족까지 그는 모두 자신의 몫인 것처럼 짊어진다.

 

하지만 오디세우스는 신이 아니기 때문에 모든 것을 책임질 수 없다. 죽은 자들을 살려낼 수도, 이미 벌어진 전쟁을 되돌릴 수도, 자신이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없던 일로 만들 수도 없다. 무엇보다 인간에게는 신들처럼 시간을 되돌리거나 운명을 바꿀 힘이 없다.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살아내는 것뿐이다.

 

그래서 영화 속의 살기 위해 바다에 몸을 맡기라는 칼립소의 말이 오래 남았다. 살아남으려면 오히려 모든 것을 붙잡으려는 손을 놓아야 한다. 자신이 모두를 구할 수 있었다는 오만도, 모두를 구하지 못했으니 자신 역시 살아서는 안 된다는 죄책감도 함께 놓아야 한다.

 

어떻게 보면 오디세우스의 긴 여정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바다를 건너는 것도, 괴물을 물리치는 것도 아니다. 20년 전 떠났던 사람과 지금 돌아온 사람이 더 이상 같지 않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서도 다시 자신의 삶으로 들어가는 일이다. 이타카는 그대로 그를 기다려준 장소가 아니며 오디세우스 역시 전쟁 전의 남편이자 아버지로 돌아갈 수 없다. 귀환은 과거로의 복귀가 아니라 달라진 자신으로 다시 삶을 시작하는 일에 가깝다.

 

어쩌면 오디세우스의 가장 위대한 모험은 트로이에서 이타카까지의 10년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신에게 다시 살아갈 자리를 허락하는 마지막 몇 걸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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