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사람
우리는 어떤 사람일까? 흔히 말하는 예민한 사람, 불안함을 잘 느끼는 사람, 무엇인가에 크게 두려움을 느끼거나 혹은 아무 이유 없이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일까? 그렇다면 이러한 감정을 삶에서 시도 때도 없이 느끼는 사람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일까. 이러한 사람들을 지나치게 감정적인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삶을 살아가며 한 번쯤 느껴본 불안감과 두려움, 이유 없는 감정의 지속된 굴레를 느끼는 사람들은 전혀 독특하거나 소수이지 않다. 젊은 층을 비롯해 대다수의 사람들은 삶에서 우울을 느끼거나 권태를 느끼거나 외로움을 느낀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별나다고 말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그들은 그저 평범한 사람들일 뿐이다.
『땅콩일기』의 저자는 그런 의미에서 평범한 사람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말할 수 있다. 에세이의 저자소개가 굉장히 간단하게 이루어져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일러스트레이터. 돈과 명예가 갖고 싶습니다.”라고 짤막한 문장, 그리고 아마도 저자의 이메일로 보이는 이메일 주소가 저자소개 칸에 적혀 있었다. 길게 소개되지 않은 저자소개에서 저자에 대한 깊은 전문성이 보이지는 않으나 이 저자가 어떤 것을 욕망하는지는 잘 드러나 있어 인상 깊었다.
현실에서 우스갯소리로 돈과 명예가 갖고 싶다, 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저자뿐만이 아니라 보통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보통의 생각이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가 드러낸 짧은 욕망이 오히려 이 작가의 남들과 다르지 않은 평범함을 부각시킨다고 보았다.
내 곁에 있는 사람들
『땅콩일기』는 만화 에세이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페이지에 칸이 나뉘어져있고 캐릭터의 독백이나 캐릭터들의 대화로 전개된다. 페이지마다 대부분 칸의 개수가 다르지만 보통 3개 혹은 4개의 칸이 들어가 있다. 칸은 직사각형의 형태로 이루어져있고 간혹 정사각형의 칸이 두 개씩 세로로 놓여 전개되는 에피소드도 등장한다.
한 챕터 당 하나의 화두를 주제로 이야기하는데 챕터마다 정해진 분량이 없기 때문에 다 다르다. 정말 짧은 에피소드는 4칸으로 끝나기도 하고 긴 에피소드는 29칸으로 끝나기도 한다. 또 각 챕터마다 이야기가 이어질 때도 있고 이어지지 않을 때도 있는데 이어질 때면 챕터 제목의 숫자를 붙여 순서를 정해둔다. 1부에서 ‘타락천사’라는 제목의 에피소드는 ‘타락천사 4’까지 나뉘어져 있다. 각각의 챕터는 그 챕터의 제목에 따라 에피소드가 진행된다.
그중 땅콩이 아닌 여러 견과류의 모습이 등장한다. 2부에서는 땅콩 본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동시에 자신에게 소중한 친구와 인연에게 메시지를 전한다. 1부에서 조금 등장하고 말았던 새로운 캐릭터들은 2부에서 조금 더 길게 등장한다. 『땅콩일기』를 다 읽으면 일기의 주인공인 ‘땅콩’과 그의 친구인 ‘아몬드’나 다른 견과류들이 기억에 남을 것이다. 여기서 ‘아몬드’는 ‘땅콩’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친구이다. 각 챕터마다 종종 나오는 이들의 대화는 독자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책의 주요 장치이다.
저자의 오랜 친구인 황인찬 시인 또한 『땅콩일기』에 꽤 많이 나온다. 그는 땅콩에게 좋은 말을 해주면서도 그저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는 존재로 나온다. 3부 마지막 챕터의 에피소드에서도 황인찬 시인이 등장한다. 그는 땅콩이 『땅콩일기』를 계속 쓸 수 있도록 해준 친구이자 조력자이다. 땅콩의 재능을 인정하면서 땅콩에게 너는 재능이 있어, 라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
『땅콩일기』는 평범한 사람들이 가지는 보편적 감정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지만 동시에 내 곁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조명한다.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에서 피어나는 감정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어렸을 적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던 친구를 떠올리며 연락이 끊어졌지만 그럼에도 친구가 힘들 때 이제는 자신이 이야기를 들어주겠다고 하는 에피소드가 그러하다. 『땅콩일기』에서 등장하는 땅콩의 친구들과 옛 인연들을 땅콩이 잊지 않고 언급하는 모습이 감정을 말할 때와 마찬가지로 매우 솔직하다고 느껴졌고 담백하게 그러한 생각을 담아냈다고 보았다.
성장
시간의 흐름에 따라, 땅콩이 탄생하고 성장하게 되는 과정을 에세이에 담았다고 생각했다. 보통 아이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어린이가 청소년이 되어갈 때 사춘기를 겪고 나와 친구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가지며 사춘기가 끝난 뒤 가족의 존재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이와 비슷하게 에세이에 적힌 목차대로 『땅콩일기』를 읽게 되면 어른이 된 ‘땅콩’이 또 사춘기와 유사한 생각 혹은 감정의 변화를 맞게 되는 느낌이었다.
어른이 돼서 겪는 사춘기는 어렸을 때 겪는 사춘기와 결이 다르다. 책에서는 옆에 있는 친구에게 말을 거는 에피소드도 나오지만 이미 멀어진 친구에 대해 고마웠다고 말하는 에피소드도 나온다. 나 자신에게 말을 건넸던 이야기에서 친구에게 말을 건네는 이야기로, 또 멀어진 친구를 떠올리고 마지막에는 자신의 곁에 있어주었던 엄마에 대해 생각한 뒤 다시 돌아와 나의 미래와 재능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 에세이의 목차구성이 청소년이 성장한 어른이 돼서 다시 겪은 사춘기의 축과 비슷하다고 느껴졌다.
평범한 사람이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보고 그것을 인지하는 과정, 그 과정에서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더 나은 어른으로 성장하고자 하는 마음이 『땅콩일기』를 만들어냈다. 결국 독자들은 이 저자의 솔직함과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감정을 들여다보는 방식, 어른이 되어 다시 겪는 사춘기에 매료되어 이 책을 끝까지 읽지 않았을까.
책에서 다루는 전반적인 내용이 아이의 사춘기가 아닌 어른의 사춘기를 어른이 받아들이는 방법과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사춘기를 겪은 후 얻은 성장이 아주 조그만 변화라 하더라도 분명 전과 후는 달라져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