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르네상스의 화려한 부흥이 온 베네치아를 수놓던 1530년, 남성 거장들의 이름만이 미술사의 찬란한 업적으로 기록되던 그 시절, 그림자 진 화실 구석에는 오직 순수한 열정 하나로 붓을 잡았던 한 여성 화가가 있었다. 여성이라는 사회적 한계와 차가운 편견, 그리고 곤궁한 현실 속에서도 캔버스 앞을 결코 떠나지 않던 '로지나'는 자신에게 허락되지 않은 예술가라는 지위를 넘어 붓 끝에 자신의 영혼과 존재 이유를 온전히 녹여내던 인물이다.
당대 유서 깊은 공방의 후계자이자 이미 거장으로 추앙받던 화가 마르첼로 역시 로지나가 지닌 비범하고 독창적인 재능을 단번에 알아본다. 예술을 향한 두 사람의 뜨거운 교감과 붓 끝이 뒤얽히며 마침내 세기의 명작이자 비밀스러운 유작인 <남작의 초상>이 탄생하게 된다. 그러나 세상의 시선과 예술적 욕망, 그리고 비극적인 운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로지나라는 이름은 역사 속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다. 거장의 화려한 명성 뒤편으로 그녀의 치열했던 삶과 진실은 오랫동안 차가운 침묵 속에 묻히고 만다.
그로부터 500년이라는 아득한 시공간을 가로질러 2020년, 현대의 미술품 복원가 앞에 마침내 그 베일에 싸인 유작이 모습을 드러낸다. 화가의 서명은 의도적으로 지워져 있고, 캔버스 표면은 누군가에 의해 서툰 덧칠로 숨겨진 정체불명의 상태였다. 지워진 서명과 낯선 덧칠의 흔적을 켜켜이 벗겨내는 복원의 과정은 단지 빛바랜 그림 한 점을 살려내는 기술적 작업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타자의 명성이나 시대의 가부장적 편견에 가려져 역사에서 철저히 소외되었던 한 여성 예술가의 삶을 되찾아주고, 지워진 존재의 존엄을 500년 만에 비로소 복원해내는 묵직하고 뜨거운 서사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예술의 본질과 역사 속에 은폐된 진실, 그리고 인간 존재의 가치에 대해 깊이 있는 화두를 던지는 신작 뮤지컬 <소년의 초상>이 관객과의 깊은 만남을 준비하고 있다. 제작사 ㈜레드앤블루가 선보이는 이번 작품은 CJ문화재단의 창작뮤지컬 지원사업 '2024 스테이지업'에 선정되며 일찍이 독창적인 서사와 밀도 높은 음악적 완성도를 인정받은 기대작이다.
개발 및 쇼케이스 단계에서부터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입체적인 추리 미스터리와 과거와 현재를 가로지르는 감동적인 서사 구조로 평단과 관객의 깊은 호평을 모았던 만큼, 이번 초연 개막은 대학로 무대에 묵직한 울림을 전할 또 하나의 명작 창작극이 탄생하였음을 의미한다.
비극적인 운명 앞에서도 예술적 영혼을 포기하지 않았던 주인공 '로지나' 역은 섬세한 감정선과 밀도 높은 연기로 무대의 신뢰를 쌓아온 배우 임예진과, 폭발적인 가창력과 깊은 내면 연기로 인물의 서사를 끌어올리는 성민재, 그리고 단단한 무대 존재감으로 시선을 사로잡는 신예 박소현이 나누어 맡아 저마다의 독창적인 로지나를 완성해낸다.
16세기 로지나의 곁을 지키는 든든한 조력자 '마르타'와 현대에서 유작의 비밀을 풀어가는 미술품 복원가 '비올라'로 1인 2역을 소화하는 송영미, 김수, 김단이는 과거와 현재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핵심축으로서 극에 입체적인 몰입감을 더한다.
로지나의 재능을 알아보는 동시에 그녀의 삶에 거친 파도를 불러오는 화가 '마르첼로' 역에는 김이담, 박선영, 정백선이 캐스팅되어, 예술에 대한 순수한 열망과 내면의 갈등, 그리고 인간적인 욕망을 선 굵고 깊은 연기로 입체적으로 그려낼 예정이다.
천진난만한 16세기의 소년 '야코포'와 현대에서 유작의 가치를 추적하는 미술품 딜러 '니콜라' 역에는 배우 윤지성과 차세대 라이징 스타 도유현, 조은성이 합류하여 과거와 현재의 접점을 다채로운 스펙트럼으로 채운다. 특히 무대와 매체를 넘나들며 서정적 연기 폭을 넓혀온 윤지성은 한층 깊어진 서사와 매력으로 극에 풍성한 활력을 불어넣는다.
작품의 미학적·음악적 완성도를 극대화할 베테랑 창작진의 협업 역시 기대감을 한층 끌어올린다. 개발 과정을 거치며 감각적인 대본과 세련된 음악성을 인정받은 유민 작가와 양희윤 작곡가를 필두로, 뮤지컬 <라흐 헤스트>, <세종, 1446> 등에서 시공간을 가로지르는 세련된 미장센과 연출력을 선보여 온 김은영 연출이 프로덕션을 이끈다. 여기에 <블랙메리포핀스>의 임세영 음악감독과 <웨스턴 스토리>의 홍유선 안무감독, 그리고 김미경 무대디자이너, 김주한 조명디자이너, 도연 의상디자이너 등 대학로를 대표하는 최고의 창작진이 합작하여, 16세기 르네상스 베네치아의 고풍스러운 화실과 현대 복원실의 극적인 대비를 무대 위에 아름답고 사실감 있게 구현해낸다.
캔버스 위에 덮여 있던 덧칠을 벗겨내고, 비로소 세상 밖으로 걸어 나오는 한 예술가의 진실한 영혼과 마주할 뮤지컬 <소년의 초상>은 오는 7월 28일부터 10월 18일까지 대학로 TOM 2관에서 무대를 이어가며 관객들에게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감동과 여운을 선사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