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페이스 갤러리 서울에서 열린 《 형태가 몸짓을 만날 때(When Form Meets Gesture) 》는 박영숙과 이우환이 40여 년간 이어온 협업을 조명하는 전시다. 전시장에 놓인 달항아리는 지름 60~90cm에 이르는 거대한 형태였다.
그런데도 나는 완성된 작품 앞에서 그보다 더 큰 무언가를 떠올렸다. 우주, 혹은 바다. 분명 그릇 하나인데, 이상하게도 그 안에 담긴 것은 훨씬 넓은 세계처럼 느껴졌다. 작은 그릇이 어떻게 거대한 세계를 품을 수 있는가.
이 글은 그 의문에서 시작한다.
달항아리는 17세기 조선에서 등장한 백자의 한 형식으로, 둥근 몸체와 은은한 광택이 특징이다. 박영숙은 이러한 전통적 대상을 수십 년간 자신만의 조형언어로 확장해왔다. 1947년 경주에서 태어난 그는 불교 유물과 고찰 속에서 성장했으며, 1979년부터 직접 가마를 운영하여 백자와 분청사기를 아우르는 작업을 이어왔다.
그의 달항아리는 단순한 재현에 머무르지 않는다. 완변한 구형을 구현하기보다 흙과 불, 그리고 손의 흔적이 담긴 미세한 어긋남을 받아들이며, 불원전함을 통해 작품에 생명력을 부여한다.
1부: 붓질이 열어놓은 것
갤러리의 2층에서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백색 위에 흐르는 푸른 결이다. 이는 별이 터지는 순간의 흔적 같기도 하고, 물고기가 헤엄치며 남긴 꼬리짓 같기도 하다.
그의 붓질은 손의 통제를 출발점을 삼지만 완전히 통제되지는 않는다. 붓을 이루는 수많은 털이 각기 다른 궤적을 만들고, 안료는 번지고 스며들며 예상하지 못한 흐름을 만든다. 백색 도자 위에 놓인 검푸른 흔적은 청화백자의 문양을 떠올리게 하지만, 그것은 정교하게 계산된 행위의 장식이라기보다 하나의 풍경에 가깝다.
"한국 도자는 서구적 의미에서 완벽한 형태를 갖고 있지 않다. 대신 붙잡을 수 없는 변화의 가능성을 품고 있으며, 시각적 울림을 만들어낸다. 나는 그것을 우연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안에는 움직임과 긴장감, 그리고 역동성이 존재한다."
- 이우환
또한 이는 오랜 시간 이우환과 나눈 대화를 거쳐온 손길이기도 하다. 1980년대 초부터 이어진 협업에서, 이우환은 한국 도자, 특히 달항아리가 가진 미묘한 불규칙성을 두고 포착하기 어려운 가변성이 독특한 시각적 공명을 만든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이 전시에 걸린 작품은 모두 박영숙의 이름으로 소개되지만, 그 표면 어딘가에는 그러한 과정을 거쳐 온 시간이 함께 배어 있다. 박영숙의 작품에는 자신의 조형언어로 풀어낸 비움과 여백이 드러난다.
두 개의 반구를 따로 성형해 이어 붙이는 업다지 기법으로 만들어진 형태 역시 마찬가지다. 완벽한 대칭은 벗어나 있지만, 그 어긋남 때문에 표면은 찍어낸 사물이 되지 않는다. 관람객의 위치와 빛의 방향에 따라 울퉁불퉁한 표면은 다채로운 면모를 보여준다. 형태가 완벽하지 않기에 그 위의 흔적 역시 매번 다른 모양을 갖는다.
2부: 오래 반복된 것들
갤러리의 3층은 2층과 비슷하지만 다른 감성을 지닌다. 이 장소에는 밝은 나무 바닥과 회색 벽면 아래 유백색 백자들이 놓여 있다. 밀빛의 은은한 색감과 둥근 작품들은 전시장 곳곳에 촘촘히 자리한다.
바다속에서 떠오르는 공기방울이나 우주를 떠도는 천체처럼, 각 작품은 고요한 움직임을 연상시킨다. 각각의 달항아리는 비슷한 형태를 지니고 있지만 어느 하나 같지 않다. 비대칭적인 형상, 온도에 따라 달라진 표면, 손끝에서 남겨진 미세한 흔적은 균형보다 변화를 내재한다. 이러한 불완전함과 유기적인 질서는 자연을 닮아있다.
박영숙은 흙을 빚고, 굽고, 다시 바라보는 과정을 반세기 가까이 반복해왔다. 전시장에 놓인 수십 점의 항아리는 완성품의 나열이라기보다 하나의 길을 계속 묵묵히 걸어온 기록에 가까웠다. 같은 형태를 향해 나아가지만 결코 같은 결과에 도달하지 않는 것. 이는 박영숙의 작품만이 가진 생명력이다.
전시장과 창 사이에 놓인 백자 한 점은 특히 오래 시선을 붙잡았다. 채광과 조명이 교차하면서 아래로 갈수록 그림자가 깊어졌고, 그 사이로 드러난 이음매는 마치 물방울이 머물다 굳어진 순간처럼 보였다. 흙이 형태가 되는 과정, 시간이 표면에 남는 방식이 그 작은 부분 안에 담겨 있었다.
"작은 형태 안에 남은 태도"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태도가 거대한 달항아리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큰 항아리 앞에서 자연을 떠올리게 했던 감각은, 손바닥만 한 작품 앞에서도 크기만 다를 뿐 똑같이 되풀이됐다.
주전자는 몸체와 손잡이, 물을 따르는 부분이 서로 다른 기능을 가진 채 하나의 형태를 이룬다. 물을 따르는 부분은 몸체보다 다소 크게 자리하지만, 그 이음매는 어색함보다 친근한 정취를 만든다. 조명 아래 드러난 유약의 결은 겹겹이 쌓인 물결처럼 보였고, 푸른색이 머무는 불규칙한 표면은 아름다움을 이루는 채움의 균형을 상기한다.
벽면 한쪽에 놓인 작은 작품들도 같은 태도를 보여준다. 특히 개구리 한 쌍은 단순한 선으로 형태의 특징을 잡아낸다. 입을 벌린 개구리와 몸을 웅크린 개구리는 서로 다른 자세를 취하지만, 과장 없이 절제된 필선 속에서 자연스러운 생동감을 드러낸다.
과하게 묘사되지도 너무 생략하지도 않은 백색의 도용 사이는 실제 크기를 초월한 신성함 또는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나가며
전시장을 나온 뒤에도 처음 떠올렸던 우주와 바다의 이미지가 오래 남았다. 돌아보면 두 이미지는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같은 감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반복됩 작업 속에서 단련된 손길이 만들어낸 자연적인 형상과 절제된 분위기는, 그릇이라는 틀 안에서 더 넓은 세계를 상상하게 만든다.
종교사학자 미르체아 엘리아데는 오래전부터 인간이 그릇이라는 사물을 단순한 물건으로만 바라보지 않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무언가를 담는 공간이자, 세계를 축소해 바라보는 하나의 상징으로 여겨왔다는 것이다. 어쩌면 내가 달항아리 앞에서 우주와 바다를 떠올린 이유도 그런 오래된 감각과 닿아 있을 것이다.
박영숙이 완성한 형태 위에, 이우환과 나눈 시간의 흔적이 더해질 때, 달항아리는 단순한 그릇을 넘어선다. 그것은 닫힌 형태에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풍경을 열어 보이는 작은 세계가 된다.
《형태가 몸짓을 만날 때(When Form Meets Gesture)》는 박영숙과 이우환의 협업을 조명하는 전시로, 2026년 6월 19일부터 8월 14일까지 페이스 갤러리 서울에서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