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고픈 마음이 누구보다 크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다. 그러나 사랑하고 싶다고 말하면 왜 안 하냐는 말만 돌아왔다. ‘왜’에 관한 답을 하자면 사랑에 관한 나의 담론을 일대기처럼 늘어놓아서 상대를 설득해야만 했고 그건 말하기도 전에 수고로움을 느끼는 일이었다.
사랑은 혼자 하는 게 아니란 걸 너무 잘 알아서일까. 혼자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하고 싶은 게 생기면 들떠있는 나 자신을 200%로 충족시켜 줄 수 있다. 하다못해 팀플만 해도 혼자 하려면 할 수 있다. 스트레스는 말이 아니겠지만. 하지만 사랑은 혼자선 시도조차 해 볼 수 없다. 연인과의 사랑은 이 세상 만물을 사랑의 태도로 바라보는 것과는 좀 다른 일이다. 나는 이 세상의 구석구석을 사랑하지만 정작 옆에서 지긋이 사랑할 대상을 찾지는 못했다.
인스턴트식 사랑, 이젠 물려.
오히려 어릴 때는 대리만족의 사랑을 좋아라 했었다. 이를테면 연애 프로그램 같은 것. 솔직히 말하면 도파민도 있었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신물이 나기 시작했다. 콘셉트가 흥미로운 프로그램도, 연애 프로의 고전이라 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도파민 덩어리인 막장 드라마 같은 프로그램도 전부 2배속을 해서 보거나 건너뛰기 하고 있었다. 사랑을 지켜볼 때 천천히 물들어가는 사람의 감정을 인스턴트처럼 소비했다. 필요한 장면만 골라서 편식했고 요약된 숏폼으로 사랑을 간소화시켰다.
사랑은 요약이 가능한 것일까? 그건 아니라고 바로 반문할 수 있다. 대중의 도파민만 고려해 편집된 사랑이 나오기 급급한 연애 프로그램들이 무수한 시대 속에서 연애 프로그램은 다시 ‘사랑’을 외칠 수 있을까? 그건 잘 모르겠다. 그래서 작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채널 <때때때>에서 유규선과 원의 독백이 만든 <72시간 소개팅>이 나왔을 때도 본편을 제대로 본 적이 없다. 주변은 모두 그 얘기였고 나의 SNS 또한 그 릴스로 가득 찼는데도 숏폼으로 접한 정보로 사랑을 아는척하기에 바빴다. 72시간, 3일 만에 처음 보는 사람과 사랑에 빠질 수 있냐는 질문 자체는 신선했다. 숏폼이 넘쳐나는 시대에서 2시간이 넘어가는 롱폼의 형태를 굳건히 지킨 것도, 그럼에도 사람들이 즐겨보는 이유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동감했다. 그러나 72시간, 그 후에는?
다른 연애 프로에서도 최종 선택으로 짝이 이뤄지고 나면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같은 엔딩 장면으로 막을 내린다. 그러나 그 여운을 음미하기도 잠시, 각종 소셜미디어에서는 그들의 ‘현커(현재 커플)’여부나 출연자들 스펙, 출연 이후 하나같이 유명인이 되는 뻔한 전개 등을 따짐으로써 프로그램과 함께 천천히 쌓아 올렸던 사랑이 와장창 깨져버리고 만다. 급기야는 화면 속 출연자들의 사랑을 의심하기도 했다. ‘연애 프로그램에서 ‘진짜’ 사랑을 찾기란 역시 어려운 거구나.’하고 이내 실망했다. 물론 그 사랑들이 가짜라는 건 아니지만.
<포포, 죽어도 사랑해>
그래서 <72시간 소개팅> 이후에 원의 독백이 만드는 <4×4, 죽어도 사랑해>라는 다른 시리즈가 나왔을 때도 큰 흥미는 없었다. 제작자들의 실력을 믿었지만 어쨌거나 만들어 보여주는 사랑에는 쉽게 믿음이 가지 않더라.
사랑에 관해 유난인 나의 마음을 한 바닥을 넘게 쓰고서야 이 프로그램에 대해 언급한다. 시작은 ‘오키나와’였다. 여느 때와 같이 유튜브에 들어갔는데 ‘비효율적인 남자, 낭만을 잊고 지냈던 여자 – 포포 : 죽어도 사랑해 OKINAWA 1’이라는 제목을 봤다. 이 긴 문장의 제목에서 나를 클릭하게 했던 건 ‘비효율’도 ‘낭만’도 ‘죽어도 사랑’도 아닌 ‘OKINAWA’였다.
올해 2월 다녀온 오키나와 여행이 너무 좋았던 나머지, 해변에 누워 바람을 맞으며 꼭 이곳을 사랑하는 이와 오면 좋겠다 생각했고 그 생각은 곧 버킷리스트로 바뀌었다. 연인이든 썸이든 오키나와에서 설렘을 느낄 수 있다면 참 좋을 거라는 낭만을 설계했다. 그런데 이 낭만이 실현됐다고? 시기와 질투, 약간의 기대감이 섞인 마음으로 영상을 클릭했고 1편을 보자마자 다음 주가 오기를 발 동동 구르며 기다렸다.
과연, 잘 만든 영상이었다. 좋다는 평가마저 부끄러울 정도로 감탄스러웠다. 이보다 사랑을 잘 담을 수는 없다고, 지금까지 본 연애 프로그램에서는 출연자의 진심만이 프로의 성패를 결정한다고 여겨왔는데 제작자의 진심이 얼마나 중요한지가 여실히 드러났다. 단 한 컷도 정성을 들이지 않은 구석이 없어서 설령 만들어진 사랑이라고 해도 돈을 주고 소비할 가치가 있었다. 영화 한 편을 극장에서 보려면 15,000원이나 내야 하는 세상에서 얼마를 주어도 아깝지 않은 마음이 드는 컨텐츠라. 내 방 한 칸에서 공짜로 소비할 수 있는 사랑의 단편을 보았다.
44(포포)가 파고든 4(포)인트
<72시간 소개팅>이 여행지에서 3일 만에 사랑에 빠질 수 있냐를 물어본다면, <4×4>는 외계 생명체의 지구 침공으로 지구 멸망 4일 전에도 사랑에 빠질 수 있냐는 질문을 품는다. 터무니없는 상상 범벅인 콘셉트를 짜치게 만들지 않는 건 진심인 사랑뿐인데 그게 통하는 걸 보고 있자니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감탄했다. 사람들이 목말라하던 감성과 낭만을 명중했다.
‘오키나와’에 꽂혀있던 시선은 ‘멸망’으로 옮겨갔다. 사랑을 선망하던 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안에서 사랑을 남루하게 만들었을 때 느꼈던 절망을 기억한다. 사랑에 대해 꿈꾸며 느낀 것 중 최악의 발견이었다. 언젠가부터 사랑의 시작을 그리면 그 길은 끝의 방향으로 달려가 허무하게 상상을 멈추게 했다. 어떤 특별한 사랑도 끝이 있다는 걸 짐작하고 나면 꿈꿔온 사랑이 전부 허상처럼 느껴졌다. 오만했지.
그러나 끝을 정해둔 만남이라면? ‘멸망’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결코 다가오고 말 끝을 두렵게 하지 않는다면? 멸망 직전에 발견한 사랑은 끝이 아닌 시작이었다.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멈추지 않을 이제 막 자라나는 새싹 같은 사랑이었다.
설령 죽지 않더라도 4랑을 4랑해.
장면은 물론이고 노래와 목차를 설명하는 이미지까지 신경을 안 쓴 구석을 찾기가 더 어려웠다. 출연자들의 삶과 사랑을 감히 인스턴트화 시키지 않는 건 당연할뿐더러 세상 끝에서 한 사랑을 빚어내기까지 얼마나 많은 이의 정성이 들여졌을지 잘 가늠되지 않았다. 출연자의 진심을 그들끼리 맺는 게 아니고 화면 넘어 시청자에게까지 닿을 수 있었던 건 제작자들의 사랑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다.
감명받은 시청자 중 하나인 나는 그 진심이 전해져 다시 사랑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4랑을 4랑해. 누구라도 상관없다거나 마냥 운명 같은 사랑을 기대하는 마음도 줄었다. 다만 사랑이 제때 찾아왔을 때 주저하지 않을 용기 정도, 딱 그 정도를 얻기 위해서 돌고 돌아온 길의 이정표를 다시 설정할 수 있었다. 죽어도 사랑할 용기와 설령 죽지 않아도 사랑할 용기. 사랑을 할 때도 하지 않을 때도 어렵게 구한 이 마음이 빠져나가지 않게 단단히 가둬놔야지. 내일 지구가 멸망할 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