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서 오세요, 출구 없는 90년대 가구 매장에
없을 것 같은 곳에 있고, 없을 것 같은 것이 있는 [데페이즈망]의 메커니즘을 이토록 완벽하게 시각화한 공간이 또 있을까. 낡은 사무실 형상을 한 백룸(The Backrooms)은, 아주 사소한 인터넷 방구석 괴담에서 출발했다. 현실의 물리 법칙이 깨지는 순간 떨어지게 된다는 이 기괴한 세계관은 미국의 한 10대 소년 케인 파슨스(Kane Parsons)가 만든 단편 영상으로 인해 전 세계적인 스릴러 신드롬이 된다.
호러 영화의 오랜 공식은 어둠과 피칠갑이었다. 보이지 않아서 무섭거나 너무 잔인해서 눈을 돌리게 만드는 식이다. 하지만 백룸은 그 공식을 비웃듯 정반대로 질주한다. 밝은 형광등, 노란 벽지. 괴물이 튀어나오기 전의 백룸은 무섭다기보단 ‘황당함’에 가깝다. 하지만 이내 깨닫게 된다. 내가 인지하던 현실에서 완전히 배제되었으며 이 무한한 미로 속에서 영원히 고립될지도 모른다는 절망감을. 백룸은 타자가 주는 공포가 아니라, 일상을 이탈했을 때 찾아오는 현대적 폐쇄공포증을 정확히 겨냥한다.
2. 할리우드가 10대 ‘방구석 덕후’에게 메가폰을 쥐여준 이유
이 세계관의 영화화 소식에서 가장 재치 있는 관전 포인트는 역시 제작사와 감독의 조합이다. <유전>, <미드소마>로 호러의 뉴웨이브를 이끈 ‘장르 영화의 힙스터’ A24가 제작을 맡고, 유튜브 채널 ‘케인 픽셀즈(Kane Pixels)’의 고등학생 감독 케인 파슨스가 직접 메가폰을 잡았다. 친구들과 재미로 SF 컴퓨터 그래픽을 독학하던 소년이 전 세계 수천만 명의 오금을 저리게 만들고 할리우드로 직행한 서사는 그 자체로 한 편의 영화 같다.
케인이 대단한 이유는 단순히 기술적으로 무서운 영상을 뽑아내서가 아닐 것이다. 파편화되어 떠돌던 인터넷 밈(Meme)에 서사의 뼈대를 심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가상의 연구소 ‘에이싱크(ASYNC)’를 등장시켜 새로운 설정을 입힘으로써 백룸은 서사적 연대기를 획득한다.
3. 캠코더를 내려놓은 영화, ‘소리’에 주목하라
유튜브 단편들이 1인칭 시점의 파운드 푸티지(Found Footage) 형식으로 쫓김을 구현하는 날것의 섬뜩함을 줬다면, 장편 영화로 이행한 백룸은 조금 더 능글맞고 관조적인 시선을 택한다. 90분 내내 캠코더를 들고 뛰면 관객들이 멀미약부터 찾을 게 뻔하니까. 영화는 텅 빈 노란 공간을 멀찍이서 응시하는 3인칭 카메라를 통해, 인간이 이 거대한 구조물 앞에서 얼마나 나약하고 하찮은 사냥감인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줄 예정이다.
무엇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백룸의 시그니처는 [청각]이다. 아무도 없는 방을 지배하는 낡은 형광등의 웅웅거림. 실제로 A24가 공개한 공식 플레이리스트를 들어보면, 이들이 사운드 디자인에 얼마나 진심인지 알 수 있다. 낮게 깔리는 앰비언트 사운드와 신경을 긁는 미세한 주파수 소리들은 시각적 자극이 부재한 순간마저 팽팽한 긴장감으로 채워 넣는다. 괴물을 마주하기 전후의 완급조절이 사운드를 통해 완성되는 셈이다.
그러나 이 모든 서스펜스의 끝에 마주하게 되는 백룸의 결말은 대개 개운한 해답을 주지 않는다. 미로를 완벽히 탈출하는 서사적 쾌감도, 괴물의 정체를 시원하게 밝혀내는 과학적 규명도 없다. 카메라가 툭 끊기며 화면이 암전되거나, 겨우 도망친 곳이 또 다른 기괴한 공간의 시작일 뿐인 엔딩은 관객에게 순간적인 황당함과 허탈함을 안긴다.
재밌는 점은 이 불친절하고 모호한 결말이야말로 백룸 세계관이 완성되는 마지막 퍼즐이라는 것이다. 인과관계가 확실한 닫힌 결말 대신 찝찝한 말줄임표를 찍어둘 때, 공포는 극장 문을 나선 이후에도 끝나지 않는다. 스크린이 꺼진 후에도 "이게 정말 끝인가?"라는 의문을 품게 만들며, 관객의 상상력 안에서 백룸이라는 미로를 무한히 확장시키는 셈이다. 명확한 마침표를 지워버린 이 열린 결말이야말로 이 세계관이 가진 가장 현대적인 매혹일지도 모른다.
출구는 없다. 우리는 이미 이 기묘하고 불친절한 노란 방에 자발적으로 발을 들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