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항상 그런 질문을 한다. 당신이 내 엄마가 아니었다면, 내 애인이, 내 친구가 아니었다면. 의미 없는 가정이지만 모두가 이 질문을 되뇔 수밖에 없는 이유는 존재가 우리 삶에 끼치는 영향이 너무 크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은 어떻게 작동할까. 정답은 없음에도 우리는 모르는 새 사랑하고 있다. 누구를 만나느냐, 누구를 사랑하느냐에 따라 삶은 너무 크게 바뀐다. 사소한 것들이 전부 모여 나의 플롯이 한순간에 바뀐다. 하나의 우주가, 내 세상이, 내 결정이 — 너를 빼고는, 당신을 빼고는 똑같이 굴러가지 않는다. 이 두 영화는 그 답 없는 질문을 던지며 말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보세요. 서로가 지겹고, 싫어지고, 질리지만 사랑할 수밖에 없는 옆사람을.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주인공 에블린은 지쳐있다. 오래된 세탁소를 운영하며, 서투른 영어로 세무조사를 받고, 남편 웨이먼드는 갑작스레 이혼서류를 내밀고, 딸 조이는 여자친구를 소개하려 한다. 그 모든 것이 한꺼번에 쏟아진 어느 날, 에블린은 알게 된다. 자신이 무한한 멀티버스의 분기점이라는 것을. 다른 우주에서 그녀는 배우였고, 무술가였고, 요리사였다. 그 어떤 우주에서 지금보다는 더 나은 삶을 살았을지 모른다. 그런데 지금의 에블린은, 지금의 이 삶을 선택한 에블린은, 그 모든 가능성을 포기하고 웨이먼드를 선택한 지쳐버린 에블린이다. 그녀에게선 현실에 지쳐버린 우리의 얼굴이 보인다.
이 영화를 만든 건 다니엘 콴과 다니엘 쉐이너트, 두 친구이다. 두 사람은 에머슨 칼리지 동문으로, 학교에서부터 함께 활동하며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시작해 대중문화의 변두리를 누비다 이 영화로 제95회 아카데미상에서 작품·감독·각본·여우주연·남우조연·여우조연·편집상 총 7관왕을 차지했다. 시상식 무대 위에서 다니엘 콴은 아들 지오에게 말했다. 언젠가 네가 이걸 보게 된다면, 이 기준에 맞춰 살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고. 이건 정상이 아니고 좀 미친 거라고. 무슨 일이 있어도 너를 사랑할 거라고. 이 수상소감은 영화와도 연결되며 많은 이들의 감동을 얻어냈다. 수많은 가정을 거쳐 결국 너를 사랑하는 것. 그것이 이 영화가 하고 싶었던 말과 이어진다. 이들의 삶이 영화로 번지고, 영화가 다시 삶을 바꾼다. 영화가 시작된 계기 또한 삶과 밀접해있다. 감독인 다니엘 콴은 자신과 자신의 가족이 마주한 역사를 탐색하고 싶어서 이 거대한 유니버스를 찍기 시작했다. 수많은 가능성 속에서도 결국 지금 이 삶으로 돌아오는 이야기, 화려하고 정신없지만 의미없고 멈출 수 없는 질문들의 멀티버스를 거쳐 너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너를 선택하는 그런 이야기다.


'너바나 더 밴드 : 전설적 밴드 너바나와는 별 관련 없는 너바나 더 밴드의 콤비 맷과 제이. 어느 날 공연을 위해 타임머신을 만드는 황당한 작전을 세우고 처음 만났던 17년 전으로 돌'

맷과 제이는 실패한 밴드다. 2008년 토론토의 전설적인 라이브 클럽 '리볼리' 무대에 서겠다는 꿈을 품고 결성했지만, 17년이 지나도록 입성은커녕 집세 납부에도 실패하고 있다. 어려운 형편에도 굳건했던 둘의 우정도 이제 한계에 다다랐으며, 제이는 음악 연습보다는 황당한 작전에 더 열심인 맷의 모습에 진절머리를 내다 그를 떠나기로 한다. CN타워 꼭대기에서 낙하산을 펴 스카이돔 천장으로 뛰어내리는 계획이 실패한 뒤 '백 투 더 퓨처'를 보다가 캠핑카에 타임머신을 만드는 계획을 실행한다. 그러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연출이고 현실인지 분간이 안 될 만큼의 혼돈 속에서, 제이가 맷을 떠나려 한 그 순간에, 타임머신이 실제로 작동해버린다.
맷 존슨이 연출을 맡고, 제이 맥캐럴이 각본에 공동 참여하며 두 사람이 함께 주연을 맡은 이 영화는, 그 구조 자체가 이미 우정의 산물이다. 이 영화가 존재하기까지의 여정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다. 2007년 코미디 웹드라마로 시작해 케이블 채널 Viceland를 거쳐 공중파 CBC까지 진출한 시트콤을 바탕으로 한 극장판인 이 영화는 결국 두 사람이 어린 시절부터 함께 쌓아온 시간의 총합이다. 영화 속 2008년 아파트 장면은 실제로 그 시절 웹시리즈 푸티지를 그대로 가져다 쓴 것이며, 과거의 그들이 현재 스크린 위에 살아 있는 느낌을 준다. 2008년에 찍은 푸티지와 2025년에 찍은 푸티지를 콜라주처럼 연결하는 편집이 17년이라는 시간을 한 프레임에 담아내며 그들의 인생이 영화가 되고, 영화가 인생을 기록하는 방식으로 경계를 흐린다.

한국 개봉을 둘러싼 이야기 또한 우정으로 점철되어 있다. 코미디언 문상훈의 빠더너스와 그린나래미디어가 함께 수입한 이 영화는, 문상훈이 세계 필름마켓을 직접 돌아다니며 가장 재밌는 영화를 찾아 수입한 결과물이다. 그 고군분투의 여정을 유튜브 시리즈로 찍어 올리면서, 수입 과정 자체가 하나의 콘텐츠가 됐다. 그리고 번역을 맡은 건 에픽하이의 타블로와 그의 딸 하루였다. 타블로는 영화를 보면서 하루에게 이건 어떻게 번역하는 게 맞을까 물어봤고, 하루가 자기가 도와줄 수 있다고 했다고 한다. 부녀는 파트를 분담해 각자의 방에서 번역한 뒤 나중에 합치는 방식으로 작업을 진행했다. 우정에 관한 영화가, 아버지와 딸의 우정을 경유해 우리에게 닿는다.


그럼에도, 사랑해

두 영화 모두 관계에서 오는 피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에블린과 웨이먼드는 위기의 결혼 생활 속에 있고, 에블린과 조이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 상처를 주고받는다. 맷과 제이는 17년을 함께하고도 여전히 아무것도 이룬 게 없으며, CN타워 낙하산 사건 이후 서로에게 실망해 마음이 틀어진다. 이 영화들은 관계를 낭만화하지 않고 오히려 철저하게 찌질한 면을 내비친다. 현실은 멀티버스를 오가는 액션과 타임머신을 만드는 황당한 모험이라는 설정을 이길 정도로 훨씬 지치고 별 볼 일 없다.
그러나 에블린이 웨이먼드의 손을 잡는 것도, 제이가 타임머신 목적지를 바꾸는 것도, 거창한 이유에서가 아니다. 그냥, 그 사람이기 때문이다. '짜장형이 좋아요, 네 그냥그냥그냥' 아무것도 모른 채 어릴 적 따라부르곤 했던 뿡뿡이의 노래처럼 그냥 너이기 때문에 선택하는 것이다. 수많은 우주 중 이 우주를 고르는 것. 17년 중 이 하루를 선택하는 것. 사랑은 선택이 쌓인 자리에 있고, 두 영화는 그 선택이 얼마나 조용하고 단호한지를 각자의 방식으로 보여준다.

흥미로운 것은 이 두 영화 모두 두 명이 함께 만들었다는 점이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의 다니엘 콴과 다니엘 쉐이너트, '너바나 더 밴드'의 맷 존슨과 제이 맥캐럴. 연출은 각각 한 사람이 맡았지만 두 영화 모두 두 사람의 합의 없이는 존재할 수 없었다. 촬영 방식은 전혀 다르다. '에브리씽'은 정교하게 설계된 멀티버스 비주얼을, '너바나 더 밴드'는 토론토의 풍경과 시민들의 리액션, 돌발 상황과 우연을 고스란히 포착한 게릴라 촬영을 택했다. 한 쪽은 모든 것을 통제해 우주를 만들었고, 다른 한 쪽은 통제를 포기하고 세계가 영화 안으로 들어오게 뒀다. 그러나 두 방식 모두 결국 같은 곳을 향한다. 관계란 혼자 완성할 수 없다는 것. 함께 만든 영화는 이미 그 자체로 그 주제의 증거다.
나 너 때문에 고생 깨나 했지만 사실 너 아니었으면 내 인생 꽤나 공허했다

에블린이 어떤 우주에서도 더 빛나는 삶을 살 수 있었다는 건 사실이다. 맷과 제이가 17년을 함께하지 않았다면 각자 더 성공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영화들은 그 가정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든다. 더 나은 삶의 척도가, 이 사람이 없는 삶을 전제하는 순간 다시 무의미해진다. 아무것도 의미없어서 세상을 끝내려는 조이에게 에블린은 아무것도 의미없어서 너와 함께하겠다고 한다. 17년의 시간이 아까워질 때쯤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간 과거에서 제이는 가장 친한 친구가 있다면, 나이 드는 것도 눈치채지 못할 거야, 라는 자신의 말로 다시 맷에게 돌아가고 싶어한다. 그래도 돌아간다. 의미 같은 건 없어도.


다니엘 콴은 인터뷰에서 사랑이란 그 대상을 완전히 아는 것이라는 철학자의 말을 인용하며 이렇게 말했다. 에블린이 계단에 올라 모두와 맞서 싸울 때, 결국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방식으로 전투에서 이기지 않냐고. 사랑은 그런 거라고, 모든 것을 초월한다고. 그건 가장 사소하면서, 거대하다. 존재가 끼치는 영향처럼.

너바나 더 밴드의 맷과 제이도 그렇다. 17년이라는 시간은 서로를 지겹게 만들기 충분했다. 그러나 결말에서 제이는 목적지를 바꾸며 맷을 선택한다. 공연이 아니라 이 사람을. 그리고 이 두 사람이 2007년부터 카메라를 들고 거리로 나가 함께 쌓아온 시간들이 그 선택을 가능하게 했다. 그 선택은 결말 장면에서만 일어난 게 아니다. 17년 동안 매일 일어났다.
에블린에게 조이가 없었다면, 웨이먼드가 없었다면. 맷에게 제이가 없었다면. 그 우주들에는 아마 더 많은 것이 있었겠지만, 이 우주에 있는 것들은 없었을 것이다. 내 우주의 공허는 결핍의 총량이 아니라 특정한 누군가의 부재다. 그 자리는 다른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다.

두 영화는 결국 같은 말을 하고 있다. 의미없어서 의미가 있다고. 우연이지만 그래서 필연이라고. 사랑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아무도 모르는데, 우리는 모르는 새 이미 사랑하고 있다고. 조이가 세상을 끝내려 할 때 에블린이 꺼낸 말도, 제이가 타임머신 목적지를 바꾸는 순간도, 딱히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그냥 의미없는 것들이 쌓이다 보니 어느새 이 사람이 된 거고, 이 사람이 없으면 나머지가 다 공허해진다는 걸 알아버린 거다. 답도 없는 질문을 매일 되뇌면서도, 지겹고 싫어지고 질리더라도, 타임머신이 생긴다 해도, 다른 우주가 열린다 해도, 나는 아마 또 너를 고를 것이다. 의미 같은 건 없어도.

그러니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보세요. 서로가 지겹고, 싫어지고, 질리지만 사랑할 수밖에 없는 그 옆사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