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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관객은 대본을 아는데 배우는 아무것도 모르는 이상한 상황 [공연]

연극 <화이트 래빗 레드 래빗> 스포일러 일절 없는 후기

by 임솔지 에디터
2026.06.03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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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좀 독특한 연극이 있다. 일반적인 연극에서, 배우는 대본을 오랜 시간 분석하고 연습한 뒤 무대에 서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화이트 래빗 레드 래빗>은 다르다. 이 연극에서 배우는 공연 당일 무대에 오른 뒤 처음으로 대본을 전달받는다. 게다가 이 공연에는 연출가도, 리허설도 없다. 극은 단 한 명의 배우의 순발력과 관객들의 즉흥적인 참여로 완성된다.


당신이 만약 배우라면, 그리고 이 연극에 출연해달라는 제의가 들어왔다면 당신은 승낙하겠는가? 일단 우피 골드버그, 바비 카나베일 등 전 세계 30개국의 수많은 배우들은 이 무모한 도전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이번에 세종S씨어터에서 국내 재연을 맞이한 이 작품에는 김세환, 이동하, 홍나현 등 18인의 배우들이 참여한다. 그들은 굳이 왜 이 하루뿐인 연극을 한다고 했을까? 이 극만이 가지는 분명한 매력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것을 3가지로 정리해 보고자 한다.


첫 번째, 매 회차가 '세상에서 단 한 번뿐인 공연'이라는 점이다. 이 작품에서 배우는 무대 위에서 대본을 받을 때까지 아무것도 몰라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따라서 이 작품에 한 번 출연했다면 그 후 절대 다시 참여할 수 없다. 이는 배우 본인은 물론이고 팬들에게도 흥미로운 조건이 될 것이다.


두 번째, 배우도 관객도 간략한 시놉시스조차 모른 채 극을 마주하게 되는 무방비함이다. 그들은 이 대본의 장르가 로맨스인지, 스릴러인지, 무엇일지 이 연극을 보기 전에는 알 수 없다. 그래서 극장을 채울 모든 사람들은 공연 전 빈 무대를 보며 앞으로 펼쳐질 세상을 더욱 기대하고 상상하게 된다.


세 번째, 관객들은 배우가 대본을 받고 처음 맞닥뜨리는 순간 보여주는 그 긴장감과 떨림, 당혹감, 혹은 노련함을 현장에서 생생하게 관찰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로써 '현장성'이 이 작품의 무기가 된다.


이 세 가지 매력들은 모두 다른 그 어떤 매체보다도 '무대'와 잘 어울리는 특성들이다. 그렇기에 연극 <화이트 래빗 레드 래빗>은 무대라는 매체의 개성을 극대화한 공연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5월 31일, 나는 이 극의 종일반을 했다. 즉 2시 공연과 6시 공연을 모두 관람하였다. 그런데 이렇게 실험적인 설정의 연극이기에 재미있는 상황이 벌어졌다. 2시 공연에서는 관객인 나도, 배우도 이 연극의 내용을 전혀 몰랐다. 그런데 6시 공연에서는 배우는 이 연극의 내용을 모르지만,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일반적인 극의 구조가 완전히 뒤집혀 버린 것이다. 그래서 2시 공연에서는 배우와 함께 이 극의 이야기를 마주하며 거듭 놀라고는 했지만, 6시 공연에서는 긴장하고 있는 배우를 마음속으로 계속 응원하며 내용을 다시 되새겨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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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 캐스팅은 2시 공연에서는 강기둥 배우, 6시 공연에서는 정원영 배우였다. 두 배우 모두 무대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들이지만, 이 극을 시작하기에 앞서서는 긴장한 모습을 보였다. 대본을 열어보기 전, 두 배우는 모두 뭘 입고 올지 고민이 많았다며 오늘 왜 그 옷을 입고 왔는지 이야기했다. 강기둥 배우는 "이 작품에서, 코디도 저잖아요."라는 말로 웃음을 자아냈다. 그는 연습실에서 자주 입는 옷을 입고 왔다고 했다. 이 작품을 하기 전 긴장되는 마음에 자꾸 미신 같은 걸 믿게 되었는데, 이 옷을 입고 연습을 하면 연기가 잘 되는 것 같아서라고 이유를 덧붙였다. 정원영 배우는 작품 제목 그대로 따르기 위해 하얀 정장에 빨간 셔츠를 입고 왔다고 했다. 그리고 빨강과 하양을 섞은 분홍색의 운동화도 신고 왔다며 재치 있게 설명을 보탰다.


사실 이 연극의 내용이 무엇인지, 두 배우의 느낌이 어떻게 달랐는지 너무나도 쓰고 싶다. 그러나 매 공연 시작 전, 제작사 관계자분께서 무대에 먼저 나와 이 극의 내용을 절대로 유포하지 말아달라고 관객들에게 부탁하신다. 그렇기에 왜 이 극의 제목이 '하얀 휴지 줄까, 빨간 휴지 줄까'도 아니고 '하얀 토끼 빨간 토끼'인 건지 말할 수 없다. 이 극을 본 후에 내용을 곱씹다 토끼처럼 그 자리에서 나도 모르게 깡충 뛰어버렸다는 것 정도는 말해도 되려나. 


<화이트 래빗 레드 래빗>은 이란 출신의 작가 나심 솔레이만푸어가 쓴 연극이다. 그는 정부에 의해 여권이 폐지되면서 결국 외국 여행을 금지당하고 만다. 그렇게 발이 묶인 상황 속에서, 자신은 고립되었더라도 자신의 글만큼은 전 세계를 여행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이 대본을 썼다고 한다. 그리고 현재, 그는 30개가 넘는 국가에서 다양한 배우들의 얼굴을 한 채 세계를 여행하고 있다.


이 작품에 참여하는 배우들처럼 우리 역시 삶이라는 연극에서 대본이 무엇인지 전혀 모른 채, 매 순간 냅다 던져진 하루를 즉흥적으로 살아가는 무방비한 존재들이다. 그렇기에 전 세계의 관객들이 이 작품의 방식에 더 깊이 빠져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무대가 우리의 삶에 대해 질문하는 실험실이 되는 광경을 목도하고 싶다면, 이번 시즌이 끝나기 전 토끼처럼 빠르게 극장으로 달려가 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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