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파리는 어떤 도시인가요?
파리는 예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꼭 가보고 싶은 도시이다. 일주일을 봐도 모자른 루브르 박물관, 낭만적인 에펠탑, 여러 예술적 거장들이 살고 영감을 얻었던 파리라는 도시 그 자체가 모두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은 그 외에도 무심히 지나치기에 아까운, 파리 곳곳에 숨은 아름다운 공간들을 소개해준다.
저자는 파리 전역에 흩어진 작은 미술관 가운데 숨겨진 보석 같은 일곱 곳을 엄선했다. 이 책에서 다루는 예술 공간들은 들라크루아 미술관, 마르모탕 모네 미술관, 로댕 미술관, 귀스타브 모로 미술관, 몽마르트르 미술관, 피카소 미술관, 르코르뷔지에의 라 로슈 저택, 자코메티 미술관 등으로, 모두 파리를 여행한다면 빼놓을 수 없는 세계적 유산들이다. 저자는 이러한 공간을 단순 단면적으로만 보여주는 게 아니라, 예술가들이 앞서 걸어간 길들을 차근차근 따라 걷는 낯설지만 흥미로운 예술 산책을 제안한다. 각 공간들은 한 작가의 내면과 작업 세계를 밀도 있게 응축해 보여주는 '단일 세계'이기도 하다. 작가는 그 당시 살았던 예술가의 삶과 시대상, 감정들을 함께 압축해서 전달해주며 그 작품이 더욱 마음에 남을 수 있게 해준다.
거장의 마지막 숨결이 남아 있는 작업실이나 도시를 가로지른 역사의 물줄기가 축적된 저택들이 어떻게 지금의 미술관으로 탈바꿈되었는지, 그리고 섬세하게 구상된 건축적 구조와 동선이 감상 경험을 어떻게 조직하는지를 함께 짚어내는 과정이 흥미진진하다. 덕분에 독자는 작품과 공간, 그리고 그 사이에 누적된 시간을 하나의 서사로 엮어가며 체험할 수 있게 된다. 이 책은 화려한 도시인 파리를 낯설게 뒤집으며, 번잡한 대로 뒤편에 숨겨진 또 하나의 내밀한 파리의 진면목을 드러내는 새로운 관점의 미술 에세이다.
여유로운 주말, 방 구석에서 파리로 예술 산책 하기
이 책을 읽으며 좋았던 점은, 마치 내가 실시간으로 파리 여행을 하는 듯한 느낌을 받은 것이다. 작가는 단순히 특정 미술관이나 작품에 대해서만 얘기를 하지 않는다. 미술관의 실내에만 머물지 않고, 미술관을 향해 가는 그 길 하나 하나에도 주목한다. 미술관을 가는 지하철 역에서 내려서 보이는 예술적인 풍경부터 시작해서, 미술관의 전경, 그 외의 골목길 속 예술가의 흔적들을 발견하고 설명해주시는 재미도 쏠쏠하다.
나 또한 여행을 갈 때 '예술'을 테마로 여행하는 것을 좋아한다. 미술관, 공연장, 박물관, 서점 등을 가보면서 그 길을 함께 걷고 누렸던 예술적 거장들을 상상해보곤 한다.
나도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경험은 그 도시 전체가 하나의 뮤지엄처럼 느껴졌을 때이다. 그 도시 속에 담긴 여러 요소들이 마치 그 도시의 예술성을 대변해주는 것만 같을 때 나는 단순 미술관에서 느꼈던 것보다 깊은 감동을 느낀다. 더불어, 그 작가가 살았던 공간을 가서 그가 느꼈던 감정을 상상해보고, 그가 봤던 풍경들을 관찰해보는 것이 내게는 또 다른 재미이자 미술관 밖의 미술관이다.
몽마르트 언덕에 담긴 여러 예술들
책을 읽으며 기억에 남는 챕터가 몇 개 있다. 그 중 하나는 유명한 '몽마르트르 언덕'에 있는 '몽마르트르 박물관'을 다룬 챕터이다. 뮤지컬 '물랑루즈'로도 유명한 새빨간 풍차가 있는 몽마르트르 지역. 그 공간에 대한 이야기가 내게는 유독 흥미로웠다. 이 책에서는 그 곳에 예술가들이 모이게 된 역사부터, 그들이 만들어 낸 예술까지 차근차근 알려준다. 당시 산업혁명과 도시 개발 과정에서 변방으로 밀려난 가난한 사람들이 이 곳으로 흘러들었고, 꿈을 좇던 이들이 이 곳에서 새롭고 신선한 예술 세계를 만들었다. 그 시대에 오직 몽마르트르였기에 탄생할 수 있었던 화가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다.
위의 그림인 '물랭루즈에서의 춤'을 그린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부터, 빈센트 반고흐, 오귀스트 르누아르 물랭까지... 정말 많은 이들이 몽마르트르와 물랑루즈를 배경으로 하여 예술 작품을 만들어냈다. 이 책을 통해 필자는 한 공간에서 나온 예술 작품을 쭉 바라보며, 그 때 당시의 파리의 분위기를 조금은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그를 편안히 받아준 것은 술집과 유곽의 여인들이었다. 그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그에게는 삶을 견디게 하는 힘이 되었고, 그는 일상을 기록하듯 자기만의 방식으로 자유롭게 그리면서 화가로서 자리를 잡아간다. 물랭 루주가 생기자 그는 단골이 되었고, 어슴푸레한 불빛 아래서 술을 마시고 웃고 떠드는 사람들, 무희의 춤과 객석의 표정, 서로 다른 각도에서 스쳐 지나가는 밤의 장면들을 화면에 담았다. 향락에 취해 있으면서도 어딘지 외로움이 배어 있는 실루엣들, 그것이 로트레크가 남긴 몽마르트르의 얼굴이다.
- 191~193쪽, [몽마르트르 미술관] 중에서
몽마르트르 언덕은 아름답다. 그러나 그냥 아름다운 곳이 아니다. 19세기 중반 이후부터 20세기 초까지 소용돌이치며 변하던 세상을 몸으로 통과한 사람들의 숨결이 배어 있기에 아름답다. 지난한 고통을 겪으면서도 끝내 꿈꾸던 세계를 자기 손으로 만들어냈던 사람들이 있었기에, 새로운 문화와 예술이 태어나고 자리 잡을 수 있었기에 아름답다. 그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마법 같던 시간의 기억과 흔적이 골목길 구석구석에 깊게 남아 있기에 아름답다. 그래서 이 언덕의 풍경은, 오래 바라볼수록 단순한 전망이 아니라 하나의 시대처럼 느껴진다.
- 228쪽, [몽마르트르 미술관] 중에서
마무리하며
예술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그리고 추후에 예술의 흔적이 깃든 유럽 여행을 가고 싶은 독자라면 읽어봐야 할 책이다. 단순히 유명한 작품의 목록을 나열하는 서적에 지쳤다면, 혹은 파리라는 도시가 품은 진짜 예술의 서사를 밀도 있게 느껴보고 싶다면 이 책은 훌륭한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작가의 섬세한 시선을 따라 지하철역에서 내려 골목길을 걷고, 예술가의 흔적을 발견하는 재미는 독자에게 마치 실시간으로 여행을 하는 듯한 설렘을 선물한다. 번잡한 대로를 벗어나 거장들의 마지막 숨결이 머문 내밀한 공간으로 떠나는 여정이었다. 이 책이 파리를 이미 다녀온 사람에게는 그리운 풍경의 재발견을, 언젠가 떠날 사람에게는 가장 완벽한 테마 여행의 이정표를 제시해 줄 것이다.
사랑하는 여자가 바뀌면 화풍도 바뀌었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그의 삶과 작품은 불가분의 관계였다. 그는 심장이 뛰는 대로 사랑했고, 숨 쉬는 것처럼 그림을 그렸다. 그래서 우리는 그의 그림과 조각 앞에서 자꾸만 묻게 된다. 그는 모델을 바라보며 도대체 무엇을 생각하며 작품을 하고 있었을까를.
- 259쪽, [피카소 미술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