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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퍼즐 맞추기 [문화 전반]

확장을 위한 응축과 매너리즘

by 신영주 에디터
2026.05.30 10:15

 

 

무엇을 쓸 것인가. 어떻게 쓸 것인가.

    

나는 여전히 갈피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새로운 환경에 직면하면 인간의 내면은 생존과 적응을 위해 사유의 우선순위를 조정한다. 영화를 보고 텍스트를 읽고, 감상하는 행위들이 내게 있어서는 그렇다. 무게중심이 그런 쪽으로 급격하게 기울어지고 있다는 말이다. 한 번에 두 가지를 탐색하는 게 안되는 나는 하나를 잡기 위해서는 하나를 놓아야 한다. 궤도를 이탈해야 한다는 말인데, 실은 핑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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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새로운 시스템에 적응하고 짓눌린 내면을 다스리는 과도기로 들어서고 있기 때문에 (실은 그렇다고 믿지 않으면 매몰되어버릴 것이 분명하기에 어떻게든 발버둥 치는 거다) 다시금 삶의 템포를 복원하고 좋아하고 싶은 마음과 일상 사이의 균형을 맞추려는 지향성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근래에는 도무지 본 것이 없으니 골몰하는 시간도 부재했고, 그러다 보니 뇌의 연결고리가 무언가로부터 툭 하고 단절되어 버리는 멈춤 상태에 돌입한 것이다. 밀도가 높은 사유의 시간이 줄어든 내면은 영혼이 텅 비어가는 궤멸의 징후를 보인다. 굳어버린 사고 회로를 다시 작동시키는 데는 막대한 양의 에너지가 소모된다. 타이핑을 하기까지 오랜 유예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은 글을 쓰는 것에 부담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다. 내어놓을 만한 알맹이가 고갈되었다는 자각 때문이었다.

 

고갈되고 있는 내면을 직면한 후에야 부랴부랴 탐색을 시작한다.

 

 

 

#1.


 

요즘의 지배적인 고민은 당도하는 압도적인 피로감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까 하는 문제인데, 규칙적인 수면 패턴을 되찾았고 얼굴에 박힌 다크서클도 많이 옅어졌다.

 

그런데 그런 차원과는 별개로 새로운 환경이 유발하는 긴장 상태에서의 피로감은 나의 의지적 통제 범위를 벗어나 있다는 것이다. 외부 자극을 마주했을 때, 각성 상태로 들어가기보다는 참을 수 없는 피로의 산사태에 고꾸라진다. 정신을 보호하기 위해 신체가 선택하는 일종의 방어기제 혹은 셧다운 현상이다. 카페인이라는 각성제조차 허용되지 않는 신체 조건 속에서 이 피로를 견디는 유일한 해법은 무엇일까. 붕괴하는 사고 회로를 펼쳐내어 머무는 시공간을 정확히 포착하려는 마인드 컨트롤뿐이다.

 

육체적 피로를 넘어, 텍스트를 읽고 쓰는 창작 행위 자체에 피로감이 동반되는 현상은 또 다른 회의감을 낳는다. 의자에 앉아 언어를 읽어내는 행위가 휴식의 측면에 머물기 보다는 정신적 에너지를 연소시키는 일련의 노동으로 느껴진다는 것이 문제다.

 

규칙적인 생활 패턴이 과연 이러한 피로감을 상쇄하는 데 유효한 기능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은 매너리즘을 동반하고 만다.

 

 

 

#2.


 

안개와 같은 자욱한 피로 속에서 누군가의 단단한 언어를 목격할 때 부러움을 느낀다. 예술을 잘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어떤 화두에 대해 기필코 말하고 싶은 무언가가 있다거나 대상에 대한 모호함마저 확고한 근거로 뒷받침하는 자양분을 가진 이들을 말한다. 그게 경험이 되기도 하고 이론이 되기도 한다. 얼마나 오랫동안 물음표를 마음에 품고 살았을까. 대상을 궁금해하는 추상성에 연료를 넣어 능동적인 목격과 창작 행위로 접목하는 행동주의적 에너지는 어디서 기인하는 걸까.

 

도달한 어렴풋한 결론, 그 능동성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좋아하려는 노력을 경주할 때 수반되는 사유의 부상이라는 것이다. 모든 것에 시니컬해지고 권태에 침잠하는 매너리즘의 주기는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이때 지친 에너지에 인위적 개입을 시도하여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려 다그치면 고유의 자가 회복력만 훼손되고 만다. 권태와 시니컬함은 부정하고 싶고 멀어지고 싶은 에너지니까, 그냥 그렇게 생각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도약을 위한 응축이라고 믿는다.

 

호기심과 행동가 적 마인드를 잃지만 않으면 질문은 꼬리를 물고 스스로 찾아올 것이고, 다가오는 풍경을 애써 환영하다 보면 느닷없이 안착하는 즐거움이 있을거 라고. 피로의 산사태 속에서 사소한 풍경을 환영하는 감각을 잃지 않고, 멈추지 않고 기록하는 행위 자체가 매너리즘을 통과하고 있다는 방증일지도.

 

어디까지 왔을까.

 

 

사진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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