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트인사이트를 통과하며 묻어난 것들 [문화 전반]

연결과 용기 그리고 의미
글 입력 2022.06.18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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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아트인사이트 25기 에디터로서 남길 수 있는 글이 얼마 남지 않았다. 시작 전부터 마감이 있는 삶이 쉽지 않겠다고 짐작은 했지만, 부담감과 막막함의 실체는 시작 직후에 더 선명히 나타났다. 글이란 절대 가만히 있다가 툭 튀어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끊임없이 자극을 얻고 의식적으로 포착하고 생각한 것을 연결하는 작업이었다.


글을 쓰기 위해 부지런히 행동을 늘려가야 했지만 아무 외부 활동을 하고 있지 않았기에 강박적으로 다양한 매체를 보려 하고 사소한 생각까지 대부분 메모에 적어놓았다. 스스로 동기부여를 하며 만들어낸 짤막한 토막들을 꾸려놓아 어찌어찌 매주 글을 써냈으니 우선 자신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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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현재 총 22편의 글을 작성했다.

 

 

남들 앞에 내보이는 글을 쓰는 것이란 참 쉽지 않았다.

 

일시적으로 마이크를 쥐게 된 사람으로서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들을 생각해보기도 했다. 나름 나와 타인의 균형을 잡아야 한다는 생각을 꾸준히 상기시켰었는데, 작성한 글을 돌이켜보고 흠칫 놀랐다. 거의 모든 글이 ‘나’가 주어인 문장을 독식하고 있었다. 아, 나는 아직 지독히도 내 얘기를 해야만 했구나.


사실 당연한 흐름이기도 했다. 나는 ‘나’를 드러내지 않는 존재였다. 항상 드러내지 않았고, 감추었고, 하다못해 술에 완전히 취해 솔직한 얘기를 꺼내놓는 것 같지만 실은 멀쩡한 상태일 때의 내가 드러낼 수 있는 부분만을 드러냈다. 경계하는 자. 이것이 나였다고 생각한다. 무엇을, 왜 그렇게 경계해야 했는지는 의문이지만 말이다.


그렇게 스스로를 꾹꾹 담아온 나에게 아트인사이트와 함께한 4개월은 ‘나’를 소진하는 기간이었다. 아직은 글에만 불과하지만, 인생을 통틀어서 제법 많이 나를 노출한 기간이었다. 마감이라는 벽 앞에선 나를 노출하지 않을 수 없었으므로. 자의와 타의의 합작으로 이뤄낸 소중한 콜라보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아직 ‘나’는 완전히 바닥나지 않았다. 글을 마치고 있는 이 순간까지도 주어로서의 나를 포기하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다만 내가 비워진 만큼 타인을 받아들이고 싶다는 생각을 가장 진실한 마음으로 할 수 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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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마음은 여러 문화예술을 접하고 적어 내리면서 끊임없이 들었던 근본적인 물음에 답해야 할 때 느낄 수 있었다.

 

문화예술의 필요성을 묻는 말 자체가 어리석고 무엇보다 불필요하지만, 내 삶이 뿌리 없이 흔들려야 했을 때 먼저 탓하기 쉬운 건 그것이었다. 내 인생이 무의미한데 다른 대상에게서 자꾸 무엇인 갈 느끼고 의미를 찾아내야 하는 이상하고 부질없어 보이는 현상.


선택할 수 있는 현명한 방안은 문화예술을 포기하고 회의적인 굴레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의미를 찾고 채울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었다. 애써도 나 스스로가 절대 채워내지 못하는 부분을 무엇으로 채워야 할까. 답은 간단했다. 내가 아닌 다른 것, 다른 존재.


스스로 아무리 채워내는 것 같아도 그다지 생존의 이유와 의미를 찾을 수 없는 나날들이었다. 도무지 지난한 삶을 오래 가져갈 이유와 흥미가 생기지 않는 그런 날들. 지금 곱씹어보면 실체를 알 수 없는 공허함, 외로움, 무의미함은 다른 존재의 부재 때문에 있었던 것 같다. 힘겹고 지난하게 삶을 유지할 이유가 되는 그런 존재들. 나 혼자로서는 도저히 메꿀 수 없는 부분을 채울 가능성을 가진 그런 존재들.

 

그런 존재들이 없었다기보단 그들만이 채워낼 수 있는 공간을 인지하지 못한 것이 맞을 것이다. 이를 깊이 느끼고 앞으로 나의 사소한 일상을, 내 옆의 당연한 존재와의 만남을 계속 이어가고 싶다고 느꼈다. 아직 만나지 못한 먼 이웃들까지 포함하여. 그냥 그런 삶을 유지하기 위해 살아가고 싶다고 느꼈다. 부끄럽지만 나에겐 엄청난 발견이고 꽤 확실한 존재의 이유이자 용기다.


지금까지는 이해하더라도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 같다. 내가 아닌 무엇을 깊숙이 들인다는 것을. 이제는 그래도 좋음을, 아니 그래야만 한다는 것을 가장 절실하게 깨달았다. 결국 나를 알고 주변을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닌가. 내 삶의 대부분은 그렇게 가까운 곳에 존재하고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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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온 습관과 관성이 하루아침에 바뀔 것이란 기대는 하지 않는다. 여전히 숨기고 숨고의 연속일 것이다. 다만 이제는 조금은 내려놓고 편해지려고 한다. 감사하게도 그 정도의 신뢰를 쌓아온 친구들이 옆에 있기에. 그저 나의 한계 안에서, 내가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의 나를 보여주고 싶다. 있어 보이는 나 말고, 그냥 나를.


4개월이란 다소 짧은 시간이라고 느끼는데, 십수 년 동안 쌓여온 나란 벽을 허물겠다는 다짐을 한 것을 보면 정말 마법 같기도 하다. 난 변한 것 없이 그저 정기적으로 글을 써내야 했던 것일 뿐인데 자연스레 변화하고 있었다.


은연중에 계속 숨겨진 나를 발견했기에 그렇다. 근본에 가까운 ‘나’는 거창한 데에 있지 않다. 아주 사소해서 노력이 없으면 인지하지도 못하는, 그 작고 초라해 보이는 알맹이가 나였다. 길을 걷다가, 말을 하다가, 풍경을 보다가, 무엇을 먹다가 들었던 찰나의 사소한 생각, 그것이 바로 나였다. 그걸 놓치지 않고 잡아낼 수 있다면 점점 더 근원적인 ‘나’를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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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변화가 가능했던 주된 이유는 누구보다 자유롭게 문화예술을 향유하고 기록할 수 있는 자리를 제공한 아트인사이트였을 것이다. 지원서의 질문에서도, 활동 중에도 꾸준히 느낄 수 있는 것이 바로 ‘존중’이었다. 이토록 한 존재를 탄탄하게 존중할 수 있는 플랫폼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할 정도로 좋은 컨디션 속에서 자리할 수 있었다. 매번 말하듯이 소중하고 감사한 기회다.


또 앞서 이곳에서 활동한 후 기꺼이 나를 초대해준 친구에게도 무척 고맙다. 정돈되지 않은 나를 받아들여 준 거의 유일한 활동이었는데, 이것이 앞으로 있을 숱한 실패 속에서 완전히 나를 놓지 않게 할 수 있는 기억이 되지 않을까 예상해본다. 멋있는 그대에 걸맞은 앞날이 자리하길 바란다.


나 역시 이곳을 다른 이들에게 초대하고 싶다. 이곳은 당신이 당신으로 있어도 무사한 공간이다. 별로 힘들이지 않고 유영할 수 있는 곳이다. 나와 다른 이를 존중하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곳이다. 그렇게 속속들이 존재를 발견할 수 있는 그런 곳이다.

 

참 매력적이지 않은가.



[정해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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