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의 《APMA, CHAPTER FIVE》는 그동안 모아온 소장품을 꺼내 보여주는 자리다.
일곱 개의 전시실에 동시대 해외 작가와 한국 현대미술의 작업이 80여 점 흩어져 있고, 그래서 관람객은 일관된 메시지를 따라가기보다 제각각인 작품들 사이에서 자기 나름의 길을 만들게 된다.
내가 오래 멈춰 선 작품들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재료는 하나같이 우리 주변에 있는 익숙한 것인데, 완성된 결과는 어디서도 본 적 없는 낯선 무엇이 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작품 앞에서 나는 자꾸 아는 것에 빗대려 했지만, 그때마다 그 비유는 끝내 들어맞지 않았다.

알바로 배링턴, <하늘은 한계가 없다>, 2023
1전시실에서 처음 멈춘 작품은 콘크리트 슬래브와 베이비파우더, 각인된 거울 프레임이 뒤섞인 작업. 주변에 굴러다니는 재료들로만 만들어져서 작품이라기보다 생활의 한 조각이 떨어져 나온 것 같았지만, 그 조각들이 모인 결과는 생활의 무엇과도 닮지 않았다.
알바로 배링턴의 〈하늘은 한계가 없다〉였다.

사이 개빈, <무제(가지가 다듬어진 뽕나무)>, 2023
파란색 뽕나무 앞에서는 솔직히 기괴하다고 느꼈다. 실험으로 변형된 게임 속 몬스터 같았다. 가지 하나하나가 돌기처럼, 눈알이 박힌 것처럼 보였다.
사이 개빈의 〈무제(가지가 다듬어진 뽕나무)〉. 사람이 가지를 잘라 모양을 통제한 가로수라는 걸 떠올리면, 그 낯섦은 자연이 아니라 자연을 다루는 인간 쪽에서 오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가장 익숙한 가로수가 가장 기이한 형상으로 돌아온 셈이다.

카타리나 그로세 (b.1961), 무제, 2022

데릭 아담스 (b.1970), 계산서, 계산서, 계산서(데스티니스 차일드), 2023
빛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이런 모습일까 싶은 작품도 있었다.
수많은 빛이 모여 하나의 직선을 이루는 것처럼 보였다. 무지개 같으면서도 무지개는 아닌, 카타리나 그로세의 〈무제〉였다. 색이 입혀지지 않은 머리 형상 앞에서는 엉뚱하게도 미용실의 연습용 마네킹이 떠올랐다. 데릭 아담스의 〈계산서, 계산서, 계산서(데스티니스 차일드)〉다.
조각에 색이 있다면 이런 느낌이겠구나 싶으면서도, 끝내 미용실의 그것과는 다른 무엇으로 남았다.

백남준, <콘-티키>, 1995

백남준, <절정의 꽃동산>, 2000
이 미끄러짐이 가장 또렷했던 건 백남준의 〈절정의 꽃동산〉 앞에서였다.
TV 모니터 수십 대 사이에 식물이 놓인 광경은 도무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으면서도, 사실 모니터와 화초가 뒤섞인 우리 주변의 풍경이 원래 이렇지 않나 싶었다. 같은 작가의 〈콘-티키〉는 멀리서도 '그 유명한' 작품임을 알아봤다.
예술가가 거북선을 만들면 이렇게 만들었겠구나 싶어 웃음이 났다.

캐롤 보브, <침엽수림 프리즘>, 2025

이불 (b.1964), 크러쉬, 2000
물론 모든 작품이 이 결로 읽힌 건 아니다.
2전시실은 방 하나를 통째로 미니멀리즘에 내주고 있었다. 처음엔 이게 그렇게까지 중요한가 싶었지만, 도널드 저드의 양극 처리된 알루미늄이 빛을 반사해 조명에 색을 입히는 걸 보면서 단순한 형태가 공간 전체를 바꾸는 방식을 조금 알 것 같았다.
금속이 이렇게 구겨질 수 있다는 데 놀란 캐롤 보브의 조각도, 이불의 〈크러쉬〉가 보여준 크리스털로 빚은 영혼 같은 고요함도, 익숙함과 낯섦이라는 틀 바깥에서 제 나름의 인상을 남겼다.
전시장을 나오며 남은 건, 작품마다 무언가에 빗대려다 번번이 실패한 기억이었다. 미용실 마네킹을, 게임 속 괴물을, 현미경 속 빛을 떠올렸지만, 어느 것도 들어맞지 않았다. 어쩌면 그 빗나감이야말로 이 작업들이 의도한 자리인지도 모른다.
익숙한 재료를 끌어다 쓰되 익숙한 무엇으로는 돌아가지 않는, 그 경계에서 작품은 가장 오래 시선을 붙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