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틴 대니얼 크리튼 감독의 <숏텀 12>는 청소년들이 짧은 기간 머물다 가는 위탁 보호소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다. 어머니로부터 학대를 받았던 마커스, 아버지의 폭력을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제이든, 그리고 인형을 뺏기곤 한동안을 침대에만 누워 있는 새미까지.
아이들은 서로 험한 말을 내뱉고 때로는 무단으로 뛰쳐나가기도 하지만, 보호소는 여전히 아이들이 세상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이기도 하다.
브리 라슨이 맡은 주인공 그레이스는 위탁 보호소에서 일하는 상담사로, 저마다의 결핍을 안고 모여든 아이들을 보살피기 위해 온 힘을 다한다.
흔히 타인을 보살피는 사람은 단단하고 결점 없는 사람일 것이라 짐작하곤 한다. 그러나, 극 중 그레이스의 모습은 이와는 사뭇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그녀는 보호소 내의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겪은 학대의 상처를 안고 있다. 그레이스 역시 가장 가까운 이에게조차 속마음을 털어놓지 못하는, 자신의 과거를 마주하는 것이 서툰 사람일 뿐이다.
어쩌면 그녀의 위로가 아이들에게 닿을 수 있었던 건, 그레이스가 완벽한 인생을 살아왔기 때문이 아닐지도 모른다. 오히려 그들과 같은 외로운 길을 지나왔기 때문일 것이지 않을까.
거울 속 모습, 그 너머에 담긴 진실을 마주하는 용기
보호소를 떠나기 전, 마커스는 어머니에게 맞은 흔적을 감추려 길러왔던 머리를 마침내 밀어낸다. 머리를 잘라낸 그는 한동안 거울을 보지 못하다가, 이내 눈물을 터뜨리며 자신을 직시한다. 속에 담고 있던 상처를 밖으로 꺼내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냈을지.
<숏텀 12>는 이렇듯 인물들이 각자의 상처를 마주하는 모습을 통해 자기 자신 앞에 당당히 서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보여준다.
제이든 역시 자신의 상처를 기꺼이 드러내어 자신에게 보여주는 그레이스를 통해, 자신을 학대하던 아버지에게서 벗어나기로 결심한다. 영화 속 문어와 상어 이야기 메타포처럼, 누군가에게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촉수를 내어주던 이들은 서로의 아픔을 공유하며 비로소 자신의 이름을 찾기 시작한다.
불완전한 이들의 거처, '숏텀 12'
누구나 엄청난 깨달음을 얻어 한순간에 영웅적으로 성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상처를 안고 살아가다 어느 날 문득, 숨겨왔던 나 자신과 마주할 뿐인 게 아닐까. 〈숏텀 12〉는 바로 그 지점에 집중한다.
영화가 다루는 이들은 서툴게나마 서로의 손을 잡고 그 어두운 터널을 통과한다. 그 과정은 편안하지도, 유쾌하지도 않다.
그렇지만, 극 중 제이든이 그레이스의 고백을 듣고 현실에서 벗어나기로 다짐하듯 누군가에게는 또 다른 시작점이 될 것이다. 사회적으로 소외된 이들이 각자의 상처를 직면하고 서로를 보듬는 모습은, 우리에게 세상은 여전히 따뜻할 수 있다는 희망을 건넨다.
영화는 우리에게 말한다. 거울 속의 자신을 똑바로 볼 수 바라볼 수 있는 용기는, 자기 구원을 넘어 타인에게 닿는 가장 거대한 위로가 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