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라이스보이 슬립스의 그 장면을 간직하고 싶다 [영화]

거울을 보는 동훈과 데이비드
글 입력 2023.07.26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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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영화의 장면을 간직하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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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그저 손으로 눈만 밀어올려 보는 게 다였던 동현은 이제 염색도 하고 푸른 렌즈도 낀다.

 

 

 

데이비드가 된 동현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는다. 거울 속 소년은 관객이 보았던 모든 것이 동글동글한 어린 동현과는 다르다. 동현의 청년기가 나오는 첫 장면이다. 노랗게 머리를 칠하고 푸른 렌즈를 낀다. 그는 이제 데이비드가 되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는 완성되었다.

 

완성되었다는 것은 아마 그가 이제 캐나다의 다른 사람들과 무늬라도 비슷한 누군가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서구권에서 사는 동양인 특유의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없는 눈빛. 표정. 표정을 잃은 것인가? 아니면 원래 동양인이어서 그런 것인가?

 

둘 다일 것이다. 데이비드가 엄마에게 조잘조잘 자신이 겪은 인종차별을 이야기하지 않게 된 지는 오래다.

 

 


다르게 생겨서 외롭다


 

한국과는 문화권이 아주 많이 다른 서구 국가에 살고 있는 입양 동포들의 인터뷰를 보면, ‘다른 사람들이 나와 똑같이 생겨서 기분이 좋다’ 혹은 ‘기분이 이상하다’고 많이들 이야기한다. 그 이상하다는 기분은 낯설어 불쾌한 감정이라기보다는 긍정적이고 산뜻한 느낌에 가깝다.

 

다르게 생겼다는 것은 막상 다르게 생긴 주체인 ‘나’에게는 크게 차이를 일으키는 사실은 아니나, 타인이 나를 보는 시선에는 하늘과 땅 사이의 간극만큼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타인의 변화는 나의 삶의 상당한 부분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그래서 입양인들의 ‘다들 나랑 똑같이 생겼다’는 말에는 꽤 많은 상처와, 당황스러움과, 난감함과 기타 등등 복잡한 감정과 시간이 섞여 압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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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앞 장면들 사이에는 다르게 생겨서 겪었던 수많은 상처들이 숨어 있다.

 

 

 

동현에서 데이비드로, 그리고 다시 집으로


 

관객들은 거울 앞에 선 소년을 처음 마주하는 이 장면에서 바로 자신의 동글동글한 눈을 쪽 찢어보는 아이의 모습을 기억해 낸다. 계속해서 사회의 시선이 아닌 거울 속 자신만을 바꿀 수밖에 없는 행위의 반복은 동현이라는 캐릭터가 살아온 오랜 시간 동안 그가 겪은 인종차별이 차곡차곡 쌓여왔음을 보여준다. 국가와 사회가 자신을 거부하는 것을 개인의 힘으론 쉽게 바꿀 수 없다는 데서 오는 무력감과 해묵은 상처를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런 동현이 한국에 가서는 ‘한국화’된다. 사실 문화적으로는 캐나다 사람에 더 가까운 그가 아버지의 군복을 입고 한국 군인처럼 삭발하는 것이 참된 자신의 모습을 찾은 것으로 생각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뿌리인 아버지의 흔적을 찾았고 그런 흔적을 따라가 보는 행위를 통해 그가 자신의 근원에 최대한 가까워진 것은 확실하다.

 

그와 그의 엄마 소영은 한국에 돌아왔고, ‘데이비드’는 가계도를 어느 정도 완성할 수 있게 됐다. 그래서 ‘동현’은 이제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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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스보이 슬립스>는 이민자의 외로움에 집중하기는 하지만, 주인공들을 한의 정서에 무너지는 모습으로만 그리진 않는다. 영화의 절정에 다다를 때까지만 해도 소영은 갈등하며 무너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의 고민과 묵은 감정은 해소된다.

 

그리고 그 옆에서 그것을 지켜보는 동현-데이비드가 있다. 둘은 서로에게 의지할 수 있음을 끝내 깨닫게 된다. 삶은 언제나 비극적이고, 아마도 그것은 더 안 좋은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지만, 그래도 그들은 서로라도 붙잡을 수 있다는 걸 깨닫는다.

 

그래서 <라이스보이 슬립스>의 이 장면을 간직하고 싶다.

 

 

*이 글은 인디스페이스의 ‘비평가 지원 사업’을 통해 관람권을 지원받아 감상 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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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나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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