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연진들 크레딧이 나오는 오프닝 시퀀스 마지막에 introducing 린제이 로한이라는 자막을 보고 오래된 영화라는 게 실감이 났다. 하이틴 영화 추천 글에 무조건 나오는 <퀸카로 살아남는 법> 주연인, 누구나 다 아는 배우 이름 앞에 introducing이라는 단어가 붙다니.
<페어런트 트랩>은 <두 로테>라는 독일 동화 원작에 이미 1961년에 <헤어졌을 때와 만났을 때>라는 영화를 리메이크한 영화였다.
여자아이들만 있는 캠프로 잘못 온 남자아이라든지, 애니를 골려주려다 캠프장과 그 딸이 당한다든지, 애니인 척 영국에 간 할리가 공중전화로 미국에 있는 애니에게 전화하는 걸 밖에서 듣고 있던 할아버지 등 거의 모든 요소가 동화 같다고 느꼈는데 진짜 동화였을 줄 몰랐다.
닉은 포도 농장 소유주에 와인 제조 일을, 엘리자베스는 영국에서 유명한 드레스 디자이너로 각자 할리와 애니를 키운다. 이혼 후 혼자 아이를 키우는 싱글맘이 자기 이름을 건 드레스 브랜드 디자이너라는 설정이 신선하고 멋있었다. 그냥 디자이너도 아니고 그리스 공주가 드레스를 맞출 만큼 유명한 디자이너로, 런던 중심지에 단독주택을 소유할 부까지 있다. 그런 역할을 나타샤 리처드슨이 맡아 더 귀품이 흘러넘치는 것 같았다. 사고로 인해 이런 배우를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게 아쉽게 느껴졌다.
<애봇초등학교>에서 멜리사로 나오는 리사 앤 월터가 여기서는 할리의 유모 체시로 나오는데 괜히 아는 사람을 만난 것처럼 반갑게 느껴졌다.
체시는 애봇초 멜리사처럼 유쾌하면서도 정이 많은 역할로, 할리인 척 미국 집으로 온 애니를 할리의 아빠보다 먼저 알아챈다. 체시가 애니를 알아보고 그리움, 감격이 다 느껴지는 대사를 할 때, 할리가 애니인 척 영국 집으로 갔을 때 할아버지 냄새를 기억할 거라면서 품에 안기는 장면 등 내가 나이를 먹어서 눈물이 나는 건지 누가 봐도 눈물이 나오는 영환지 모르겠지만 중간중간 찡한 장면이 있었다.
두 사람의 재결합은 순탄하지 않다. 닉이 포도 농장 홍보를 위해 고용한 홍보 전문가 메레디스는 닉의 재산을 노리고 접근한다. 예쁘고 어린 여자가 적극적으로 대시하면 안 넘어갈 사람이 어디 있을까. 닉도 그런 메레디스에게 빠지고 여름 캠프에서 돌아온 할리(애니)에게 재혼 의사를 드러낸다.
당연히 영화 전개상 애니는 메레디스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고, 메레디스도 애니와 있을 때는 닉 앞에서 내숭을 떨던 모습과는 다른 모습으로 대한다. 메레디스는 닉과 결혼하면 바로 눈앳가시인 애니를 멀리 떨어져 있는 기숙 학교에 보내겠다고 이를 가는 등 전형적인 악역으로 나오고 애니와 할리는 메레디스를 골탕 먹이는데 조금 과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거의 30년 전 영화인 걸 생각하면 귀여운 수준이지만.
헤어진 부모님을 다시 이어주기 위해 초등학생 두 명이 뒤에서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귀여웠던 영화였다. 이혼 가정을 흔히 생각하는 이미지로 그리지도 않고, 두 사람이 왜 헤어졌는지에 대해 깊게 설명이 나오지 않는 것도 좋았다.
첫 데뷔 영화에서 쌍둥이 역할을 맡아 1인 2역 연기를 하는데 그냥 하는 것도 아니고 실존 인물처럼 자연스럽게 한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할리와 애니가 서로인 척하고 집으로 돌아갔다가 부모님과 다 같이 만나는 장면에서는 누가 원래 애니고 할리인지 헷갈릴 정도로, 진짜 쌍둥이가 연기하는 걸 보는 것 같았다. 저런 외모에 이렇게 똑 부러지게 연기를 하는 아역이라면 어느 시대에 데뷔를 해도 바로 주목받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
자극적인 콘텐츠에 지칠 때 가끔 이런 정석적인 가족 드라마 장르로 환기 시키는 것도 좋은 것 같다. 원래도 같은 영화를 여러 번 보는 걸 좋아하긴 하지만 <페어런트 트랩>은 주기적으로 생각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