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이 풍성한 거리를 거닐면 만개했다고 기뻐하고, 식탁 위 가득한 음식을 보면 푸짐하다며 감탄한다. 스크린이나 방송 화면에 날씬하고 예쁘거나 잘생긴 연예인을 보면 좋아하지만, 조금이라도 부피감이 커지면 살쪘다고 비난한다. 연예인뿐만 아니라 평범한 사람도 살집이 있으면, 좋아하지 않는다. 건강에 좋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마른 몸을 추구하는 걸 보면 핑계일 뿐이다.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페르난도 보테로展은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전시다.

그는 살집이 있는 인물을 뚱뚱함이 아니라 풍만하고 여유로운 모습으로 바라봤다. 인물뿐만 아니라 동물, 식물 등 생명력이 있는 것을 모두 부풀려서 그렸다. 이러한 그의 화풍은 ‘보테리즘’이라는 하나의 양식으로 인정받았고, 작가는 볼륨의 거장으로 자리 잡았다.
도슨트의 설명에 따르면, 그의 작품에는 생명력이 깃들어 있으며, 부풀려서 그린 인물을 통해인간의 위대함을 표현했다고 한다. 보고 있으면 안정감과 따뜻함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도슨트의 설명을 다 들은 후, 작품을 처음부터 천천히 감상해 봤다. 살집이 있는 모델에게서 미적 아름다움을 어디서 찾아야 할지 몰라 난감했다. 혼란이 가라앉자 풍만한 모델들의 몸에 시선이 오래 머무르게 됐다. 이내 보이지 않던 게 보였다. 균형과 안정이었다. 포동포동한 살집에서는 푸근함마저 들었다.
안정감과 따뜻함이 느껴진다는 도슨트의 말에 비로소 공감했다.
초상화를 감상하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고는 제자리에서 혼자 빙 돌았다. 전시된 작품들을 쭈욱 훑어보았다.
하나같이 풍만한 몸매를 드러내고 있는 작품 속 인물들을 한눈에 담으며 신선한 자극을 느꼈다. 지금껏 본 초상화는 누가 봐도 날씬한 몸을 소유한 인물이 모델이었다. 그러나 이 전시에서는 초상화는 물론, 모든 작품에서 날씬한 몸은 찾아볼 수 없었다. 동물과 식물, 과일과 채소는 모두 풍선처럼 부풀려 있었다.
특히 눈에 띄었던 부분은 인물들의 눈빛이었다. 그 눈빛에는 부끄러움이나 불만족스러움은 없었다. 자기 몸과 얼굴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있었다. 그 눈빛을 보고 있으니, 굵직한 몸의 선이 아름답게 보였다.
‘뼈 말라’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마른 몸을 추구하는 분위기는 과열되고 있다. 심지어 인간의 체형을 3개의 카테고리로 단정지어 분류하는 현상도 일어나고 있다. 자신의 체형을 분석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원하는 카테고리에 속하고 싶어 한다. 자신의 외면적인 모습을 누군가가 정해놓은 틀에 맞추려 하고, 타인의 평가에 민감하다. 덧붙여서 외면에는 관심이 많으면서 내면은 관심 밖이다.
반면, 페르난도 보테로의 작품 속 인물들은 누군가의 평가에 의존하지 않고, 자기 모습을 있는 그대로 사랑했다. 자기 몸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거울 앞에서도 시선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보고, 당당한 눈빛을 잃지 않았다. 내면의 여유와 풍요 그리고 자기 확신은 외면에 그대로 드러났다. 그래서인지 생동감과 아우라가 느껴졌다. 아름다웠다.
페르난도 보테로는 진정으로 인간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모든 작품에 어떤 얼굴이든, 몸이든 아름답게 보는 작가의 시선이 느껴졌다.
그날, 평일 낮인데도 불구하고 전시장은 관람객들로 꽉 차 있었다.
이는 우리가 페르난도 보테로의 시선을 갈망하고 있다는 증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