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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난도 보테로의 작품이 11년 만에 다시 한국을 찾았다. 이번 전시는 콜롬비아 출신 거장 페르난도 보테로의 회화와 조각, 드로잉 등 총 112점의 작품을 통해 그가 구축해 온 독자적인 조형 세계를 선보인다.

 

보테로의 작품에는 도드라진 특징이 있다. 하나같이 풍만하고 둥글며, 화면을 가득 채우는 압도적인 볼륨감을 지녔다는 것. 그래서 그의 그림은 직관적이다. 관람객은 복잡한 해석보다 먼저 둥근 형태가 주는 푸근한 인상을 마주하게 된다.


툭 건드리면 금세 터질 듯한 풍선 같은 곡선을 따라 시선을 옮기다 보면, 그의 작업에서 드러나는 양감의 매력이 더욱 선명하게 다가온다. 캔버스 위에 가득 찬 형태는 크고 무겁지만, 화면 전체는 오히려 균형감 있게 정돈되어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풍부하고 대담한 색채와 안정감 있는 구도를 통해 화면 속 과장된 볼륨감조차 하나의 균형으로 완성된다.


이러한 느낌은 전시장 한편에서 상영되고 있는 보테로의 작업 영상에서 잘 드러난다. 보테로는 그림을 '모든 요소의 균형과 조화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영상 속 그는 형태와 색, 구도를 끊임없이 조율하며 자신만의 질서를 만들어간다.

 

거대한 볼륨감 속에서도 안정감이 느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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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는 총 여섯 개의 섹션으로 구성되어 있다.

 

미술사 거장들의 명작을 자신만의 언어로 재해석한 '변주(Versions)', 그의 정체성과 정서적 뿌리를 보여주는 '라틴 아메리카(Latin America)', 종교적 상징을 인간적인 시선으로 풀어낸 '종교(Religion)', 색채와 구성의 미학이 돋보이는 '정물(Still Life)', 유년 시절의 기억과 연결된 '투우(Bullfight)', 그리고 인간 군상을 은유적으로 담아낸 '서커스(Circus)'까지. 서로 다른 주제 같지만, 전시장 내부를 누비다 보면 이내 ‘보테로다운 세계’라는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는 걸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변주(Versions) 섹션은 익숙한 명작들을 색다르게 감상하는 재미를 선사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고전 회화가 보테로의 손길을 거치며 특유의 풍만한 곡선과 부피감을 입고 전혀 다른 분위기의 작품으로 재탄생한다.

 

원작의 구도와 특징은 유지하면서도, 그 안에 보테로만의 유머와 조형 감각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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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 아메리카(Latin America) 섹션에서는 강렬한 원색을 중심으로 한 보테로의 정서가 두드러진다.

 

화면은 화려하고 생동감 넘치지만, 인물들은 대부분 무표정한 얼굴로 정면 너머를 응시하고 있다. 그 미묘한 대비를 바라보고 있으면 어느 순간 전시장 안에는 작품과 나만 남겨진 듯한 감각이 찾아온다. 어두운 전시관 조명 아래, 작품과 관람객 사이에는 묘한 정적마저 감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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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기억에 남는 공간은 단연 마지막의 ‘서커스(Circus)’ 섹션이었다.

 

특히 실제 서커스장 안으로 들어가는 듯한 공간적 연출은 관람의 몰입감을 높인다. 공간에 들어서면 보테로의 <죽마 위의 광대들(Clowns on Stilts)>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작품이 주는 실재감과 규모 앞에서, 왜 사람들이 직접 전시장을 찾는지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된다.

 

["서커스는 보편적 주제이자 시각적으로 가장 표현적인 주제이다. 서커스에서는 그 어떠한 시도도 과하지 않다. 서커스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서커스는 놀랍도록 신기한 일상이자 이와 분리된 세계이다."] - 페르난도 보테로

 

서커스 섹션은 보테로의 회화적 특징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나는 공간이기도 하다. 동시에 서커스라는 공간 자체가 지닌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누구든 과장된 행동을 해도 이상하지 않은 곳, 환상과 유희가 자연스럽게 허용되는 세계. 보테로는 그 안에서 인간의 우스꽝스러움과 욕망, 삶의 연극성을 특유의 유머와 따뜻한 시선으로 풀어낸다.

 

과장된 형태는 결코 조롱으로 흐르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이라는 존재를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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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의 마지막에서 이 문장을 마주하니, 지금까지 봐왔던 보테로의 작품들이 하나로 이어지는 느낌이다. 그의 그림 속 인물들은 과장될 만큼 풍만하고 익살스럽지만, 그 안에는 삶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 담겨 있다. 작품을 따라가다 보면 그가 예술을 대하는 태도 역시 자연스럽게 전해진다.


전시장 내부에 마련된 영상 속 노년 보테로의 두 눈동자에서는 여전히 작업에 대한 반짝거리는 열정이 느껴졌다. 실제로 그는 지난 2023년, 향년 91세로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도 작품 활동을 놓지 않았다고 한다. 이처럼 이번 전시는 단순히 그의 작품 세계를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평생을 예술에 바친 한 거장의 태도와 시간을 함께 돌아보게 만든다.


그래서인지 전시를 다 보고 나온 뒤에도 그의 작품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둥글고 커다란 형태, 강렬한 색감과 균형까지. 보테로의 작품을 바라보고 있는 순간만큼은 복잡한 생각보다 ‘보는 즐거움’ 자체에 더 집중하게 된다.

 

아마 보테로가 말한 예술의 즐거움이 여기에 있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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