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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살목지' 200만 돌파, 넷플릭스 '기리고' 글로벌 4위 - 공포를 소비하는 계절 [문화 전반]

왜 우리는 기꺼이 무서워지는가

by 정가은 에디터
2026.04.30 12:56

 

 

여름이 돌아오고 있다. 그리고 그 계절과 함께, 귀신도 돌아왔다.

    

극장가에서는 〈살목지〉가 개봉 20일 만에 200만 관객을 넘어섰다. 손익분기점(80만 명)의 두 배를 훌쩍 뛰어넘는 수치다. 스트리밍 시장에서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기리고〉가 공개 사흘 만에 글로벌 랭킹 4위, 13개국 1위를 석권했다. 매년 이맘때면 벌어지는 풍경이지만, 올해는 유독 뜨겁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기꺼이 두려워하려 하는가.

 

 

 

공포에 열광하는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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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목지〉는 로드뷰(거리보기) 서비스 직원들이 심령 스팟으로 소문난 저수지를 재촬영하러 갔다가 검고 깊은 물속의 무언가를 마주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선재 업고 튀어〉의 김혜윤을 주연으로 내세운 30억 원짜리 중저예산 영화지만, 신인배우들의 열연이 몰입감을 극대화하며 19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달성했다.

 

넷플릭스 〈기리고〉는 결이 조금 다르다. '소원을 들어주는 앱'이라는 디지털 세대의 언어로 공포를 번역했다. 의문의 애플리케이션 저주로 죽음을 예고받은 고등학생들이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8부작으로, 학원물·오컬트·추리를 한 데 엮은 구성이 신선하다는 평이 쏟아졌다. 성적, 질투, 첫사랑 같은 10대의 감정이 저주의 근원이 된다는 설정은 MZ 세대의 정서를 날카롭게 파고들었고, 공개 직후 전 세계 시청자를 단번에 사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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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만든 공포는 시대를 남긴다. 이 흥행은 갑자기 나온 것이 아니다. 한국 공포 장르가 쌓아온 굵직한 족적 위에 서 있다.

 

나홍진 감독의 〈곡성〉(2016)은 아직도 회자되는 이정표다. 한 외지인의 출현으로 산골 마을이 서서히 붕괴되는 이 영화는 무서움과 슬픔과 혼란을 한꺼번에 빚어냈고, 칸 국제영화제에서도 주목받았다. '악이란 무엇인가'라는 철학적 질문을 공포의 형식으로 던지며, 한국 호러가 단순한 오락을 넘어 장르 예술로 승격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2024년 장재현 감독의 〈파묘〉는 1,200만 관객을 동원하며 그 계보를 이었다. 김고은, 이도현, 최민식, 유해진이 뭉친 이 영화는 무속 신앙과 역사적 상흔을 정교하게 결합했다. 단순히 귀신이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라, 땅속 깊이 묻힌 원한과 민족의 기억이 현재를 침범하는 방식을 다루며 공포와 서사의 밀도를 동시에 끌어올렸다.

 

잘 만든 공포는 흥행한다. 이 장르가 반복적으로 증명해온 공식이다.

 

 

 

더위를 날리는 귀신 - 피서의 논리


 

그렇다면 왜 하필 여름인가.

 

공포영화와 여름의 결합은 마케팅의 산물이 아니다. 오래된 인간의 감각적 기억이 깔려 있다. '여름에 귀신 이야기를 들으면 더위가 가신다'는 속설은 과학적으로도 근거가 있다. 공포 반응이 일어나면 아드레날린이 분비되고 혈관이 수축되며 피부 온도가 일시적으로 낮아진다. 스크린 속 귀신이 냉방기 역할을 하는 셈이다. 그러나 그게 전부라면, 냉면 한 그릇으로 충분할 것이다. 진짜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


심리학에서는 공포영화 관람을 '흥분 전이 이론(Excitation Transfer)'으로 설명한다. 관객은 두렵지만, 동시에 그 두려움이 가짜라는 사실을 안다. 살목지의 물귀신이 내게 닿을 리 없고, 기리고 앱의 저주가 내 폰에 뜰 리 없다. 좌석에 앉은 나는 안전하다. 바로 그 '알고 있음'과 '그럼에도 떠는 몸' 사이의 간극이 쾌락의 원천이다.

 

공포가 절정에 달했다가 위협이 사라지는 순간, 팽팽하게 당겨졌던 긴장이 한꺼번에 풀리며 강렬한 안도감과 쾌락으로 바뀐다. 롤러코스터를 타는 사람이 진짜 추락을 원하지 않듯, 공포영화 관객이 원하는 것은 귀신이 아니라 귀신을 마주한 감각이다.

 

위험은 시뮬레이션되고, 반응만 진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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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공포의 사회적 기능도 더해진다.

 

일상에서 우리는 좀처럼 소리를 지르지 못한다. 감정을 있는 그대로 터뜨리는 일은 어딘가 민폐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극장만큼은 다르다. 스크린 위에서 무언가 튀어나오는 순간, 수십 명이 동시에 비명을 지른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고, 누구를 의식할 필요도 없다.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드문 공간이다. 그 찰나의 집단적 반응 속에서, 평소 풀지 못했던 긴장과 스트레스가 한꺼번에 빠져나간다. 손을 잡고, 어깨를 움켜쥐고, 낯선 옆자리 사람과 눈이 마주쳐 함께 웃는 순간 공포는 하나의 유대가 되고, 감정은 비로소 공유된다.


한국 공포에는 서양 호러에서 찾기 어려운 고유한 정서가 있다. 원한, 억울함, 공동체의 비밀. 귀신은 살인마가 아니라 풀리지 않은 상처의 화신이다. 무섭기에 슬프고, 슬프기에 더 무섭다. 전통 무속 신앙, 산과 물의 신화적 서사, 현대 도시와 뒤엉킨 고대의 금기들이 더해지면 세계 어느 나라도 복제하기 어려운 한국만의 공포의 질감이 탄생한다.

 

 

 

올 여름에도, 어김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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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은 가장 원초적인 감각이다. 심장이 뛰고, 피가 흐르고, 신경이 곤두선다. 무감각해진 일상에서 공포는 역설적으로 우리를 깨운다.

 

귀신들은 올여름에도 어김없이 극장과 스크린을 채울 것이고 사람들은 기꺼이 또 그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갈 것이다. 더위도, 불안도, 그 순간만큼은 잠시 옆으로 밀려난다. 그게 우리가 공포에 열광하는 이유다.

 

다만 집에 혼자 돌아가는 길에는 한 번쯤 뒤를 돌아보게 되고, 샤워 중에는 눈을 오래 감지 않게 될것이다. 그건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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