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종종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된 것 같은 순간을 만난다.
해야 할 일은 많은데 손이 움직이지 않을 때, 누군가와 비교하며 자신이 한없이 작아질 때, 혹은 하루를 버텼다는 사실 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 같은 날.
그럴 때 우리는 스스로에게 말한다.
“나는 지금 아무 가치도 없어”
쉬는 날 도파민 자극을 위해 넷플릭스 신작을 내려보다 제목부터 눈길을 사로잡는 작품을 보았다. 이거 내 얘긴가?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구교환, 고윤정이 주연으로 나오는 드라마는 주변의 성공한 친구들 사이에 소외감을 느끼는 인물이 열등감과 시기 질투로 괴로워하는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이십 년째 영화감독의 꿈만 안고 가는 동만 역을 맡은 구교환 배우를 보며 모습이 어딘지 나와 닮아 있다고 느꼈다. 잘 풀리지 않았으니 누군가에게 잘 보일 필요도 없는데 평생 해온 게 이거밖에 없어서 비슷한 일은 하고 살고 있는 나…….
ㅡ이거 완전 내 모습인데?
마음에 잽을 날리다가 묵직하게 치는 대사 한 방을 듣고 얻어맞은 것처럼 마음이 저릿했다.
극 중 기억나는 대사를 적어 보았다.
"내 인생이 왜 네 맘에 들어야 되는데요?"
“잘나서 나를 증명할 수 없을땐, 망가져 나를 증명한다.”
알고 보니 대사로 모두의 공감을 사는 박해영 작가의 작품이었다.
아르투어 쇼펜하우어는 인간의 삶을 결핍과 욕망의 반복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원하고, 이루지 못하면 고통을 느끼며 이루고 나면 또 다른 것을 원한다. 만족은 짧고, 공허는 길다. 그렇다면 무가치하다고 느끼는 순간은 비정상적인가? 아니다. 오히려 너무도 자연스러운 상태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우리는 왜 자연스러운 감정을 곧바로 실패했다고 규정해버릴까?
프리드리히 니체는 인간은 스스로 가치를 만들어야 하는 존재라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타인이 만든 기준 안에서 자신을 평가한다. 연봉, 속도, 성장, 결과. 기준의 척도에서 벗어나는 순간 우리는 스스로를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규정한다. 그리고 그 판단은 생각보다 쉽게 그리고 깊게 자기 자신을 잠식한다. 그러나 한 번쯤은 이런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하루, 숨만 쉬며 겨우 버틴 하루는 정말 가치도 없는 시간일까.
우리가 위로받는 순간을 떠올려 보면 답은 의외로 명확하다. 누군가의 성공담이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일상에서 버틴 이야기를 들으며 위로를 받을 때가 있다. 완벽하게 해낸 백만장자의 일대기보다 어설프더라도 순간을 이겨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 힘이 솟는다. 그 이유는 그 모습이 나와 닮아 있기 때문이다.
무가치함을 느낀다는 건 이미 어떤 기준을 붙잡고 있다는 뜻 아닐까. 그리고 기준을 의심하기 시작하는 순간 다른 질문이 시작된다. 나는 무엇으로 나를 증명해야 하는가.
어쩌면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가 우리가 도달해야 할 지점인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해내지 못한 날에도 산책을 하고, 친구를 만나고, 책을 읽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한 상태라고 인식되는 것. 그 지점에 가까워질수록 무가치함은 결핍이 아니라 여백으로 바뀔 것이다.
삶이 숨을 쉬는 순간은 대게 비어있는 곳에서 시작되므로. 시간은 물리적으로 사라지지만 다음 선택을 위한 공간으로 남는다. 그러니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의 날들은 무가치한 하루가 아니라 아직 이름 붙지 않은 채 남아있는 어떤 시간, 즉 무가치함의 가치로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