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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우리는 이제 정희를 - 정희 [공연]

연극 <정희>

by 차승환 에디터
2026.04.23 12:31

 

 

우리는 어떤 한 사람을 온전히 알게 될 수 있을까. 누군가를 안다는 것은 그 누군가가 드러낸(혹은 드러난) 삶의 일면까지만 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누군가를 온전히 안다는 것은 그가 자신의 모든 면을 드러냈다는 전제 아래서 가능한 것이며, 만약 그가 세상에 드러내지 않은 어느 한 면이 존재한다면, 우리는 그 사람을 조금만 아는 것이 아니라 전혀 모르는 것이다. 우리는 서로를 알면서 모르고, 안다고 믿었던 만큼 끝내 모른다. 어느 한 사람을 알기 위해 무지의 문턱을 조심히 넘어가면서, 우리는 마침내 그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을 뿐이다.

   

연극 <정희>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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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통해 먼저 세상에 드러났으나, 연극 무대 위의 정희(오연아)는 분명 우리가 모르는 인물이다. 삶이란 원래 먹고, 싸고, 청소를 하고, 빨래를 널고 개는 일들의 연속일 텐데, 정희는 그토록 뻔한 일들을 반복하며 사람으로 살아야 하는 게 참 귀찮다고 되뇌며 잠에 든다. 동네 술집 ‘정희네’의 사장으로서 술을 마시고 사람을 만나는 일로 하루를 보내는 정희는 유쾌하며 천진하기까지 한데, 그런 그녀가 인생의 소중함을 부정하며 하루를 마감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당혹감이다. 반복컨대 우리는 불 꺼진 ‘정희네’의 진짜 주인인 정희를, 엉망으로 술에 취하거나 공허한 표정을 짓거나 아직은 망가지지 않았다며 스스로를 다독여야 하는 정희를 모른다는 것. 정희를 조금 더 알기 위해서 우리는 과거와 현재가 교차되는 무대의 시간을 천천히 따라가기 시작한다.


학창시절 유일한 가족이었던 할머니를 여의고, 어린 정희(권소현)에게 남은 것은 오랜 친구 동훈과 상원(이강우)이다. 너무 적은 것을 가졌던 만큼 정희에게는 그들과의 관계가 절실하게 소중했을 테지만, 그녀의 연인이 된 상원이 갑작스레 속세를 떠나 불교에 귀의하면서 그녀의 삶에는 메울 수 없는 구멍이 생겨나고 만다. 술과 사람을 아무리 부어도 그 텅 빈 구멍이 도저히 메워지지 않아서, 차라리 상원이 곁에 존재했던 과거의 어느 시간을 향하고 싶은 마음으로, 정희는 어느 밤이면 가게의 불을 끄고 퇴근했던 길을 그대로 되돌아 다녀오는 것이다. 다녀와 불을 켰을 때 20년째 여전히 비어있는 공간을 보면서 정희의 삶은 끝내 귀찮아지고 만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놓은 듯 허탈해 보이는 정희의 귀찮음은 오히려 삶을 붙잡으려는 간절함처럼 느껴진다.


오래된 건물인 탓인지 술집 ‘정희네’의 수도가 터지고 조명이 말썽을 부리자 정희는 가게를 수리하기로 결심한다. 정희의 가게를 수리하기 위해 젊은 목수 가람(허영손)이 찾아온다. 사람이 찾아왔을 때 정희가 가장 먼저 하는 것은 여전히 차나 음료를 대접하는 일. 정희는 혼자 있을 때의 정희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시종 유쾌한 태도로 가람을 대한다. 정희의 사무적 필요는 깔끔하고 신속한 건물의 수리지만, 그녀의 인간적 필요는 구멍 난 마음의 수리일 테다. 타인과 조우했을 때의 명랑한 태도는 그녀의 마음이 아직 완전히 무너지진 않았으므로 수리가 가능하다는 증거일 것. 낯선 타인에게조차 언제든 호의와 친절을 베푸는 정희와, 그녀에게 성실과 다정으로 화답하는 가람이 함께 하는 며칠간의 망치질은 조화로운 음악처럼 잔잔한 울림을 만들어낸다.


가람과 함께 낡은 가게를 고치고 새로 꾸미면서, 또 묘하게 자신의 어떤 면을 닮은 지안과 함께 지내게 되면서 정희의 삶은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다. 상원이 곁을 떠나며 그녀에게 준 상처는 여전히 불길처럼 강한 통증으로 남아있지만(그래서 맞불―불을 지름으로써 불같은 통증을 서둘러 꺼버리고 싶은 충동까지 주기도 하지만),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짠’할 수 있는 다른 이들이 곁에 있다는 사실로 인해 그녀의 삶은 더 이상 짠하지 않게 됐다. 누구나 다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한 사람만을 위한 구멍이 있는데, 그것이 도저히 메울 수 없는 구멍이라면 차라리 벽 전체를 허물어 창을 내어버리는 방법도 있다는 것을 정희는 이제 안다. 그렇게 크게 낸 창으로 생각지 못한 위로가 날아 들어올 수 있다는 것도.


강(가람)처럼 사람 사이를 흐르다 보면 어느 날엔 평안에 이른다(지안). 그 평안이 영원하리란 보장은 없지만, 그래서 삶은 자주 귀찮아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각자의 무게를 짊어지고 살아간다. 가람과 지안과 정희 세 사람은 이름처럼 살기로 했으며, 어떤 날엔 이름처럼 살지 않아도 좋다. 살아가는 것, 그 자체가 평화롭고 기쁜(정희) 일이니까. 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정희와 연극 <정희>의 정희, 그렇게 두 번의 정희를 만나면서 우리는 이제 정희를 조금 안다. 아니 전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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