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연 IMMERSION은 관객들을 무대 안으로 온전히 끌어들이는 생생한 '몰입감'을 선사한다.
클래식의 경계를 벗어나 신디사이저의 도입을 통해 무게감 있는 무대를 보여주는 IMMERSION은 무대 위에 연주자만 있는 것은 아니다. IMMERSION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관객과 자신을 일체화하여 무대로 이끌어주는 배우도 등장한다. 우리는 그 배우와 트리오, 신디사이저를 통해 이 공연이 갖는 의미를 온 몸으로 체험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 그야말로 가히 실험적인 사운드 퍼포먼스지만, 그 결과는 관객과 무대의 혼연일체로 산출된다.
IMMERSION에서 우리는 '고립된 우주인의 이야기 속 자신의 기억과 감정을 마주한다'는 시놉시스에 걸맞게, 배우가 절절한 대사로 전달하는 '고립된 우주인'의 이야기를 우리와 연결시켜 기억과 감정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된다. 기억은 감정에 파문을 일으키고, 감정은 다시 기억의 형태를 빚어낸다. IMMERSION이 만들어낸 이 굴레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탐구하는 시간을 가지며 잃어버린, 그리워했던 순간들을 다시금 상기하게 된다.
특히 신디사이저의 몽환적이고 풍부한 기계적 사운드는 우리가 진짜 우주 공간에 있는 듯한 착각까지 일으킨다. 신디사이저로 구현하는 바람과 일렁이는 음향 효과, 그리고 '고립'을 연기하는 배우의 감정선이 우리에게 마치 우리가 그 우주인의 입장이 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이곳은 고독하고, 아무도 나의 목소리를 듣지 못해 고향을 그리워하기만 하는 유영하는 우주인의 모습.

리어레인지된 '섬 집 아기'가 바이올린과 첼로의 선율을 타고 흐르는 무대에서, 관객인 우리는 같은 자리에 있지만 서로 다른 꿈을 꿀 것이다. 무대의 이야기 속 고립된 우주인은 고향과 과거를 그리워한다. 단순히 그리워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검푸른 우주 속 별에서 자신의 신세를 읽어내기도 한다. 지구의 밤하늘에 뜬 별을 보며 저 멀리의 별을 품고 살아가고자 했던 우주인에게 그 별의 위치에서 고향 별을 그리워하는 것은 돌아가야할 곳을 잃고 불확실한 현재와 미래를 떠도는 우리의 모습과도 같아 생경하게 다가온다.
IMMERSION [이머전, imə́ːrʒən]
몰입, 열중, 몰두, (액체 속에) 담금을 의미하는 명사.
그리고, 천문학에서 한 천체가 다른 천체의 그림자에 가려지는 현상(예를 들어, 일식)을 가리키기도 하는 말.
그림자는 빛이 있어야 생길 수 있다. 광활하고 끝을 알 수 없는 우주에서도, 천체와 천체가 만나는 순간에는 으레 그림자가 생기기도 한다. 지름이 약 3,500km에 달하는 달에 비해 인간은 달보다 200만배는 넘게 작은 존재다. 그런 달도 태양과 지구와 함께 공전과 정렬을 반복하며 서로에게 그림자를 만들어낸다.
천체도, 우리도 결국 빛을 받게 되면 그림자가 따라온다. 그림자는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과거가 될 수도, 현재가 될 수도, 후회하는 기억이나 그리워하는 추억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빛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거나, 억지로 바라보게 되면 눈을 다치게 되지만 그 빛이 만들어주는 그림자는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림자가 없는 우주 공간에 고립된 우주인의 모습을 통해, 당장 타인들을 제치고 앞서 나아가며 미래를 계획해야 하는 강박증이 신드롬처럼 퍼진 우리 사회에 IMMERSION이 주는 '그림자의 감각'은 잠시 우리가 그 자리에 멈추어 미래를 바라보느라 타들어가던 눈으로 과거의 그림자를 마주하게 하는 시간을 갖게 한다.
우리는 얼마나 왔을까. 우리는 어떤 빛을 받고 있을까. 그건 우리가 가진 기억과 시선에 따라 달라진다.
같은 태양 아래에서 살아가는 지구의 우리는 모두 각자의 그림자를 달고 살아간다. 그 그림자의 명도와 길이가 우리의 위치와 우리가 받고 있는 빛의 밝기에 따라 달라질 뿐이다. 빛이 바로 머리 위에 있으면, 우리는 그림자가 없어진 것으로 착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빛은 가장 높은 곳에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을 뿐이다. 그림자가 옅게 늘어지면, 우리는 저물어가는 빛을 탓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그 자리에 머물지 않고 광원에 가까이 다가가면 그림자는 다시 짙어지고, 온전한 제 형태를 띄기 시작한다. 만약 광원이 사라진다면, 광원이 사라진 후의 거대한 그림자에 갇힌 우리는 다른 말로 말하자면, 모두 같은 그림자를 품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조용한 어둠 속, 무대 만이 푸르게 빛나는 공연장에서 IMMERSION의 트리오는 때로는 공격적이고 거친 선율로, 때로는 부드럽고 달래는 선율로 우리의 과거의 그림자를 비춰준다. 나는 같이 온 동반자의 손을 붙들고 무대의 그림자 속으로 침잠하며 달려오기만 하느라 잊고 있었던, 그리웠던 과거를 상기하고, 아프기도 했던 추억을 떠올리며 나의 진정한 감정을 돌아보게 되었다.
메인 멜로디인 '섬집 아기'의 아기는 혼자가 아니었다. 기다리다 지쳐 잠들어 있으면 돌아올 어머니가 있었고, 그런 아이를 위로해줄 바다도 있었다. 섬과, 그림자와 그 그림자가 짙은 '섬그늘' 속으로 아기를 위해 굴을 따러 간 어머니. 우리의 기억은 섬과 같고, IMMERSION은 우리가 품은 섬과 섬 사이를 이으며, 각자가 '섬그늘'로 향한 '어머니'라는 추억과 감정을 공유하는 장을 만들어준 것이다.
정현종 시인의 '섬' 이라는 시가 떠오른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우주의 어둠 속에 담겨(IMMERSION) 과거의 추억에서 헤매는 우주인에게 말해주고 싶다.
섬그늘에 가던 어머니의 그림자는 마지막까지 당신에게 향해 있었을 것이고, 헤매이는 당신의 그림자도 어느 별에 어떤 형태로든 닿아있을 것이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