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배우들을 무장 해제시킨 전설적인 인터뷰 프로그램이 있다. 미국의 토크쇼 <인사이드 더 액터스 스튜디오>는 1994년부터 시작되어 배우, 감독들을 초대해 연기와 인생에 관한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눈 걸로 유명하다.
메릴 스트립, 로빈 윌리엄스, 톰 행크스, 알 파치노, 로버트 드 니로, 나탈리 포트만 등의 명배우들이 출연했다. 이 프로그램에는 놀라운 순간들이 많은데, 진행자 제임스 립튼 덕분이다. 그는 배우들을 스타가 아닌 한 명의 인간으로 대하며 진솔한 인터뷰를 끌어냈다. 배우들이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자신의 실패와 두려움을 처음으로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배움이 만드는 신뢰
사실 <인사이드 더 액터스 스튜디오>는 토크쇼가 아니라 연기 ‘수업’이었다. 관객은 일반 대중이 아니라 연기 학생들이었고, 재미가 아닌 배움과 탐구를 위한 쇼가 되었다. 여기서 배우들은 작품을 홍보하러 나온 사람이 아닌, 자신의 일을 설명하는 스승이자 예술가였다. 즉 청자가 화자를 적극적으로 믿게 되는 구조 덕분에 진솔한 이야기가 나올 수 있었다.
압도적인 사전 리서치
또한 진행자 립튼은 인터뷰 이전 출연자의 모든 것을 분석했다. 필모그래피를 전부 확인하고, 과거 발언, 실패, 논란까지 숙지했으며 연기 방식, 반복되는 패턴까지 파악했다.
이 사람의 역사를 알아낸다
또한 그는 단순히 연기 방법을 묻지 않았다. 왜 그 선택을 했는지, 그 감정은 어디서 왔는지를 물었다. 즉, 기술이 아니라 기원(origin)을 파고들며 배우의 개인사, 상처, 철학을 알아갔다.
상징적인 경험을 선물한다
사람은 논리보다 상징과 감정에서 솔직하게 반응한다. 그는 유명한 프루스트 질문 세트(Proust Questionnaire)*를 참고해, 인터뷰를 마무리할 때 공통질문 10가지를 던졌다.
*프루스트 퀘셔네어: 프랑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가 문답하며 유명해진 자기 탐구 질문 리스트
처음부터 깊은 질문을 하면 사람은 방어기제가 작동했을 것이다. 진행자 립튼은 앞에서 충분한 신뢰를 쌓고, 깊은 얘기를 나눈 다음, 마지막에 이 질문을 던졌다. 사람이 스스로 말하고 싶어지는 환경을 설계한 다음에 솔직한 답을 들을 수 있는 질문들을 했다.
정답이 없는 10가지 질문들에 솔직하게 답하다 보면, 나도 몰랐던 나를 만날 수 있다. 나 또한 지금의 나를 기록하기 위해 답을 해보았다.
1. 당신이 좋아하는 단어는 무엇인가요? (What is your favorite word?)
2. 당신이 싫어하는 단어는 무엇인가요? (What is your least favorite word?)
3. 당신을 자극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What turns you on?)
4. 당신을 가장 싫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요? (What turns you off?)
5. 당신이 좋아하는 욕은 무엇인가요? (What sound or noise do you love?)
6. 당신이 싫어하는 소리는 무엇인가요? (What sound or noise do you hate?)
7. 당신이 사랑하는 소리는 무엇인가요? (What is your favorite curse word?)
8. 당신이 하고 싶었던 직업은 무엇인가요? (What profession other than your own would you like to attempt?)
9. 절대 하고 싶지 않은 직업은 무엇인가요? (What profession would you not like to do?)
10. 천국에 도착했을 때 신이 당신에게 뭐라고 말해주길 바라나요?(If heaven exists, what would you like to hear God say when you arrive at the pearly gates?)
2026년 4월 19일 현재, 에디터의 답변
1. 당신이 좋아하는 단어는 무엇인가요? (What is your favorite word?)
“감화”
무언가에 감화되는 마음은 몹시 평화롭다. 그 분위기를 잘 녹여낸 단어 같아서 좋아한다.
2. 당신이 싫어하는 단어는 무엇인가요? (What is your least favorite word?)
“저도”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자주 쓰는 말이지만, 동시에 좋아하지 않는 말이다. 나의 마음을 표현하기 어려울 때 어떤 사물, 어떤 말을 듣고 금세 동일시해버린다. 어떤 서사를 쉽게 압축하는, 어떻게 보면 훔치는 말 같아서 듣고 나면 뭔가 아쉬워지는 단어. 저것보다 더 강렬하게 지지를 표명하기 어려울 때 답답하다. 그리고 대화를 하다가 “저도요”라고 말하면, 이야기를 하고 있던 상대에서 다른 사람으로 대화의 주도권이 넘어갈 때가 있다. 그래서 불가결하게 쓸 수밖에 없지만, 그렇게 쓰는 나의 한계를 인식하게 만드는 단어. 물론, 어떠한 선언의 맥락에서는 참 필요한 단어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3. 당신을 자극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What turns you on?)
가치에 입각해서 사고하는 사람을 만나면, 나의 세계 또한 넓어진다.
4. 당신을 가장 싫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요? (What turns you off?)
냉소적이고 무관심해 상상력이 부족한 사람.
5. 당신이 좋아하는 욕은 무엇인가요? (What is your favorite curse word?)
“아놔.”
욕이 아닌가? 그런데 이렇게 말하면 모든 게 귀여워진다.
6. 당신이 싫어하는 소리는 무엇인가요? (What sound or noise do you hate?)
술 취한 취객들의 혀 꼬인 소리.
7. 당신이 사랑하는 소리는 무엇인가요? (What sound or noise do you love?)
이른 아침에만 들을 수 있는 빗자루 쓰는 소리. 아침을 준비하는 소리를 좋아한다.
8. 당신이 하고 싶은 직업은 무엇인가요? (What profession other than your own would you like to attempt?)
윤리 선생님! 윤리 선생님을 가장해서 좋은 고전 영화들을 많이 보여주는 선생님이 되면 재밌을 것 같다.
혹은 영화관 주인이나 프로그래머. 어느 직업이든, 내가 본 좋은 것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은 같다.
9. 절대 하고 싶지 않은 직업은 무엇인가요? (What profession would you not like to do?)
회계사. (그렇지만 숫자를 잘 다룬다면 이 역시 재밌게 할 것 같다.)
10. 천국에 도착했을 때 신이 당신에게 뭐라고 해주기를 바라나요?(If heaven exists, what would you like to hear God say when you arrive at the pearly gates?)
아무 말 안 하셨으면… 그냥 받아들여졌으면. 말을 하는 공간일 것 같지도 않다. 신체 감각을 초월해서 신과 합일이 되지 않을까?
굳이 말을 듣는다면… “이제 잘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