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숨을 고른 버스들이 다시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는 곳. 4년 만에 돌아온 다큐멘터리 3일은 그들과 함께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고 있다.
흔들리며 갑니다. 다시 273번 버스, 72시간
273번 버스는 서울에서도 유난히 돌고 도는 노선으로 유명하다. 곧장 가는 지름길 대신 대학가를 휘감아 돌아 목적지에 닿는다. 서울 내 10개 대학을 거치는 탓에 ‘청춘 버스’라고도 불리는 이 노선을, 〈다큐 3일〉이 14년 만에 다시 찾았다. 4월 6일, KBS2 ‘다큐멘터리 3일’(이하 ‘다큐3일’)이 4년 만에 돌아왔다. ‘다큐 3일’은 줄곧 거창함 대신 일상을 택해왔다. 특별한 사건이나 유명한 인물이 아닌, 우리 주변에 늘 존재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72시간 동안 따라가며, 때로는 집요하게, 때로는 따뜻하게 그들의 세계를 비춘다. 우연 속에 담긴 진심을, 일상 속에 남겨진 의미를 함께 느끼게 한다.
그리고 그 진심이 다시 한 번 24부작의 형태로 우리에게 돌아왔다. 그 첫 번째 이야기가 바로 '흔들리며 갑니다. 다시 273번 버스, 72시간'이다.
각자의 이야기, 우리 모두의 이야기
신학기를 맞은 버스 안은 빳빳한 과잠을 입은 새내기들의 어색한 설렘으로 가득하다. 각기 다른 학교의 색이 뒤섞이며 버스 안을 알록달록하게 물들이고, 시민들은 그 풋풋함을 흐뭇한 미소로 지켜본다. 대학교 1학년임에도 벌써 취업과 미래를 걱정하며 넋두리를 늘어놓는 학생도 있고, 이 다큐멘터리를 보며 꿈을 키웠다는 승객도 있다. 옷을 사러 가는 들뜬 발걸음도 보이고, 그 모습을 부러운 듯 바라보며 늦깎이 대학원생으로서 부모님과의 약속을 되새기는 이도 있다.
이 버스 안에는 서로 다른 시간과 사연을 지닌 사람들이 함께 타고 있으며, 그 풍경은 우리가 살아가는 서로 다른 삶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결국, 모두 사람 사는 이야기다.
아침을 여는 소리는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 네 시 반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그 시간, 새벽을 여는 사람들과 하루를 깨우는 소리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낸다. ‘다큐멘터리 3일’은 그 이른 시간 버스에 올라 병원으로 향하는 한 시민에게 조용히 질문을 건넨다.
“젊었을 때로 돌아가면 하고 싶은 게 있으세요?”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젊었을 때 힘들게 살아서…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마음껏 즐기면서 사세요. 지나고 보면 다 사는 게 그렇더라고요. 그러니까 마음껏 즐기면서 사세요.”
뼈아픈 경험에서 우러나온 묵직하면서도 진솔한 이 한마디는, 어쩌면 이 시대를 달리는 모든 청춘에게 건네는, 가장 현실적인 위로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여기, 그들의 운행을 책임지는 기사도 있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운전대를 잡은 그는 14년 전 〈다큐 3일〉에 출연했던 아버지의 모습을 꺼내 보인다. 단 3초, 찰나처럼 스쳐 지나간 그 영상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아버지가 남긴 유일한 기록이 되었다. 수백 번을 돌려봤을 그 영상을 뒤로하고, 아들은 이제 아버지가 앉았던 그 자리에 앉아 같은 노선을 달린다. 카메라 앞에서 잠시 눈물을 훔치던 그는, 이내 다시 핸들을 굳게 잡는다.
저마다의 속도로, 저마다의 종착지를 향해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고, 자극적인 쇼츠와 릴스가 끊임없이 쏟아지는 시대다. 그 속에서도 결국 사람을 울리는 건 사람이고,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 역시 사람이다. 우리가 끝내 그리워하게 되는 것도, 결국 사람만이 지닌 온기다. 각자는 저마다의 속도로, 저마다의 종착지를 향해 나아간다. 흔들리고, 덜컹거리는 본인을 보며 때로는 길을 잃은 것처럼 느껴질지라도, 버스는 결코 멈추지 않는다. 그렇게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우리는 결국 나만의 우주에 닿게 된다.
그리고 ‘다큐멘터리 3일’은 그 여정을 조용히 따라가며, 우리가 잊고 있던 가장 단순하고도 깊은 진실을 다시 한 번 꺼내 보인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가장 오래 기다려온 프로그램일지도 모른다.
“인생이라는 버스의 종점은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흔들린다는 건 어쩌면 치열하게 달리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릅니다. 불안과 설렘, 꿈과 현실 사이에서 오늘도 우리는 흔들리며 갑니다.”
- 다큐 3일 ‘흔들리며 갑니다’ 마지막 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