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미 한 번, ‘지구 전체가 동시에 위기에 처한 순간’을 경험한 적이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단순한 질병을 넘어 인간이 얼마나 쉽게 고립될 수 있는 존재인지, 그리고 동시에 얼마나 서로에게 의존하는 존재인지를 드러냈다. 그 이후의 세계는 조금 달라졌다. 국경은 더 쉽게 닫히고, 타인은 더 쉽게 의심받으며, 협력은 언제나 정치적 계산 속에서 지연된다.
이런 시대에 <프로젝트 헤일메리>(2026)은 묻는다. 인류는 정말 함께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질문을 가장 낯선 방식으로, 가장 인간적인 이야기로 풀어낸다. 우주에서, 단 한 명의 인간과 ‘인간이 아닌 존재’를 통해서 말이다.

중학교 과학 교사였던 그레이스는 기억을 잃은 채 우주선 ‘헤일메리호’에서 깨어난다. 왜 자신이 이곳에 있는지조차 모르는 상태. 하지만 우주선을 탐색하며 인류가 태양 에너지 감소라는 치명적인 위기에 직면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태양계 밖으로 보내진 유일한 생존 가능성이라는 사실을 떠올린다. 지구의 존망이 걸린 임무. 실패하면 인류는 멸망한다.
이 영화가 흥미로운 지점은, 이 절망적인 상황이 인류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데 있다. 그레이스는 우주에서 또 다른 존재, 외계 생명체 로키를 만나게 된다. 돌로 만들어진 그의 외형은 기이한 소리를 공명하며 그레이스와 소통한다. 그 역시 자신의 행성을 구하기 위해 같은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서로의 언어도, 생김새도, 감각도 전혀 다른 두 존재는 살아남기 위해 협력을 시도한다. 이 영화는 그 협력의 과정을, 과학과 유머, 그리고 예상보다 훨씬 따뜻한 감정으로 풀어낸다.

많은 SF 영화에서 외계인은 위협으로 표현되었다. <에일리언>(1979)에서 외계인은 인간을 위협하는 순수한 공포였고, 이후
오늘날,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이해하고 협력해야 할 대상으로 외계인을 그린다. 로키와 그레이스의 첫 만남은 언어학 실험처럼 소리, 진동, 패턴을 통해 서로를 해석해 나간다. 이 지점은 처음으로 외계인의 언어를 분석하고 이해하는 영화 <컨택트>(2016)을 떠올리게 한다. 다만, <컨택트>가 언어를 통해 인간의 시간과 존재를 확장했다면, 이 영화는 언어를 통해 우정을 만들고 문제를 해결한다. 단순 커뮤니케이션 문제가 아닌, 이해할 수 없는 존재를 끝까지 믿는 의지가 영화의 윤리다.

그레이스와 로키 사이에는 어느 순간, 둘만의 농담이 생긴다. 그들의 협력은 일상이 된다. 우주선은 더 이상 임무의 공간이 아니라, 둘만의 세계가 된다. 마지막에서 로키와 그레이스는 생존에서 신뢰 그리고 서로를 위한 선택으로 이어진다. 인류를 구할 용기가 없어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를 두려워했던 그레이스에게 로키는 ‘멍청한 용기’를 준다. 용기가 멍청한 짓이라고 믿었던 그에게 로키를 구하기 위한 선택은 더 이상 멍청한 짓이 아니었다.
영화는 인류의 생존을 두고 끊임없이 문제를 던진다. 산소, 온도, 연료, 생물학적 변수까지. 그리고 모든 문제를 정답이 아닌 과정으로 풀어낸다. 같은 앤디 위어의 원작 <마션>이 마크 와트니의 개인적인 생존기였다면, 그레이스와 로키는 우주를 위한 협력의 생존기를 다룬다. 과학은 인간의 언어에서 종을 넘어서는 우주적 공통어가 된다. 서로 다른 종이 같은 문제를 풀기 위해 머리를 맞대는 순간, 과학은 언어가 되고 감정이 된다.
우주선의 이름 ‘헤일메리(Hail Mary)’는 가톨릭 기도문이자, 동시에 스포츠에서 쓰이는 ‘마지막 수단’을 의미한다. 성공 확률은 희박하지만, 시도하지 않으면 끝나는 선택. 인류는 우주선에 그런 마지막 가능성을 실어 보낸다. 그리고 그 안에 남겨진 한 인간의 이름 ‘그레이스(Grace)’. 은총, 혹은 자격 없이 주어지는 구원. 인간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기에 마지막 수를 던진다. 그리고 그 은총은 더 이상 신에게서 오지 않는다. 미지의 타자에게서 온다. 즉, 구원은 위에서 내려오는 것이 아닌 서로 다른 존재 사이에서 만들어진다.

우리는 오랫동안 우주를 공포로 상상해 왔다. 그리고 그 공포를 외계인이라는 형태로 구체화했다. 하지만 이제, 그 상상은 조금씩 방향을 바꾸고 있다. 우주는 여전히 미지의 공간이지만, 그 안에서 만나는 존재가 반드시 적일 필요는 없다는 것.
어쩌면 가장 우주적인 태도는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존재를 끝내 이해하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지 못한 채로도 함께 협력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가능성이 아니다. 우리가 끝내 그 선택을 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