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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순수(純粹) 해방, 향수(鄕愁) 해방 프로젝트 [문화 전반]

노스탤지어와 《동물원 탈출기》

by 신영주 에디터
2026.04.03 19:39

 

 

노스탤지어

고향을 몹시 그리워하는 마음. 또는 지난 시절에 대한 그리움.

   

사전에 명시되어 있는 노스탤지어의 의미이다. 그러나 내가 느끼는 노스탤지어는 단순한 회상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순간 현재와 과거가 교차하는 통로에 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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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승범, 검은 매, 피그먼트 프린트, 75X105cm, 2025

 

 

 

흐릿함의 염원, 해방 프로젝트


 

불현듯 이 단어에 꽂힌 것은 작가 허승범의《동물원 탈출기》에 관한 후기를 읽으며 시작된다.

 

《동물원 탈출기》는 작가의 22개월 된 딸과의 일상에서 출발한다. 어느 날 딸이 고기 집게를 보고 “악어!”라고 외친 순간 작가는 자신에게도 한때 동심이 있었음을 떠올린다. 프로이트의 말처럼, 문명인이 되기 위해 언어와 사회적 규범 속에서 동심은 무의식 깊숙이 억압된다. 딸의 한마디는 어른이 된 자신을 상기시키고, 무의식 깊숙이 가라앉은 동심의 흔적을 더듬게 만든다.

 

작가가 포착한 동심은 버려진 사물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그 시선은 오롯한 어른의 시선으로 구성된다. 순수한 세계를 염원하지만, 현재에 서서 바라볼 때 그것은 흐릿하고 모호하다. 온전한 순수함으로 돌아가는 것이 불가능한 어른에게서 복구된 동물(=동심)이 동물원이라는 우리에서 완전히 해방했는지는 알기 어렵다. 그럼에도 작가는 우리에게 아이로 돌아가자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그 반대 선상에서 잃어버린 것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호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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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승범, 악어새로 살아가기, 피그먼트 프린트, 50X70cm, 2025

 

 

 

불가능적 무의식을 목도한다는 것


 

노스탤지어는 향수(鄕愁)로 번역된다. 우리가 향수를 느낄 때는 언제일까.

 

“향수를 느낀다”라고 말할 때 그것은 대개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거나 설명이 불가능하다.

 

이를테면 전 연인과 함께 갔던 기차역엘 가면 그때의 감정이 불현듯 찾아온다. 그러면서 찰나의 그 순간이 참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더 이상의 그리움은 없다고 생각했음에도 장소성을 동반한 노스탤지어에 다시금 놓이게 되는 그 찰나가 말이다. 이제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과거와 현재의 단절을 목도하는 그 순간 또렷한 쓸쓸함에 가닿는다. 노스탤지어다.

 

내가 주로 향수를 느끼는 주체는 사랑에 관한 것인데, 그것은 노래와 향기를 통해서도 경험할 수 있다. 오래도록 느껴지지 않다가 왜 지금에서야 찾아오는 걸까. 이 감정을 이성적으로 표현하기란 쉽지 않다. 향수에는 다른 감정과 달리 해소될 수 없는 순수한 갈망이 깃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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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승범, 두루미의 겨울, 피그먼트 프린트, 75X105cm, 2025

 

 

 

시간성을 동반한 그리움


 

원래 향수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데서 오는 고통’, 즉 향수병을 의미했다. 17세기 스위스 의학도 요하네스 하퍼는 해외로 나간 스위스 용병들에게서 나타나는 특이한 증상을 발견하고 그것을 ‘nostalgia’라고 명명한다. 그것은 귀울림과 소화불량 같은 신체적 증상에서 시작해 심하면 무기력 상태나 죽음에 이르기도 한다고 여겨졌다.

 

하퍼는 그 원인을 고향에 대한 기억이 뇌에 남아 계속해서 자극을 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동시에 향수가 실제 고향이 아니라 상상력과 기억의 힘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짚어낸다. 이후 수백 년간 의사들은 향수의 원인과 치료법을 연구했으나 결국 해결하지 못했다.

 

20세기를 지나며 향수는 질병의 영역을 벗어나 철학과 문화의 개념으로 이동한다. 니체는 “우리는 더 이상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결국 다시 돌아가고 싶어 한다.”고 설명했다. 이 시기쯤부터 향수의 대상은 장소가 아닌 시간성으로 이동한다. 더 많이 이동하고 더 많은 정보 속에 놓인 우리는 특정한 공간보다 특정한 시기를 그리워하게 된다.

 

 

 

향수(鄕愁) 해방 프로젝트: 끊김 없는 시대의 끊어짐


 

디지털 시대에서 향수의 경험은 더 적극적인 방식으로 또 한 번 변모한다. 과거에 우연히 떠오르는 감정이었다면 이제 우리는 그것을 의도적으로 호출한다. 유튜브 영상, 과거의 패션, 과거 이미지들을 회상하며 다시금 향수를 만들어낸다.

 

특히 관계적인 부분에서 그 변화는 더욱 분명하다. 향수가 하나의 일상적 형태가 된 것이다.

 

현재와 과거가 뒤섞인 채 방치된 끊어냄 없는 끊어냄의 향연.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 오래된 인스타그램에는 한때 가까웠던 사람들을 계속 팔로우하고 있었다. 예전이라면 앨범 속에 정리되어 끝났을 관계들이 이제는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되며 이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의 관계는 명확하게 끝나지 않는다. 관계를 끝낸다는 것은 '좋아요'를 누르지 않거나 조용히 차단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질 뿐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플랫폼은 우리가 이런 관계들을 계속해서 유지하도록 만든다. 이렇듯 과거와 현재가 뒤섞인 상태에서 우리는 어떻게 새로운 시기를 정의할 수 있을까. 다시는 일상에서 만나지 않을 사람들의 삶을 계속해서 지켜보면서 어떤 순간을 끝났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최근에 오랫동안 사용하던 인스타그램 계정을 정리했다. 그 선택의 기저에는 무언가를 보내주고 싶은 마음이 담겨있었다. 미련은 없었다. 혹시라도 놓치게 될 무언가와 여전히 남아 있을지도 모르는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에 미뤄왔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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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승범, 코뿔소, 피그먼트 프린트, 105X75cm, 2025

 

 

 

삶은 결국 계속해서 무언가를 잃어가는 과정이다.


 

모든 경험을 가능한 한 오래 지속시키려는 향수의 연속선은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를 현재의 흐름 속에 자꾸만 묶어두고 있었고, 이제는 풀어주고 싶었다. 과거를 현재처럼, 혹은 현재를 과거처럼 살아가다 보면 삶의 어떤 장을 완전히 넘긴다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진다. 도래할 새로운 시기를 온전히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시간적 거리와 물리적 거리가 필요하다.

 

모든 경험을 끝없이 이어 붙이기보다는 언젠가 돌아볼 수 있는 진짜 ‘향수(鄕愁)’를 남겨두고 싶다.

 

그런 바램이 있다.

 

놓아줘야만 우리의 추억은 비로소 노스탤지어로 변모할 자유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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