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단아들과 현대 예술 [문화 전반]

거, 두고 보자고.
글 입력 2023.04.28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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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4차원', '엉뚱함', '이상함'이라는 단어들로 대변되던 이들을 기억하는가?

 

우리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 수도 있는 인생을 살면서 수많은 이들과 만나고 헤어진다. 서로의 옷깃을 스쳤던 인연은, 차마 그 수를 짐작하기도 어려울 만큼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누군가를 기억한다면, 그들이 우리에게 특별한 인상이나 행동을 통해 흔적을 남겼기 때문이다. '엉뚱한' 이들은 그렇다. 그들은 늘, 예상치 못한 행동과 사고방식으로 우릴 놀라게 하며 뇌리에 박히곤 한다.

 

나는 잔잔하기 그지없던 일상이 지겨워져 잠시 고개를 돌릴 때, 흥겹고 괴상했던 그 친구들과의 나날들을 떠올리기도 했다. 학업과 진로, 아르바이트와 월급 등 삶을 지탱하는 초석들에 매몰되어 있었을 때, 그 엉뚱하고 신기한 사람들은 잠시나마 숨을 틔워주는 지렛대이기도 했더랬다.

 

때로는, 이상하고 아름다운 그들이 가진 시야를 나는 정말로 가진 적이 없었던가, 의심이 들기도 한다. 이렇듯 손에 움켜쥐고 놓지 못하는 것들이 없었을 적엔 분명, 나도 어른들을 놀라게 하는 반동분자이자 과열된 공기를 식히는 에어컨과 같은 존재였을 텐데. 대학과 삶의 무게를 인지하기 시작했을 때였나, 거푸집 속에 부어진 석고처럼 사회와 시대가 만들어 놓은 거대한 삶의 모습 안에서 굳어져 가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학교를 벗어난 학생들에게 부적응이라는 꼬리표가 붙는 걸 바라만 보고 있게 되었을 때, 어엿한 벽 그 자체가 되어가는 감각을 더 확실하게 느꼈던 것 같다. 정해진 루트를 벗어난 친구들이 부러우면서도 안타까운, 양가감정 속에서 말이다.

 

일과 학업, 돈과 시간에 갇혀 통제되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누구나 마음속 한편에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실제로 체계나 관습을 탈피하려는 시도를 할 엄두조차 내지 않는다. 익숙해진 삶의 모습과 루틴 속에서 벗어나 새로이 개척해야 할 길이 멀고도 막막하기 때문이다.

 

사회와 어른들이 정해 놓은, 어쩌면 먼 과거의 선조들이 가둬 놓은 온실 속에서 벗어나는 이들은 어떤 강함을 지녔을지, 이 소인배의 관점에서는 미루어 짐작하기도 어렵다. '평범함', 또는 '지극히 옳음'이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 4차원의 바닷속으로 뛰어드는 이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 걸까.

 

 

 

덜어내고 또 덜어내기, 뒤집을 수 있으면 뒤집기.



 

아이들의 본성이 저항하는 동작을 강요하지 말고, 다만 아이들의 정신과 신체가 인류의 가장 고귀하고 가장 고상한 표현에 일치하도록 이끌어라. 그러면 신체의 몸짓은 곧 언어가 되고, 그런 어린 영혼은 빛과 아름다움과 변하지 않는 사랑에 자연스럽게 스며들 것이다.

 

책, 이사도라 덩컨의 영혼의 몸짓 中 청춘과 무용, 이사도라 덩컨.

 

 

아직 어린 나이의 여자아이들이 유연함을 넘어 몸의 변형을 일으키는 수준의 트레이닝을 받고, 성장기임에도 불구하고 작고 가벼운 몸을 유지하기 위해 제대로 챙겨 먹지 않는 시스템을 가진 발레. 그리고 그런 시스템을 아무렇지 않게 답습하는 선생들과 학원들. 그에 반발하지 못하고 따르는 아이들. 이 괴물 같은 순환고리에 의문을 제시한 건 현재 현대 무용의 어머니라고 불리는 '이사도라 덩컨'이었다.


'맨발의 무용수'라고도 불리는 그녀는 토슈즈와 스커트를 벗어던지고 틀에 맞춰진 안무에서 벗어나 영혼을 담은 무용을 선보이며 19세기 후반 유럽의 이목을 끌었다. 덩컨이 처음 오디션장에서 춤을 선보였을 때, 그녀의 춤을 목격한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탈락을 말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우여곡절 끝에 관객 앞에서 그녀의 춤이 공개되었을 때는 오히려 그곳을 찾은 관객들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무용이라고는 '발레'만을 알았던 사람들에게 덩컨의 춤은 자연스럽고 자유로운, 어찌 보면 여신의 춤과도 같은 자태였던 것이다. 그 춤을 추는 덩컨을 '기인'으로 본 관객도 있었다고 한다. 그만큼 발레에 익숙해져 있던 관객에겐 아주 신선한 충격이었던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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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무용이, 음악과 문학과 철학, 더 나아가 거의 모든 예술이 그러하듯 내면의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길 바랐다. 기교와 형식에 맞춰, 기득권의 기호에 맞춰 전개하는 춤이 아니길 바랐다. 무용이 타 장르의 예술의 하위에서 끌려가는 장치가 아니라, 무용을 위해 다른 예술의 힘을 빌려올 수 있는 위치를 회복하길 바랐다.


넉넉한 튜닉을 걸치고 딱딱한 관습 앞에 서서, 내면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자연스러운 춤을 추었던 이 무용가는 나아가 아이들을 위한 무용학교를 만들기도 하며 '현대무용'의 기반을 다졌다. 덩컨이 처음 선보였던 복장과 춤의 차별성이, 발레의 '통제'에 익숙했던 전문가들의 시선에서는 그저 '엉뚱함'이었을지 모르나, 시간이 지나 대중에게는 위로가 되고 영감을 선사하기도 하는 진정한 의미의 '순수'예술이 된 것이다.

 

아이들을 사랑하고, 그들의 창의적인 표현법을 존중하며 더 나은 무용을 지향했던 이사도라 덩컨, 그녀도 남의 눈에 그저 엉뚱하고 기발한 4차원일 때가 있었다.

 

*


동류의 4차원은 미술계에도 있었는데, 바로 앤디 워홀이다.

 

전시장 한가운데 쌓인 브릴로(Brillo, 미국의 한 세제 회사 상호) 박스들과 독특한 색깔이 조합된 마릴린 먼로들. 작품에 대한 설명만 들어도, 그 작품을 생각해 낸 사람이 괴짜임을 유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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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은 과거의 숱한 예술가들이 지향해왔던 구상의 미학을 계승하고 답습하는 것을 정론으로 여기는 예술이었다. 현대에 이르러, 작가의 예술성이 담긴 '작품'만을 인정하는 업계 내 분위기는 점차 사라져 가지만, 미술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도 '창작된' 작품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었다.

 

구상에서 벗어나 추상을 담고, 캔버스 속에서 나와 환경과의 조화를 이루는 오브제를 만들어 내는 등, '작품성'과 '예술성'을 지키기 위해 당시 주류 미술이 포기한 것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그 노력들 안에서 작품을 만들어 내는 미술가의 프라이드와, 작품을 향유하는 엘리트층이 대중을 바라보는 멸시의 시선을 완전히 덜어내진 못했었다. 정리하자면, 순수 미술은 현대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그들만의 영역을 확보하고 엘리트가 아닌 대중들과는 거리를 둔 것이다.

  

앤디 워홀은 이런 엘리트층의 순수 미술로부터 확연히 동떨어진 행보를 보인다. 그가 일하는 작업실, 즉 아틀리에를 '팩토리(공장)'로 칭하는가 하면, 이미 만들어진, 그것도 대량 생산되어 돈이 있다면 아무나 구할 수 있는 브릴로 세제 박스들을 모아다 놓고 '작품'이라 칭한 것이다. 친숙한 소재와 약간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명명' 행위에 대중들의 관심이 쏠리는 것은 막을 수 없는 현상이었고, 워홀의 진의를 눈치챈 이들은 그를 인정하기 시작한다.

  

대중의 사랑을 받기 시작한 워홀의 작품들은 곧 '팝 아트'라고 칭해지며, 지금까지도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실은 작품을 만드는 데 작가의 이름이 필요치 않으며, 그 가치를 만들어 가는 것 또한 학계가 아님을, 대중을 비롯한 향유자들만이 작품을 작품이라 인정할 수 있음을 꼬집었다는 점에서 말이다.

 

워홀의 입지가 단단해지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급부상을 두 눈으로 목격한 당시 전문가들은 팝아트가 잠시 후면 없어질 '현상' 그 이상도 아니며, 워홀도 미술에 있어 큰 가치를 지니지 않는다고 평했다. 구상을 벗어나 회화 이후 추상의 흐름에 주목하던 당시 엘리트, 그중에서도 모더니즘을 주창했던 클레멘트 그린버그가 그 평의 중심에 서 있었다. 그는 근현대에 들어 순수 미술에 대한 연구와 평론에 있어 탄탄한 영역을 다진 이였기 때문에, 워홀은 더욱이 학계 내에서 '이단아'의 위치에 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때는.

 

 

 

두고 보자고.


 

크면서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보다 보면, 악당들이 후퇴하면서 '두고 보자'라는 말을 하는 장면을 숱하게 목격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그 대사를 내뱉는 악당들이 스토리 안에서 정말로 복수에 성공하는 순간을 몇 보지 못했다. 그렇게 여러 해 지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턴가 악당들이 그 말을 하는 순간 피식, 코웃음을 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두고 보면 어쩔 건데? 하는 오만한 일반화가 자연스럽게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성인이 되어 이단아들의 이야기, 그로 인해 더 발전하고 다양화된 사회의 모습들을 가까이서 마주하고 나니, 정말로 그 '두고 보자'라는 말이 무서워진다. 우리가 옛날 영화에서 보았던 악당들도, 따지고 보면 주인공의 입장에서나 악당일 뿐 아닌가. 악당은 본인들을 악당이라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동시에, 철저히 주인공의 시점에서 본 영화로, 그 안의 진짜 악당이 누구인지를 판단한 내 모습도 우스워졌다. 그 안의 세상이 어떨지 두 눈으로 목격하지도 않았을뿐더러, 제공된 레퍼토리에만 입각하여 그들의 선악을 판단하는 것이 우물 안 개구리와 다를 바가 없었던 것이란 생각이 들었달까.

 

현대 이전의 예술에 이사도라 덩컨이나 앤디 워홀 같은 이단아가 없었을 것이라 단정 짓고 싶진 않다. 자세히 말하면, 그때에 비해 현대에 이르러 발전한 인쇄기술과 교통, 통신 기술이 이단아들에게 힘을 실어줬다고 말하고 싶다. 이단아들이 힘을 얻을 수 있었던 원천은, 예술, 더 넘어 사회가 하위라 칭하고 무시해왔던 바로 그 '대중'이었다. 그리고 대중의 힘은 앞으로 더욱 발전할 초연결 사회 속에서 오고 가는 방대한 지식을 먹고 그 덩치를 키울 것이라 확신할 수 있다.

 

내가 바라보았던, 학교를 벗어난 친구들의 삶이 더 이상 비행으로 여겨지지 않는.

 

사회에 대한 의구심과 어린 시절의 동심을 마음 한편에 간직한 친구들의 힘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이단아들이 더 많아지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거, 두고 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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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서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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