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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은밀하게 위대하게: THE LAST〉는 이미 웹툰과 영화로 잘 알려진 이야기다. 그렇기에 익숙한 서사를 다시 무대 위로 옮긴다는 건, 단순한 재현을 넘어 어떻게 다르게 보여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연적으로 따라왔을 것이다.


10주년을 맞아 1,000석 규모의 대극장으로 확장된 이번 공연은, 그 질문에 비교적 분명한 방식으로 답한다. 이야기를 크게 바꾸기보다는, 무대 위에서 보여줄 수 있는 표현과 연출을 확장하는 쪽을 택했다.

 

 

 

전설로 길러진 존재들, 평범함을 배우다


 

혹독한 훈련 끝에 남파된 5446부대의 세 청년, 원류환, 리해랑, 리해진. 그들은 최정예 스파이로 길러졌지만, 이곳에서는 달동네 바보, 가수 지망생, 고등학생으로 살아간다. 예상보다 길어진 잠복 속에서 평범한 일상, 소소한 웃음, 서로의 존재가 그들의 마음에 처음 보는 감정을 만든다. 그러던 어느 날, 침묵하던 본국에서 돌이킬 수 없는 명령이 내려오며 세 청년의 일상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이 작품이 인상적인 이유는 사건 자체보다, 인물들이 놓인 구조에서 비롯되는 긴장감에 있다. 5446부대 요원들은 ‘전설이 되기 위해’ 길러진 존재다. 개인의 감정이나 선택은 배제된 채, 임무 수행만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인물들이다.

 

하지만 이들이 맡게 된 잠복 생활은 그 정체성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단순한 위장이 아니라, ‘전설’과 ‘평범함’을 동시에 살아야 하는 이중적인 삶이다. 처음에는 연기를 위한 설정이었던 일상이 점점 실제 감정으로 변해간다. 사람을 신경 쓰게 되고, 공간에 애착이 생기고, 의도하지 않은 감정들이 자연스럽게 쌓인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중요한 전환이 발생한다. 임무를 위한 ‘가짜 삶’이 오히려 더 진짜처럼 느껴지는 순간. 결국 이들은 선택의 갈림길에 놓인다.

 

처음부터 주어진 목적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뒤늦게 생겨난 감정을 따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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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구조는 단순한 갈등을 넘어, ‘무엇이 진짜 삶인가’라는 질문으로 확장된다. 전설로 남는 삶과 평범하게 살아가는 삶. 이 작품은 그중 하나를 선택하게 하기보다, 그 사이에서 흔들릴 수밖에 없는 상태를 보여준다.

 

특히 세 인물 중에서도 원류환은 가장 분명한 감정 축을 가진 인물이다. 그는 가족, 특히 어머니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를 ‘들개’로 만들어야 했던 인물이다. 그렇게 선택한 삶의 결과로, 그는 가장 인간적인 관계로부터 멀어진 상태에 놓여 있다. 어머니의 생사조차 확인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기억으로만 관계를 붙잡고 있어야 한다.

 

그런 그에게 ‘어머니의 정’을 느끼게 해주는 존재와의 관계는 단순한 에피소드가 아니라, 그가 평범함을 인식하게 되는 결정적인 감정의 축이 된다. 다만 이 관계가 조금 더 구체적으로 쌓였다면, 그가 느끼는 변화가 더 설득력 있게 전달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빠르게 전환되는 무대, 끊기지 않는 몰입


 

무대 연출적으로 인상 깊었던 점은 속도감 있는 장면 전환이었다. 웹툰과 영화라는 원작의 특성상 장면이 빠르게 전환되는 구조를 뮤지컬로 옮기는 것은 분명 쉽지 않았을 텐데, 그 리듬을 꽤 효과적으로 구현해냈다고 느꼈다.

 

북한군의 공간과 달동네의 공간을 명확하게 구분해 연출하면서도, 그 사이의 전환이 매끄럽게 이어진다. 덕분에 몰입이 끊기지 않고, 자연스러운 흐름이 만들어진다.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구간을 짙은 무게감과 가벼움, 진지함과 웃음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며 지나간다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회전형 세트를 활용해 공간을 입체적으로 구성하고, 오프닝 장면에서는 일루션 효과를 더하는 등 시각적인 요소가 대폭 강화되었다. 확장된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군무와 액션은 단순한 장면을 넘어, 하나의 ‘장르적 쾌감’으로 작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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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연출과 함께 눈에 띄었던 것은 5446부대 요원들의 액션 장면이었다. 정교하게 맞춰진 동선, 아크로바틱과 무술, 비보잉과 군무가 결합된 퍼포먼스는 이들이 ‘엘리트 요원’이라는 설정을 설득력 있게 만든다. 액션과 춤의 경계에 서 있는 이 장면들은 단순한 볼거리를 넘어서, 이들이 어떤 존재로 길러졌는지를 몸으로 설명하는 장치처럼 느껴졌다.

 

배우들의 연기 역시 전반적으로 안정적이었다. 그중에서도 리해랑 역의 유태율 배우와 김태원 역의 김수용 배우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유태율 배우는 진지한 서사 속에서 가벼움을 더하는 데 탁월했다. 과장될 수 있는 유머를 능청스럽게 풀어내며, 관객이 자연스럽게 웃고 호흡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든다. 이 작품이 지나치게 무겁게 가라앉지 않도록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했다고 느꼈다.

 

반면 김수용 배우는 전혀 다른 결의 무게감을 만들어낸다. 5446부대의 지휘관이라는 역할에서 요구되는 냉정함과 어두움을 안정적으로 보여주면서도, 단단한 락 발성으로 긴장감을 끝까지 끌고 간다. 이 두 인물의 온도 차가 작품 전체의 리듬을 더 또렷하게 만들어주었다고 생각했다.

 

이 작품은 전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전설로 길러진 존재가, 전혀 다른 삶을 인식하게 되는 과정에 가깝다. 임무를 위해 시작된 삶 속에서, 처음으로 스스로의 감정을 인식하게 되는 순간. 그 변화는 단순히 이야기 속 사건으로 끝나지 않는다.

 

‘어떤 삶이 더 나은가’가 아니라, ‘나는 어떤 삶을 선택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이 작품은 결말보다, 그 사이에서 흔들리던 시간이 더 오래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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