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 좋아?
그럼. 좋지. 너무 좋지.
묻지 않아도 알지만 굳이 물어본다. 친구나 연인도 표정만으로 기분을 알아차릴 수 있을 텐데, 하물며 평생을 같이 지낸 엄마 마음을 모를 리가 없다. 엄마는 오늘 행복하다. 그 마음 자꾸만 확인하고 싶은 건 못난 아들의 욕심이다.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또 생색을 내볼까 싶어서다. 평소에 호강은커녕 은밀한 걱정만 끼쳐왔으니까. 나름 착하게 살았으니 딱히 잘못한 건 아닌데, 그렇다고 막 잘난 아들이거나 무지막지한 효자는 또 아니라서, 오늘은 확실히, 나 덕분에, 엄마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그런 마음.
주말 날씨가 화창하다. 옆에서 운전을 하고 있는 내 짝꿍은 예쁜 얼굴만큼이나 마음도 참 곱다. 내내 야근에 시달려 피곤할 텐데도 생글생글 웃으며 뒷좌석에 탄 엄마의 기분을 맞춰주고 있다.
어머님, 가서 제일 예쁜 걸로 편하게 골라보세요.
어휴, 됐다니까 그러네. 너희들 돈 쓸 일도 많을 텐데.
벌써 쇼핑몰을 가고 있으면서도 엄마는 괜히 한번 튕겨본다. 엄마는 언제나 그랬다. 좋으면서, 괜히. 엄마는 엄마가 좋으면 우리에게 부담인 줄 안다. 엄마가 좋으면 우리도 좋다는 걸 엄마는 아직도 모른다. 여전히 뻔뻔할 줄 모르는 엄마의 모습이 늘 속상하고 귀엽다. 나는 슬쩍 웃으면서 짝꿍을 본다. 짝꿍의 입가에도 미소가 번져있다. 짝꿍도 벌써 알고 있나 보다. 엄마가 지금 무지하게 행복하다는 거. 나는 슬며시 짝꿍의 손을 잡는다. 짝꿍이 나를 흘끗 보고 웃으며 속삭인다. 어머님은 참 귀여우셔. 룸미러로 보이는 엄마는 한껏 흐드러진 봄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아직도 소녀 같은 울 엄마, 진짜 귀엽다.
*
엄마 곧 환갑인데 뭐 가지고 싶은 거 있어?
뻔한 대답이 돌아올 걸 알면서도 묻는다. 분명히 됐다고, 필요한 거 없다고 하겠지. 일초, 이초, 삼초. 생각했던 것보다 정적이 길어진다. 엄마를 본다. 엄마가 꾸물꾸물 미소를 짓고 있다. 웃음기 머금은 목소리로 엄마가 되묻는다.
글쎄. 뭐가 좋을까?
나는 순간 흠칫 놀란다. 엄마한테 정말 필요한 게 생긴 걸까. 옷? 신발? 귀걸이나 목걸이? 가격은 얼마나 하는 걸까. 텅 비어가는 내 지갑 사정이 벅차다면 누나와 아부지까지, 어쩌면 가족의 경제력을 총동원해야 할지도 몰랐다. 침을 꼴깍 삼킨다. 제법 비장한 각오와 재빠른 계산이 필요한 순간이다. 엄마는 자연스레 엄마 친구 얘기를 꺼낸다.
걔도 얼마 전에 환갑이었잖니.
딸이 둘인데 둘 다 잘나가는 사위 만나 결혼해서 잘 살고 있다는 축하할 소식부터, 딸이랑 사위 들이 환갑이라고 플래카드도 해주고 무려 200만원 돈벼락을 맞춰줬다는 살벌한 소식까지 들려준다.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그려진 플래카드 아래서 돈벼락을 맞고 행복해하는 친구의 사진까지 찾아 보여주면서 엄마는 부러운 듯 웃고 있다. 엄마 친구 아들에 엄마 친구 딸에 엄마 친구 사위까지, 이런 젠장, 세상 모든 엄친들은 원래 다 그런가. 적당히 자랑하고 말면 될 것을 굳이 구체적인 금액까지 말해주는 바로 그 엄마 친구도 참 웃긴다고, 그 아줌마도 분명 그리 좋은 친구는 아닐 거라고 나는 애써 생각한다. 자칫 복잡해질 표정을 숨기면서 나는 대수롭지 않게 다시 묻는다.
엄마는 받고 싶은 게 있는 거야?
아니야. 그런 거 없어.
엄마는 순식간에 우리 엄마로 돌아와있다. 우리 엄마로 돌아와서 뚝딱 나물을 무치고 후루룩 찌개 간을 본다. 엄마의 뒷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안도했다가, 나 혼자서 속상해진다. 엄마가 요즘 부쩍 자주 했던 말들이 생각났다.
엄마도 이제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고 싶어.
몸 여기저기가 아프니 편하고 좋은 침대도 사고 싶다고, 코딱지만 한 집이라도 아기자기 예쁘게 꾸미고 싶다고, 일하느라 평생 못 가져봤던 취미생활도 좀 해보고 싶다고. 그런 말을 할 때마다 엄마 얼굴은 좀 슬퍼졌다. 하고 싶은 게 많아졌지만 엄마는 여전히 더 많은 것을 하지 않으면서 살았다. 가끔씩 택배로 오는 일이만 원짜리 옷이나 몇 천 원짜리 소품 들을 후다닥 숨기다가 들키면 멋쩍은 표정으로 말했다.
이거 안 비싼 거야. 그냥 인터넷에서 싸게 팔길래 산 거야.
그렇게 엄마는 환갑이 됐다. 엄마의 육십갑자가 한 바퀴 돌아갈 동안 누나와 내가 태어났고, 엄마의 것이었을 옷도 신발도 빼앗아 입으며 무럭무럭 자랐고, 이제는 각자 궁리를 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엄마에게 남은 건 같이 늙어가는 남편과, 빠듯하게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자식들, 그리고 엄마가 지금까지 미처 하지 못했던 모든 것들이었다.
그러니 더 받아야 했다. 할 수 있는 한 많이. 엄마는 그럴 자격이 있었다.
*
짝꿍이 골라주는 옷들을 차례로 입어볼 때마다 엄마의 얼굴이 환해진다. 거울 앞에서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며 보고, 또 본다. 마음에 드는 옷을 입었을 때 엄마는 유독 거울 앞에 오래 서있는다. 멋진 옷을 입고 있는 근사한 엄마와 가격표를 보며 고민하는 엄마가 거울 속에서 만나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가격표를 고민하는 엄마가 이기지만, 오늘은 좀 다르다. 옆에서 나와 짝꿍이 자꾸 바람을 넣는다. 그거 예뻐. 그걸로 사. 마침내 고민을 이겨낸 엄마가 날아갈 듯 부풀어 오른다. 결제를 하는 순간까지도 엄마의 얼굴에는 좋음과 미안함이 함께 살아있다.
이거 너무 비싼데. 안 사줘도 된다니까.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우리 엄마, 직원이 포장하고 있는 가죽 재킷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쇼핑백을 손에 들고 가게를 나선 엄마의 발걸음이 가볍고 빨라진다. 무언가를 찾는 듯 쇼핑몰을 빙 둘러보던 엄마가 우리에게 말한다.
너희들 옷도 하나씩 골라 봐. 엄마가 사주고 싶어서 그래.
괜찮다는 우리의 거절에도 엄마가 고집을 부린다. 우리는 못 이기는 척 예쁜 해변 그림이 그려진 티셔츠 한 장씩을 고른다. 차라리 우리를 위해 돈을 쓸 때 더 마음 편하다는 것처럼, 우리 옷을 계산하는 엄마의 얼굴이 아까보다 한결 더 편해진다. 카페에서 자몽에이드 한 잔씩 때린 후 집에 돌아오자마자 엄마는 방금 사온 옷을 한 번 더 입어본다. 피곤하지도 않은지 이리저리 몸을 돌려보면서 거울 앞에 다시 한참을 서있는다.
엄마 나이에 이런 옷 입어도 괜찮을까.
예뻐. 너무 잘 어울리는데 뭘.
그래? 정말 괜찮아?
저 거울 속에는 근사한 엄마밖에 없어서 그런가, 이번엔 엄마가 근심 없이 마냥 해맑은 미소를 짓고 있다. 엄마의 얼굴에는 언제나 기쁨과 슬픔이, 걱정과 사랑이 다 솔직하게 묻어나온다. 어른이 된 나는 말과 다른 엄마의 표정을 보며 진짜 마음을 읽을 줄 알게 됐다. 기쁘고 슬프고 걱정하고 사랑하는 엄마의 표정. 가만히 보고 있으면 괜히 코끝이 찡해지는.
*
엄마 환갑 기념으로 가까운 친척들을 불러 식사 대접을 하기로 했고, 적당한 장소를 예약해 가족들을 불러 모았다. 200만 원짜리 대박 돈벼락까진 아니더라도 소소한 날벼락 정도의 용돈을 챙겨뒀고, 부모님 사진을 넣은 케이크와 작은 꽃다발을 준비했다. 가족들의 축하를 받으며 웬일로 맥주를 몇 잔씩이나 마신 엄마도, 흑기사를 해준다며 엄마의 술잔을 대신 비워 얼굴이 불그스름해진 아부지도 덩달아 기분이 퍽 좋아 보인다.
그렇게 하루가 금세 갔다. 이 짧은 하루를 위해 우리는 우리의 사랑을 쏟아 부었고, 멋진 가죽 재킷을 입은 근사한 엄마는 그 사랑을 실컷 들이마셨다. 그 사랑은 엄마에게서 시작되어 우리에게 흘러들어왔던 사랑이었고, 그래서 엄마가 남은 평생 되돌려 받아야 할 사랑의 아주 작은 일부였다. 엄마는 오늘 행복했다. 분명히 행복했다.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살고 싶다는 말이 스물의 언어라고 생각했다. ‘영원할 줄 알았던 스물다섯 스물하나.’ 지나고 나면 한참 뒤에 그리워질 그런 나이라면, 현실이 무디고 철이 없어도 이해될 나이라면 함부로 꺼내도 괜찮은 말인 줄로만 알았다. 그리고 육십하고 육십하나, 그 말은 모양을 조금 바꾼 채로 여전히 가능한 말이 되어 있었다. ‘지금껏’ 멋지게 잘 살았다는 말. 그러니 ‘이제는’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살라는 말.
환갑은 한 바퀴 돌아 다시 찾아온 인생에서 남을 조금 덜어내고, 그 공간만큼 자신을 좀 더 사랑하게 되는 사건이다. 그렇게 이기적인 사랑은 당연히 해도 되고, 반드시 해야 한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엄마도 스스로 그렇게 믿기를. 울 엄마, 오직 당신의 두 번째 여정을 위하여, 건배.
